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사이버월드 발동 후 10분이 지난 시간.

 마치 전자두뇌에 전류가 역류하는 듯한 스파크가 일어나는 느낌을 받은 테크노포스는 눈을 떴다. 평소 다양한 데이터가 함께 축적되던 시각센서의 정보와 달리 마치 동영상과 같은 영상데이터가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상 증상. 이상한 정보,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한 일이 연속되면서 좀 전부터 그를 힘들게 하는 허공을 바라 보았다. 순간 눈부심을 느낀 그는 팔을 들어 뜨거운 태양의 기운을 막아야 했다.

"태양이 맞나? 맙소사..이건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이...내가???"

 자신도 모르게 새어나온 말은 그의 충격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내리쬐는 태양빛의 눈부심으로 인한 놀라움이 문제가 아니었다. 들어 올린 팔이 인간과 같은 피부를 가지고 알 수 없는 감각 정보가 지속적으로 들어오면서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건 인간이 되어버린 것과 같잖아!?"

 그렇다. 테크노포스는 [더 사이버월드]의 힘에 의해서 3호가 창조한 세계에서 인간의 형태로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그의 놀라움은 그렇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눈부신 태양 아래에는 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마치 섬과 모습의 장소는 기계 육체에서 느낄 수 없었던 다양한 센서 데이터, 아니 바람이 피부에 와닿는 느낌과 푸른 바다의 소금기를 머금은 향기등을 전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타이탄의 힘이란 말인가.."

 마치 인간과도 같은 상태, 아니 그의 전자두뇌의 기억이 선명하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인간이었던이라 느낄 만큼 생동감이 있는 환경이었다.

- 짝짝짝

 놀라운 자연을 인간의 감성으로 만끽하고 있던 그의 뒷편에서 누군가의 손뼉치는 소리가 들려오자, 테크노포스는 무심결에 고개를 돌려 보았다. 그 자리에는 언제 만들어졌는지 모를 테이블과 의자들이 커다란 파라솔의 그늘 아래 놓여있었고 보기만 해도 시원해 보이는 음료를 들이키는 썬그라스의 인물이 있었다.

"테크노포스, 이 나의 세계로 온 것을 환영하겠다."

"설마..너 타이탄이냐?"

 흠칫 놀란 테크노포스의 물음에 상대방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렇다고 할 수도 있다. 나는 김다크, 타이탄의 파일럿이자 이 세계의 신! 그런데 목이 마르지 않는가? 잠시 여기 앉도록 하지."

 그는 타이탄을 조종하고 있던 3호였던 것이다. 3호가 오른 손을 머리위로 올리고 손가락을 튕기자 누군가가 달려오는 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웃...뭐지 이 감정은....이런 것은 프로그래밍 되지 않았는데..윽"

 그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을 본 테크노포스는 숨이 가빠지며 가슴 한 켠에서 강력한 중력자모터가 풀가동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마치 맑고 투명한 보석과 같은 푸른 눈과 타오르는 태양의 빛조차 접어줄 것 같은 붉은 머리카락, 그리고 뛸 때마다 중력에 저항하며 번갈아 솟아 오르는 두 개의 커다란 가슴, 매끄럽게 호선이 그어진 오목한 허리와 기다란 다리를 가진 여인이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체 음료수가 담긴 쟁반을 들고 뛰어오고 있던 것이다.

'이럴수가 이건...이건 설마!! 아니야 나는 테크노포스. 우주 로봇 경찰이다.'

 그가 무언가를 부정하며 고민하는 사이에 그 여인은 점차 테이블로 다가와 갑작스럽게 넘어지고 말았다.

"앗. 죄송해요."

 평소 들을 수 있었던 인간들의 대화, 그리고 자신과 다른 로봇간의 대화에서 느끼지 못했던 아름다움이 귓가로 스며들어오는 듯 한 느낌을 받은 테크노포스는 자신도 모르게 쓰러지려는 그녀를 안아버리고 말았다. 다행히 쟁반에 담긴 음료수도 그가 떨어지기 전에 잡아서 무사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흔들림은 어쩔 수 없어 찰랑거리는 음료수가 흘러내리며 그의 손을 타고 안고 있던 여인의 머리를 살짝 적시고 말았다. 음료수의 냄새일까? 아니면 여인의 향기일까. 인간의 코로 들이마시고 만 달콤함에 더이상 부정할 마음도 들지 않았다. 이미 그의 목젖이 급하게 모인 침을 꿀꺽 삼키면서 토해 낸 말에서부터 알 수 있는 것이다.

"저기 괜찮아요? 많이 놀랐죠?"

 로봇같지 않은 다정한 목소리로 물은 테크노포스에게 수줍은 듯한 표정을 지은 여인이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저기 이만 놔주시면 안될까요?"

 그렇게 테크노포스의 품에서 벗어난 그녀는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시한 뒤, 다시 얼굴을 살짝 붉히고 몸을 돌려 다시 뛰어가기 시작했다. 한 폭의 명화 같은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는 그에게 3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다 빔 나오겠네 아니 지금은 안나오겠지만 나올 것 같아! 이만 앉아라! 테크노포스!"

 그제서야 조금 정신이 들었을까, 3호의 맞은 편에 앉은 테크노포스는 타는 듯한 갈증을 느끼며 들고 있던 음료수를 들이켰다. 로봇으로서는 느끼지 못하는 달콤함과 시원함이 그의 목젖을 타고 흘러내려가자 조금 더 진정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잠시 멍한 표정으로 있던 그는 3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의 눈은 좀 전과 달리 무언가 갈망이 담겨있는 듯 빛나고 있었다.

"타이탄,, 아니 김다크. 이게 너의 힘인가? 정말이지 말도 안되는 일을 만들어내는 군, 나름 수백년의 시간을 로봇으로서 살아왔지만 이런 것은 처음이다."

 잠시 뜸을 들인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모든 것은 실제가 아닌 것이지? 저 여인도.."

 그러자 3호가 버럭했다.

"무슨 소리! [더 사이버월드]는 우리 종족에서도 선택받은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힘, 이 공간은 한없이 현실에 가까운 세계인 것이다."

"그럼 이것은 또 다른 세계란 말인가?"

 다시 질문이 이어지자 3호가 손을 들어 좌우로 저었다.

"거기까지! 더이상의 비밀은 말해줄 수 없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 싶은가?"

"....?"

"좋아 내가 방법을 알려주지 나와 게임을 해서 이기면 된다."

"게임..이라고?"

"그래 발할라 나이트라는 게임에서 내개 한번이라도 이긴다면 널 놔주겠다."

"지구에서 본 영화나 만화를 보면 이런 경우 내게 거부할 권리는 없는 것 같은데"

 평소 지구에서 영화와 만화를 통해 문화를 접했던 테크노포스는 눈치 챌 수 있던 것이다. 그 반응이 흡족했던지 3호는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잘 아는 군! 바사냐! 게임기를 가지고 와랐!"

 그러자 그 뒤편에서 어디서 들고 왔는지 아까 돌아갔던 여인이 큼직한 기계를 들고 뛰어오고 있었다. 다시 가슴이 요동치는 느낌을 받은 테크노포스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이름이 바사냐인가? 아름답다. 아름다운 거라고 절대 다른 건 아냐."

 열띤 감정에 휩쌓인 테크노포스와 달리 그 모습을 조심스럽게 관찰하는 3호의 눈빛은 비열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그의 계획이었던 것이다.

 3호는 로봇과 융합하는 것만으로는 테크노포스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더 사이버월드]라는 비장의 수단이 있었지만 이 것도 약점이 있어서 승리를 얻을 수는 없었다. [더 사이버월드]는 사실 치유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선조가 살던 고향별에서는 다치거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치료가 될 때까지 휴식을 취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 안에서는 어떠한 공격도 방어도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시간을 보내야 할 뿐이었지만 기술의 유지에는 소모되는 정신력이 큰 관계로 3호 김다크는 이를 부여잡기 위해 발할라 나이트를 꺼낸 것이다. 적어도 이 게임을 하는 동안에는 절대 정신줄을 놓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몇대를 이어 지구에서 살아가며 지구인과 거의 같은 상태로 약화가 된 그 였지만 장장 1박 2일을 이 게임만 하면서 버티고 있다가 오락실로 잡으러 온 엄마 덕분에 끊어지긴 했어도 게임사상 최대 접속 전투 기록이 있던 점도 자신감 중에 하나였다.

 그런 그의 마지막 카드는 바사냐. 설마 바사냐 아니..실제는 그린킹덤의 간호로봇 바사기인 그녀의 인격이 이런 아름다운 여성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특히 간호라고 하지만 그 행동 자체가 폭력이었기 때문에 [더 사이버월드] 발동시 경호원 겸 조력자로 데리고 온 것인데 막상 사이버월드에 구현하자 미녀가 된 것이다. 그래도 엉뚱하고 덜렁대는 점은 그대로라 그냥 뭔가 있어보이는 연출을 위한 조수로 급히 설정해 두었는데 다른 의미로 테크노포스와의 싸움에 도움이 되어 줄 것 같았다.

"크크크 자 그럼 게임을 시작하지!"

......................

- 더 사이버월드 발동 후 60분이 지난 시간. 그리고 현실세계의 대전장소.

 중계를 진행하고 있던 관계자들은 당혹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미 전투가 정지된지 1시간여, 처음 30분은 그럭저럭 마리아 디바의 신상털기 및 신변잡기 그리고 다양한 히어로의 흑역사를 내보내며 버틸 수 있었지만 그것도 한계, 스케쥴이 있던 마리아 디바는 돌아가 버렸고 그 뒤 정규방송은 일단 중단, 로봇 격투 레이싱 프로를 내보내야 했다. 그러나 중계팀은 전투가 끝나지 않은 이상 자리를 뜰 수 없는 바, 여기저기서 총괄하는 고경대PD에서 그냥 복귀하자는 의견을 내비치고 있던 참이었다.

"PD님! 그냥 복귀하죠. 이대로 시간만 보내면 판교에서 진행되는 기다그룹과 국제건설의 빅 매치를 놓친다고요,"

"...음..."

 고경대의 고민이 깊어졌다. 이들 중계팀은 그린킹덤만이 아닌 다른 전투도 중계해야 하는 상황, 특히 기다그룹과 국제건설의 대결은 히어로방송에서도 나름 박빙의 전투를 보여주기 때문에 시청율도 좋은 편이었다.

"저기..그럼 말이지..."

 나름 고민 끝에 한마디 하려는 순간 누군가가 다급하기 들어섰다.

"PD님 히어로 협회에서 무승부로 처리한다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좋아! 모두 짐싸고 장루피보고 무승부 종료 멘트 준비하라고 해!"

 다행이었다. 전투가 길어지자 히어로 협회에서 무승부로 처리하기로 한 것이다. 패널티 성격의 전투였기 때문에 사실상 이해할 수 있는 조치라고 생각이 들었다. 안도감이 들었지만 저편에서 멈추어선 체 아무 움직임도 없는 타이탄과 테크노포스를 보면서 고경대 PD는 쓴웃음을 지었다.

'참 용하단 말이지, 역시 타이탄은 타이탄인가. 이번엔 끝장이라고 봤는데.'

 신참이던 젊은 시절 그를 가슴 뛰게했던 타이탄. 그 말년이 안타까웠던 그에게 무언가 슬프지만 기분좋은 이상한 감정이 잠시 올라왔던 것이다.

...........

- 60분이 지난 가상세계 내부.

 막 대전을 끝낸 테크노포스가 쓰고 있던 게임기를 벗어 던지며 씩씩 거렸다. 이번이 100번째, 나름 지구에 와서 게임도 좀 해봤다고 생각해 봤는데 도저히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야 다크! 좀 너무하다고 생각 안하냐?"

"안돼! 내가 지면 이 세계는 무너진다...무너진..아 졸려.."

 전투 끝에 우정의 삭이 튼 것일까? 둘 사이의 대화 자체는 매우 가까워진 듯 거리감이 줄어있었다. 하품을 하던 3호 김다크가 바사기 아니 바사냐를 불렀다.

"바사냐. 콜라...얼음 가득으로"

 사실 마셔봤자 세계를 유지하는 그에게 도움이 될 것은 아니었지만 기분 전환이라도 하지 않으면 이대로 잠이 들 것 같았다.

"아 또! 바사냐씨 부려먹네. 내 바사냐씨 힘들게 하지 말란 말야."

 평소의 테크노포스를 아는 이라면 경악할 만한 발언이 이어지지만 정작 바사기..아니 바사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다. 이런 경박스러운 발언이 계속 이어졌던 것이다. 게임에 지면서 그리고 세계에 심취하면서 테크노포스는 조금 경박스러운 성격을 들어냈기 때문이었다.

"아 괜찮아요. 그런데 본부에서 통신이 들어왔어요. 히어로 협회에서 무승부로 처리한다는데요."

"뭐예요? 그럼 이제 끝? 바사냐씨와 헤어져야 하는 건가요? 싫은데. 아무튼 다크 약속한거 잊지마라."

"테크노포스!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냐. 너야말로 약속을 잊지말아라. 나 이제 한계. 그럼 잘가~"

 3호는 말을 마치고 고개를 숙였다. 그 뒤 갑작스럽게 풍경에서 이질적인 느낌을 받게된 테크노포스는 절규했다.

"안 된다~ 아직 인류와 로봇의 공유공간 계획과 에너지원에 대해 더 이야기 나누어야 한다고. 그리고 바샤냐씨와 할말이 더 있단 말이...."

 그의 말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더 사이버월드]가 붕괴하고 테크노포스와 타이탄의 전투도 마무리가 되었다.

...........

[히어로 뉴스의 장루피입니다. 금일 진행된 그린킹덤의 패널티 대전은 무승부로 끝났다는 것을 알려드리며 방송을 종료합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중계방송이 끝났다. 이미 히어로 협회에서의 공문이 왔기 때문에 무승부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던 닥터 노스트라는 자신의 와인 컬렉션 중에서 하나를 꺼내어 잔에 담고는 들었다.

"이것으로 위기는 끝났다. 승리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지켜낸 것이다. 이 결과에 다들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 짜자자자짝! 짝짝짝!

 상황실 내부에서 박수가 이어져 나왔다. 승리하지 않았지만 다시 패널티 전투를 벌일 필요는 없었다. 지켜낸 것, 이것을 승리라고 해도 좋았던 것이다. 한 모금 와인을 들이키고 바싹 말랐던 입술을 축인 노스트라는 와인잔을 든 체 몸을 돌렸다. 이제 한 숨 돌리긴 했지만 아직 할일이 많이 남았던 것이다. 일단 스미스와 픽시아를 깨워야 했고, 자고 있는 강훈에게 팩토리엠페러와 휴전이 종료되었다는 문서를 주고와야 했다. 다른 것들도...해야 할 일은 아직도 많았던 것이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외부의 문제는 넘어갔지만 내부의 문제로 인하여 골치가 아파왔다.

"다 그런거지.."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말이었지만 그 말 그대로였다. 해골지팡이의 부여잡은 손에 힘을 주고 닥터 노스트라는 힘차게 걸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