소설 <뒤 돌아보며>를 향한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뉠 겁니다. 혹평과 호평이죠. 누군가는 “역시 구닥다리 유토피아 소설은 지루하기 짝이 없어. 이게 뭐야?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사회주의 설교뿐이잖아.”라고 비판할 겁니다. 또한 누군가는 “우와, 이미 19세기에 이렇게 자세하고 치밀하게 미래를 상상했다니. 지금 사회와 비교하면 어떨까?”라고 찬사를 보내겠죠. 그리고 이 소설은 출간 당시 수많은 찬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나 <벤허>와 함께 3대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출판사의 홍보 문구로도 적절하고 이 책의 위상을 설명해주기에도 적절하죠. (역시 19세기 미국도 3대 베스트 운운하기를 좋아하는 듯합니다.) 게다가 우리나라 출판사는 이 책을 '미국 최초의' SF 소설로 홍보하는 것 같은데, 덕분에 21세기 한국 독자의 기대는 더욱 커지기 마련입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미국 사회주의 SF 소설은 잭 런던의 <강철 군화>일 겁니다. 그런데 <강철 군화>는 지금 읽어도 꽤나 화끈하고 재미있어요. 하지만 <뒤 돌아보며>를 읽어보면, 음….


줄거리부터 우선 소개하자면, 주인공은 19세기 미국 보스턴의 상류층 줄리언 웨스트입니다. 웨스트는 좋은 집도 있고, 화려한 사교 모임에도 참가하고, 꾀꼬리 같은 약혼녀도 있고, 세상에 부러울 게 없습니다. 하루하루 근심 없이 먹고 살죠. 그렇다고 웨스트는 당시 사회 상황에 아예 무지하지 않았습니다. 노동자와 빈민들의 참혹한 삶을 충분히 인지했죠. 하지만 불합리를 인지했을 뿐, 그걸 당연하게 수용했고 뭔가 바꾸려고 시도하지 않습니다. 아예 바꾸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원래 그렇게 돌아가는 거고, 노동자와 빈민들은 불쌍하지만, 그런 비참한 생애는 줄리안 본인과 하등 관계가 없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깊은 잠에 빠졌다가 다시 일어나니까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거의 천지가 개벽했습니다. 줄리안은 19세기에서 21세기로 건너뛰었고, 이미 21세기에는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가 사회주의 개혁을 실행했습니다. 즉, 웨스트는 100년이 넘도록 쿨쿨 잠만 잤고, 느닷없이 신세계에서 눈을 떴습니다. 이 정도면 냉동 수면도 아니고, 거의 타임슬립 수준이죠. 물론 미국 최초의 SF 운운하지만, 설정은 좀 얼렁뚱당 넘어갑니다.


21세기에서 깨어난 줄리안은 다행히 사려 깊은 의사 가족을 만납니다. 하긴 그 가족이 아니라 다른 가족을 만났어도 줄리안은 얼마든지 환대를 받았을 겁니다. 유토피아잖아요. 모두가 친절하고 따스하고 남을 배려해요. 줄리안은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영문을 몰랐고, 줄리안을 진찰한 의사는 세상의 변화를 차근차근 설명합니다. 줄리안은 노동자와 빈민들의 비참한 생애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시장 구조와 유통 구조는 어떤지, 임금이 어떻게 지불되는지, 국제 무역이 무슨 수로 이루어지는지 등등 줄줄이 비엔나 소시지처럼 질문합니다. 당연히 의사 선생은 줄줄이 비엔나 소시지처럼 답변하고요. 바로 여기서부터 소설의 진짜 면모가 드러납니다. 아마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사회주의 설명'일 겁니다. 이 책의 대부분 내용은 뻔합니다. 미래의 사회주의 지식인이 과거의 자본주의 상류층에게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설명합니다. 임금과 노동, 생산과 유통, 시장과 무역, 사법과 형벌, 성 평등과 교육, 기타 등등. 줄리안은 끊임없이 물어보고, 의사 선생은 끊임없이 대답합니다. 중간에 다른 내용이 조금씩 끼어들지만,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합니다.


만약 이 책을 재미있게 읽고 싶다면, 의사 선생의 설명에 익숙해져야 할 겁니다. 의사 선생의 설명이 얼마나 논리적인지 혹은 현실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일일이 따지다 보면, 책장이 금방금방 넘어갑니다. 평소에 사회주의나 무정부주의, 기타 대안 경제 등을 고민하는 독자라면, 이 책의 상상력을 작금의 혁실, 미래의 실제 모습과 비교/대조할 수 있겠죠. 줄리안이 아무리 어려운 것을 질문해도 의사 선생은 척척 대답하고, 소설 속의 사회주의 유토피아에는 불가능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가사 노동부터 국제 정치까지 사회주의 개혁 덕분에 모든 게 일사천리로 돌아갑니다. 누구나 경제적으로 부를 누리고, 그 어느 누구도 다른 이를 모함하거나 시기하지 않고, 범죄도 발생하지 않으며, 국제 분쟁도 터지지 않습니다. 여자와 남자는 평등하고, 청년들은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고, 노인들은 편안하게 세상을 떠날 수 있으며, 모든 곳에서 기쁨이 넘칩니다. 심지어 소설 속의 21세기 인류는 군대까지 없습니다. 천국에는 군대가 필요 없나 봅니다.


뭐, 당연히 의사 선생의 설명에는 헛점이 많습니다. 사실 헛점투성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죠. 사회주의 유토피아의 겉모습은 실로 굉장합니다. 의사 선생의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절로 좋아집니다. 기분이 좀 우울하다면,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잠깐 구경하는 게 치유 방법이 될지도 모르죠. (물론 현실의 시궁창을 깨닫고, 오히려 더욱 좌절할 수도 있겠죠.) 그 정도로 소설 속의 이상 세계는 천국입니다만, 자세히 따져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이 많습니다. 가령, 소설 속의 청소년들은 의무적으로 몇 년 간 '직업 군대의 신병'으로 복무합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원하든 그렇지 않든 직업 군대의 신병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청년 본인들이 직업 적성을 깨달을 수 있고, 그래야 차후의 계획 경제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강제성이 꽤나 강합니다. 청년들의 성향은 저마다 모두 다를 테지만, 사회주의 유토피아는 그런 차이를 별로 고려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회 자체가 군대처럼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의사 선생 본인이 '군대 사회'라고 부르죠.


'군대 사회'라는 명칭이 비유적이긴 하지만, 군대만큼 획일성을 추구하는 게 사실입니다. 사회 정책은 개개인의 자유를 위해 이런저런 배려를 하지만, 너무 획일성만을 따진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런 거야 개인적인 느낌이라고 해도 국제 무역처럼 복잡하고 거시적인 문제까지 너무 손쉽게 풀어냅니다. 지구상의 세계 지리는 모두 다르고, 따라서 생산품이나 생산량도 다르기 마련입니다. 이런 차별적인 조건은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칠 겁니다. 누군가는 품질 좋은 생산품을 대량 팔아치울 테고, 누군가는 보잘것없는 생산물 하나에 연연하겠죠. 따라서 자유 시장에는 불평등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의사 선생은 동등한 거래로 이런 불합리를 무마한다고 설명합니다. 글쎄요, 서유럽처럼 농사하기 좋은 지리와 중앙 아시아 및 북아시아처럼 척박한 지리의 국가가 어떻게 평등하게 무역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북아시아나 중앙 아시아 사람들은 유목 민족입니다. 그 사람들이 좋아서 유목하지 않죠. 그만큼 자연 환경이 어려워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회주의에 입각한 획일적이고 평등한 거래가 이런 지리적 차이를 무시할 수 있을까요. 테라포밍 기술 덕분에 사막이 숲으로 변했다면 모를까, 그런 언급은 없습니다. 그저 제도적으로 분쟁을 없앤다고 말하지만, 도대체 제도가 자연 환경의 한계를 무슨 수로 극복하는지 미지수입니다. 아무리 경제 제도가 뛰어나도 모래 사막에서 지중해 기후처럼 농작물을 팍팍 뽑아낼 수야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나마 중동 국가라면 석유를 수출하겠지만, 척박한 황무지라고 해서 석유가 항상 샘솟지 않죠. 의사 선생의 설명에 일리가 없지 않지만, 몇몇 부분은 도가 너무 지나쳤습니다. 그리고 대충 설명으로 은근슬쩍 넘어가는 부분도 있고요. 더군다나 환경 오염이나 생태계 파괴 등은 언급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토록 산업이 발달했다면, 분명히 환경 오염도 큰 재앙일 텐데, 생태계 파괴를 어떻게 막았는지 일언반구조차 없어요. 기술 발달 덕분에 환경 오염을 피했다고 잠깐 언급할 뿐입니다. 하긴 대부분 19세기 사회주의자들의 관심은 환경 오염이 아니었죠. 윌리엄 모리스 같은 인물이 드문 편이니까요.


하지만 그런 세세한 사항을 떠나서…. 미래 세계를 치밀하게 조합하려고 노력한 흔적은 대단합니다. 세부 사항은 논리적이지 않을 지라도 미래 세계를 상상하는 시도 자체는 꽤나 논리적인 향기를 풍깁니다. 일개 가정부터 국가를 거쳐 전세계에 이르기까지, 육아 교육부터 청년기를 거쳐 노년기 은퇴에 이르기까지 범주도 다양하고요. 따라서 작중의 모순을 눈 감아준다면, 미래 사회의 장대하고 풍요롭고 평화로운 모습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당시 독자들은 이 소설에 너무 감명을 받은 나머지, 실제 사회주의 개혁 조직을 결성했다고 하더군요. 저는 비록 21세기 독자고, 이 책의 허술함이 눈에 들어오지만, 그런 독자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겠습니다. 게다가 19세기 사람이 21세기의 새로운 문명에 충격을 받는 과정 또한 실감나게 그렸습니다. 오히려 저는 줄리안 웨스트의 감정 변화가 흥미로웠습니다. 미지와 조우하는 인간의 사고 방식 변화, 고정 관념 타파, 인식의 전복은 언제나 흥미롭지 않습니까. 타입슬립과 로맨스의 결합 역시 비중은 작지만 훌륭해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단점도 크고 장점도 큰 책입니다. 설교가 끊임없이 나오지만, 이미 말했듯 대부분 허점이 많습니다. 논리적인 체계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설교를 들어야 하는지 불만일 겁니다. 21세기 독자의 눈으로 본다면, 의사 선생의 설교는 헛소리 나열에 불과할 수 있어요. 하긴 21세기 학자들도 완전한 대안 경제 체계를 내놓지 못하는 마당입니다. 19세기 작가가 오죽하겠어요. 그래도 이 책의 장점은 치밀하고 방대한 대안 사회이고, 더불어 미지와의 조우나 인식의 전환, 타입슬립과 결합한 로맨스도 빼놓을 수 없어요. 줄리안 웨스트가 끝내 자본주의 체계의 모순을 깨닫고 탄복하는 장면은 시대를 막론하고 양심을 울릴 겁니다. 그게 헬조선 운운하는 21세기 한국이라면, 더욱 그렇겠죠. 아니, 전세계가 신자유주의, 승자독식, 1:99, 고용 없는 성장, 이상 기후 때문에 미쳐 돌아가는 와중이죠. <뒤 돌아보며>의 감동은 21세기에도 그 가치가 바래지 않는 듯합니다. 생태 문제만 언급했어도 훨씬 좋았을 법한데, 그 점이 아쉽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