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유령여단>에는 보통 인간과는 다른 특수부대가 등장합니다. 이들은 탄생 방식부터 특별한 데다가 능력도 출중한 만큼, ‘진짜배기 인간’과 자신들이 다르다고 느껴요. 심지어 일부 부대원은 진짜배기들이 멍청하고 저질이라고 주장할 정도입니다. 그 근거로 농담을 제시하는데, 인간들이 주고 받는 농담은 대개 누군가를 비하하는 내용이라는 겁니다. 어떤 대상을 깔보고 우월함을 느끼기에 웃는다는 뜻이죠. 그러면서 셜록 홈즈와 왓슨 박사 농담을 사례로 듭니다. 홈즈와 왓슨이 야영하면서 밤하늘을 보고 나누는 대화인데, 자세한 내용은 여기다 적지는 않겠습니다. 어쨌든 이 농담에서 왓슨은 멍청한 소리를 해대고, 그 바람에 듣는 사람은 결국 웃고 맙니다. 특수부대 훈련소 인솔자는 이처럼 인간들의 농담이 누군가를 바보로 만든다고 싫어해요.



이 대목을 읽고 나니, 문득 아시모프가 쓴 단편 <익살꾼>이 생각났습니다. 농담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그랜드 마스터가 유머의 기원을 찾는 내용이죠. 즉, 인간은 왜 웃는가, 농담이란 어디서 발생했는가를 밝히려는 겁니다. 당연히 작중에도 여러 농담이 나오는데, 아시모프 특유의 재치가 드러나는 부분이죠. 그런데 이런 농담들 역시 누군가가 곤경에 처하거나 바보가 되는 것으로 결론이 납니다. 반전에 중점을 두는 유형도 있지만, 주인공이 골탕 먹어서 웃음을 유발하는 유형도 있어요. 아시모프의 유일한 풍자 시리즈라는 아자젤 연작도 그렇죠. 아자젤과 동행하는 조지는 악마의 능력을 빌어 사람들 소원을 들어주려고 애씁니다. 하지만 세상만사가 형통하지 않은 터라 항상 일이 꼬이고 결국에 실패로 돌아갑니다. 그 과정이 참으로 배꼽 잡게 해요.



유머가 타인의 곤란에서 비롯된다는 설정은 영화 <킹콩> 리메이크에도 나옵니다. 극단 배우인 앤 대로우는 영화를 찍으려고 해골섬에 들렀다가 킹콩의 제물이 됩니다. 거대 고릴라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알려야 하는 상황에 처하고, 특기를 십분 발휘하여 춤을 추거나 묘기를 부립니다. 킹콩은 처음에 이를 신기하게 관람했으나 곧이어 지루함을 느끼고 앤을 이리저리 밀치며 가지고 놉니다. 작은 인간이 쓰러지고 넘어지고 비명 지르는 모습을 보며 껄껄대고 웃죠. 고릴라인지라 인간처럼 웃진 않습니다만, 표정이나 눈빛 등은 분명히 웃는 것에 가까워요. 실제 고릴라가 저렇게 웃는지, 유머를 아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영화 속 킹콩은 인간처럼 몸개그를 즐깁니다. 사람과 비슷한 감정이 있기에 사람처럼 상대가 곤경에 처한 상황에 즐거움을 느끼는 거죠.



과학 판타지라고 자칭하는 영화 <불을 찾아서>도 이런 식입니다. 원시인들이 신성시하는 불꽃을 찾아 떠나는 로드 무비인데, 줄거리나 설정이 좀 골 때려요. 제작 당시의 인류학 패러다임이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요즘 시각으로 보자면 괴악한 구성이 숱한 영화입니다. 그런 점을 떠나서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는 원시인이 처음으로 웃는 대목입니다. 동료가 나무에서 떨어진 열매를 머리에 얻어맞고 아파하는 모습을 보며 웃죠. 그러니까 웃음의 기원은 몸개그이고, 상대가 어려움에 처한 걸 보며 우월감 때문에 즐거워했다는 겁니다. 그 장면을 보고 나니, 왜 인간은 농담을 듣고 동정심을 느끼는 게 아니라 기뻐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자기한테 그런 일이 생기면 절대 웃지 못할 텐데요. 위에서 말한 소설 <익살꾼>에도 그런 논리가 나오고요.



괴악한 과학 판타지부터 심성을 꿰뚫는 풍자소설까지, 유머의 근본을 비슷하게 본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그게 뭐 나쁘다거나 이상하다는 건 아닙니다. 농담이라는 전제를 깔지 않거나, 타인이 정말 심각한 곤경에 빠졌다면, 웃지 않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농담에는 비하적인 의미가 깔렸으니, 만약 외계인들이 이를 알면 지구인을 어찌 생각할지 궁금하군요. 남들 비웃기 좋아하는 종족이라며 적대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