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작품 게시판 - 영화/애니/만화/소설/드라마/다큐멘터리
슈퍼 로봇 이야기, 괴수/괴인/초인 이야기 외에... 다양한 작품과 장르를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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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작품에서 인공지능에 관한 애기를 다룹니다. 대다수는 근본적으로 인공지능의 존재는 고전 프랑케슈타인이 설정한 인공생명체의 위험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스폐이스 오딧세이도 결국은 그런 거대한 흐름의 정점입니다. 생명 혹은 지능의 탄생에 대한 공포는 신의 영역에 다가가는 듯한 인간 기술에 대한 공포가 그 근간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소설은 얼핏 그런 맥락으로 흘려가는듯 하지만, 결말은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긍정적이다라는 측면보다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창조자보다 우수한 창조물이 나왔을떄 창조자가 과연 그걸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의문입니다.
프랑케슈타인 박사의 괴물이 잘빠진 미남에 우수한 지능과 지식을 갖추고 있으며 훌륭한 인격과 시인을 빰치는 감수성을 가졌다고 설정해 보죠. 박사조차도 감탄한 인격체를 박사가 감당할 수있었을까? 뭐 의런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나름 인공지능에 대한 색다른 접근 자세가 매우 흥미롭고, 특히나 그 인공지능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는 서두는 매우 설득력을 가진다는 점에서 현실적이기까지 합니다. 실제로도 그가 제시한 행맨의 필요성은 현재 무인기들의 미래는 이 소설에서 묘사한 인공지능과 유사한 능력을 가지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미래는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그저 표현의 문제죠.
대개는 창조물이 훌륭하든 그렇지 않든 창조자(인간)이 그걸 파괴하려 하기 마련이죠. 창조물들은 대개 꼭 하나 결점이 있더군요. 본문에서도 나왔던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역시 독학으로 언어를 배우고 어려운 철학서까지 독파하는 능력을 보입니다만…. 외모를 어쩌지 못하고 괴물 취급을 받다가 북극으로 망명.
젤라즈니 성격상 이런 건 안 썼을 것 같고, 혹시 또 창조자와 창조물의 연애…로 갔으려나.
<집행인의 귀향>... 아시모프의 영향을 많은 받았거나, 젤라즈니가 처음부터 나름 아시모프의 로봇 소설에 대한 오마주로 생각하고 쓴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로봇이 살인에 이용되었다는 작품 테마 자체가 <벌거벗은 태양>과 비슷합니다. 인격이 훌륭한 로봇은 [I, Robot]에 수록된 <시장이 된 로봇>에서 다룬 적이 있습니다 - 작품 중에 인격이 훌륭한 사람과 '로봇3법칙'을 준수하는 로봇은 분간이 잘 안된다고 이야기되죠. 더 나아가서, 아시모프의 마지막 단편집 [Gold]에 수록된 단편 <칼>에서는 로봇이 사람보다 글을 더 잘 쓰게되자 주인은 이를 질투합니다. <로봇과 제국>에서는 인류 전체를 위해 로봇이 살인을 감행하고, 로봇 법칙에 의해 스스로 작동을 멈춥니다. 딴은, <집행인의 귀향>에서 다루어지는 테마나 이야기 구조는 대부분 아시모프가 이미 질릴 정도로 우려먹었던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지만 똑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젤라즈니는 아시모프처럼 가볍지 않습니다. 아시모프는 진지한 이야기를 유쾌하게 전달하는 것은 좋지만, 무거운 주제도 가볍게 느끼게 만들어 버립니다. 아시모프는 본래 글 쓰는 방식 자체가 그렇습니다. 젤라즈니는 풍부한 문학적 소양 속에 진지할 때는 무겁게, 활기차야 할 때는 또 박력이 넘치게 글을 쓸 줄 압니다. 즉, 문장에 대한 공력 자체가 아시모프와는 한 차원 다른 작가이죠. <집행인의 귀향>을 쓸 때 젤라즈니가 아시모프의 테마와 유사하다는 것을 몰랐을 턱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모프와는 다른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어필하고 설득할 수 있다고 자신했던 거죠.
개인적으로 젤라즈니의 <집행인의 귀향> 쪽이 아시모프의 다른 어떤 로봇 소설들보다도 마음에 듭니다.
아, 그리고...
젤라즈니는 58세에 작고했으니...
옹(翁)이라고 불리기에는 조금 무리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