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비 증액을 둘러싼 MB와 군의 불협화음
‘성장 보수’와 ‘냉전 보수’의 근본적 차이

(시사IN / 천관율 / 2010-10-08)


10월1일 국회 본회의에서 김황식 국무총리 후보자가 임명동의를 받으면서, 이명박 정부는 당·정·청 지도자를 모두 병역면제자로 채우는 진기록을 계속 이어가게 됐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가 지난 7월14일 전당대회에서 대표 자리에 오르면서 결성된 이명박·정운찬·안상수 ‘면제 삼총사’는 총리 이름만 바뀐 채 유지됐다.

김태호 전 총리 후보자가 낙마한 이후, MB는 철저하게 ‘청문회 통과’를 목표로 총리 후보를 세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총리의 병역면제 이력은 치명적 결격사유로 간주되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둔감한 태도다. 보수 정권은 국가 안보를 최우선에 둘 것이라는 기존 통념에 비춰보면, MB 정부는 군 문제에 대해서는 감수성이 거의 없는 편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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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수복 60주년 기념식에서 사열하는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 제공

냉전적 사고방식과 군사정권의 경험에 기반해 군을 국가의 근간으로 받아들이는 ‘구보수 세력’과는 구분해, MB 정부를 ‘신보수 세력’으로 달리 봐야 한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안보 전문지 <D&D 포커스> 김종대 편집장은 이에 대해 “‘호모 밀리터리쿠스’와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차이다. 이건 좌우의 차이만큼이나 크다”라고 표현했다.

북한과의 체제 대결에 존재기반을 두었던 이른바 ‘냉전 보수’와 경제성장을 존재 이유로 삼았던 MB류의 ‘성장 보수’를 같은 보수 세력으로 뭉뚱그려서는 정확한 분석이 될 수 없다는 의미다. 진보·개혁 성향 정권 10년간 동맹을 형성했던 이들 냉전 보수와 성장 보수가 집권 이후 분화 과정에 접어들었고, MB와 군의 엇박자도 그와 결을 같이하는 대목이 있다.


돈 안 들면 립서비스, 돈 들면 없던 일로

MB가 군과 지속적으로 엇박자를 내왔다고 하면 고개를 갸웃거릴 사람이 많다. MB가 고비 때마다 군을 방문하거나 군을 치하하는 따위 방식으로, 이른바 ‘집토끼 잡기’에 나서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기 때문이다. MB는 대통령 임기가 시작되는 2008년 2월25일 0시가 되자마자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점검했다. 임기 첫 업무를 군 관련 업무로 시작한 것이다. 전시작전권 이양 연기를 요구한 군과 보수 세력의 요구를 수용했고, 천안함 사건 이후에는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전쟁기념관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에도 안보총괄점검회의의 군 복무기간 단축 철회 건의를 사실상 받아들였다. 군과는 ‘찰떡궁합’을 과시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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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황식 총리(왼쪽)와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오른쪽)에 MB까지, ‘당·정·청 병역면제 3총사’가 완성됐다. ⓒ시사IN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대외용 퍼포먼스’라는 게 군 내부 사정에 밝은 관측통들의 일관된 설명이다. “노무현 정부 때는 사상이 안 맞았을 뿐 군에게는 오히려 좋은 시절이었다. 예산 지원이 거침없었다. 반면 MB 정부는 보수 정권이라는 공감대만 빼면 더 빡빡한 정권이다.” 한 군 관계자의 설명이다.

문제는 결국 돈이다. MB는 군에 대해 ‘비효율적이고 경영 합리화가 필요한, 돈을 쓸 줄만 아는 집단’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났다. 실제로 취임 직후인 2008년 3월 국방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MB는 “국방도 국가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사고해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를테면 ‘MB식 국방비전’인 셈이다. 2008년 10월에 발표한 ‘이명박 정부 20대 국정전략 100대 국정과제’를 보자. 국방 관련 분야인 ‘전략 19’에는 5대 국방 과제가 담겨 있는데, 방위사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고 군사보호 구역을 줄이는 등 ‘돈 되는’ 과제가 둘 포함돼 있다.

국방 예산 편성 추이를 보면 MB의 돈줄 죄기는 더욱 눈에 띈다. 노무현 정부가 전작권 환수, 군 복무기간 단축을 통한 병력 감축, 육·해·공군 균형발전 등을 목표로 국방 투자를 급격히 늘린 반면, MB 정부 들어 예산 증가세는 눈에 띄게 줄었다(위 표 참조). 사정을 모르고 본다면 우파 정권이 좌파 정권으로 교체된 인상마저 주는 국방 예산 추이다.

<D&D 포커스> 김종대 편집장은 “일견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돈’을 키워드로 보면 MB와 군 사이의 관계에 일관성이 보인다. 돈 안 드는 대목에서는 립서비스를 하고, 돈 드는 건 취소·연기·보류한다”라고 정리했다. “취임 첫 전화를 합참에 하는 데 돈이 드나? 전쟁기념관 담화에 돈이 드나? 군 복무기간 단축 방침을 되돌리면 오히려 돈을 아낄 수 있다. 노무현 정부 때 병력 감축과 연계되어 계획된 첨단무기 도입을 뒤로 미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MB가 보여준 군과의 스킨십은 철저하게 돈이 안 드는 영역에서만 이뤄져 왔다는 얘기다.

반면 군과 MB가 부딪치는 장면에서는 어김없이 돈 문제가 개입했다. 이상희 전 국방부 장관은 2009년 8월 청와대에 국방예산 삭감에 항의하는 서한을 보내 큰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국방부가 올린 국방예산 7.9% 증액안이 3.4% 증액으로 대폭 깎였는데, 이 과정에서 청와대가 이상희 전 장관을 제치고 장수만 당시 국방부 차관과 예산안 수정작업을 했다. 이 전 장관은 이를 장 전 차관의 ‘하극상’으로 표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전 차관은 기획재정부에서 뼈가 굵은 민간 관료 출신으로, MB가 국방 분야의 ‘경영 합리화’를 위해 차관으로 배치했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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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리베이트 발언’도 이 무렵 나왔다. “무기 도입 사업에서 리베이트만 없애도 20%는 아낄 수 있다”라는 MB의 발언이 알려지면서 군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발언은 MB가 군을 보는 관점을 집약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군은 방만·부도덕하고, 비용 절감이 필요하다’는 게 그것이다. 전형적인 CEO 마인드다.

돈을 아끼는 게 국방정책의 모든 것이다 보니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방위사업청은 2006년 미국 보잉사와 16억 달러에 공중조기경보통제기를 도입하는 계약을 맺고 매년 대금을 지급해왔다. 그런데 MB 정부가 2010년 예산에서 이 사업 예산을 삭감한 것이다. 도입 논의 단계의 무기사업이 아니라 이미 대금 지급이 이뤄지고 있던, 계약이 끝난 사업의 예산을 줄인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 이에 보잉사는 미지급된 대금에 대한 지연이자 및 보상비용을 요구하고 나섰다. 국회 국방위 소속 안규백 의원실(민주당)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지연이자 및 보상비용이 최소 306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즉, 당장 정권 집권기에 들어가는 돈을 줄이기 위해 차기 정부에 수백억 원대 비용부담을 추가로 지웠다는 얘기가 된다. 이 외에도 집권 초기 군의 반발을 뚫고 ‘제2 롯데월드’ 공사 허가를 내준 것도 ‘경제 우선’ 원칙에 군이 우선순위에서 밀린 사례로 흔히 거론된다.

“군과 관련해서라면, MB는 ‘3무(無) 정부’다. 첫째, 병역면제자라 군 경험이 없다. 둘째, 어젠다가 없다. 노무현 정부 때의 ‘육·해·공군 균형’이나 ‘협력적 자주국방’ 같은 기본 방향성이 안 보인다. 셋째, 그렇다 보니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경제 이슈·외교 이슈에 밀려 국방 문제는 늘 뒷전이다.” 군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군이 MB를 보는 시각을 이렇게 정리했다. 세 가지가 합쳐지면 군에 대한 무관심과 자신감 부족이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경험·어젠다·우선순위 없는 3무 정부”

그 결과는 ‘육방부의 부활’이었다. 노무현 정부가 공을 들였던 육·해·공군 균형이 무너지고 육군이 다시 주도권을 잡았다. 군을 방임하면 워낙 머릿수에서 압도적인 육군이 주도권을 잡을 수밖에 없어 정권 차원의 세심한 안배와 관리가 필요한데, MB 정부 들어서는 그게 실종된 것이다. 해군과 공군의 첨단 전력 도입 방안이 줄줄이 ‘전력화 시기 순연’ 판정을 받는가 하면, 합참에서 육군의 주도권 역시 도로 공고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국방부는 ‘현존하는 위협’을 전력 증강 방향의 판단 기준으로 삼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는데, 많은 군사 전문가들은 이를 육군 주도권 강화 선언으로 읽는다. ‘잠재적 위협’을 대상으로 하는 첨단무기 대신 재래식 지상전 전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국방정책의 가닥이 잡힐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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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1월 국회에서 열린 제2 롯데월드 공청회에서 항공기 충돌 가능성을 설명하는 장면. ⓒ뉴시스

MB 정부가 군에 대한 확고한 어젠다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민간인 출신의 외교·안보 라인이 군 개혁을 시도한 사례는 대체로 실패로 끝났다. 장수만 전 국방부 차관은 이상희 전 장관의 서한 파동 이후 군 내부에서 거부층이 확고해졌고, 결국 방위사업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군 조달업무와 관련해 방사청과 국방부의 갈등을 조정하는 정도가 군과 관련된 마지막 업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천안함 사건 이후에는 군의 기강 문란이 심각한 수위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청와대 내의 민간 외교·안보 라인에서 ‘문민 국방장관’ 카드를 유력하게 검토했다. 이재오 현 특임장관, 류우익 현 주중대사 등 대통령 핵심 측근들의 이름이 거론되는 등 분위기가 무르익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논의를 주도하던 정인철 기획관리비서관이 영포회 사건에 이어진 ‘권력 전횡 파동’으로 물러나면서 이 역시 유야무야됐다.

군에 대해 ‘부도덕하고 비효율적이다’라는 인상을 가지며, 군이 쓰는 돈 문제 외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던 MB는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돈 문제를 넘어 군 전반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천안함 사건 직후에는 대규모 문책성 인사가 있을 것이라는 ‘살벌한’ 전망이 군 내에서 다수였다. 하지만 결과는 싱거웠다. MB는 군 쇄신을 시도하기는커녕 사태 수습을 이유로 김태영 국방부장관 이하 대다수 장성을 유임시켰다. “천안함 이전에는 ‘3무’ 상태에서 군에 관심이 없었다면, 천안함 이후로는 군에 개입할 방법도 능력도 쌓아놓은 게 없어 망설이는 것이다”라는 분석이 나온다. ‘돈줄’에만 포커스를 맞춰오던 MB식 군 관리가, 진짜 위기가 닥치자 위기관리 능력 부재를 단적으로 드러내 버린 꼴이다.

병역 문제, 돈 문제, 군 경영 문제에 이르기까지, ‘성장 보수’와 ‘냉전 보수’가 군을 보는 문법은 너무나도 다르다. 이 차이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불협화음을 일으킬 뇌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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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위)는 군 복무기간 단축 백지화를 MB에게 건의했고, 기존 18개월 계획에서 3개월 늘어난 ‘21개월 복무’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청와대제공


출처 :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8481





 현 정권의 안보정책을 가장 명확하게 설명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