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작품 게시판 - 영화/애니/만화/소설/드라마/다큐멘터리
슈퍼 로봇 이야기, 괴수/괴인/초인 이야기 외에... 다양한 작품과 장르를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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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내추럴 셀렉션>은 변화(진화)에 초점을 맞춘 괴물 이야기입니다. 환경에 적응하는 육식동물을 통해 자연 선택의 경이로움을 설파하죠. 원래 진화는 느리게 일어나는 현상이고, 상당히 거시적인 사건입니다. 인간이 한평생 살면서 관찰할 성질은 아니죠. 그래서 이 책은 ‘만약 변화의 과도기가 넘어간 동물을 목격하면 어떨까’란 가정으로 출발합니다. 생태가 이제 막 바뀌려는 신종 포식자가 인간과 조우하면서 벌어지는 참상을 그려내죠. 그 때문인지 내용의 절반 가까이를 변화 과정에 할애합니다. 괴물이 처음부터 나오긴 하는데, 진짜 모습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거쳐서 중반 이후에 나타난다 하겠습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이 동물이 과연 어떤 방향으로 나가는지, 어떻게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지 호기심을 자극해요. 실제 동물들의 생리를 증거 삼아 끼워 맞추는 솜씨도 그럴 듯합니다. 마침내 드러난 실체는 상상했던 것과 전혀 딴판이라 뒤통수를 얻어맞는 듯한 기분입니다. 그렇게 되리라 짐작은 했지만, 진짜 그럴 줄이야.
작가가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고른 동물이 가오리, 그것도 쥐가오리라는 것도 흥미롭더군요. 쥐가오리가 수면을 박차고 뛰는 행동은 과학적으로 아직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고 하죠. 이걸 복선으로 깔기 위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 동물이 아니라면 후반부 전개가 그렇게 되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다만, 가오리 괴물이라는 게 그렇게 무서운 요소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생김새가 특이하기 때문에 판타지 등에서 가오리 괴물이 가끔 나오기는 합니다만. 일반적으로 쥐가오리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동물로 알려졌거든요. 잠수부들이 자주 올라타기도 하고요. 평소 행동이 느릿느릿해서 소설에서처럼 위협적인 놈으로 변모한다는 게 상상이 잘 안 갔습니다. 작가의 필력이 좀 딸려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개인적으로 그리 무섭지는 않았네요. 온순한 놈이 사나운 야수로 변한다는 간극에서 공포를 느끼는 독자도 있을 수도 있겠네요. 어쨌든 바다 괴물이라고 하면 흔히 거론하는 상어나 두족류, 갑각류 등이 아니라서 재미있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장점은 딱 여기까지입니다. 그 외의 이야기 짜임새, 문체, 캐릭터 구성, 문제 의식 등은 거의 시간 때우기 수준입니다. B급 괴물류에 나오는 진부한 장치들이 고스란히 나옵니다. 진화 과정의 경이를 목격한다는 발상이야 좋습니다. 하지만 이게 설정집도 아니고, 발상만으로 소설이 짠~ 나오는 건 아니잖아요. 괴물이 변하는 이야기는 몰입도가 높았지만, 책의 절반은 괴물을 쫓는 과학자들이 차지하거든요. 그런데 이 과학자라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얇고 가느다랗습니다. 깊이도 없고, 별다른 매력이 있지도 않아요. 주인공에게 성격적 결함을 부가해 갈등을 만들어보려고 시도하지만, 그것도 너무 뻔합니다. 고난을 거치고 성숙하는 면모가 없어서 그냥 속 좁은 소인배로 밖에 안 보여요. 작가가 인물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 헤매는 모습이 눈에 선했습니다. 아니면 아예 인물 구성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주인공 외에 다른 사람도 거기서 거깁니다. 인디언 사냥꾼은 뭔가 쿨하고 신비하게 보이려고 했던 듯하지만, 논리적인 과학 전개를 펼치다가 갑자기 신비주의로 넘어가니 뜬금 없더군요.
그렇다고 사건 전개나 심리 묘사가 뛰어난 것도 아닙니다. 아니, 뭐, 이런 대중소설에 치밀한 심리 묘사를 바라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등장인물이 하나같이 초등학생처럼 보이지는 말아야죠. 무엇보다 위기 상황 조성이 심심한 편입니다. 이런 괴물류은 주인공을 계속 위기로 몰아넣고, 그걸 극복해나가고 싸우는 재미가 중요하죠. 괴물이란 놈이 기본적으로는 사람과 싸우려고 존재하는 것 아니겠어요. 허나 이 소설은 주인공과 괴물이 별다른 연관성 없이 겉돌기만 합니다. 사실상 후반부까지 딱히 위기랄 것도 없어요. 열심히 동물을 쫓긴 하는데, 연구만 할 뿐 뭔가 커다란 갈등이나 사건이 발생하는 건 아니라서요. 차라리 악당이라도 카리스마 있게 나왔으면 좋으련만, 이 책에 악당이라 할 만한 인물은 없어요. 악독 사업가는 악역이라 하기엔 그냥 조연에 불과합니다. 결국 막상 책을 다 읽고 나면 싱거운 냉수 한 잔 마신 기분입니다. 뒷맛이 남는 게 없어요. 차라리 유치한 대사나 날리는 인간들 분량은 팍 줄이고, 괴물 쪽에 좀 더 치중했으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솔직히 이 책이 <프래그먼트>마냥 설정 위주라는 말을 듣고 읽을까 말까 좀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뭐 읽을만한 괴물 이야기가 없나 싶어서 손을 댔습니다. 바다 괴물이 심해에서 올라온다는 줄거리라서 <메그> 수준의 재미는 보장해줄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보면, 메그는 소재, 아이디어, 이야기 모두 정말 잘 빠진 작품이었습니다.) 허나 다 읽고 나니, 책값이 아깝다는 생각도 살짝 들었네요. 흥미진진한 테크노 스릴러를 원하는 독자에게는 별로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크리쳐나 괴물 설정에 목마른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볼만하겠죠. 그래도 책장을 덮고 나면 밍밍할 겁니다. 김 빠진 사이다를 마시면 이만큼 허탈하려나요.
낚였다....
전 야구어님이 웬일로 게임 "내츄럴 셀렉션"을 진지한 관점에서 고찰을 할까 하고 희희낙락해서 얼른 눌렀는데
결과는 낚시다...이건 고도의 낚시야...이럴수가. 야규어님이 낚시를 하다니.
이거야 말로 충격과 공포...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