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더워서 선풍기 틀고 자야겠다는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웃어른께서 갑자기 노발대발하시더군요. 이유인 즉슨 '선풍기를 틀고 자면 저산소증으로 죽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네, 바로 그 유명한 도시전설을 말씀하셨던 거죠. 그래서 웃어른께 그건 근거가 없는 미신일 뿐이고, 선풍기 바람과 여름철 사망은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했습니다. 여름철 야간에 사망하는 것은 계절 자체의 기온 변화 때문인지 선풍기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했죠. 뉴스에서 선풍기 바람 때문에 사망 기사가 나오지만, 그건 뉴스나 신문이 잘못된 거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기자들이 매년 연례행사로 엉뚱한 기사를 쓰는 거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웃어른께서 화를 더 내셨습니다. 그러면 뉴스나 신문이 거짓말을 하는 거냐며 소리를 지르시더군요. 분명히 뉴스에서는 저산소증 때문에 사람이 사망했다는 기사가 나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뉴스가 낭설이라고 다시 말씀드렸지요. 하지만 웃어른께서는 그래도 믿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상식적인' 사실을 가지고 어른에게 거짓말을 한다며, 오히려 저를 야단치셨습니다. 선풍기 바람 사망은 미신일 뿐이며, 외국에서는 아무도 그런 미신을 믿지 않는다고 해도 화만 내시더군요. 그러면서 선풍기를 밤새 틀고 자든 말든 신경쓰지 않을 테니까 마음대로 하라고도 하셨습니다. 으음, 화를 금방 푸시긴 했지만, 여하튼 저는 어른에게 거짓말 한 아랫사람이 되었네요….


가끔씩 생각하는 거지만, 제가 과연 첨단 과학 시대를 살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최첨단 과학 시대라고 해도 여전히 미신은 인간 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문명 발전이 더딘 곳에서 주술사나 무당이 존재하는 것만 미신이 아닙니다. 뿌리 깊은 미신은 아무리 빛나는 과학력이라도 이기지 못하는 듯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런 미신을 뿌리뽑기 위해서는 믿음직한 대중 과학자가 탄생해야 한다고 봅니다만. 우리나라에 그런 대중 과학자가 나올 수 있는지도 의문이네요. 칼 세이건이나 아이작 아시모프 같은 사람이 많으면 좋을 텐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