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역사 포럼
역사 속의, 또는 현대의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들과 관련한 뉴스 이외에 국내 정치 논쟁에 대한 이야기는 삼가해 주십시오.
참고할 자료들이 있어서 로마 역사와 시오노 나나미님의 로마인 이야기의 후반부를 읽었습니다. 전 공화주의가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자료들을 찾기 전에도 그랬고 자료들을 찾고난 다음에도 그랬습니다.
전의 포스트에서 로마 공화정과 제정에 대한 덧글들을 보았습니다(http://www.joysf.com/4117022). 공화정 말기의 혼란과 부패로 당연하게 제정이 탄생했다는 이야기를 생각해보니 이런 예들이 떠오르는군요.
바다 건너 떨어져 있다는 지리상의 이점을 이용해 모반을 일으킨 이주민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지금의 미국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떠한 예도 없이 모든 걸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던 프랑스의 혁명의회(세력(은))는 어마어마한 혼란에도 불과하고 나폴레옹이 정권를 차지하기 전까지 장기간 동안 프랑스를 유지해 왔습니다.
표도기님께서는 공화정이(기회가 극소수의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돌아가는 게 저도 더 나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정보다 더 나았을거라고 써주셨습니다. 모두에게 기회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게 났다는 건 지금을 살고있으니까 알고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의 세계가( 적어도 많은 지역에서 더 많은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 것이 옳다고 알고 있는 세계; 이렇게 표연해보 되나요?) 어떻게 나아갈지를 생각해보는(전혀 현실하고 관련이 없어질 수도 있겠지만) 것과도 비슷한(SF 하고도)질문 입니다.
역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로마가 공화정이었다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적어도 제정처럼 극단전으로 좁지 않은) 사람들이 관여할 수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늑대와 늑대인간을 좋아하는 카르디엔(블루그리폰)입니다. 컹컹.
글과 늑대인간에 관한 포스트는 블로그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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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다른 까페에도 비슷한 내용의 글을 쓴 적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로마의 공화정에 대한 대중적인 인식은 매우 과대평가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두말할 것 없이 공화정, 원로원, 공공기구의 창설 등과 같은 로마의 모습에서 근/현대 민주적 국민국가의 형태와 유사성을 느끼게 되기 때문에 그로 인한 친숙함이 "수 천년 전 고대에 오늘날과 같은 사회를 이루었다"는 경외감 및 친숙함을 느끼게 만들기 때문이죠.
하지만, "정말로 그러한가?"를 따지고 들어가면 사실 로마 공화정 아래 로마 국가와 사회는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 아주 많이 다릅니다. 이와 비슷한 경우를 찾는다면, 고전기 아테네를 보며 "민주주의 효시 및 서구문명의 근간"을 이루었다고 평가하는 매우 '전통적인(?)' 시각이 있겠죠. 기실 아테네의 직접민주정은 매우 제한된 형태였고, 그 내부적인 사회상은 사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민주주의'와는 전혀 다르니까요.
마법원님이 위에 지적한 내용에 조금 살을 덧붙인다면, 기본적으로 로마 공화정을 오늘날에 빗댄다면 우리에게 친숙한 근대적 통치기구를 갖춘 국민국가에 비유하기 보다는 "조폭연합체"에 비유하는 편이 낫습니다. 한 마디로, 고대 로마의 가족구조는 절대적 가부장권력으로 대표되는데, 로마 사회는 바로 이러한 가부장권력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그 사회의 연장선상이 원로원이자 로마 공화정입니다.
원로원 의원은 자신의 연고지인 특정 지역의 유지로써 그 지역민 전체의 위에서 그들을 '관장'하는 존재로써 "명예와 의리의 원칙"으로 상하를 묶고 있는 일종의 '조폭두목'입니다. 그리고, 그 의원이 수족으로 부리는 '비서'니 '관료'니 하는 사람들은 의원에게 (앞서 언급한 '명예와 의리'와 같은) 사적으로 형성된 충성관계에 묶여있고, 이들은 '나와바리'를 관리하는 일종의 중간관리자로써 의원의 연고지역민들과 사적인 청탁의 관계로 유착되어 있었습니다. 이게 ==; 저속한 용어를 쓰지 않고 설명한 별 것 아닌것 처럼 보이는데, 기실 구조적으로는 마피아가 조직을 운용하는 형태와 거의 동일합니다. 사실, 소설이나 영화 등을 통해 시칠리아 마피아에 대해 대중적으로 알려진 이미지: 보스 - 카포 - 행동대원 - 지역민의 조직구조, 그 각각의 계급에 존재하는 상하의 사적인 충성 및 청탁/유착관계, 그리고 그 조직의 상위에 연결되어 있는 지역 관료 및 정치가, 경찰과의 유착관계, 이러한 충성관계를 엄수해야 하는 '오메르타'와 같은 규약, 그리고 그 관계를 해친 자에 '명예를 걸고' 복수해야 하는 의무 등은 모두 무대만 그대로 고대세계로 옮긴다면 로마 공화정의 정치구조가 된다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시오노 나나미씨가 로마 공화정을 서술하면서 그렇게나 강조하는 '파트로네스-클리엔테스' 관계라는 것은 기실, 조폭세계에서 상하청탁관계를 이루는 틀과 동일한 것에 불과하다는거죠.
마피아나 조폭들의 조직운영을 보면 기본적으로 그 조직이 근거를 둔 지역민들에게 '보호세'를 걷습니다. 물론 그대로 뜯어가는 것은 아니고, 그 보호세를 바치는 만큼 이익을 본다는 생각이 들 수 있게끔 지역민들에 대해 마피아는 일종의 해결사, 분쟁조정인, 상거래 관리인, 그리고 종종 단죄자 및 처벌자의 역할을 합니다. 오늘날에 이러한 일들은 공적인 기관만이 도맡아서 할 수 있지만, 그러한 공적인 법치구조가 취약한 (예컨데, 2차대전 직후 시칠리아나 이탈리아처럼 정치적 혼란 및 전쟁상황에 뒤이어 민주주의가 막 들어서게 된 취약한 사회처럼) 곳 에서는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러한 사조직이 지역사회의 질서를 관장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이런 마피아라고 할지라도 어디까지나 공권력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따라서, 지역민을 '클리엔테스'로 두고, 마피아가 '파트로네스'가 되는 이 관계는 상위로 유착/확장이 되어가는데, 이번에는 마피아가 클리엔테스, 그리고 그 지역에서 정치적 권력을 갖고 있는 지역의 유지 - 특히 국회의원들이 - '파트로네스'가 되는 식으로 확장이 됩니다. 마피아는 경찰이나 사법기구의 개입을 막아달라는 청탁을 하고, 그 청탁을 받아주는 대신 지역의 유지나 정치인은 마피아들이 모아오는 '표'로 선거에 계속 당선될 수 있지요. 즉,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에도 불구하고 기실, 그 각 요소에서 실제로 나라를 움직이는 정치권력은 유착관계에 따라 형성된 사적인 존재들에 의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 마피아에 잠식당한 시칠리아나 이탈리아였습니다.
이 관계를 고대세계로 옮기면 그게 바로 공화정입니다. 이러한 유착관계의 최정점에 위치하는 사람이 세력과 영향력이 강한 원로원 의원들이고, 이들의 이합집산에 따라 로마 사회가 움직이며, 애초에 이런 사적인 존재들의 사이의 분쟁을 조정하고 지나친 충돌로 인한 여파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원로원이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공화정 말기의 내전은 폼페이우스라는 거두를 필두로 하여 모인 "공화파"라는 깡패연합과, 카리스마적인 대두목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필두로 하는 "카이사르파"라는 신흥조직의 싸움으로 이해하시면 그림이 잡힙니다. 공화파는 사조직들의 연합체에 의해 운영되는 국정형태를 지지했고, 카이사르파는 공화정말기 로마의 급속확장에 따라 어마어마하게 늘어난 지배영역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수 많은 연고지에 따라 갈래갈래갈래 갈라진 사조직들이 중구난방으로 난립하여 자기식으로 영향력을 발휘해서는 안되고, 하나의 "대두목"을 모시고 그 아래는 모두 그 대두목 아래에서 공동의 목적, 공동의 운영방침, 공동의 행정방식으로 지배계통을 알원화하겠다는 비젼을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죠.
따라서, 제정이 시작되면서부터는 방대한 로마제국을 통치하는데 있어 수 많은 원로원의원들과 그들의 사적인 지배계통이 중앙의 행정계통을 교란할 수 없도록 모든 권력을 배제해나가게 된 것이고요.
기실, 제정의 의미는 "원로원이라는 민주주의를 폐하고, 단 한 사람의 황제가 지배하는 형태의 효율성"이라기 보다, "개나소나 한가닥 한다는 사람들이 모두 자기 마음대로 사회 곳곳에 침투하여 여기저기 사적으로 유착되어 있던 관계를 폐하고, 황제 아래 국가기구 및 관료기구의 공공적 성격에 따라 일원화된 관료제 아래 통치하는 효율성"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비슷한 비유를 한다면 중세에는 봉건제에 따라 지역의 통치가 장원별로 나뉘어있던 상황에서, 중세가 끝나고 난 이후에는 국가의 통치가 절대왕정 아래에 중앙관료기구로 재편되는 현상의 로마식 버젼... 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세부세부에서는 다른 점이 많았지만요)
미국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고립된 동네였기에 그들 내부의 정치적 역량이 숙성될 수 있는 시간을 얻을 수있습니다. 또한 프랑스와 같은 이념가들이 만들어낸 토대가 있었습니다. 로마 같은 위치에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마법원님이 잘 설명하셨지만, 로마의 공화정은 굳히 표현하자면 부족장 회의의 발전형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사를 해체해서 재조립하여 "자기만의 로마사"를 쓰신 분입니다. 로마사에 대한 훌륭한 팬픽적인 성격을 지녔다고 보시면 됩니다. 어떤 역사가들도 역사를 쓸데 자기만의 편애가 있습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사는 그런 편애가 좀 심하게 두둘어진 축에 속한다고할 수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재미있게 쓰셨기에 큰 히트를 칠 수 있었죠.
너무 대책없이 로마를 깎아내린 것 같아 찔려서 몇자 더 적어봅니다.
로마 공화정의 한계가 드러나는 시점이 언제일까요? -> 바로 포에니 전쟁 승리 직후부터입니다.
왜 한계가 드러났을까요? -> 바로 잉여 자본이 넘쳐났기 때문입니다.
무슨얘기인고 하니 빈부격차가 급속히 커지기 시작했는데 거기에 브레이크를 걸어줄 국가라는 틀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로마 세력권이 반도 내에 국한되어있을 때까지만 해도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노예의 공급은 제한적이었으며 부의 근원은 자영농이 주종을 이루는 농업경제였습니다. 그런데 기원전 290년을 기해 로마는 반도를 장악하고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상대적으로 군사력이나 정치력을 갖추지 못한 지역이었던 사르디냐, 코르시카, 히스파냐가 차례로 로마의 수중에 떨어지죠. 그리고 급기야 카르타고와 대대적인 전쟁 끝에 지중해를 제패하기에 이릅니다. 외국으로부터 유입된 노예와 물자가 넘쳐났고, 전쟁 와중에 육성된 해군 덕에 지중해를 제패하게 되어 해상무역도 흥하게 되었습니다. 국부가 증가할 때 권력층이 더 큰 파이를 갖는 건 어느 사회나 마찬가집니다. 하지만 공화정 로마는 이 때 몇가지 문제점을 노출시킵니다. 전쟁을 겪으며 사회의 중핵인 평민(plebs)계층이 몰락합니다. 이들은 전쟁터에서 병사로 싸우다가 다수가 죽어나갔고 제대한 뒤에도 적절한 보상을 챙기지 못했습니다. 그 사이에 귀족들은 사유지를 마구잡이로 늘리고 거기에 노예를 부려 경작하는 라티푼디움을 건설합니다. 로마 군대의 뼈대인 중보병을 구성하는 평민계층의 몰락은 중대한 문제죠. 귀족들에 대한 견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잘 알려진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 같은 것이 그거죠. 그런데 다 실패했습니다. 그 이유는 로마가 인적통치에 근간을 둔 사회였다는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로마사를 잘 살펴보면 사람에 의존한 임기응변식의 통치를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뽑는 독재관과 속주 총독들. 권세있는 귀족들의 자식들로 채워지는 공직들. 그나마 행정 쪽은 낫습니다. 경제분야는 더 심각합니다. '세금'하면 당연히 국가에서 걷어야 할 것 같지만, 로마에선 세금을 민간용역업체인 푸블리카누스가 걷었습니다. 자연히 세율이 코걸이귀걸이죠. 이런 인적통치는 힘 있는 자들, 즉 귀족계층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시스템입니다. 이걸 타파할 수 있는 건 국가권력인데 이미 원로원 자체가 귀족들의 연합체..... 레피두스 같은 자들이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천문학적인 재산을 긁어모으는데 거기에 브레이크를 걸어줄 수 있는 국가라는 존재가 없었던 겁니다. 결국 관료제와 같은 행정시스템이나 법치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공화정은 소수 귀족들만을 위한 이익결탁집단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었고,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가 등장할 때까지 도시빈민과 많은 문제점들을 양산합니다.
공화제의 정의는 보통 주권이 군주와 같은 1인이 아니라 대다수 구성원에게 분산되어있는 체제라고 말하죠.
만일 정의 그대로라면 공화제가 군주제에 비해 안정적이고 우월한 게 맞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몇가지 전제가 있어야 하죠.
그 전제들이 달성된 것은 근대에 이르러서이고, 그 이전에는 도시국가의 한계를 못 벗어났습니다.
도시국가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뭔가 삐걱거리다가 전제군주에게 몰락하거나 독재로 이행했죠.
로마 공화정과 제정은 솔직히 도찐개찐입니다. 포에니 전쟁 이후로 공화정의 총체적인 문제가 다 드러난 상태고 이 상태에서 제정으로 이행되었다고 역사의 반동이니 하면서 비관적으로 볼 이유가 없습니다. 냉정하게 과두정이 심화되다가 제정으로 간들 큰 차이는 없죠.
이게 서구 민주주의 체제의 과대 포장으로 인한 결과인지는 모르겠는데 로마 공화정은 현재의 민주주의 하고는 제법 거리가 있는 체제입니다.
글쎄요.. 좋은게 없었다기보단 한계에 도달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네요. 적어도 포에니 전쟁을 승리로 이끌 때까진 참 잘 작동하는 시스템이었으니까요. 권력분립같은 참신한 시도들도 있었고. 다만 애당초 도시국가로 출발한 체제인 만큼 제국으로 확장하는 순간 많은 모순들이 드러나게 되었던 것이죠.
페르시아처럼 다양한 민족과 방대한 영토를 다스려야 했던 국가들은 처음부터 왕에게 권력이 집중된 전제국가로 출발합니다. 그게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그냥 단순히 오리엔트는 노예근성이 있어서 왕을 섬기는 걸 좋아하고 그리스 로마애들은 소싯적부터 만민평등과 민주주의에 도통해서 공화제를 하고.... 그런게 아니죠. 동시대 국가인 한(漢)나라만 해도 로마와 비교해서 후진 국가냐면 별로 안그렇거든요. 같은 로마인들이 세운 나라지만 동로마, 즉 비잔틴제국의 경우 황제권을 강화하여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하고 나자 비로소 세력을 떨치고 이후 1000년을 버틸 수 있는 기반을 닦습니다. 그것만 봐도 공화제와 제정의 우열을 따지는 게 의미없다는 걸 알 수 있죠.
공화제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으시면 르네상스 시대 도시국가들과 프랑스 제1공화정도 같이 비교해보시면 재미있습니다. 시대마다 양상이 다르거든요.
두가지만 적어보겠습니다.
우선 로마인이야기는 후반부에 왜곡이 상당히 심해집니다. 따라서 입문서, 또는 흥미본위 논픽션으로 읽는다면 모를까 역사적 팩트를 짚어내는데 상당히 무리가 있는 책입니다. 카이사르 빠순이라는 말이 괜히 붙은게 아니지요.
두번째로 공화정이 유지되었다면 로마는 제국을 건설할 수 없었을 겁니다. 법치와 관료주의가 자리잡은 현대사회의 공화정이라면 나름의 효율을 추구할 수 있겠죠. 그러나 로마는 현대적인 관점의 국가와는 거리가 멉니다. 특히 로마 공화정이 문제가 되었던 것은 '이익집단'간의 충돌이었습니다. 제정으로 이전하기 전 상황을 보면 귀족과 평민세력, 그리고 귀족 가문간의 이전투구가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통치기구인 원로원이 이같은 대립을 중재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원로원 자체가 그 진흙탕 싸움의 복판에 있었죠. 만약 우리나라에 대통령이 없고 국회가 통치권을 행사하는데 그 의원들이 종신제인데다 세습이고 그 국회의원들이 뭔가 해먹으려고 할 때 그걸 법원에 고발하고 싶어도 법 체계가 엉망이라면 어떨까요? 더구나 제정 이전의 로마는 엄연히 '도시국가'이고 '노예제'사회이며 '닫힌 사회'입니다. 시오노나나미가 사람들을 조금 현혹시켜놓은 측면이 있는데 로마는 고대사회의 틀을 딱히 많이 벗어난 나라는 아닙니다. 단적인 예로, 카이사르는 골족의 지배자들을 데려다가 원로원 의원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 극단적인 융화정책 덕에 서로마가 멸망할때까지 갈리아 지역은 게르만과 완충지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로마의 우수한 속주로 남죠. 만약, 카이사르 같은 이단아가 등장하지 않고 로마가 공화제 국가로 남아있었다면, 원로원 귀족들이 기득권을 줄이면서까지 야만족들에게 원로원 의석을 내주려고 했을까요? 어림없는 얘기입니다. 그 결과는 북방 야만족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된 로마 성벽이었겠죠. 서민들을 대변하는 호민관 제도가 있었다고 하지만, 공화정 말기 상황을 보세요. 호민관 선거가 어떤 식으로 이뤄지나.
흔히 공화정 하면 민주주의 비스무레한 것을 연상하기 쉬운데 고대사회의 공화정은 기득권층의 야합에 코딱지만한 도시국가 레벨의 직접민주주의를 적당히 양념해놓은 것일 뿐입니다. (물론, 대혁명 이후에 등장하는 공화정은 사상적으로 보나 현실적인 통치력으로 보나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