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요즘만큼 크툴루 신화가 대중적으로 유명했던 시기는 한국에 없었던 거 같습니다. 뭐 시기적으로야 몇년 전에 드디어 황금가지에서 처음으로 그나마 읽어줄만한 번역본이 나온 것도 있고, 대~부분은 크툴루 신화의 고대 신 모티프를 따온 다른 작품들 때문인 거 같은데요. 게임으로 치자면 뭐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대표적으론 와우의 크툰, 요그사론, 이샤라즈 같은 고대신이겠고... 좀 더 오타쿠적으로 파 본다면 기어와라 XX코 양이라던가... 있겠지만... 죄송합니다.

아무튼 그래서 크툴루 신화가 알려진건 좋은데 원전을 통해서 직접 접하는 이미지가 아니다 보니 좀 괴리가 있는 거 같아요. 사실 러브크래프트는 말 그대로 문학적 장치로만 이용했지 그 신들에 대한 구체적 개념이나 뭐 체계 같은 걸 거의 잡지 않고 죽어서... 게다가 작중에 제대로 묘사 된 건 니알랏호텝 정도지 나머지는 그냥 이름이랑 호칭만 언급하는 수준. 대표적 일례가 아자토스죠. 쓰다가 작가 사망.

그나마 크툴루 신화를 나름 체계화시킨 게 우리의 오거스트 덜레스인데, 이 친구가 막 이것 저것 설정 가저다 붙이고 그러느라고 본작에서 정말 근엄하게 묘사했던 아우터 갓의 이미지가 와장창 개발살. 니알랏호텝과 크툴루에 적대하는 라이벌 신이라는 빈곤한 발상의 크투가나 하스터를 집어넣지 않나.(하스터는 원래 있었던 거긴 하지만) 거기다 무슨 판타지를 연상시키는 사대원소 속성을 부여해서 땅의 니알랏호텝 물의 크툴루 불의 크투가 바람의 하스터 운운하는 걸 보면 이건 뭐.

뭐 거기까진 좋았는데 누구 신과 사이가 안좋은 다른 신을 인간들이 어부지리로 이용해서 능동적으로 재난에 대처하려고 하니 원작의 불가항력적인 공포감이 깨져 정말 울화통이 터집니다. 니알랏호텝이 화났다고? 그럼 은가이의 숲에 크투가를 소환해 불지르면 되겠네! 거기다가 스펙까지 나름 구체적으로 설정해버리는 바람에, 혼돈의 전령이라는 천하의 니알랏호텝이 불정령(...)한테 깨갱 하고 말려서 도망치는 판국이니. 사실상 인간의 정신을 미치게 한다는 능력만 제외하면 대체 이 아우터 갓이라는 존재들이 얼마나 쌘 건지 그 권능에 크나큰 의심을 들게 합니다.

결국 진짜 크툴루 신화란게 이런 세계관이니 포스넘치는 고대신이 나오는 러브크래프트 계열 작품을 보면 위화감부터 듭니다.

추신. 아, 사실 개가 미고를 때려잡는다거나 니알랏호텝이 고작 인간인 랜돌프 카터 하나를 못잡아서 쩔쩔맨다던가 하는 걸 보면 원작에서부터 별로 취급이 안 좋았던 셈인가... 생각해보면 후기 작품은 좀 그래요. 막 고양이 나오고 구울들이 도와주고 그랬던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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