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의 오늘. <드래곤퀘스트3~그리고 전설로...>가 발매되었습니다.

보스를 물리친 줄 알았더니 사실은 '대마왕'이 따로 있다는 구성으로, '진보스'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해서 각광받은 게임이기도 한데,(그래서 일본에선 가짜 보스였던 '바라모스'라는 이름이 각종 작품에서 선보입니다.) 발매 전부터 관심을 끌었던 이 작품이 출시되는 그날, 게임 매장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영화관에 줄을 서는 현상은 일찍이 <우주전함 야마토>의 극장판이 공개될때 있었지만, 게임을 사기 위해 전날부터 줄서는 현상은 처음이었기에 엄청난 뉴스거리가 되었지요.

특히 수요일이었던 발매일에 이 게임을 사려고 줄을 선 사람 중에는 무직자만이 아니라, 회사를 빠지고 줄을 선 직장인이나 학교를 빠지고 줄을 선 아이들까지 있어서 더욱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후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는 무조건 토요일에 발매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는데...

당시 이 사건으로 아이들의 전유물로 여겨진 게임이 대중의 관심을 끌고, 제작자인 호리이 유지가 일본의 게임 개발자로서는 처음으로 "패미콤 작가"라는 이름으로 뉴스에 나오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당시 일본의 언론은 '새로운 문화'인 게임에 대해 전혀 부정적이지 않았습니다. 학교를 빠지면서까지 줄을 서는 것을 보고 '전자 마약' 같은 말을 붙이지도 않았지요. 도리어 이 같은 인기를 끄는 요인에 대해 다양한 분석과 함께 게임이라는 문화의 가능성을 옹호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흐른 지금,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는 여전히 일본의 최고 인기작으로 군림하고 있으며, 일본의 게임은 세계 전역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게임은 산업으로서만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서 사랑받고 있으며, 많은 이가 게임을 통해서 즐거움을 얻고 있습니다.

그리고 발매일에는 항상 게임 매장마다 엄청난 줄이 생겨나며 게임을 사서 돌아가다가 폭력배나 폭력 학생들에게 게임을 빼앗긴 아이들의(어른들도) 이야기가 뉴스에서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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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대한민국엔 패키지 게임이 사실상 소멸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최근에는 다운로드 패키지 시장이 대세라는 점에서 그럴 가능성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이런 일이 생긴다면 제작자가 '학교도 빠지고 줄서게 만든 전자 마약'을 만든 혐의로 쇠고랑을 차고 뉴스에 나올 것 같다는 기분이 듭니다. (아니면, '게임 갈취'라는 폭력을 낳은 혐의일지도 모르지요.)

몇몇 신문에선 '게임 때문에 협박과 갈취가 줄을 잇는다'라며 제작자를 성토하겠지요.

결국 제작자는 좋은 게임을 만들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회의 적으로 불리며, 오랜 법정 투쟁 끝에 무죄 선고를 받고는 신문 구석에 조그맣게 소개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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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아는 이는 현재를 이끌어가고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역사와 SF...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 듯 하지만, 그럼 점에서 둘은 관련된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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