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별 의미 없는 소설 감상입니다.


 복고가 최근 조금 인기를 끌었다는 이야기를 전에 했었죠. 특히나 80년대가 복고 유행에 합류할 시점이 되어서, 쿵퓨 퓨리 같은 쌈마이 인디영화도 나왔고 복고풍 게임들도 제법 나왔으며 국내에서도 응답하라 시리즈가 드라마로 인기를 끌었죠. 80년대풍 신디사이저가 들어간 음악들도 꽤 나왔습니다. 전 원래 그런 거 좋아했지만...






80년대풍으로 나온 메탈기어 솔리드 V의 OST 팬텀 페인



이거는 서전 시뮬레이터 2013의 OST.



 소설이라고 안 나올 수 있겠어요. 레디 플레이어 원 역시 이 유행에 적절히 편승한 소설입니다. 장르적으로는 SF고요, 80년대 자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영 어덜트 류의 소설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 세대는 이미 영 어덜트는 아니지만, 해리 포터 이후로 유행한 것들 있잖아요. 다이버전트니 메이즈러너니 하는 것들. 80년대에 자라서 80년대 문화에 심취했던 천재가 가상현실 게임을 만들어서 백만장자가 되고, 이후 그 게임 속에 80년대 영화와 게임과 만화에 관련된 퍼즐들을 잔뜩 숨겨놓고 이거 푸는 사람에게 전 재산을 물려주겠다고 유언을 남긴 거거든요. 이걸 풀기 위해 주인공이 가상 현실 속에서 신나는 모험을 떠나는 겁니다. 주인공을 막고 자신들이 그 재산을 꿀꺽하려는 악당도 있고, 친구도 만나고, 이것저것.


 불행히도 대상 연령층이 좀 더 높음에도 불구하고, 앞서 말한 영 어덜트류 소설들의 단점들 역시 가져왔다는 건 문제긴 합니다. 뭔가 어설픈 설정에, 뭔가 어설픈 이야기 전개, 인간인지 아닌지도 긴가민가한 매력 없는 캐릭터들. 세계관적으로 볼 때는 인류 문명이 쇠퇴하고 있어서 이에 도피하기 위해 가상현실이 유행하고 다국적 기업이 초국가적 권력을 휘두르며 복고가 유행한다는, 사이버펑크스런 동네지만 이에 대해서 제대로 다뤄줄 능력은 없는 것까지 말예요.


 사실 뭐 그런 거야 작가가 글빨이 부족해서라고 치고 넘어가면 되니까 아무려니 할 텐데, 정말 문제가 되는 건 '왜'라는 질문이 빠져 있다는 겁니다. 왜 복고는 멋진가 하는 것 말예요. 저는 80년대가 아닌 90년대 키드고 이 소설에서 다루는 건 좀 생소한 미국산 물건들이 많으니 더욱 이유가 필요하죠.


 소설 자체는 온갖 80년대 문화에 관련된 내용으로 도배되어 있거든요. D&D, 오락실 게임에 스타 워즈에 일본 특촬물에 이것저것 다 튀어나옵니다. 아니, 제목부터가 오락실에서 동전 넣고 게임 시작하면 나오는 READY PLAYER 1에서 따온 거 아닙니까. 헌데 이걸 정말 그 시절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작가가, 그 멋짐을 설파하려고 쓴 이야기라고는 별로 읽히지 않아요. 능력 부족인지 열정이 없는 건지는 몰라도 그게 왜 멋진지는 알지 못한 채, 2000년대 태어난 누군가가 그저 자료 목록에서 그 시절에 유행했던 것들을 긁어다가 여기저기 인용만 신나게 해댄 이야기로 읽히거든요.


 복고라고는 해도 인용이 아니라 패러디를 해야 하는 거고, 설득을 해야 하는 것이며 재구성을 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쿵푸 퓨리는 80년대 액션영화의 쌈마이스런 폼잡기와 어설픈 대사들을 과장해서 듬뿍 집어넣은 코미디였고, 그 시절 오락실 문화의 멋짐에 대해서는 최근에 디즈니가 주먹왕 랄프로 굉장히 멋지게 구현해주기도 했죠. 향수를 느끼게 하려면 영혼이라고 해야 할지 분위기라고 해야 할지, 그런 게 있어야 하지 않아요.


 하긴 따져보면 이 소설 내의 주인공을 포함한 등장인물들도 그 시절에 무엇이 있었는가를 '퍼즐을 풀고 유산을 얻기 위해' 기계적으로 외우고 되뇌기만 하지 즐기려는 듯한 태도는 별로 보여주지 않는 건 마찬가지니 말입니다. 하지만 시험도 아니고, 문화는 즐기라고 있는 것 아니겠어요. 작가 역시 그런 태도로 소설 써서 돈 벌려고 기계적으로 그 시절 공부만 했다고 해석하면 그건 조금 심한 과장일진 모르겠지만...뭐 그런 느낌이네요.


 이걸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화화한다는데 어떤 물건으로 나올지 감도 안 잡힙니다. 워낙에 그 시절 물건들로 도배를 해 놓은 전개라 라이센스 따는 것도 그렇고 이야기에서 녹여내는 것도 그렇고. 하긴 그래도 스필버그 옹이니 어떻게 잘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번역은 나쁘지 않았는데...건쉽을 사전 한 줄 슥 보고 공격헬기로 번역하는 것은 언제쯤 그만둘까나요. 우주를 날아다니는 공격헬기가 어딨어!


 그러고보니 최근에 메모리즈도 봤습니다. 미러 댄스에서 좀 실망한 이후긴 하지만 마일즈 보로코시건 시리즈는 역시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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