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휴... 길다)에는 이야기와는 전혀 상관 없는 뜬금없는 장면이 많습니다.

그중 가장 이해안되는 부분은 브루스 웨인(배트맨)이 슈퍼맨과의 대결을 앞두고 다이애나(원더우먼)에게 보낸 메일이죠.

배트맨이 각종 준비를 마치고 배트 시그널을 켭니다. 고담시의 하늘에 거대한 박쥐 모양이 드러나고, 둘의 대결이 다가왔음을 느끼게 합니다.

그 무렵, 다이애나(원더우먼)는 한 통의 이메일을 받습니다. 브루스 웨인이 보낸 그 메일에는 다이애나 자신의 사진. 1차대전이 한창이던 당시에 찍힌 사진이 있습니다.

그리고 렉스 루터의 시스템을 해킹해서 얻은 4개의 영상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원더우먼, 플래쉬, 아쿠아맨, 그리고 사이보그의 영상이죠.

렉스 루터가 친히(?) 만든 슈퍼 히어로 로고까지 첨부된 이 영상에서 우리는 이 세계에 원더우먼을 포함해서 4명의 슈퍼 히어로(메타휴먼)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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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타휴먼 플래쉬. 딱 이런 느낌의 메일이 날아옵니다. ]

DC는 이 장면을 통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늬들 마블만 멋진 줄 알지? 근데 사실 우리도 이만큼 있거든. 기대하라고!"


문제는 그것이 배트맨과 슈퍼맨의 대결 직전에 나온다는 겁니다.

DC는 자신들이 가진 카드를 자랑하고 싶겠지만, 그 순간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두장의 카드(배트맨, 슈퍼맨)가 뒷전이라는 사실은 잊고 있습니다.

관객들이 가장 궁금해할 내용이 바로 그 두 장의 카드가 벌이는 대결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이 장면은 매우매우매우매우 나쁜 장면입니다.

첫째, 너무 뜬금없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팬들이 "그래. 이제 플래쉬(아쿠아맨, 또는 사이보그)도 볼 수 있어."라고 외칠지는 몰라도, 그 영상이 나오는 순간 거의 모든 관객은 "그래서? 저게 뭐 어쨌다는 건데? 빨리 배트맨하고 슈퍼맨이나 보여줘."라고 하고 있을 거에요.

둘째, 본 내용을 잊게 만듭니다. 배트맨과 슈퍼맨이 뒷전이 되며, 그들의 매력이 반감됩니다.

셋째, 두 사람의 대결을 재미없게 만듭니다. 배트맨은 지금 목숨을 걸고 슈퍼맨과 싸워야 하는 상황입니다. 근데 슈퍼맨과의 싸움에 모든 것을 내던져도 부족할 마당에 엉뚱한 얘기나 꺼내고 있는거죠. 그만큼 슈퍼맨과 배트맨의 대결이 퇴색되어 버립니다.


DC는, 그들의 라이벌을 배웠어야 했습니다.

원더우먼을 비롯한 네 명의 영상은 배트맨이 저스티스 리그를 만들기로 결심한 다음에 나오는 쪽이 더 나았어요. 바로 쿠키샷 말입니다.

그렇잖아요? 아이언맨과 아이언몽거의 싸움이 막을 내리고 '내가 아이언맨'이라고 토니 스타크가 말하면서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난데없이 안대쓴 아저씨가 나타나서 "내가 아이언맨이라고? 자네만 있는 줄 아나?"라고 말하는 놀라움.

메타 휴먼의 영상은 지금 필요하지 않습니다. 배트맨과 슈퍼맨의 싸움을 확실하게 끝내버리고, 내친김에 둠스데이까지 물리치고 난 이후에 보여주어도 아무런 지장이 없을 뿐더러, 그럼으로써 기대감을 높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저스티스 리그를 보여주고 싶었던 DC는 굳이 배트맨과 슈퍼맨의 대결 전에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려 합니다.

왜냐하면, 그 대결이 끝나면 [저스티스의 시작]이 시작될테니까요. 어쩌면 둠스데이와의 대결 때 저스티스 리그의 멤버들이 등장하는 걸 관객들이 기대하도록 만들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어벤져스] 시리즈,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대성공을 지켜본 그들은 저스티스 리그를 내놓고 싶어서 안달이 났습니다. 모처럼 내놓았던 [맨 오브 스틸]은 그들의 기대만큼 성공하지 못했고, 팬들의 평도 고만고만했기에 더욱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한 편 한 편의 영화가 잘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지 못하면, 커다란 모자이크는 어림도 없다는 사실을.


라이벌을 이기고 싶었다면, 그들에게서 배웠어야 했습니다. 마블의 성공을, 마블의 실패를.

[아이언맨 1]이 보여준 성공을 생각하고 [아이언맨 2]가 큰 세계에 집착하다가 분위기를 망쳤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물론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나 [판타스틱 4]와는 비교도 되지 않지만 말이지요.

그랬다면, [배트맨 대 슈퍼맨]이 성공하고 더 큰 기회를 가져왔을 겁니다.


현재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은 미국에서 개봉당일 8200만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어벤져스 2]에 가까운 흥행 성적이며 [맨 오브 스틸]의 2배에 가깝습니다.) 세계로 따지면 -중국의 흥행도 힘입어- 약 2억 달러 수익. DC는 한숨 돌렸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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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로튼 토마토 수치는 30%를 넘어 29%로 떨어져 DC 사상 최악의 작품 중 하나였던 [그린 랜턴](26%)에 육박하고 있으며, 다른 곳에서도 관객의 평가가 충분히 좋지 않습니다.

이대로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최소한 8억 달러를 벌어야 하는 상황이니까요.

흥행에 성공하더라도 좋지 않은 평가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명작에 오를 수 있는 기회는 사라져 버렸지요.


저는 이 작품이 흥행에 실패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렇지만, DC에서 이 같은 악수를 두지 않기를 더욱 바랍니다. [저스티스 리그]로의 길은 결코 가깝지 않습니다. 험난한 길이죠. 그런 만큼 길게 보고 하나하나 충실하게 만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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