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작품 게시판 - 영화/애니/만화/소설/드라마/다큐멘터리
슈퍼 로봇 이야기, 괴수/괴인/초인 이야기 외에... 다양한 작품과 장르를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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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개미>를 쓴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은 평생 <개미> 작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니기 싫다고요. 성공적으로 데뷔한 데다가 개미 소재을 두 편이나 연속으로 쓰다 보니, 이미지가 묶일 것을 우려했나 봅니다. 다행히도 벨날 벨벨 아저씨는 그 후로 여러 소설을 내놓았고 특정 장르에만 얽매이지는 않았습니다. <아버지들의 아버지>, <뇌>,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등 인기작도 여럿이죠. 하지만 아직도 이 작가 이름을 거론하면 대다수 사람들은 개미를 연상합니다. 저도 포함해서 말이죠. 그리고 보면, 고정 관념이라는 게 참 무섭습니다. 비단 베르베르만 아니라 다른 작가들도 이런 사태를 경계할 겁니다. 애초에 한 우물만 파겠다는 작가야 상관 없을 테죠. 프랭크 허버트를 <듄>으로만 기억해도 본인은 크게 괘념치 않을 겁니다. 늙을 때까지 이 시리즈만 줄기차게 썼으니까요. 하지만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고픈 작가에겐 피해야 할 일이겠죠. 독자들 인식이 엇나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하나의 작품 혹은 특정 이미지로만 고정되는 이유도 저마다 다를 겁니다. 가장 흔한 사례는 데뷔작이 너무 인기를 끈 나머지 차기작의 평판이 못 따라가는 유형입니다. 벨벨 아저씨가 걱정한 것처럼 첫인상이 강하면 독자 기대치가 급속도로 상승합니다. 작가도 이 기대치에 부응하려고 애쓰다 슬럼프에 빠지기도 하고요. 그래서 화려하게 등단했지만, 그걸 끝으로 사실상 펜을 놓게 된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와 달리 준수한 책을 여러 권 썼는데도 한쪽으로만 유명해지기도 하죠. 작가 본인이 그런 걸 원해서일 때도 있지만, 보통은 독자들이 소설 하나만 애독하거나 그 작품이 후대에 큰 파장을 미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 작가는 분위기를 바꾸려고 노력하지만, 그게 꼭 결실을 맺지는 못합니다. 아무래도 작가도 사람이니 특정 주제나 문체가 따라가기 마련이라서요. 이건 독자 입장에서도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겁니다. 한두 작품에만 치우쳐서 평가하면, 그 작가의 사상을 전반적으로 살피지 못하니까요.
이것 때문에 큰 고충을 토로한 고전 작가로 아서 코난 도일이 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셜록 홈즈가 떠오를 텐데, 도일은 나중에 이 캐릭터를 떼어놓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습니다. 하도 탐정 소설만 쓰다 보니까 소재도 다 떨어지고 지쳐서 나가 떨어진 겁니다. 잡지에 초기~중기작을 연재할 때는 돈벌이도 잘 되고 생활 형편도 나아졌으므로 홈즈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만. 똑같은 인물을 몇 십 편이나 굴리다 보면, 누구라도 싫증나기 마련이겠죠. 더군다나 ‘정통’ 작가로서의 포부도 있어서 잡지 소설가로 남길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역사 소설도 꾸준히 썼고, 영국 궁수 이야기인 <백의단> 같은 책도 펴냈어요. 19세기 당시에는 평가도 호의적이고, 잘 팔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1차 대전 기운이 흉흉하던 시절이라 애국심을 자극하기도 좋았고요. 하지만 21세기인 지금도 코난 도일은 셜록 홈즈를 창조한 작가로 남아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많은 홈즈 판본이 있지만, 정작 <백의단>은 번역조차 안 되었죠. 한 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한 작품이 아니라 어떤 이미지로만 유명한 경우도 있죠. 스티븐 킹도 한때 공포물 이미지를 탈피하려고 했었다고 들었습니다. <캐리>로 시작해 승승장구하는 것까진 좋은데, 비평이 안 좋았거든요. 공포물 말고 다른 글을 쓸 줄 모른다는 비판까지 들었다고 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장르 작가는 뭔가 싸구려인 듯한 느낌도 풍기고요. 그래서 이를 타파하기 위해 <쇼생크 탈출>을 썼다고 합니다. 환상적인 요소가 전혀 없고, 사회 비판적인 주제를 담았으므로 이만하면 되겠다고 생각했고요. 영화로도 나왔는데, 연구할 거리가 많은 수작으로 배우 연기와 연출, 촬영 등 여러 면이 돋보이는 수작입니다. 또한 이거 말고도 일상을 다룬 소설을 몇 개 더 썼는데, <그린 마일>이나 <돌로레스 클레이본> 등도 있죠. 알고 보면 엄청난 다작가이고, 공포물이 아니라도 흥행을 많이 했어요. <캐리>로 필모그래피를 시작해서 그렇지, 순문학으로 떴어도 잘 먹고 잘 살았을 걸요. 하지만 그렇다 해도 여전히 스티븐 킹이라고 하면 각종 환상 문학이 먼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리고 보니, <캐리> 리메이크도 한다는데.)
이건 국내만 그런 건지 몰라도, 로버트 하인라인 역시 오해가 많은 소설가입니다. 본래 하인라인은 미래 사회 체계에 관심이 많고, 그래서 작품 주제도 대부분 그쪽입니다. 식민 행성이 독립하거나, 민주 정치를 뒤튼다거나, 기존 사회를 전복시키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내용이 많아요. <스타십 트루퍼스>도 그런 작품 중 하나고요. 문제는 여기서 하인라인이 이상적인 군인상을 난해하고 지루하게 설교했다는 점입니다. 다른 작품에서는 설교를 늘어놓는 일이 별로 없는 양반인데, 어쩌다 저렇게 쓴 건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어쨌든 이 책으로 인해 하인라인은 군국주의나 파시즘을 지향한다는 말까지 들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밀리터리 SF의 대표작으로 후세에 워낙 큰 영향을 끼친 바람에 <스타십 트루퍼스> 하나만으로 작가를 평가하는 경우도 많아요. 따지고 보면, 그저 여러 사상을 실험하다 군인 정치도 논했을 따름인데요. 심지어 <여름으로 가는 문> 같은 청소년물까지 쓰지 않았습니까. 책 한 권에만 못 박히기는 좀 아까운 사람입니다.
이것 역시 국내에 한정된 사례 같은데…. 아니, 어쩌면 외국에서도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하워드 러브크래프트는 해양 공포물을 쓴 사람으로 알려졌습니다. 심해에 사는 외계인, 이질적인 해저 왕국, 촉수와 지느러미가 달린 괴물 등이 대표적이죠. 그래서 생전 해산물을 싫어했다는 이야기도 호사가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립니다. 그런데 정작 러브크래프트의 작품들 중에 바다가 무대인 건 손에 꼽을 만합니다. <다곤>, <인스머스의 그림자>, <크툴루의 부름>, <신전>이 전부이며, 그 외에 심해를 소재로 한 것은 없다고 봐도 됩니다. 그나마 저 중에 두 개는 단편이고, <신전>에는 바다 괴수가 나오지도 않죠. 그런데 왜 해양 공포물로 낙점 된 이유는 그만큼 크툴루나 다곤 설정이 압도적이기 때문입니다. 러브크래프트 본인는 <우주에서 온 색체>나 <에리히 잔의 선율>을 최고로 꼽았지만, 여기에는 외계인 따위도 안 나오고, 좀 심심하거든요. 그보다는 해저에서 올라온 괴수가 다 때려부수는 게 화끈하지 않습니까. 작가 자신한테는 섭섭한 평가겠지만.
참고로 러브크래프트는 은둔자로 알려졌지만, 의외로 사람들과 많은 교류를 했다고 합니다. 편지도 자주 썼고, 잡지에 평론이나 사설 기고도 꾸준히 했다고 해요. 은둔자로 찍힌 이유는 소설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집구석에만 틀어박혀서 작가에게까지 그 여파가 미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교류를 했다고는 하나 낯을 가린 건 사실이고, 인종차별까지 했으니까요. 그리 긍정적인 사람으로 보긴 힘들겠습니다.
약간 희한한 케이스로 마이클 클라이튼이 있습니다.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클라이튼은 거의 대부분 <쥬라기 공원>을 쓴 사람으로 나옵니다. 가장 큰 흥행을 한 작품이긴 한데, 이거 말고도 다양한 소설이 있으며, 심지어 SF가 아닌 역사물도 있습니다. <시체를 먹는 자들>이나 유고작이라 할 수 있는 <해적의 시대>가 그렇죠. 솔직히 작품성으로 따진다면, <쥬라기 공원>은 그리 특별한 건 아닙니다. 상업주의 과학을 비판하는 테크노 스릴러 중에서 공룡을 소재로 한 게 특징이라면 특징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이름을 남긴 까닭은 스티븐 스필버그 때문입니다. 소설을 기초로 만든 영화가 대박을 치니, 원작가도 당연히 이쪽으로 알려졌죠. 스필버그가 영화화를 하지 않았더라도 클라이튼은 잘 나가는 대중 작가였을 테지만, 공룡 소설가로만 찍히진 않았을 거에요. 그러니 클라이튼을 너무 <쥬라기 공원> 위주로만 평가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봅니다. (이런 말을 하는 저조차도 그런 실수를 할 때가 많긴 합니다만.)
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예시를 들었는데, 이 양반들 말고도 이미지가 고정된 장르 작가는 많을 겁니다. 이런 현상은 장르 소설 쪽에만 국한되지 않고, 창작계라면 어디든 만연하기 마련이지만요. 감독이나 배우 역시 스스로 만든 족쇄(?)를 풀지 못한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죠. 다만, 여러 인원과 동시 작업하는 감독, 배우와 달리 작가는 혼자서 작업하기 때문에 이미지 변신이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감독이나 배우는 스태프가 바뀌면 예전 모습에서 벗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작가는 작품을 온전히 자기 손으로만 완성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 여지가 적어요. 그나마 출판사 편집자가 작품의 방향을 정할 영향력이 있으니 다행입니다. 변화를 꾀하는 작가라면 좋은 편집자에게 기대볼 수는 있겠지요. 어쨌든 작가를 제대로 파악하고 싶다면, 전체 작품군을 읽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한데…. 책을 구하지 못하거나, 읽을 사정이 안 되거나 등등 애로사항이 꽃필 때도 많으니, 원. 전집이 나오는 작가 팬은 참 축복받은 거에요.
※ 작품 하나만 남기거나
특정 이미지에 얽힌 작가라 해도 예비 창작가에게는 그저 부러울 따름이겠죠. 다작을 못해도 좋으니, 작품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건지려고 발버둥치는 작가들이 숱하니까요. 이미지가
고정되었다는 건 그만큼 그쪽 분야에서는 유명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것조차 안 되어서 이슬로 사라지는
예비 창작가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면…. T_T
스티븐킹은 정확히 말해 작가 자신이 장르 소설가로 타입화하는 것을 고민하기보다, 편집자가 먼저 고민을 하고 상담을 청해 왔죠.
<쇼생크의 탈출>이 포함된 중편집 [다른 계절(Different Seasons: 사계)] 작가 후기에 보면 그 정황히 상세히 기술되어 있습니다.
스티븐 킹이 두 편의 장편 소설로 큰 성공을 거두고 세 번째 작품을 탈고하여 출간을 준비하고 있을 때, 편집자가 찾아와서 말하길
"작품은 아주 좋아. 하지만 자네는 (세 번째 소설까지 호러 소설이면 독자에게) 타입화될 거야. 그래도 괜찮은가?"라고 물어옵니다,
그 말에 스티븐 킹을 어린 시절부터 장르 소설을 즐겨 있었던 자신의 과거를 반추해 보면서 진심으로 괜찮다고 결론을 내리고,
"호러 소설을 좋아하기 때문에, 타입화해도 상관없다. 호러 소설가가 되겠다"라고 대답하죠. 그 이후 후회는 없었다고 회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