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역사 포럼
역사 속의, 또는 현대의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들과 관련한 뉴스 이외에 국내 정치 논쟁에 대한 이야기는 삼가해 주십시오.
아래 글에서도 썼다시피 잉글랜드 군의 주력 무기인 잉글리시 롱 보우는 주목(朱木 Yew)으로 만듭니다. 기술적으로는 단순한 형태인 직궁(直弓)에 속하고, 활의 형태는 가운데 힘을 받는 부분이 약 4cm정도로 굵게 만들고, 양끝으로 올라갈수록 점차 가늘어집니다. 장궁의 길이는 5피트에서 6파트로 활을 쏘는 궁사들의 키보다 큰대 반해 조선각궁은 다양한 활의 형태를 보여주는 동양권의 내에서도 짧은 편에 속하는 단궁입니다. 형태는 뒤집어진 원의 모양으로 극단적인 만궁에 속하죠. 아직까지 한국의 각궁을 접해보지 못한 유럽의 군사사가들은 십자군 원정때 유럽 기사단을 공포에 떨게 만든 투르크(터키)의 활을 일류로 꼽고 있는 모양이지만 중세 한국의 각궁은 터키의 합성궁보다도 만곡도가 높으며 이 때문에 위력이 세계 일류급의 수준이라고 합니다.
장궁(long bow)는 주목을 통째로 켜서 만듭니다. 나무 한가운데의 부드러운 부분과 바깥쪽의 단단한 부분을 적당한 비율로 조절해서 탄력을 최대화할 수 있도록 제작됩니다. 활을 당기는데 소요되는 힘은 일반적인 것이 60파운드 정도(1파운드는 0.45kg) 경우에 따라서는 70~80파운드, 심할때는 110파운드 이상 올라갑니다. 물론 조선 각궁의 경우도 정량전과 같이 길이가 130cm에 달하고 당기는데 드는 힘이 100파운드 이상인 것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궁도에 사용되는 흑각궁의 경우는 50파운드 정도이므로, 영국 장궁은 조선 각궁에 비해 쏘는데 엄청나게 힘이 많이 드는 활입니다. 하지만 당기는데 드는 힘이 많다고 활의 위력이 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영국의 장궁은 단일궁인 관계로 활의 효율이 높지 못해 시위를 당길 때 드는 힘을 100% 모두 화살이 받지 못하고 낭비되는 에너지가 15~30% 정도 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나 중국, 터키등에서 재료도 구하기 힘들고 만들기도 힘든 합성 재질의 활(물소뿔과 힘줄, 물고기의 부레로 만든 풀, 아교 등등의 소재와 8가지의 서로 다른 나무 재질을 합쳐서 만드는 활)을 만드는 이유가 바로 활의 효율 때문이죠. 조선시대 오리지날 각궁의 경우, 활의 효율이 장궁보다 훨씬 더 좋다고 합니다.
영국식 장궁 36kg의 활이 내는 화살 초속 = 합성궁(우리나라 각궁류)의 27kg의 화살 초속
이라고 합니다. 같은 35파운드활 혹은 40파운드 활이라고해도 각궁이나 합성궁이 더 화살 초속이 빠르다는 이야기죠. 다시말해 각궁의 에너지 효율이 더 좋은 셈이고, 같은 힘으로 쏘면 각궁이 더 멀리 나간다는 이야기입니다.
합성궁과 단일궁의 사거리 차이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사례가 있는데, 1795년 영국에서의 궁술 대회에서 투르크의 대사의 비서인 마흐모드 에펜디(Mahmoud Effendi)가 투르크의 전통 합성궁으로 화살을 482야드(약 440.7m)를 쏘자 최대사거리 200~300미터인 장궁에 익숙해져있던 그 지역의 궁수들이 기겁을 했다고 합니다. 그 투르크 인은 그가 쏜 것이 결코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했고, 투르크의 술탄(Sultan) 셀림(Selim - 오스만 투르크의 제 9대 술탄 '냉혹자' 셀림 1세[제위 1512∼20])은 거의 그 두 배를 쏘았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것이죠. 최근에 미국인 장궁 사수들에 의해 마흐모드의 기록은 자주 깨지고 있지만, 만약 셀림이 정말로 972야드(약 888.8m)를 쏘았다면, 그는 여전히 세계 기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규정 방식에 따른 화살 멀리 쏘기의 미국 기록은 1949년의 잭 스튜어트(Jack Stewart)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640야드(약 585.2m)라는 군요.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 나라의 각궁의 경우, 장거리용 화살인 편전(便殿)을 1000보(1200미터) 까지 날렸다는 기록이 유성룡의 징비록에 나와 있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장궁으로는 꿈도 꿀 수 없는 거리죠. 그런데 명심하실 것은 위의 놀라운 사거리는 전부 화살이 날아가는 최대 사거리라는 뜻입니다. 중세의 활들은 결단코 요즘의 저격총처럼 800~1000미터 밖에서도 사람의 머리를 맞추지는 못합니다. 어디까지나 '날아가서 떨어지는 거리(전문용어로는 비거리飛距離 라고 함)' 라는 것이지요.
영국 장궁의 최대사거리는 평가하는 사람마다 달라서 180~300야드(270미터) 정도로, 최대사거리 약 340~360m 라고 훈련 책자에 명기되어 있던 조선 각궁보다 짧은 편이지만, 장궁은 기사단의 갑옷을 근거리에서 확실하게 관통하기 위해 개발된 활이기 때문에 60미터 정도의 거리에서의 관통력은 장궁이 훨씬 우수합니다. 조선 각궁의 경우에는, 말이나 유럽의 기사와 같은 중장기병, 혹은 중장보병을 향해 발사할 때는 굵고 무겁고, 끝이 날카로운 화살촉을 이용해서 치명상을 입혔습니다. 이 경우, 최대사거리는 약 200~ 250 미터 정도로 줄어들게 되죠. 연발사격 속도는 영국 장궁이 평균적으로 1분에 12발이었는데 조선 각궁의 경우, 15~ 16발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십수년 이상의 세월을 활만 쏴온 전문 궁사들의 경우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영국 장궁과 조선 각궁 중 어느 것이 더 우수한 활이라고는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파괴력에서는 영국 장궁이 앞서고 사정거리에서는 조선 각궁이 앞섭니다. 이는 양측의 활이 주어진 여건, 다시 말하면 영국의 경우 보병들이 중장갑의 기사들을 격파하기에 알맞은 형태로, 조선 각궁의 경우 보병뿐 아니라 기병까지 사용하기 쉬운 형태로 발전해왔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기술적으로는 분명 합성궁인 조선의 각궁이 월등히 앞서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가격대 효과비라는 면에서는 조선 각궁처럼 복잡한 제작 과정과 다양한 재료가 필요 없는 장궁이 유리합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영국의 장궁과 조선의 각궁이 모두 보세품이라는 사실입니다. 영국 장궁의 경우, 재료가 되는 주목은 주로 수입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그 이유는 영국산 주목의 질이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조선 각궁 역시 마찬가지여서 합성궁인 조선 각궁의 주재료 중 하나인 물소뿔 역시 현재의 베트남이나 태국에서 수입해서 사용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선 물소가 서식하지 않기 때문이죠.
물론입니다. 이것은 기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라서요.
한반도는 우수한 궁사를 배출한 지역으로 유명하고, 특히 한반도의 옛 군대가 선호했던 가장 특징적인 전술이 (공통적으로) 요새와 성을 활용한 방어형 사격전이었던 만큼 활은 매우 친숙한 무기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군졸들에게 고성능의 활을 지급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니까요. 물소뿔 등의 재료를 사용하여 심혈을 기울여 만드는 활로 무장할 수 있었던 계급은 상당히 제한되어 있었고, 여타 일반 병졸은 솔직히 말하자면 비슷한 시대 다른 지역에서 사용되던 일반적인 활과 큰 차이가 없는 것들을 사용했습니다.
조선의 경우, 일반적으로 병사 개인의 일정한 무구를 평상시에 준비하고, 거기에 추가로 필요한 장비들을 군기감과 같은 곳에서 지급하거나, 아니면 자비로 필요한 무장을 갖출 능력이 없는 병사들에게 지급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http://www.defence.co.kr/~club/bbs/bbs.cgi?db=etica&mode=read&num=1920&page=2&ftype=6&fval=%b0%a2%b1%c3&backdepth=1
정예궁사(고급 장교나 활 잘쏘는 사람)에게는 그래서 흑각궁등의 고급복합궁이 지급됬다고 위에분들이 말하셨지 않습니까
조선군이 활을 잘 쐇다라고해도 중앙군과 준전쟁지역(양북도)의 일부를 재하자면 대부분 보통의 병사들이었죠.
1. 소수의 영국장궁병대 소수의 조선각궁병, 친선시합
영국이나 조선 둘 중 한 국가가 사신을 파견할 때 이를 호위할 목적으로 소수의 궁병을 대동했을 경우입니다. 이 경우는 전투가 발생할 수 없기 때문에 친선시합을 했다고 가정합니다.
이 경우에는 조선각궁병이 우세합니다. 각국에서 최정예의 인원과, 최고 품질의 장비를 가지고 동일한 지역에서 시간을 충분히 주어가면서 한 시합이기 때문에 당연히 장비가 우세한 조선측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2. 다수의 영국장궁병과 다수의 조선각궁병, 실전
이 경우에는 거의 현실성이 없지만, 궁병간의 대결만 부각시키기 위해 아무런 지원병력이 없는 궁병집단대 궁병집단이 허허벌판에서 갑자기 마주칠 경우를 가정합니다.
이렇게 되면, 영국의 경우에는 자영농이나 최하급귀족들이 주축이 된 병력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장비는 최상급은 아니지만 평균 이상의 장비를 보유하고 있고, 각자가 장비의 주인으로서 평소 소지하고 있던 것이므로 충분히 연습을 했다고 예상이 됩니다.
이와는 달리, 조선의 경우에는 일부만 최상급의 장비를 갖추었을 뿐, 나머지는 서로 다른 성능의 장비를 보유한데다가, 각 궁병의 숙련도도 들쑥날쑥할 것입니다.
(이런 가정이 가능한 것은 당시의 영국과 조선의 상황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영국은 자영농이 스스로 연습까지 하고 군대에 들어온 경우가 많지만, 조선의 경우에는 일부의 숙련병을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순박한 농민이 급하게 징병되었다는 가정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정하에서는 조선이 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초반에 먼저 발견해서 선제사격을 해서 상당한 피해를 영국장궁병에게 주지 않는 이상, 시간이 갈수록 숫자면에서 엄청나게 딸리는 우수한 능력과 장비를 가진 조선각궁병이 그보다 떨어지지만 숫자면에서 유리한 영국장궁병에게 밀리게 됩니다. 나머지 하급장비의 조선궁병들은 제대로 대항도 못해보고 쓰러질 것입니다.
따라서, 전쟁에 의미를 줄 만한 숫자로 대결하게 된다면, 조선이 내부개혁등을 통해 높은 수준의 장비와 숙련된 병력을 다량으로 만들어낼 능력이 없을 경우, 숫자상의 차이가 성능상의 차이를 압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는 길쭉한 수입 물쏘뿔로 만든 흑각궁이나 국산 황소뿔 세 개를 이어서 만든 백각궁과 같은 고성능의 합성궁(composite bow)이고 또 하나는 죽궁, 목궁(호궁으로 통칭)과 같은 복합궁(laminated bow)혹은 단일궁(self bow)입니다.
여기서 합성궁이란건 몸체에 나무와 소뿔 등의 두 가지 이상의 완전히 다른 재료를 붙여서 만드는 고성능의 활입니다. 합성궁류의 활은 기술적으로 세계 최고의 활로 인정받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합성궁을 만드는 기술에서는 확고부동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합성궁의 최대사거리는 위에서 말했듯이 300~400미터 정도이고 숙련된 사수의 경우, 그 두 배 이상을 날리는 것도 가능합니다.
복합궁이란 넘은 합셩궁과는 달리 여러 장의 종류가 다른 나무를 겹쳐서 만드는 겹활입니다. 주로 옆나라인 일본이나 동남아 등지에서 많이 사용되었는데 성능은 전투시에 그럭저럭 쓸 만한 수준이기는 해도 우리나라처럼 세계 최고를 달린다든지 하는 건 활의 특성상 절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우리 국궁은 시합을 할 때 기본 거리를 140미터 정도로 유지합니다만 일본 궁도는 표적까지의 거리를 36미터 정도로 규정하고 있을 정도니 쨉이 안되죠. 임진왜란 직전에는 일본에 사신으로 건너간 일행의 호위무사인 황진이 50보 거리에서 각궁으로 일본 궁도 표적용 깃발을 맞추자 일본 궁사들이 '신의 기적'을 체험하는 것처럼 놀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일본의 장궁은 파워를 늘이기 위해 길이가 약 210cm 정도(영국 장궁보다 30cm 정도 더 깁니다.)로 엄청 길었다고 하는데 이러면 기동성 면에서 마이너스요인이 되죠.
그리고 단일궁이란 넘은 말 그대로 하나의 재료를 이용해서 만드는 활인데 세계에서 가장 단순한 류의 활입니다. 유명한 영국 장궁이 여기에 속하죠. 이런 류의 활은 형태가 단순한 대신에 활의 사이즈를 늘여서 파괴력이나 사거리를 올리는데 이처럼 구조는 단순하면서 크기가 커지면 활의 진동도 같이 커지기 때문에 궁사들이 엄청 괴로워진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각궁 무장률은 생각보다는 높았던 것 같습니다. 백년전쟁 당시의 영국군처럼 전 병력의 50% 수준은 아니었고 최소한 20% 이상은 된다고 합니다. 또한 사병들에게도 거의 대부분 활을 지급했다고 합니다. 다만 사병들에게 지급한 활은 각궁이 아니라 복합궁인 죽궁, 목궁 같은 복합궁 인데 구체적인 성능은 일본 장궁과 비슷했거나 그보다 떨어졌다고 합니다. 영국 장궁과 비교한다면 제 생각엔 그보다 낮은 성능일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활 무장률만을 따진다면 오히려 영국을 훨씬 능가할 정도입니다. 영국과의 차이점을 들어보라면 조선군은 지나치게 활이나 대포(당시 성능이 세계적인 수준이었던)같은 투사병기에 의존한 데 비해 영국군은 기사단과 장창병같은 근접전을 위한 부대도 편성이 되어 있었다는 거죠.
이런 단조로운 편제는 절대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조선군은 세계적인 실력을 가진 궁사들이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임진전쟁때 산병전이 아닌 근접전에서는 그야말로 추풍낙엽이었습니다. 용인 전투에서는 5만이나 되는 조선군이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이끄는 일본군 1600명의 돌격에 무너져버리는 처참한 상황까지 벌어졌었죠. 또한 임진전쟁 후기에 투입된 명나라 병사들은 '조선군은 궁시 말고는 아무 것도 못한다' 라고 비하할 정도였습니다. 20세기 이전까지의 투사병기는 완전하지 못했고 이를 보강할 수 있는 근접전 능력을 갖춘 부대는 필수적인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조선군은 그것을 포기했던 댓가를 단단히 치른 것이죠.
활만 좋다고 전쟁 잘하는 건 절대 아니라는 겁니다.
한동안 각궁에빠져 각궁에대한 여러가지를 보고잇는데 참 터무니 없는 글이내요. 덕분에 회원가입까지
각궁(합성궁)이 만들어진 이유가 나무활이 견들수잇는 힘의 한계가 30킬로정도입니다.
그이상은 목질이 견디질 못하고 부서져버립니다.그렇다고 강한 나무가 탄성이 잇거나 하지는 않죠.
전통적으로 주목을로만들다고 요즘 장궁매니아들은 탄성력이 좋은 대나무활을 사용한다고합니다
일본이나 중국에 질좋은 대나무가 나오고 교통의 발달로 영국이나 미국으로 운반이 가능하니까요.
물론 탄성이 더 좋아서 사용한 평도 힘도 덜들고 잘나가고 대나무 특위 고른목질로 정확도까지 좋다고합니다.
지금 표준화된 각궁도 30킬로 정도지만 각궁을 개발하게된 계기저처럼 나무보다 더 강한 뿔로만들어져 더 큰힘을내는 활도 만들수잇습니다.
요즘같은 사냥이나 레저용으로 적당한게 20~30킬로정도의 활이고 예전 전쟁시는 훨씬 강한활이 많앗고.
중국이나 구구려에서는 훨씬강한 철궁이 만들어져 사용하기도햇습니다.
당시 유럽은 강철기술이 없어서 꿈도 못꾸던 것이죠.
유럽에 침략햇던 몽고군이 버리고간 물건중에 90킬로짜리 활이 발견되어 유럽인을 놀라게 한 역사가 잇다고합니다.
위에 내용은 전혀 근거가 없는 날조된 내용들입니다.
장궁을 재현한실험에서 판금갑옷을 못뚤어서 장궁에대한 기종에 설이 거짓이고 활에 위력이 평가 절하되기도했는데.
각궁을 사용한 실험에서는 넉근히 판금갑옷을 뚤엇습니다.
여러기록에 각궁을 이나 철궁으로 1킬로이상을 날렸다는기록이잇고 동유럽의 재현하는사람이 800미터 이상을 날리기도햇습니다.
2차원 복합궁인 장궁과 3차원의 각궁을 비교하는것부터가 어불성설이죠.
단발총과 자동소총을 비교하는것과 같은 터무니없는 비교입니다.
김주호 // 반갑습니다.
그런데 댓글에 적으신 내용에 대해 참고할만한 자료를 적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특히 "각궁을 사용한 실험에서는 넉근히 판금갑옷을 뚤엇습니다" 이 부분은 저도 궁금한 부분이라서요.
제가 알고있는 것들을 잠깐 적어보자면..
장궁과 국궁의 차이... 활도 다르지만 화살도 다릅니다. 장궁쪽의 화살이 더 무겁습니다. 장궁이 사용하는 화살의 경우 50그램을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대나무 살을 쓰는 국궁의 경우 화살무게가 20-30그램.. 고증이 부족하기 때문에 옛날에 쓰인 화살의 정확한 무게를 확인할 수 없지만 대략 저 정도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무게가 왜 의미가 있냐면 지표에서 어떤 물체를 던질 때 투사거리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속도와 각도, 무게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속도가 느리고 무게가 많이 나가면 같은 각도와 같은 에너지로 던져도 멀리 나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장궁의 화살은 무겁습니다. 국궁과 똑같은 에너지로 발사해도 초기속도가 느리고(1/2MV^) 무게가 무거워 체공시간이 짧으므로 투사거리가 짧아집니다. 그런데 왜 무거운 화살을 쓸까요? 바로 충격량 때문입니다. 충격량=F*t=M*V죠. 여기서 속도의 제곱이 아니라 그냥 곱하기라는데 주목. 결국 똑같은 에너지로 발사하면 무거운 화살은 임팩트시 전달되는 충격량이 더 큽니다. 장궁은 진형을 갖추고 적과 맞붙는 상황에서 중무장한 적의 갑옷을 관통해서 살상하기 위한 무기입니다. 그에 비해 중동이나 아시아권의 복합궁은 스웜전술, 즉 적에게 화살비를 내려 혼란스럽게 만든 뒤 중기병이 돌격할 찬스를 만들기 위해 사용해온 무기입니다. 조악한 설명을 하자면 작은 힘으로 가벼운 화살을 원거리에서 대량으로 날리는데는 각궁이 유리하지만 단 한발을 날리더라도 강한 위력으로 적의 갑옷을 뚫는 데는 서양 장궁이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과학고에서 국궁과 대회용 양궁의 위력을 비교하는 실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관심있는 사람들은 다들 아는 얘기니 간략하게 적어보면, 이 실험에서 국궁의 발사시점 화살의 운동 에너지는 약 66줄이었습니다.
(화살무게 24그램, 화살속도 74.1m/s, 장력 52.9파운드, 탄성에너지 78.9줄, 화살에 가해진 운동에너지 65.9줄, 에너지효율 83.5%)
탄성에너지가 화살로 전달되는 효율이 높은 건 주목할만한 부분이긴 한데 문제는 저 운동에너지입니다.
두께가 2밀리인 중세 유럽의 플레이트메일을 관통하기 위해 필요한 화살의 운동 에너지는 175줄입니다(Alan Williams저 "the knight and the blast furnace"). 윗 실험에 사용된 것보다 국궁의 위력을 더 높인다 해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더구나 저 운동에너지는 발사시점의 운동에너지이고 실제로는 날아가며 속도가 낮아지므로 갑옷관통과는 더욱 거리가 멀어집니다.
참고로 영국 장궁의 거리에 따른 위력 감소는 Robert Hardy와 Matthew Strickland 공저 "The Great Warbow"라는 책에 실려있다고 합니다. 저도 책을 본 건 아니고 블로그(http://sinsigel.egloos.com/tb/1595392) 내용만 본 겁니다. 거기 사례 몇개만 적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화살 무게 95.9그램, 초속 53미터, 초기 운동 에너지 134쥴, 최종 속도 초속 43.3미터, 최종 운동 에너지 89.9쥴
# 화살 무게 57.8그램, 초속 62.25미터, 초기 운동 에너지 112쥴, 최종 속도 초속 48.3미터, 최종 운동 에너지 67.4쥴
이 실험에 사용된 활의 경우에도 최종 에너지는 175줄에 한참 못미칩니다. 뭐 잉글랜드 장궁병은 120파운드짜리 활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120파운드라는 무지막지한 힘으로도 3미터 이내까지 근접해야 간신히 저 175줄이라는 위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각설하고.. 이건 조금 다른 얘긴데
위와 같은 데이터에도 불구하고 실제 유라시아의 전장에서 활은 눈부신 활약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플레이트메일'이 많이 쓰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아마 정답일 겁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갑옷과 활에 관한 글을 한번 적어보죠.
기본적으로 중요한 부분들은 마법원님과 화살개구리님의 리플을 통해 대부분 지적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실전을 가정함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단순히 활의 성능 이상으로 "병기"로써 유용성을 따질 때 조선의 병사들이 모두 상정된 수준의 고효율의 각궁을 사용할 수 있었는지를 따져본다면 그 답은 결코 "그렇다"일 수가 없는 점 또한 매우 중요하지요. 기본적으로 조선의 군인들 또한 여느 시대,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사비로 기본적인 무구를 갖추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던 만큼 (이와 관련된 기록들은 실록에 무수히 등장합니다) 꽤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평균적인 영국식 장궁의 성능과 직접비교가 될만한 양질의 활로 무장을 할 수 있었던 병사들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으니까요.
반면, 꽤 조잡하다고 할지라도 당장에 군용 장비로써 어느 정도 성능을 갖출만한 장궁을 만들기 위해서는, 영국 장인들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한다면 "2시간이면 된다"라고 합니다. 기본적으로 전쟁을 가정할 때 무기의 성능 중 또한 매우 중요하게 평가되는 항목이 양산성과 신뢰성인 만큼, 이런 부분에 있어서 단순(무식)함은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큰 강점이기도 합니다. 장궁을 만드는 방법이 최고급의 재료를 사용하는 동양의 활과는 달리 매우 단순하다는 것은 전혀 단점이라고 할 수 없이 오히려 매우 커다란 장점이라는 말입니다. 특히, 그렇게 단순하게 제작되는 활을 대량으로 무장시켜 당대의 중무장한 군인들의 갑주를 상당부분 무력화 할 수 있었다는 점은 군사적으로 매우 가치가 높은 혁신으로 평가하기 충분하며, 그러한 혁신의 핵심에 장궁이라는 우수한 무기가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장궁이 본격적으로 활약하던 13세기 말에서 14세기 대부분의 전형적인 무장은 여전히 사슬갑주였으며, 14세기 최후반에 들어가면서부터 비로서 코트-오브-플레이츠 같은 방식의 과도기 거쳐 다음 15세기 초중반 무렵부터는 서서히 본격적인 판금제 갑옷들이 등장하고, 중세가 끝을 맺고 근세, 혹은 르네상스 시대로 부르는 16세기 동안에 드디어 초고성능의 판금갑주들이 등장하는 만큼, "장궁이 판금을 쉽게 꿰뚫는다"는 식의 얘기는 분명 터무니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문제는 "각궁이 판금을 쉽게 꿰뚫는다"는 소리 역시 터무니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김주호님께 조금 단호한 충고를 드리자면, 이 게시판에서 의견을 피력하는 분들 모두 어느 정도 관련분야에 대한 지식이 있는 분들인 만큼, 그러한 분들의 제반 의견에 비해 자신의 의견이 보다 설득력이 크다는 것을 보이고 싶다면 다른 사람들을 호구로 취급하는 자신만만한 언사로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적어도, 판금을 뚫는 각궁에 대한 정확한 인용출처는 밝히시고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주장을 하셨어야죠. 그래서야 마법원님이 도대체 어디서 그런 얘기가 나오는지 궁금해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판금을 뚫는 각궁에 대한 얘기의 원출처는 사실 단 하나 - 디펜스코리아의 신재호님의 기고문들입니다. 구체적으로 인용을 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래 사진은 KBS 역사 스페셜에서 2000년 1월22일 방송한 실험 장면으로 복원한 고구려 화살촉이 가야 판갑(板甲, 일명 단갑)을 관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용한 화살촉은 뾰족한 화살촉이다. 서울 구의동에서 출토된 고구려 화살촉의 강도(탄소량 평균 0.51%)를 참조하여, 이에 준하는 초강을 사용하여 화살촉을 제조했다. 판갑은 가야 갑옷으로 알려져 있지만 가야에서만 사용한 갑옷은 아니며 이른 시기의 신라나 백제에서도 사용한 갑옷이다. 또한, 백제나 가야의 원군, 용병, 혹은 동맹군 자격으로 한반도상에 출전했을지도 모르는 왜군들도 이러한 판갑을 주된 갑옷으로 사용했다. 따라서, 아래 사진에 보이는 실험 결과는 삼국시대의 전투에서 고구려군을 상대했을 이름모를 판갑 전사(板甲 戰士)의 죽음을 재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실험은 개인은 추진하기가 어렵고, 언론사나 공영 연구기관 정도는 되어야 실험이 가능한데, 공영방송인 KBS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칭찬할 만하다.한가지 아쉬운 점은 기병사격을 재연하기 위해 먼거리에서 사격하지 못하고, 가까운 거리 (5m 이내)에서 사격했다는 사실이다. (현재 원거리에서 국궁 기병사격을 잘하는 인물이 없다) 실전적인 의미가 있는 거리 (50~70m 이상)에서도 관통할 수 있는지, 근거리라면 넓적한 화살촉도 판갑을 관통할 수 있는지 실험해 보았으면하는 아쉬움이 있다.
보시다시피, 원문은 고구려 활에 대한 글이고, 실험거리 또한 보통 실전에서 기대하는 활의 사격거리가 아니라 5m - 말 그대로 제로거리 사격입니다. 이 경우 외에 국내에서 비슷한 실험이 반복된 경우가 없는 만큼 "판금뚫는 각궁"에 대한 얘기들은 모두 여기에서 부터 시작되어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터무니없이 왜곡되어 전파된 내용들이라고 할 수 있지요.
4~5세기에 사용된, 말 그대로 '형태가 판판한 금속을 이용했기 때문에 판갑이라고 불리우는' 그런 수준의 판갑을 코앞의 거리에서 관통한 실험결과가 인터넷을 통해 이상하게 와전되면서, 마치 각궁이 실전거리에서 중세말~근세초 당대의 기준에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첨단'을 자랑할만한 서양의 최신형 판금갑주를 관통한양 퍼져나간 것입니다. 자신이 증거로 삼고 있는 문서의 컨텍스트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한 상태에서 그것을 인용하는 것은 역시, 좀 문제가 있지 않을런지요.
(ps) 발제문을 올리신 emfor님께도 충고를 하나 드리자면, 자신이 원문을 쓴 글이 아니라면 원출처나 인용을 밝히는 것은 필수적인 예의입니다. 발제문의 원출처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저로서는 이러한 지적을 할 수 밖에 없음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주목 어디서 나는줄 아십니까..
내가 들은 바로는 영국에서 안납니다.
뉴칼레도니아가 산지라고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독자석인 산지중에하나고요 주목 우리나라에 고유종이 품종이 몇가지 잇습니다.
지리산에 산제한 고사목이죠
이 수종이 주목입니다 유럽산하고는 품종이 좀 다르죠 하지만 같은 수종으로 묵이는 품종입니다.
6.25후에 난벌이 횅횅할때 벌체를 하려고 밑둥을 잘라 고사시켜둔 것입니다 산세가 험해서 벌체를 포기해서 저리 남게 된것이죠.
저게 장궁제료로 적합할지 모르지만 저걸로 활 만들었단 말은 못들어 봣내요.
자꾸 근거근거하시는데..님 글 복사해서 도대체 근거 멀마나 재시하신 건지 토달아 드릴까요.
각궁 검색해보니 1950년대까지 쌀 3섶이엿답니다. 한사람이 1년먹을 량 90kg이 원래 1섶입니다.
상당히 고가인건 분명합니다. 그런다면 장궁은 아주 헐값이엿다는 근거는 어디잇나요.
제가 본 여러 글에서는 그런 흔적은 찾을수없엇습니다.
100년전쟁때 영국의 주력병종이엿지만 영국외에는 장궁을 만들어낸 국가가 없습니다.
그당시 장궁의 핵심 노하우와 가공기술이 안알려 졋다는 거죠.
장궁을 그리 흔하게 말한분 님이 처음입니다..
각궁이나 장궁이나 철지난 물건인데 가격 찾아서 비교해보시길..
조선의 활이 숙련도나 경제적 여건에 따라 꽤나 다양할지 모르나, 실전 사거리를 생각하면 조선은 다양하게 쏠 것이다라고 볼 만한 여지는 부족합니다.
투르크 활이 800m를 넘겼다고는 하지만 16세기 아랍에서 이미 '45활길이', 즉 73m 이상되는 거리에서 사격하는 것은 의미없다는 주장이 타당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하며,(유효사거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그 이상은 명중률이 극히 떨어지기 때문) 진보된 합성궁을 사용하는 아랍에서 이런 말이 나온 이상 숙련되었다 해서 2~300m 씩 쏘아댔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여겨집니다.(출처 - 초원의 전사들. 에릭 힐딕거 저)
조선 역시 마찬가지죠. 조선시대 수군의 훈련 교범에 따르면 활의 훈련 사거리는 90보이며, 배 위에서 쏘는 것이라 좀 짧아졌지 않을까 생각해도 100보 이내라는 건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http://lyuen.egloos.com/4480376)
90보~100보, 즉 70~80m 사이의 사거리에서 쏘는 것을 전제로 했으며 이것은 아랍에서 나온 주장과 일치하는 사거리지요. 최대사거리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이야기이고 최대 유효사거리도 의미는 크지 않다 하겠습니다.
영국 장궁만 유별나게 이것보다 원거리 사격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양쪽의 사거리는 비슷한 수준이며 조선이 사용하는 활의 종류가 다양하다 해도 실전에서는 같은 사거리로 사격한다 볼 수 있으니 사용하는 활의 종류가 너무 다양해서 밀릴 것이다라고 보는 건 어렵습니다. 어짜피 실 사격사거리는 비슷할 테니까요. 영국 장궁은 우월해서 실전에서 더 멀리까지 사용했을까요? 아닐 겁니다. 저정도 사격거리를 잡은건 활이 거기까지밖엔 못날려보내서가 아니라 그 이상을 넘어가면 명중률을 비롯한 여러 부분이 극히 떨어지기 때문이니, 영국 사수들이 죄다 그 이상 거리를 조준해 명중시킬 수 있다는 숙련된 베테랑들이 아니라면 마찬가지지요.
흑각궁과 같은 고급 활은 근현대의 숙련된 사수 또는 저격수에게 주어지는 고급 장비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군의 숙련도 문제라면 조선은 최소한 궁수 하나만큼은 대량의 숙련된 병사들을 쉽게 구할 수 있었죠. 활쏘기의 생활화덕에 말입니다.
800미터는 의미없다 그럼 장궁은 얼마 날랐나요. ㅋㅋㅋㅋ
100미터 연습이면 조준사격이죠. 그럼 조준사격만 잇습니까.
영화 안보시나봐요. 예전에 보고싶었던 장면중에 간절햇던게 바로 화살비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잇죠 화살이 비처럼 쏫아진다..
요즘 영화들에서 자주 등장햇던 장면들입니다. 300도 잇엇고 중국영화도 몇가지 잇엇고...
이때 사거리가 안중요하다고요.
삼국시대고분들에서 일본활과 거의 흡사한게 출토되엇고 각궁모양에 만궁도 나와습니다.
당연히 그활이 일본에 전레됫다고 생각해야겟죠.
그런데왜 우리나라에는 그 일본활이 존재하지 않을까요. 역사학자가 아닌다음 불필요한 논제 같긴합니다.
일본활에대해 찾아보시길 장궁이랑 삐까삐까 하다고합니다 오히려 장궁보다 좋다는 분도잇고..
그럼 그 일본활이 우리나라 활하고 비교하면 어떨까요..
머 님같은분들 많더군요.. 삐까삐까하다..
그런데 기록이나 실험에서는 절반의 성능이라고 하죠..
도대체 비슷하다는 근거가 무언가요.. 사거리도 절반 관통력도 절반인데..
죽을레요.. 최대사거리가 두배인데 최대사거리는 의미없으니 유효사거리는 절반이다..
그럼 장궁 최대사거리와 비슷하니까 같다.. 디지게 맞습니다.
특히 이글은 영국의 장궁시대인 조선으로 한정 짖습니다.
조선시대에 추접하게 목궁이나 가지고 놀았나요 우리가..
그 딴 기록 어디잇나요..보면 전부 각궁이고 드라마던 영화던 다 각궁인데..
기원전부터 사용한 각궁이 천년이상지나도 일반화가 안되있다..
그런데 수십년만에 영국장궁은 다 가지고 잇다..ㅋㅋㅋㅋㅋ
숙련된 궁수를 쉽게구하지만 의미가 없나요..
흑각궁이 도대체먼니까.. 무슨근거로 그게 상급활이라고 단정짓고 기준으로 삼는지..
흑강궁 비중이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건 제가 멀 잘못해서인가요..
재미없는 이야기를 하시는군요.
일본활의 장력은 70~80파운드인게 보통으로 100파운드 넘어가는 장력의 영국 장궁에 비하면 위력이 약한데 말입니다. 발견된 유물에 따라서는 130파운드짜리도 있다더만.
애초에 일본활 운운하는것도 이상하군요.
화살비? 활쏘기가 게임인줄 아십니까. 궁수마다 실력이 다르고 날릴수 있는 거리도 다 다른 현실에서 집단운용을 하려면 그에 맞는 훈련이 필요한데 훈련사거리를 90보로 해놓고 실전에서는 그 이상거리에 날린다? 말이 안되는 이야깁니다.
추잡하게 목궁이나 들고 다녔다? 근데 유물로 목궁이 다수 확인되고 기록으로도 있지요. 스스로의 생각이 현실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현실을 부정해봐야 소용없답니다.
'죽을래요?' 그대로 돌려드리죠.
실망과 짜증이 밀려오내요. 저한테 근거를 찾으셨죠.
고효율의 각궁을 사용할 수 있었는지를 따져본다면 그 답은 결코 "그렇다"일 수가 없는 점<< 이것의 근거는 어디잇나요.
지금 우리나라에 각궁의 전통이 살아잇지만 거의 쇄퇴하고 명맥만 이어지고 잇습니다.
하지만 여러명의 장인들이 계시고 그분들이 일년에 최고 300~400개의 활까지 만들수잇고
보통 인지도에 따라 100정도나 그이하를 제작한다고합니다. 물론 각궁이 고가고 보급률이 떨어지는건 당연할겁니다.
그런데 무장중에 가장 비싼게 무얼까요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게 바로 갑옷입니다.
지금금액으로 환산하면 수천만원이 나옵니다. 분명활과 비교도 안되게 비쌀겁니다.
활이 보세품이다.. 그럼 더 비싼 갑옷은..?
갑옷을 뚤었지만 제로사격이다.. 그럼 장궁은 뚤었나요,. 장난합니까. 왜 O와 X가 같아져 버리죠.
사실은 사실이고 조건은 조건일뿐입니다 , 누구마음대로 인정하고 못하고 결정되는겁니까.
지금 국궁 145미터 사격을하고 잇습니다 직접 궁도협회에 소개글 찾아가보세요.
어디서 지금 뻔한 거가지고 장난합니다. 일부를 전부라고 누구 마음대로 단정합니까.
판금갑주 단가 계산이나해보세요. 지금 제작해도 수백이상 수천대로 나오고..
수공만이 가능한 과거기준으로하면 지금은 억대까지도 가야할겁니다.
지금 각궁 얼마에 파는지 가보시길. 활은 보급을 못하는데 갑옷은 굴러다닙니까.
고성능 판금갑옷이 존재햇다고 그비싼 갑옷을 모두 최고급을 장비햇을거란 근거는무언가요.
이런식 머라고 하시는줄 아십니까.. 궤변이라고합니다.
다른걸 비슷하게 역고 비슷한걸 같다고 단정해서 결국 다른걸 같게 하는 말장난 하는것.
바보입니까 출처가 단하나요. 방송된게 글하나가 출처입니까 그 방송이 출처지..
저 그방송 봣습니다 보고 얘기를 하시던가요
사람의 생각이란게 자기 선입관대로 쏠리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그러고요.
하지만 기준과 원칙은 잇어야죠 농락은 하지 말아야죠.
http://blog.naver.com/jejo1014/70027450612
http://blog.daum.net/tjddh8116/7390401?srchid=BR1http://blog.daum.net/tjddh8116/7390401
http://martial-arts.tistory.com/136?srchid=BR1http://martial-arts.tistory.com/136
http://nakdong.net/bbs/view.php?id=free&no=896 영국 장궁 사격술을 어찌 표현햇는지 읽어보시길.
http://k.daum.net/qna/openknowledge/view.html?qid=2eFLZ&q=%EB%A7%90%ED%83%80%EA%B3%A0
http://sinsigel.egloos.com/1493467
http://sinsigel.egloos.com/1510285
http://enjoyjap.egloos.com/39687
다른나라 문물을 말하기전에 자신의나라 문물이나 재대로 알앗을면 합니다.
자신의 나라 문물을 재대로 알지도 못하고 오히려 펌하하는 사람을 어찌 생각해야 할까요.
저도 최근에야 관심을가지고 찾아보는 실정이고 전문지식보다는 재미를 추구하는사람입니다.
적어도 글을 쓰려면 재대로 써려고 노력해야하고 잘못된 내용을 쓰면 안되겟죠.
한마디만 하지요. 자기 입맛에 맞는 글만 억지로 떼와 봤자 소용 없습니다.
http://sinsigel.egloos.com/1595392
http://sinsigel.egloos.com/1510285
http://sinsigel.egloos.com/1383619
적어도 글을 쓰려면 제대로 쓰려고 노력해야 하고 잘못된 내용을 쓰면 안되겠죠.
딱 돌려드리고 싶은 말이네요.
뉴 칼레도니아는 중세 유럽인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근대에 이르러 제임스 쿡에 의해 알려졌으니까요. 아마도 유럽 내 산지의 주목을 사용했겠지요.
영국 장궁은 단일궁이다. >> 완성품의 메커니즘 자체는 복합궁이라고 말해야 옳습니다. 한 나무에서 얻은 연질과 경질 두 목질을 동시에 켜만드니까요.
김주호// 이 곳에서 어느 분도 장궁만이 갑옷을 뚫었다, 혹은 각궁만이 갑옷을 뚫었다라고 이야기하는 분은 안 계십니다. 어느 활이든 먼 거리에서 철판을 뚫어 착용자에게 직접적이고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기는 힘들었다고 말하실 뿐이지요. 그러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대다수의 분이 조심스레 추측을 하고 있지만...김주호님은 단정을 하고 계십니다. 타인의 추측이 그렇게 의아하시면 '영국 장궁의 갑옷 관통실험'에 이용했던 동일한 조건으로 쏴보시면 됩니다. 장궁병과 중갑병들 사이에 벌어진 아쟁쿠르 전투 당시...영국 장궁은 못 뚫었다고(정확히 말하면 착용자의 몸에 상처를 내기 힘들었다.) 실험 결과가 나왔다고 하니...김주호님께서 전통 각궁에 전통 화살 구입하셔서 쏴보시고 뚫으시면 그 때 실험자료 첨부와 함께 당당하게 '내가 조선의 궁사다!'라고 외치시면 됩니다.
그러니 "죽을레요."나 "디지게 맞습니다.", "궤변이다."라는 언사는 자제하시는 것이 좋고...이왕이면 아직까지 실험 당사자가 아니라면...확언은 자제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추측은 궤변이 아닙니다. 다른 분들은 수치에 따른 사고실험이라도 실행하고 계시거든요.
한 숨부터 먼저 내쉬고 차근차근 짚어나가보죠... 맨 처음 리플다는 모양새 보면서 다들 어느정도 직감은 했지만...
1. 장궁의 제조
여러 사람들이 이미 지적을 했지만 뉴칼레도니아 지역이 유럽인들에게 발견된 것은 18세기, 1774년에 제임스 쿡 선장이 일군의 섬들을 발견하여 '뉴 칼레도니아'로 명명한 것이 시초이고, 따라서 주목의 수급 부족을 암시하기 위해 산지로서 이 지역을 언급하는 것은 그야말로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소리랍니다.
장궁의 대량제조, 지급으로 인한 주목의 수요가 폭등하기 시작한 것은 14세기 말 부터입니다. 이는 13세기에 에드워드 1세가 웨일즈 원정에서 장궁을 사용하는 웨일즈인들의 게릴라전으로 고전한 이래 장궁의 전술적 가치를 깨닫고, 이를 군용무기로써 영국군이 대량으로 장비할 수 있도록 연구를 시작하면서부터 장궁의 성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주목이 가장 적합한 재료라는 것을 알아냈기 때문이지, 그 이전까지의 장궁은 보통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인 느릅나무로 만들었답니다. 백년전쟁 시작하기 200년 전 시점에서 장궁에 대한 기록은 "물푸레(ash)나 주목( yew)도 아니오, 느릅나무(elm)로 만든다 (Gerald of Wales; c. 1146 – c. 1223)"고 언급하고 있음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 또한 다른 분들이 지적했지만, 12세기에서 14세기 사이에 발생한 "영국식 장궁(English Longbow)"은 흔히 사용되던 느릅나무나 여타 목재에서 전적으로 주목으로 재료가 바뀐 것 뿐이지, 기본적인 제조에 있어서는 사용하는 목재의 심재와 변재 사이의 자연적인 탄성/수축율의 차이를 이용하는 방식이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따라서, 장궁의 제조에 있어서 가장 복잡(?)한 과정은 마련해둔 목재를 말리는 과정과 함께 서서히 압력을 가하여 그 형태를 잡아나가는 것이고, 아무리 구조가 단순하다고 해도 최고의 성능을 내기 위해서는 분명 "장인"의 손길이 필요한 것이 활이라는 무기임을 감안한다고 할지라도 그 제조과정은 흑각궁과 같은 것에 비교한다면 엄청나게 단순한 것입니다.
무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 꽤 섬세하고 복잡하며 정교한 기술력을 사용하는 무기는 응당 단순하고 조잡한 것에 비해 킹왕짱 우월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고, 특히나 이것이 "우리 것" vs "쟤네 것"이라는 민족주의적 구도까지 적용된다면 자연스레 흑각궁의 우세를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만도 합니다.
문제는, 무기는 특정한 가공을 거쳐 나오는 도구일 뿐이고, 공학적인 견지에 있어서 - 특히, 무기를 만들 때 있어서 - 최고의 미덕은 "더도 덜도 말고 딱 필요한 성능을 내기 위한 가장 심플한 구조"입니다. 복잡하고 정교한 공정은 말하나마나 생산과정을 복잡하게 만들고, 이는 제조과정에 있어서의 세심한 관리를 요구하며, 이는 필요한 노동력이나 노동량의 상승, 제작기간의 상승, 제작 단가의 상승, 제작 이후에도 잔손이 많이 가는 관리필요성의 급증, 범용성의 하락, 고장확률의 증가, 대량생산 및 대량지급의 어려움 등 숱한 문제를 불러일으킵니다. 흑각궁이 활로써는 최상품에 속하는 고급스러운 것임에는 분명하나, 이런 수준의 무기를 궁병들 모두 장비할 수 없었고 대부분은 평균적인 수준의 목궁으로 무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음을 생각 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쟁을 위한 군대의 무기"로써 장궁은 강력한 평균성능을 지닌 활로써 대량으로 생산되고 지급되며, 수 천명 이상의 대군이 맞붙는 전장에서 영국군의 상당비율을 차지한 궁수들 모두가 그 활로 무장합니다. 특별히 중앙군이니 정예군이니 하는 것 없이 여기저기서 황급히 각각 조선의 궁사 5천명과 영국의 궁병 5천명을 소집한다고 쳤을 때, 그렇게 모인 조선궁수 5천명 중 장궁보다 강력한 성능을 낼 수 있는 흑각궁과 같은 초고급 활로 무장한 궁수들의 비율과, 모인 영국군 궁병 5천이 하나같이 모두 장비하고 있는 장궁의 비율은 솔까말 비교가 안됩니다요. 5천 명 중 초고급 활을 지닌 비율이 1천명이라고 쳐도 나머지 4천명은 일반적인 목궁을 무장하고 있는 쪽과, 5천명 모두가 일반적인 목궁보다 훨씬 강력한 평균성능의 장궁으로 무장한 쪽이 있을 때, 전쟁에 나가는 사령관으로써 어느 부대를 데리고 가겠습니까?
2. 왜 장궁은 영국만 썼나
장궁을 만드는 제작노하우와 기술이 뭔가 대단한 것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 영국에서만 사용했다고 하시면 이는 완전히 넌센스입니다. 왜 영국만 장궁을 사용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당시 서유럽 경제와 사회, 그리고 그에 기반한 군대의 구성에 비해 영국이 지니고 있었던 특수성을 이해해야 하는데, 전부 설명하기에는 불가능하니 요약해서 말한다면;
(1) 프랑스로 대표되는 유럽대륙의 봉건주의적 환경에서는 드넓은 영토에 분산된 수 많은 영지를 바탕으로 각개 영지에서 배출하여 전쟁시 소집할 수 있는 기사의 숫자로 군병력이 구성됩니다. 비율에 있어서 비교적 소수를 차지하지만 강력한 전력이 되는 기사들과 이들이 함께 데리고 온 일정 수의 정규병력은 단병접전 위주의 병력이 되며(단병접전을 위해서는 상시적으로 훈련을 받아야 하니까), 그 외의 병과들은 대체로 '아웃소싱' - 잡병을 모으거나 용병을 고용하거나 하는 형태이고, 특히 궁병들의 경우에는 전형적으로 모집을 통해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2) 이에 비해, 프랑스에 영지가 있는 영국 귀족들이 많이 있었다고는 해도, 전반적인 인구비율에 있어서 영국은 늘 프랑스에 열세였고, 아무리 프랑스의 영지가 넓다고 해도 모든 면에 있어서 핵심은 영국 본토 내였던 만큼, 영국의 중간계급들은 영국군에 있어서 큰 비율을 차지하는 중요한 전력이었고, 일반적인 수적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장궁이라는 무기가 지급되어 기병전력에 쏠린 대륙에 비해 보병전력이 큰 중요성을 차지하게 되는 방향으로 군대가 구성이 됩니다.
(3) 따라서, 영국은 그 군사적 필요에 따라 이 중간계급 전체가 전쟁이 일어날 경우 즉시 장궁으로 무장한 특별전력으로써 바로 동원이 가능한 체제를 갖춰둘 필요가 있었고, 프랑스와 같은 국가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 (게다가 100년전쟁 이전의 궁병전력이라고 함은 거점방어를 제외하고는 딱히 야전에서는 크게 돋보이지 않는 보조적 병과였으니) 당연히 장궁을 안쓰죠.
(4) 게다가, 100년전쟁이 본궤도에 오르는 14세기에 이미 유럽대륙에서는 강철로 만들어진 석궁이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을 중심으로 최신무기로 퍼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사정거리와 연사력에 있어서 우위에 있었으나 오랜기간동안 훈련을 거쳐야 하는 장궁병들과 달리, 보다 간단하게 훈련할 수 있고 근거리에서 더 높은 파괴력을 보이는 석궁을 프랑스에서는 이미 사용하고 있었으니 장궁으로 무장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5) 게다가, 장궁의 위력을 실감한 이후라고 해도 군대를 구성하는 것은 "와, 장궁병 쎄구나. 우리도 장궁 만들어 쓰자"하는 것만큼 말 한마디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군대의 병과구성은 그 사회에서 조달할 수 있는 인력과 물자에 기반을 두고 있는 만큼, 영국과 다른 환경에 있는 국가에서 필요하다고 전쟁 중에 바로 구성해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장궁 만드는게 어렵거나 비싸서 장궁을 안쓴게 아니라, 장궁병과 같은 형태로 병과를 구성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장궁병을 안쓴겁니다요.
(6) cowork4님이 정확하게 지적하신 것처럼, 100년전쟁 후기에 들어가면 프랑스에서 역으로 신무기를 들고 나오니 그것이 바로 대포입니다. 영국이 점령한 주요 전략적 거점들을 밀어버리기 위해서 화약무기에 주목하여, 당대의 '시즈탱크 부대'를 만들어 끌고 다니면서 밀어버리는 전법을 프랑스의 지휘관들이 사용하기 시작했고, 근대에 들어올 때 까지 프랑스는 항상 포병전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프랑스군의 전통은 바로 이 떄 부터 확립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100년전쟁 중후반에 들어가 프랑스군이 승기를 서서히 잡아나가는 시점부터는 새롭게 수립한 포격전이 효과가 있었으니, 똑같이 장궁병 만들어 사격전으로 다이다이 뜰 필요가 없어졌다는 겁니다.
3. 화살비
군대가서 총기 다뤄보시면서 '최대사거리'와 '유효사거리'의 개념부터 익히고 오시기 바랍니다.
장궁은 보통 200~300야드 사거리를 상정하고 있는데, 이는 실전 상황에서 거리별 사격을 시작하는 최초거리입니다. 관상용, 혹은 스포츠용으로 가볍게 제작한 화살을 사용하면 장궁도 얼마든지 그 거리 이상 날아는 갑니다. 문제는, 그 이상 날아가는 경우 쏜 화살들의 집속이 흩어지면서 실질적으로 피해를 줄 가능성이 확 낮아지기 때문에 화살낭비가 되니까 안쏘는거지, 그 거리 못쏘는게 아니에요
4. 판금
뭔가 이얘기 저얘기는 잔뜩 하셨는데 어째 "그러니, 각궁이 판금 뚫고 다닌다는 소리는 거짓이다"라는 간단한 지적을 했더니...
"...사실은 사실이고 조건은 조건일뿐입니다 , 누구마음대로 인정하고 못하고 결정되는겁니까..."
각궁갖고 100m 쯤에서 대치하며 하늘로 쏘아날린 화살이 15세기 밀라노제 풀플레이트 갑주 쯤 되는 것을 뚫는 듯한 착각을 잃으킬 수도 있으니까, 정확히 어느 조건에서 어떤 판금을 뚫었는지를 인식해야 한다... 고 지적을 했더니, "어쨌든 뚫었으니까 장땡이지, 니가 뭔데 그건 인정 하네못하네 하냐?" ... 이거 뭐, 할 말을 잃었습니다. 그 뛰어난 논리 앞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갑자기 판금갑주 단가에 대한 얘기가 왜 튀어나왔는지는 전혀 이해불능이라 쵸큼 민망합니다. 애초에 각궁이 판금뚫고 다닌다는 대단히 문제있는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정확하게 말해야지 않겠수?"라고 지적했는데, 여기에 대해 "판금갑주 단가 계산이나해보세요..."라고 하신다면... 미스테리 미스테리우스네요. 게다가 "지금도 궁도하는 사람들 145m는 쏘거등요?"라는 말도 왜 나온건지 제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됩니다.
그러니, 간단하게 제 할 말만 다시 정리 해드리면요;
(1) 고구려 각궁이든 조선의 흑각궁이든 흑각궁 할아버지가 오든간에, 우리가 평소 '판금갑옷'할 때 보통 의미하는 서양식 풀플레이트제 판금갑주 못 뚫습니다.
(2) 그런 풀플레이트제 갑주 못뚫는 것은 장궁도 마찬가지입니다.
(3) 장궁이 갑주를 뚫고 다닌다는 얘기는 풀플레이트 갑주의 등장 이전, 사슬갑주를 기본으로 착용하던 상황에서 유효한 얘기입니다. 실제로 이 경우에는 기사의 허벅다리를 맞힌 화살이 다리를 뚫고 말 안장에까지 박혔다는 정도의 기록들은 남아 있습니다.
(4) 똑같이 제로거리에서의 위력을 측정할 때, 어떠한 소스든 장궁이 순수위력에서 (약간이지만) 우위에 있습니다. 그러니, 각궁갖고 코앞에서 판금 뚫었다면 장궁이 못뚫을리가 없죠.
...
장궁과 흑각궁의 대결을 상정하고 싶다면, 단순한 구조에 투박하면서도 신뢰성이 높은 AK-47과 보다 멀리, 정밀한 사격이 가능한 당대 최고의 기술을 사용한 미군 M-16과의 비교논쟁을 그대로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20세기가 선정한 최고의 무기, 최고의 총은 AK-47이지 M-16이 아니걸랑요. 그 이유는 흑각궁과 장궁의 비교론에 정확히 매치됩니다.
(ps) 여기 분들이 다 착하고 바보같아서 험한 말 못쓰는거라고 착각하지 마시길. 가능한한 예의바르게 상대해드리고 싶지만, 자꾸 그런 식으로 나올거라면 입에서 똑같이 사람 개호구취급하며 험하게 상대해드릴 수 있는 분들 많습니다. 그러니, 제대로 반론을 달 수 없다면 더 이상 사람들 자극하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