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더스크롤 5 스카이림을 조금씩 재미있게 하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짧게 써봅니다. 글 특성상 이미지가 조금 크네요.
아시다시피 스카이림이라는 가상의 지방을 막 돌아다니며 이 일 저 일을 해치우는 RPG인데요, 전작인 오블리비언하고 맵 크기가 비슷하다고 하니 대략 16제곱마일(41제곱킬로미터) 정도 될 겁니다. 서울을 기준으로 하자면 대충 홍대에서 충무로까지를 한 변으로 삼는 정사각형을 그리면 되려나요.
에게, 그것밖에 안 되요? 하시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RPG 장르에서는 당연히 맵을 만드는 제작사(맵이 클수록 개발 기간이 길어지고 비용도 비싸지겠죠)나 그걸 돌아다녀야 하는 플레이어(현실도 아닌데 다음 마을까지 가는데 1시간 걸리는 걸 좋아하겠어요? 물론 그런 게임들도 꽤 있었지만)나 그 맵을 구현해야 하는 컴퓨터(당연히, 처리해야 할 계산이 많아지므로) 셋 다의 고생을 줄이기 위해서 적당히 축소된 스케일로 만드는 경우가 많기는 했죠. 가령 대도시라고 하는 게 마을 주민이 20명도 안되어 보인다거나 집구석이라고 만들어놓은 게 고시원인지 원룸인지 구별도 안 간다거나 말예요. 스카이림도 역시 이런 점에서는 예외가 못 되어서 드래곤 잡으러 가는데 병사 네 명 끌고가거나 합니다만...
그럼 진짜로 큰 맵을 가진 게임은 어떤 게 있을까요? 한 번 따져보도록 합시다.
일단 이런 걸 따지려면 한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한데, 일단 오픈월드의 샌드박스식 게임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은 게임에서야, 가령 위에 지도가 나오는 '매스 이펙트'처럼 전체맵 방식의 RPG에서야 한 장소는 은하계 반대편 끝이고 다른 장소는 지구라고 해도 그 이외에 갈 수 있는 장소는 없는데다 그나마도 마우스 클릭 한 번에 이동되고 그 사이에 널린 엄청나게 광대한 공간은 우주공간을 날아가는 우주선 동영상을 5초쯤 보는 걸로 처리되는데 설정상의 맵 크기가 얼마나 크건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그게 바로 옆집이라고 해도 체감되는 거리는 별 차이 없을 겁니다. 그러니 직접 돌아다니며 넓다는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하는 물건을 따져야겠죠. 제가 굳이 수고할 필요도 없이 얼마 전에 보니까 이렇게 누가 게임에서의 맵 크기를 비교해놓은 그림이 있더라고요.
위에 나와있는 단위는 제곱마일이고, 아래에 제가 제곱킬로미터로 바꿔 봤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그림에 없는 다른 게임도 몇 개 추가하고 대한민국 면적과 비교해봤어요.
배틀필드 2 다렌항 : 4
그랜드 테프트 오토 3 : 7.7 (여의도 8.4)
그랜드 테프트 오토 샌 앤드레아스 : 35.2
폴아웃 3 : 38.8 (강남구 39.5 / 배경이 되는 워싱턴 DC는 대략 177)
엘더스크롤 4 오블리비언 : 41.4
파 크라이 2 : 80.2 (울릉도 72)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 207 (아제로스 대륙만)
암드 어설트 2 : 255 (체코 보헤미아 지역의 위성사진을 구현)
오퍼레이션 플래시포인트 2 드래곤 라이징 : 349.6 (마산시 329)
번아웃 파라다이스 : 517 (서울시 605)
암드 어설트 3 : 900 (그리스 림노스 섬을 구현할 예정)
저스트 코즈 2 : 1035.9 (강릉시 1040)
보시다시피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아제로스 대륙은 번아웃 파라다이스라는 레이싱 게임에 나오는 도시 하나보다도 작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와우의 그리폰이 현대의 자동차보다 참 많이 느려텨졌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가 있죠. 대충 도시 하나급의 게임들을 보셨는데, 물론 이게 끝이 아닙니다.
애쉬론즈 콜 : 1294
테스트 드라이브 언리미티드 : 1600 (제주도 1848)
퓨얼 : 14400 (강원도 16571)
배틀그라운드 유럽 : 30000 (서유럽의 일부를 1/2 스케일로 구현)
길드워 나이트폴 : 38849 (영호남 49574)
반지의 제왕 온라인 : 77699 (대한민국 99460)
엘더스크롤 2 대거폴 : 161600 (한반도 220847)
결론적으로 육지를 배경으로 하는 것 중에 가장 거대한 게임은 1996년의 엘더스크롤 대거폴입니다. 배경이 되는 탐리엘 대륙(?)은 한반도 내지는 영국보다 조금 작고, 거기 존재하는 마을이 1만 5천 개. 게임상에 존재하는 NPC는 75만 명. 물론 그들 중 절대다수는 랜덤으로 만들어지는 방식이고 맵들은 다 반복적이며 황폐해 보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오죽하면 후속작인 모로윈드와 스카이림은 대거폴의 대륙 중 '일부'를 떼다가 전체 배경으로 삼았겠어요. 그것도 스케일적으로 축소한 덕에 위에서 보시다시피 스카이림은 그 면적이 설정상으로 수만 제곱킬로미터는 되어 보이지만 2011년의 게임상에 구현된 것은 그 1천 분의 1이나 될까 싶은 크기입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게 '반도' 수준에 머물렀다면, 행성 전체를 통째로 돌아다닐 수 있는 공간으로 구현한 게임도 있습니다. 제일 간단한 예가 마이크로소프트 플라이트 시뮬레이터라던가, 구글 어스를 기반으로 지구 어디든 날아가볼 수 있는 비행시뮬레이션 게임이죠. 이미 지구상 지리 데이터가 다 공개되어 있으니...
행성을 벗어나 우주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게임도 물론 많이 있었습니다. 프라이버티어나 인디펜던스 워 2 같은 게임들이요. 최근의 스케일 큰 물건으로는 다들 잘 아실 이브 온라인 같은 게임이 있습니다. 수백 개의 항성계가 배경으로 등장하고 항성계마다 수많은 행성들과 우주 정거장이 존재합니다. 물론 행성에 착륙해서 행성을 탐사하거나 하는 건 불가능하죠.
하지만 이보다 더 방대한 스케일은 앞으로 영원히 나올 리 없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게임이 하나 있습니다. 위에 있는 것이 1991년에 나온 프론티어 엘리트 2의 맵입니다. 우리 은하계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데, 저 점 하나하나가 다 태양과도 같은 항성이죠. 위의 이브 온라인보다도 훨씬 작아 보이신다고요? 저건 태양계와 알파센타우리를 중심으로 묘사된 전체 맵의 지극히 일부입니다. 저 옆에 +9 -4 하는 식으로 좌표 나올 텐데, 저 좌표가 8194까지 있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에 등장하는 항성의 갯수는 대략 5억 개라고 하네요. 우리 은하계에 있는 별의 숫자가 3~4천억 개쯤 된다는 거 감안하면 그것도 새발의 피지만요. 발매 당시 기준으로 알려진 실제 별들을 상당수 포함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별들은 랜덤 생성이며 거기 따라붙는 행성들도 다 랜덤하게 됩니다. 랜덤하다고는 하지만 5억 개의 별들이 죄다 이름과 거기 붙은 행성들, 질량 같은 기초적 정보들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행성에 착륙해서 일일이 탐사한다던가 하는 건 불가능하고 아래 그림에서처럼 간단하게 항성계를 표시해주며 우주항에 착륙해서도 간단한 메뉴를 통해 의뢰를 받거나 무역을 하거나 하는 정도가 고작이지만요.
이쯤 읽으셨으면 당연한 결론이 나오겠죠. 기술력이 발전한다고 꼭 큰 맵의 게임이 나오지는 않는다는 거. 위에서 가장 크다고 언급한 대거폴이나 프론티어 엘리트 2나 둘 다 10년도 훨씬 더 된 물건이잖습니까. 그때보다 더 발전된 지금의 기술로는 훨씬 더 큰 세상을 구현할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게임이라는 게 재밌자고 하는 건데 사실 반복적이고 개성없는 공간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것보다는 좀 비현실적으로 좁아터져도 다양하고 볼거리 많은 동네가 더 재밌다는 것 말이죠. 한때 맵이 무차별적으로 넓다는 걸 마구 광고해대는 게임들도 많았지만 적당한 랜덤 함수를 돌리면 마인크래프트처럼 맵이 끝도 없이 만들어지게 할 수도 있는 판국이죠. 사실 와우처럼 플레이어 뛰는 속도만 늦추고 건물이나 도시 스케일만 좀 줄이면 상대적으로 그 공간이 넓게 느껴지는 건 별로 어렵지 않을 테니 말예요. 결국은 양보다 질의 문제로 넘어가게 됩니다. 어차피 게임은 현실이 아니니, 좀 '압축'된 현실을 만나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죠.
Our last, best hope for peace.
오픈월드는 '자유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오히려 요즘 게임일수록 자유도가 퇴보한다고 하죠. 과거 게임은 아무 퀘스트부터 시작해도 줄거리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는데, 요즘 게임은 오솔길 퀘스트에 서브 퀘스트 좀 붙어있는 식이라고 비판도 많고요. 자유도가 줄어든 만큼 할 수 있는 것도 적고, 따라서 플레이어가 돌아다니는 맵 또한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뭐, 자유도가 줄어서 맵이 작아진 건지 아니면 맵이 작아져서 자유도가 퇴보하는 건지 그건 모르겠지만요. 우선순위가 있는 게 아니라 서로 영향을 미치겠죠.
그렇다고 맵이 커서 꼭 좋은 건 아닙니다. 본문에 <파 크라이>가 나왔는데, <크라이시스>도 맵이 큰 FPS 게임으로 유명하죠. 문제는 적이나 아군, 아이템이 없는 허허벌판도 많다는 거고, 어찌 보면 공간의 낭비 같기도 합니다. 정글이 아무리 진짜처럼 실감나도 그냥 뛰어다니기만 하면 별 재미 없잖아요. 고전 게임인 <대항해시대> 시리즈는 맵을 실질적으로 구현하지 않았지만, 전세계를 돌아다닌다는 실감이 나서 좋았습니다. 실제 맵 크기 구현과 탐험하는 재미가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레드 데드 리뎀션도 맵은 크지만 정작 플레이하면 허허 벌판이 대부분인데 다행히 맵 곳곳에 이벤트성 사건이 랜덤으로 펼쳐지고 동물들을 사냥함으로써 많이 해소한것 같았습니다. (물론 랜덤으로 펼쳐진다 해도 결국엔 반복되는 이벤트들이기에.....)
심시티4가 사람들에게 좋은 평을 얻었던 점도 그냥 큰 맵에 도시만 만들고 끝나는게 아니라 도시안에서 구경할 거리가 정말로 많았기에 큰 인기를 끌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요.
네드리님 글처럼 확실히 맵이 작아도 그안에 볼거리가 많고 할거리가 많은게 더 좋은것 같습니다. :-)
할거리가 너무 많아도 짜증이 날수도 있죠. 메인 스트림 자체가 여러가지라면 몰라도 결국 게임도 큰 스토리텔링이 있고
그걸 진행해나가는 것이라면 말이죠. 자유도라는 이름하에 오히려 서사적 몰입감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걸 강제하게 되면 그건 큰 퀘스트를 하는데 있어서 작은 퀘스트를 하는 세금적인 요소로 받아들일수 있고
그건 상당한 불퀘감을 유발합니다.
과거에 지적되던 자유도 문제는 몰입감이 떨어진다는(사실성이 떨어진다) 지적을 베이스로 들어간건데 이걸 너무
방만하게 운영하니까 오히려 다른 부분에서 몰입감이 떨어질수도 있는것 같습니다...
플레이어 성향도 다양하기 때문에 어느 한쪽에만 맞출수는 없는 일이고 라이트 유저 상대라면 상대적으로 심플한 구성을 할테고
하드 유저 상대로 한다면 세밀한 구성을 하는쪽으로 가는 방식이 일반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최근 유저 성향들도 보면 최적화빌드라는 말로 대변되듯이 루틴적인 부분을 찾는것 자체가 문제일수도 있을듯 합니다.
그리고 자유도라는것은 따지고 보면 가능성(무엇인가를 할 것)을 제공해주는데 그 자유도로 궁극적으로 얻을수 있는것이
없다면.. 할것은 많지만 정작 이득이 없다면 다수의 유저는 그걸 버릴겁니다. 즉 이득 자체가 없는 자유도는 의미가 없는 것이죠.
내가 어떤 캐릭터로 여러가지 다양한 무엇인가를 행할수 있지만 그게 게임의 목적과 연관이 안된다면 그런 다양한 가능성중에
효과가 없는 것은 버려질수밖에 없을것입니다. 요즘에 워낙 많은 게임이 나오니 다수의 유저들은 일단 게임 클리어에 기본적인
목적을 둔다면 이런 경향은 더욱 강해질수밖에 없죠..
대신 갓오브워는 그냥 적을 때리는걸로 끝나는게 아니라 타이밍에 맞춰서 버튼을 입력한다던가 갑자기 이벤트가 발생하면서 버튼을 입력하는 장면이 나온다던가 그런 할거리가 있었다는 점이 인기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해봅니다. 이게 바로 asteia님이 말씀하시는 이득 그러니까 재미와 연관시킨것이라고 생각하고요.
제가 말한 할거리는 자유도가 높은 게임인 보통 오픈월드나 RPG류의 게임에 할거리가 많아야할것 같습니다. 물론 이걸 게임의 재미와 연결시키는건 제작사들의 실력일테고요.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를 해보면 할거리가 너무 많은 현상이 심하게 나타납니다.
어딜가든 npc와 만나게되면서 퀘스트가 생기는데 가끔 보면 퀘스트 목록이 정말 산처럼 쌓이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나는 무슨 퀘스트 부터 깨야겠다 하고 돌아다니면 어느새 퀘스트가 두 세개가 새로 생겨있던가 말이죠. 물론 죄다 보조 퀘스트격의 소소한 내용들이고요. 이로 인해서 스토리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리 경험치를 많이 줘도 게임에 집중하기가 힘들면 괴롭죠. 퀘스트 깨는 기계도 아니고 말이에요....물론 퀘스트를 받아들이는건 플레이어 몫입니다.)
제가 보기엔 이득 보다는 그 할거리들을 얼마나 재미있게 구현하느냐가 더 중요하지않을까 싶습니다. 국내 온라인 게임들을 보면 할거리는 많고 완료하면 이득도 큰데 죄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것들 뿐이죠......
위에 제가 언급한 게임들이 대부분 RPG / 레이싱인 것도 결국은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목적인 장르이기 때문입니다. 어찌 되었건, 궁극적으로는 이런 시도들이 SF의 고전 떡밥인 '가상현실'로 이어질 거라고 보긴 합니다. 다만 그 현실도 너무 현실적이면 재미가 없을 테니 적당히 압축된 동네겠죠.
그건 순전히 플레이어 입장에서 이야기 하는것이고, 개발자 입장에서는 전혀 아닐듯 합니다.
아무리 구현을 해놔도 사람들이 무시하는 컨텐츠를 개발하면 바로 낭비가 됩니다. 구현을 굉장히 디테일하게 해놔도
그걸 유저가 이용안하면 명백한 리소스 낭비가 되죠. 최근에 디테일이 다소 축소되는 부분은 개발사들이 그간의 경험으로
사람들의 게임 구매에 미치는 영향이 약하다는것의 방증일듯 합니다.
가상현실은 디테일한 구현보다는 인터페이스 문제가 더 중요할듯 합니다. 인터페이스를 얼마나 소형화하고 상용화할정도로
가격을 줄일수 있는가.. 배틀필드 게임의 가상현실수준의 기기는 이미 구현되었던것을 일전에 어떤 분이 올려주셨듯이...
이미 가상현실 자체는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습니다. 가상현실에서 뭘 할건지 자체가 가장 중요한 요인이고 기술적인
디테일함은 두번째 요인일듯 합니다. 물리 엔진의 기술이 최소한의 기본은 되어야겠지만 말이죠..
맵이 크다라는 개념보다는 맵이 얼마나 디테일하게 구현했는가의 개념인듯 한데요...
맵을 세밀하게 구성했다고 사람들이 좋아하지만은 않죠. 지나치게 세밀하면 귀찮음이 증가하거든요.
일례로 던파는 정말로 단순합니다. 도시안에서 필요한 곳만(상점&NPC) 이동하고, 도시간 이동은 사실상 개념이 없고
바로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해버리니까요... 그리고 도시에 연결된 인던 바로 투입해서 인던맵만 클리어 하는 개념이다
보니 맵자체의 외부 환경적 세밀함은 거의 0에 수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