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아시는 분은 다 아시고 모르시는 분들은 모르는 로저 젤라즈니 옹이십니다.

많은 작품에서 인공지능에 관한 애기를 다룹니다. 대다수는 근본적으로  인공지능의 존재는 고전 프랑케슈타인이 설정한 인공생명체의 위험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스폐이스 오딧세이도 결국은 그런 거대한 흐름의 정점입니다. 생명 혹은 지능의 탄생에 대한 공포는 신의 영역에 다가가는 듯한 인간 기술에 대한 공포가 그 근간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소설은 얼핏 그런 맥락으로 흘려가는듯 하지만, 결말은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긍정적이다라는 측면보다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창조자보다 우수한 창조물이 나왔을떄 창조자가 과연 그걸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의문입니다.

프랑케슈타인 박사의 괴물이 잘빠진 미남에 우수한 지능과 지식을 갖추고 있으며 훌륭한 인격과 시인을 빰치는 감수성을 가졌다고 설정해 보죠. 박사조차도 감탄한 인격체를 박사가 감당할 수있었을까?  뭐 의런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나름 인공지능에 대한 색다른 접근 자세가 매우 흥미롭고, 특히나 그 인공지능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는 서두는 매우 설득력을 가진다는 점에서 현실적이기까지 합니다. 실제로도 그가 제시한 행맨의 필요성은 현재 무인기들의 미래는 이 소설에서 묘사한 인공지능과 유사한 능력을 가지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미래는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그저 표현의 문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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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알고 있다 악마와 신은 항상 우리곁에 있음을, 정복과 야심으로 가득찬 야망이 현실의 늪에서 헤어나올 능력이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현실의 수렁속에 살아가는 미꾸라지임을..  환몽의 시간속에 자위하며 미래를 꿈꾸는 이들중 하나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