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콩: 해골섬>은 '<고지라> 제작진'을 홍보 문구로 삼습니다. 실제로 예고편에 그런 문구가 대문짝만하게 튀어나왔고, <고지라> 작가가 (다른 작가들과 함께) 대본을 맡았습니다. 이는 킹콩의 판권이 레전더리 영화사에 있기 때문일 겁니다. 게다가 레전더리 영화사는 차후 킹콩과 고지라를 엮을 생각이죠. 일본의 토호 영화사가 한때 <킹콩 대 고지라>를 만들었는데, 이게 나름대로 꽤 인기를 끌었습니다. 미국 영화사의 대표적인 괴수는 킹콩이고, 동아시아 영화사의 대표적인 괴수는 고지라죠. 두 거물이 맞붙었으니까 가히 별들의 싸움 아니겠습니까. 레전더리 영화사는 그런 괴수 대결의 로망을 추구하나 봅니다. 솔직히 다소 쌈마이한 이야기라서 이게 21세기에 얼마나 인기를 끌지 모르겠어요. 어쩌면 중국 시장을 믿고 계획했을지 모르죠. 시각 효과를 마구 동원하면, 어마어마한 중국 시장은 그런 쌈마이한 이야기도 좋아하니까요.


여하튼 그런 점 때문에 <콩: 해골섬>을 보면, <고지라>가 자주 생각납니다. 하지만 <콩: 해골섬>은 <고지라>와 여러 모로 다른 영화입니다. 종종 정반대되는 설정도 있고요. 우선 <고지라>는 대부분 도시가 배경입니다. 괴수가 인류 세계로 쳐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인류는 원자력 기술을 개발했고, 이게 괴수 무토를 끌어들였죠. 그 바람에 고지라까지 도시에 상륙했고요. 결국 무토와 고지라를 엄청난 싸움을 벌였고, 도시는 아수라장이 됩니다. 반면, <콩: 해골섬>에서는 인류가 괴수의 세계로 찾아갑니다. 한마디로 현대화 문명이 야생을 찾아갑니다. <고지라>는 대자연이 현대화 문명을 깔아뭉갤 수 있다고 말했지만, <콩: 해골섬>은 현대화 문명이 야생을 찾아갑니다. 원작 <킹콩>에서는 결국 야생(킹콩)이 인류(현대 문명)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이번 <콩: 해골섬>도 그렇게 될까요. 글쎄요, 이번 킹콩은 그렇게 호락호락 당할 것 같지 않습니다.


그 동안의 영화 속 모습과 달리 이번 킹콩은 꽤나 큽니다. 전체 길이가 거의 흰긴수염고래에 달하는 듯합니다. 대략 30m 정도. 제가 알기로 예전 킹콩들은 아무리 커야 20m를 넘기지 못했거든요. 이번 킹콩은 그만큼 커졌으니까 그만큼 인류를 위협할 수 있겠죠. 밧줄에 묶여서 낑낑거리지도 않을 테고, 가스 좀 마셨다고 기절하지 않을 듯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킹콩이 인류 문명을 파괴할 정도로 위압적이지 않을 테죠. 고지라는 그야말로 초자연적 생명체지만, 킹콩은 그렇게까지 뻥튀기 설정이 아닐 것 같습니다. 설정상 고지라는 지각 변동이나 핵탄두 폭발에서 살아남았습니다. 그냥 살아남은 것도 아니고, 온 몸이 아주 멀쩡합니다. 당연히 재래식 병기는 아무 흠집도 못 내고, 고지라가 마음만 먹으면 태평양을 삽시간에 횡단할 수 있습니다. 동급의 다른 괴수가 아니라면, 고지라를 막을 방법이 없죠. 그야말로 대자연의 분노니까요. 그러나 킹콩은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 힘들 것 같아요. 원작 킹콩부터 그렇게 초자연적인 생명체가 아니었습니다. 공룡이랑 힘싸움하는 수준이었죠.


그러니까 원작 킹콩은 그냥 공룡만한 유인원입니다. 그리고 공룡은 실존했던 생명체입니다. 초자연적인 구석 따위 없죠. 고지라는 대함 미사일과 전차 주포도 가볍게 씹어먹었지만, 킹콩은 대구경 탄환에도 피해를 입을지 몰라요. 공룡이나 고래가 아무리 커도 결국 생명체입니다. 피와 살로 이루어졌어요. 인류의 화기 앞에 당해낼 여력이 없습니다. 소설 <백경>에서 모비 딕은 엄청나게 강력한 고래지만, 21세기 구축함 앞에서 모비 딕은 그냥 허연 물고기에 불과할 겁니다. 킹콩 역시 현대 병기 앞에서 맥을 못 추겠죠. 다만… 이번 킹콩은 상당히 큰 데다가 설정상 고대 생명체입니다. 킹콩이 언제 나타났는지 알 수 없지만, 영화 설정은 우리가 아는 생명의 역사와 다를 겁니다. 고지라와 다른 괴수들이 존재했듯 생명의 역사는 영화 속에서 바뀌겠죠. 따라서 이번 킹콩은 원작 킹콩보다 좀 더 특이한 야수일 수 있습니다. 소총 탄환 정도는 씹어먹을지도.


게다가 <콩: 해골섬>에 달랑 킹콩만 나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1933년 원작과 2005년 리메이크에도 공룡들이 대거 출몰했으니까요. 공룡이 나올지, 어떤 다른 괴수가 나올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킹콩만 나오지 않겠죠. 적대 괴수(혹은 공룡)가 나올 테고, 킹콩과 한판 거하게 붙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둘의 싸움은 단순히 공룡과 거대 유인원의 싸움이 아니겠죠. 만약 킹콩이 나중에 고지라와 정말 싸울 거라면, 신체적인 능력이 일반 동물을 훌쩍 능가해야 할 겁니다. 솔직히 몸집은 100m를 넘고, 재래식 병기와 핵무기를 씹어먹고, 태평양을 순식간에 주파하고, 입에서 방사열선이 나가는 괴수가 고지라입니다. 이번 킹콩이 아무리 고대의 거대 야수라고 해도 쉽게 맞설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에요. 정작 고지라는 킹콩 따위 거들떠도 안 볼 겁니다. 그러니까 이번 킹콩은 나중을 위해 뭔가 초자연적 괴수다운 면모를 보여줘야 할 겁니다. 적대 괴수도 그렇고요.


<고지라>와 <콩: 해골섬>이 똑같은 설정을 공유한다면, 영화에 나오는 란다(존 굿맨)는 아무래도 모나크 소속 같습니다. 모나크는 괴수들을 연구하는 비밀 단체인데, 1943년에 이미 존재했습니다. <고지라 어웨이크닝>에 따르면, 2차 대전이 끝나자마자 괴수들이 나타났거든요. 원폭 투하 때문이죠. <콩: 해골섬>의 배경이 1972년이니까 이미 모나크 단체가 한창 활동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란다는 고대 괴수들이 지구에 살았다는 사실을 아는 듯합니다. 그걸 위해 일부러 해골섬까지 찾아왔죠. 따라서 란다의 역할은 <고지라>의 세리자와일 수 있죠. 물론 모나크 소속이 아닐 수 있습니다. 어쩌면 괴수들의 비밀을 홀로 연구했을 수 있죠. <콩: 해골섬>의 예고편에는 모나크 문양이 안 나오니까요. 어쨌든 강대국 정부 혹은 모나크가 킹콩을 어떻게 대할지 의문입니다.


묘하게도 2005년 <킹콩>과 2014년 <고지라>는 모두 현대 문명과 야생의 대결입니다. <킹콩>에서 인간들은 돈벌이를 위해 킹콩을 잡아갑니다. 사실 킹콩은 해골섬에서 나름대로 힘겹게 살아가는 중이었는데, 난데없이 도시로 붙들려갔죠. 영화 초반부에 경제 공황의 폐해가 나오고, 이는 자본주의가 자연을 착취한다는 주제로 볼 수 있습니다. 2014년 <고지라>는 그렇게 노골적으로 현대 자본주의 착취를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영화 속에서 만악의 근원은 원자력 발전소입니다. 그리고 원자력 발전소 폐지는 전통적으로 진보 좌파들의 숙명 중 하나죠. 세계 녹색당을 보세요. 영화 속에서 에너지 산업에 눈이 먼 인간들은 결국 대자연(괴수)에게 망할 뻔했죠. <콩: 해골섬>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뭐, 그렇다고 이들 영화가 좌파적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저 좌파 담론에 써먹기 좋다는 뜻일 뿐입니다. 경제 공황과 원자력 발전소 폐쇄는 그쪽의 단골 메뉴니까요.


위에서 제가 추측한 각종 설정은 모두 개인적인 상상(망상?)일 뿐입니다. 실제 영화 내용은 제 망상과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망상도 즐거운 설정 놀음이니까요.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보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