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역사 포럼
역사 속의, 또는 현대의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들과 관련한 뉴스 이외에 국내 정치 논쟁에 대한 이야기는 삼가해 주십시오.
http://v.daum.net/link/14013385
책에 나온 이야기를 요약해서 설명한 글인데
좋은 내용같아서 링크겁니다 ^^
이거 책 광고라고 하진 않겠죠!!
일단 서인정권에서는 북벌을 원하지 않았고, 기득권 유지를 위해 광해군을 축출하고.
이 정도까지는 대략적으로 알고있었는데 잘 모르는 무언가가 있었나 봅니다.
안녕하세요 재미있는이야기가 많아 자주 들리는데 회원이 아니면 읽을수 없는게 많아 가입합니다. 앞으로 잘부탁드립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내용을 보면... 이순신 장군이 수군으로 배치된 수군진의 군정비 내용을 보면...
정말 가관인게... 전라 좌수사의 관할 서류상엔 맹선이 몇척 판옥선이 몇척 배치된 수군과 관노들 수치가 되어있었다고 나오지만 실제 가보면 배한척 제대로 없는 곳은 물론이고 있는 배조차 수리가 되지 않아 거의 패선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고...
부임후에 장군이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 배를 만들고 사람을 모으고 식량을 비축하고... 그야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 만들어버립니다.
바로 이문제를 율곡 이이가 주장한겁니다.
실제 군제가 개판이니 서류가지고만 떠들지 말고 실제 군대를 보강하자...라는 취지로.
통상은 그렇죠...
문제는 정비 상태가 개판인 장비를 당장 전쟁에 써먹을수 있느냐의 문제죠....;;
이순신 장군이 전라 좌수사로 발령받고 나서 한 행동이나 난중일기 기록을 보면...
대형 장비... 특히 수군의 핵심인 선박. 그중에서도 판옥선같은 대형 장비들의 숫자가 맞지 않거나 정비 상태가 불량이라 그 상태로는 도저히 전투에 써먹을수가 없기에 대대적으로 개보수를하고 안되는것들은 부수고 쓸만한거 재활용하던가 새로 만들던가 하는등 대대적인 정비를 합니다.
일반 보병용 장비를 봐도... 숫자가 제아무리 맞고 넘쳐나도 녹슨 무기... 철제무기의 녹스는 속도를 생각하면... 가지고 싸운다거나... 한다는게 쉬운일은 아니죠.
게다가 전쟁 양상 자체가 접근전은 상대가 안되니 원거리에서 싸우려고 하는경우가 많았는데...
조선시대 주력무기인 활... 특히 각궁이란게 관리가 보통 중요한게 아닌 물건입니다. 목궁도 마찬가지고... 각궁보다는 덜하지만...;;
당장 태조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에 써먹은 명분... 이유중에 장마철이라 각궁 쏘기 힘들다는게 들어가있을 정도로....
결국 정비상태가 개판이란 소리는 사실상 '당장 쓸수 있는 장비'가 없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입니다.
아... 그리고 경상도쪽과 전라도쪽은 같은 해안지대라도 전쟁준비의 크기가 좀 틀렸습니다.
왜냐면 당시 조선 조정은 대규모 왜구정도로 생각하고 준비했기에 대대적인 전쟁준비가 (백성들이)너무 힘들다며 반발하고 조정에서도 전쟁 준비 규모 조정을 좀 했습니다.
그 '당장 쓸 수 없는 장비' 들고 당장 싸웠습니다요.(...) 극단적 FM인 통상어른 기준으로 평가하면 정비상태가 온전한 군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판옥선 숫자 못맞추면 목 날라가고(비유가 아니라 진짜 사형에 준합니다.) 정비상태가 안좋다 해도 타 수영(대표적으로 전라우수영.) 등의 사례를 보면 전투에 못써먹을 정도까진 아닙니다. 전라좌수영만 유달리 정비상태가 불량이였단 말일까요? 설마? 가능성이 없다고까진 못하겠습니다만(통상어르신 바로 직전 수사가 원균이였던가...) 못써먹을 수준까진 아닙니다.
당장 무기류의 정비상태만 봐도 임란 바로 직전에 신립, 이일이 남도 일대의 정비상태를 감찰돌고 있고(이것도 '궁시와 창도만 본다' 고 까이긴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을 최대한 수용해도 상시 정비가 필요한 개인무기류는 정비상태를 점검, 그것도 임진년에 했단 이야기.) 수량이야 몇번씩 암행어사 돌았죠. '배와 총통 갯수는 정수를 채웠고 갑옷류가 부족한데 제작중입니다' 하는 보고도 올라온 적 있고요.
덤으로, 전쟁준비 문제는 '전쟁준비 빡세게 할수록 민심이 이반되는 건 몰랐네. 반성함' 이라고 선조가 직접 내려보낸 교서 한장이면 정리되는 이야깁니다.
일단 본문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도 아닌 이덕일입니다. 따라서 그냥 패스해도 무방.
물론 십만 양병설은 자주 의문시되는 학설 중 하나긴 합니다. 무엇보다도, 조선은 임란때 17만을 끌어냈거든요. 상당지역이 적의 손에 넘어간 상황에서 17만을 뽑아낼 수 있는데 10만 양병을 주장한다는 게 뭔가 이상하게 여겨진다는 거지요. 여기다 이 기록이 수정실록에만 나올 뿐이란 점도 좀 걸리고.
그러나 선조실록 자체가 기록 소실이 많이 이루어진 데다 수정실록도 부정될만한 사료는 아니고, 수정실록 편찬 과정 및 수정 이유를 적은 '선조수정실록청의궤' 를 보면 선조실록 자체가 편찬자인 북인들에 의해 상당부분 왜곡되게 적힌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드는 지라 100% 부정은 힘들어 보입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가능성은 있지만 명확하지 않다' 정도로 정리되겠네요.
10만양병설에서 10만은 어중이 떠중이 10만이 아닌 정병 10만일겁니다 어중이떠중이 17만이던 몆십만보다 최정예병력 10만이 더
믿음직한것은 사실이니까요 예로 냉병기시대의 소수정예군으로 이름 높은 로마군도 10만 내외의 최정예병력만으로 그넓은땅을
다지켯으니까요...
없었습니다.
율곡 이이의 십만 양병설은 임진왜란 이후 그의 제자들이 문집으로 주장했던거고...
실제로 율곡이 주장한 내용은 전쟁을 대비해 최대 십만의 군대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던건데...
이 내용의 실제 취지는... 당시 조선... 즉 임진왜란 직전의 조선은 2백년인가 3백년인가의 평화로 인해서 사실상 북쪽 여진빼면 전쟁이 없었죠. 그래서 실제 군제와 서류상의 군제가 엄청난 차이가 났었고 율곡은 이것이 무너졌기에 이걸 지적하는 의미에서 실제 군제를 재편하자는 취지의 조선 전체의 군대가 10만은 되야 외적의 침입에 안전하다...라고 주장한게 율곡 이이가 주장한 십만양별설의 진실입니다.
( 그나마 여진의 침입이란것도 국경지역과 국경 외각지역 완충지대 지역에서 이루어졌고 그 완충지대에 밭만들고 북쪽으로 이주한 사람들 출퇴근하면서 농사짓다가 충돌한게 전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