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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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찜한 회의가 끝나고 개인 연구실에 틀어박힌 강훈 반장은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과거 김박사의 지도하에 파일럿 적응도를 체크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했던 타이탄 다이브 시뮬레이터가 그것이다. 타이탄 다이브 시뮬레이터는 통칭 TDS는 외계의 기술로 만들어진 DDS(디지털 드림 시스템)을 개조한 기기로 의식을 가상의 공간으로 완전 전이한 후 설계된 환경에서 현실과 같은 체험이 가능한 점을 이용해 타이탄의 조작 및 운용 테스트와 훈련을 겸하는 장치였다. TDS는 DDS의 체감을 넘어서 해당의 경험을 실제 육체에 적용하는 것도 가능한 점이 다른 점이었다.
강훈 반장으로서도 십 수년만에 탑승하는 점이 부담가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TDS를 통한 감을 되찾기 위한 연습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 날부터 오전에는 타이탄 V5.2의 실드 장착 및 기동프로그램 재편을 진행하고 남는 시간에는 틈틈히 TDS를 통한 연습을 진행했다. 이 때문인지 일주일이란 시간이 금새 지나가게 된 것은 당연한 부분이었다. 그래도 출격 전날에 잠시 틈을 봐서 딸과 통화를 할 수 있게 된 점은 다행이었지만 말이다.
전화기 너머에서 강훈 반장은 별로 듣지 않는 최신음악이 들려왔다. 자신은 통화연결음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번에는 다른 음악이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바꾸기는 것도 매우 짧은 듯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후 전화기 너머에서 딸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안녕 아빠.
- 아빠가 자주 전화 못해서 미안해.
- 응. 아니야 일은 이제 안 바쁜거야?
- 아니 더 바쁘게 된 거 같아.
- 아 맞다. 엄마가 아빠한테 몸조심하라고 전해달래.
- 그 사람이 날? 뭐...뭐지..
- 암튼 엄마랑 아빠는 너무 어려워.
- 그래 고맙다고 전해주렴. 다음 번에 휴가내면 보러갈게.
이내 일상적인 이야기를 끝내고 홀가분하게 전화를 끊으며 강훈 반장은 살짝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그가 알고 있는 제시카 박사는 자신에게 몸조심하라고 그냥 할 사람이 아니었다. 모종의 이유로 인하여 딸아이가 둘 사이에 있을 뿐 사실상 부부라고 보기에도 어려움이 있는데 몸조심 하라고 하는 것을 보면 뭔가가 있을 것 같았지만 이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 사람도 바뀌었겠지"
생각해보면 서로간의 일로 인하여 떨어져 살게 된 것도 5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원래 같이 살았다고 보기에도 어려움은 있었지만 말이다.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이들 부부에게는 있었던 것이다. 강훈 반장은 서둘러 타이탄이 있는 격납고로 향했다. 내일 출격을 앞두고 마지막 점검을 가해야 하는 상황이라 느긋하게 과거를 회상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
드디어 출격의 날, 저번 출격이후 2개월 정도 만이었다. 그린 비스트의 통쾌한 대패로 인하여 조금 시간이 부족했지만 향후 타이탄을 좀 더 강화시킬 수 있는 기술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닥터 노스트라는 그리 나쁘지 많은 않다고 생각했다. 파일럿 팀을 보충해야 하는 것이 앞으로의 변수라면 변수이지만 그 부분도 외부 스카우터를 통해 진행하고 있으니 시간문제라고 판단되었다. 어차피 청년실업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이 내건 조건에 유혹당할 인력은 얼마든지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강훈 반장이 힘을 내어주면 된다. 그린 비스트로 인해 파일럿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면 강훈 반장이 활약해서 무사하게 퇴각하는 점을 보여 줄 수 있다면 충분한 것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 몰래 준비시킨 것도 있었다. 만사가 불여튼튼이라고 말이다.
진한 커피를 반 쯤 마신 뒤 닥터 노스트라는 몸을 일으켰다.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하얀 중절모 쓴 체 검정색 망토를 한 번 펼쳐보고는 서둘러 격납고로 향했다.
격납고의 내부는 출격을 앞두고 분주한 상태였다. 그다지 충격 흡수에 효과가 있지는 않지만 형식상 존재하는 파일럿 복을 입은 체 탑승을 준비하는 강훈 반장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꽤 그리운 모습이군 후후후"
과거 암흑황제와의 전투 중에는 격심한 전투로인한 파일럿의 부상이 속출한 관계로 자신의 대타로 출격하는 강훈을 본 일이 많았었다. 물론 자신보다는 좋은 전과를 내지 못했지만 어찌되건 강훈도 그 전투에서 살아남아 온 베테랑이라면 베테랑. 여기까지 생각하던 닥터 노스트라는 옆에 있던 제 1연구원 스미스에게 상황 체크를 명령했다.
"현재 상황을 보고하라!"
"출격 상황 보고드립니다. 타이탄 V5.2 출격을 위한 기체 점검완료, 추가 파츠 실드와의 접합성 테스트 완료. 파일럿 컨디션은 약간 흥분상태입니다."
"뭐 그 정도는 괜찮아. 오랜만에 탑승이라 긴장했겠지. 별도로 준비시킨 안전보장 파츠는 어떻지?"
닥터 노스트라가 말한 안전보장 파츠는 혹시라도 그린 비스트 때와 같은 참사를 피하기 위한 그 나름대로의 준비였다. 정의의 사도 출신인 자신이기 때문에 준비할 수 있는 어찌보면 치사한 파츠. 그것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현수막이었다.
"예 안전보장 파츠, 통칭 [안에는 사람이 탑승하고 있습니다. 주의해 주세요.]는 이미 전투가 벌어질 장소에서 매스컴이 잘 보이는 곳에 설치해 두었습니다."
나름 머리를 굴린 현수막은 팩토리엠페러가 정부의 자금을 받는 정의의 로봇이라는 점에서 살인? 또는 파일럿에게 심각한 중상을 입히지 못하게 매스컴을 통한 압박을 기대하며 준비시킨 것이었다. 매스컴은 이런 점에서 민감하니까 신경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 판단되었다. 아무리 무자비한 J박사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뭐 그린 비스트는 바이오 로봇이었고 여긴 사람이 탑승한 건데 조심해 주겠지.'
일말의 걱정이 있기는 했지만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닥터 노스트라는 해골로 장식된 지팡이를 들고 마이크를 통해 출격 카운트를 지시했다. 늘 그렇듯 이번 출격도 승리가 아닌 적당히 악당의 본분을 지키자는 마음을 가지고 말이다.
- 5, 4, 3, 2, 1...
- 타이탄 V 5.2 출격!
- 타이탄 출격합니다!
"무운을 빈다. 그린킹덤에 영광있으라!"
- 쿠우우웅
굉음이 격납고를 울리며 타이탄 기체의 후방에 장착된 부스터의 출력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기존의 파일럿들이 탑승한 때와는 출격에서부터 왠지 모를 차이가 느껴지는 듯 했다. 섬세하게 조작된 타이탄의 오른 손이 왼 손과 일체화된 타이탄 실드를 탕탕 두드리자 타이탄의 중중한 기체가 열려진 격납고의 허공을 향해 힘차게 날아 올랐다. 이번 타이탄의 출격에는 기존과 달리 기지 내의 모두의 염원이 함께하는 것이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 모두 실업자 신세가 될 수 있다. 싸워라 타이탄! 기지의 모두는 기원했다.
...
"역시 TDS와는 차이가 있지만 나쁘지 않아."
타이탄의 비행을 수동으로 제어하며 전투장소로 향하던 강훈 반장은 오랜만에 느껴지는 고양감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과거 20대 초반으로 돌아간 듯한 향수와 아직 할 수 있다는 마음이 그를 더욱 흥분시키고 있던 것이다. 자동 조작을 통해 정해진 전투장소를 향해 전날 다른 알바를 하며 피곤한 몸을 이끌고 졸면서 날아가던 기존의 파일럿들과는 달랐다. 그런 모습에 내심 놀라는 이가 있었으니..
'어...어...저거 이상해..'
왜인지 모를 위화감을 느끼게 된 팩토리엠페러의 리더 레드였다.
-
[안녕하십니까. 히어로 뉴스채널의 현지 중계를 맡고 있는 김루크입니다. 앞으로 5분 후 전투가 벌어질 수도권녹지개발사업장의 제6차 지역에서 오늘의 전투를 중계를 시작합니다. 앞서 방금 그린킹덤 소속의 로봇 타이탄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해설을 같이 진행하게 된 김철수 로봇문제연구소 소장님을 모시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로봇문제연구소의 소장으로 있는 김철수입니다.]
[김철수 소장님? 로봇문제연구소는 이번에 옮기신 건가요?]
[하하하 아닙니다. 아무래도 좀 더 전문화된 영역에서 로봇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차렸습니다. 앞으로 악의 조직이 만든 로봇이나 외계에서 방문한 로봇으로 인한 각종 로봇문제가 있으시면 제게 연락 부탁드립니다. 저 또한 외계인의 기술로 만들어진 로봇을 조종하며 싸워왔던 파일럿이기 때문에 각종 사태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도움드리겠습니다. 덧붙여서 이야기 드리면 저는 혼수상태에서 외계인에게 몸을 빼앗겨 파일럿이 되었던 모 경우와는 달리 직접 파일럿으로 임했습니다.]
[아무튼 개업 축하드립니다. 김철수 소장님. 방금 타이탄V5.1 아니 매번 버전업하는데 이번에는 마이너 버전업을 해서 V5.2의 타이탄이 하강하고 있습니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예, 전 이번에 전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린 비스트의 10수왕이 저번 전투에서 참패하지 않았습니까? 보통의 파일럿 들이라면 그런 전투는 바로 사양하기 때문이죠. 주변의 젊은 파일럿들에게도 물어봤는데 저번 전투의 참극이라고 할지 팩토리엠페러의 압도적인 위용에 상대방이 되는 것은 모두 생각조차 꺼려했을 정도입니다.]
[그렇군요. 저번 전투가 그 만큼 팩토리엠페러의 강함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타이탄이 예정했던 전투에 참여를 알리고 현재 나타났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제 생각에는 말이죠. 마침 저기 있는 현수막을 보고 드는 생각이지만 어쩔 수 없이 나왔다고 봅니다.]
[현수막이요? 아 저거군요. 안에는 사람이 탑승하고 있습니다. 주의해 주세요. 그린킹덤. 타이탄에 조종사가 탑승하고 있다고 알리는 문구인데 저렇게 현수막을 설치한 것은 처음보지 않습니까?]
[예? 저는 처음 봅니다. 저정도 보여주면 본인들도 위험을 인지했다는 것 같은데 말이죠. 아무튼 타이탄의 입장에서는 로봇이기 때문에 AI를 활용한 공격도 가능할 건데 파일럿이 있다고 알리는 것을 보면 뭔가 피할 수 없는 이유가 보여집니다.]
[아 해설도중 미안합니다. 타이탄이 방패를 들고 나왔습니다. 저거 꽤 오래된 것 아닙니까? 김철수 소장님.]
[저 방패는 초기 타이탄이 팩토리엠페러에게 들고 나왔다가 방패와 몸이 분리되는 아픔을 겪고 도망쳤던 일이 있을 겁니다. 나름 오늘은 방어적으로 나가겠다는 것 같은데 뭐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 기동성,...]
[김철수 소장님 기동성이요? 뭔가 이상한 점이라도 있나요?]
[아...제법 대단한데...]
[방금 첫 격돌이 이루어졌습니다. 팩토리엠페러의 핑거 미사일이 타이탄을 직격하는 듯 했지만 방패로 막았습니다. 생채기 하나 없는 듯 합니다.]
...
왜일까? 팩토리엠페러의 리더인 레드는 초조한 나머지 전투 시작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바로 핑거미사일을 발사했다. 팩토리엠페러의 손가락에서 발사된 5발의 미사일은 미려한 궤도를 그리며 가만히 서 있던 타이탄을 향해 직격해 흙먼지가 날렸다. 기잉하는 소리와 함께 발사된 손가락이 보충된 사이 먼지가 사라지며 멀쩡히 방패를 들고 있는 타이탄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점차 다가오는 타이탄에게서 레드는 기존의 전투에서 느끼지 못 한 압박감을 느꼈다. 이전 전투에서는 사실 적의 숫자로 인해 곤란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크게 와닫는 압박감은 없었다. 그러나 한번 생명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깨닫고 새로운 전투의 영역에 다가간 레드는 만만하게 보던 고물로봇 타이탄이 점차 크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당황한 레드의 옆에서 그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리더. 다음 공격은 뭐야?"
그린은 재미있다는 듯 한 모습에 레드는 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아...팩토리 빔..발사!"
"좋았어 팩토리 빔 발사!"
팩토리엠페러는 그린이 누른 버튼 입력과 동시에 양팔을 손이 모은 뒤 청색의 눈에서 푸른 레이저를 발사했다. 이번에도 타이탄은 미리 레이저의 궤도를 알아채고는 타이탄 실드로 레이저를 방어했다.
"저거 전에도 그렇지만 무지 단단하네, 장난은 이만하고 전처럼 부스터 어택을 통해 타이탄 뒤로 이동한 뒤 방패랑 왼팔을 잘라버립시다. 리더!"
그린은 아무런 압박감도 느끼지 못하는 듯 했다. 이 전에 타이탄이 실드를 들고 나왔을 때도 이렇게 공격이 거의 막혔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리고 팩토리엠페러는 기동성을 살린 부스터 어택을 통해 타이탄 실드를 향해 돌진했다. 저 번 전투에서는 부스터 어택을 통한 돌진에 두려움을 느낀 타이탄이 방패로 전면을 막고 있는 틈을 타서 살짝 옆으로 방향을 바꾼 뒤 팩토리 소드로 타이탄과 방패를 강제로 분리시켜서 적을 퇴각 시켰던 것이다. 그린은 이번에도 그런 방식이 통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내 빗나가게 되었다.
- 키이이잉!
부스터 어택을 통한 돌진 후 정해진 방향으로 몸을 트는 팩토리엠페러의 앞에 어느 틈 불쑥 타이탄의 오른 손에 들려진 거대한 전투도끼가 날아오고 있던 것이다. 재빨리 핑크의 제동으로 왼 팔을 올려 막지 않았으면 충격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았다. 그래도 그 간 단 한번도 타이탄의 공격에 상처를 입지 않았던 팩토리엠페러의 팔 장갑이 움푹 파이게 되었다.
"리더! 그린. 조심해요. 뭔가 다른 거 같아."
늘 활발던 핑크의 목소리에 경계의 빛이 서려 있었다. 동시에 레드와 그린은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의 공격이 그다지 피해를 주지 못하는 점이 아쉬웠는지 날이 나간 전투 도끼를 만지작 거리는 타이탄의 모습이 그 때부터 왠지 이전과 다른 두려움을 팩토리엠페러에게 주기 시작했다. 그만큼 타이탄의 공격이 무섭다고 느끼는 것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팩토리엠페러의 공격이 신중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
흥미진진하게 전투 방송을 시청하던 닥터 노스트라에게 간부전용 회선으로 문자가 도착했다.
[그 현수막은 뭐냐 이 비겁한 놈! 우리 마수 전대의 희생을 모독할 셈이냐!]
한 동안 뚱 한 표정을 짓던 그는 문자를 보낸 상대에게 회신을 날렸다. 아무래도 잔뜩 더 전송될 것 같기에 보내자마자 바로 통신기를 껐다. 흥분한 그린 비스트에게 보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전멸의 맛은 어때? 맛있었냐?]
그가 아는 한에서 사실보다 아픈 것은 없었다.
"하하하하. 으하하하하"
더 없는 통쾌함에 닥터 노스트라는 와인잔을 들며 조용한 개인 공간에서 호쾌하게 웃었다.
강훈 반장으로서도 십 수년만에 탑승하는 점이 부담가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TDS를 통한 감을 되찾기 위한 연습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 날부터 오전에는 타이탄 V5.2의 실드 장착 및 기동프로그램 재편을 진행하고 남는 시간에는 틈틈히 TDS를 통한 연습을 진행했다. 이 때문인지 일주일이란 시간이 금새 지나가게 된 것은 당연한 부분이었다. 그래도 출격 전날에 잠시 틈을 봐서 딸과 통화를 할 수 있게 된 점은 다행이었지만 말이다.
전화기 너머에서 강훈 반장은 별로 듣지 않는 최신음악이 들려왔다. 자신은 통화연결음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번에는 다른 음악이었는데 요즘 아이들은 바꾸기는 것도 매우 짧은 듯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후 전화기 너머에서 딸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안녕 아빠.
- 아빠가 자주 전화 못해서 미안해.
- 응. 아니야 일은 이제 안 바쁜거야?
- 아니 더 바쁘게 된 거 같아.
- 아 맞다. 엄마가 아빠한테 몸조심하라고 전해달래.
- 그 사람이 날? 뭐...뭐지..
- 암튼 엄마랑 아빠는 너무 어려워.
- 그래 고맙다고 전해주렴. 다음 번에 휴가내면 보러갈게.
이내 일상적인 이야기를 끝내고 홀가분하게 전화를 끊으며 강훈 반장은 살짝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그가 알고 있는 제시카 박사는 자신에게 몸조심하라고 그냥 할 사람이 아니었다. 모종의 이유로 인하여 딸아이가 둘 사이에 있을 뿐 사실상 부부라고 보기에도 어려움이 있는데 몸조심 하라고 하는 것을 보면 뭔가가 있을 것 같았지만 이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 사람도 바뀌었겠지"
생각해보면 서로간의 일로 인하여 떨어져 살게 된 것도 5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원래 같이 살았다고 보기에도 어려움은 있었지만 말이다.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이들 부부에게는 있었던 것이다. 강훈 반장은 서둘러 타이탄이 있는 격납고로 향했다. 내일 출격을 앞두고 마지막 점검을 가해야 하는 상황이라 느긋하게 과거를 회상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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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출격의 날, 저번 출격이후 2개월 정도 만이었다. 그린 비스트의 통쾌한 대패로 인하여 조금 시간이 부족했지만 향후 타이탄을 좀 더 강화시킬 수 있는 기술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닥터 노스트라는 그리 나쁘지 많은 않다고 생각했다. 파일럿 팀을 보충해야 하는 것이 앞으로의 변수라면 변수이지만 그 부분도 외부 스카우터를 통해 진행하고 있으니 시간문제라고 판단되었다. 어차피 청년실업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이 내건 조건에 유혹당할 인력은 얼마든지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강훈 반장이 힘을 내어주면 된다. 그린 비스트로 인해 파일럿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면 강훈 반장이 활약해서 무사하게 퇴각하는 점을 보여 줄 수 있다면 충분한 것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 몰래 준비시킨 것도 있었다. 만사가 불여튼튼이라고 말이다.
진한 커피를 반 쯤 마신 뒤 닥터 노스트라는 몸을 일으켰다.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하얀 중절모 쓴 체 검정색 망토를 한 번 펼쳐보고는 서둘러 격납고로 향했다.
격납고의 내부는 출격을 앞두고 분주한 상태였다. 그다지 충격 흡수에 효과가 있지는 않지만 형식상 존재하는 파일럿 복을 입은 체 탑승을 준비하는 강훈 반장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꽤 그리운 모습이군 후후후"
과거 암흑황제와의 전투 중에는 격심한 전투로인한 파일럿의 부상이 속출한 관계로 자신의 대타로 출격하는 강훈을 본 일이 많았었다. 물론 자신보다는 좋은 전과를 내지 못했지만 어찌되건 강훈도 그 전투에서 살아남아 온 베테랑이라면 베테랑. 여기까지 생각하던 닥터 노스트라는 옆에 있던 제 1연구원 스미스에게 상황 체크를 명령했다.
"현재 상황을 보고하라!"
"출격 상황 보고드립니다. 타이탄 V5.2 출격을 위한 기체 점검완료, 추가 파츠 실드와의 접합성 테스트 완료. 파일럿 컨디션은 약간 흥분상태입니다."
"뭐 그 정도는 괜찮아. 오랜만에 탑승이라 긴장했겠지. 별도로 준비시킨 안전보장 파츠는 어떻지?"
닥터 노스트라가 말한 안전보장 파츠는 혹시라도 그린 비스트 때와 같은 참사를 피하기 위한 그 나름대로의 준비였다. 정의의 사도 출신인 자신이기 때문에 준비할 수 있는 어찌보면 치사한 파츠. 그것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현수막이었다.
"예 안전보장 파츠, 통칭 [안에는 사람이 탑승하고 있습니다. 주의해 주세요.]는 이미 전투가 벌어질 장소에서 매스컴이 잘 보이는 곳에 설치해 두었습니다."
나름 머리를 굴린 현수막은 팩토리엠페러가 정부의 자금을 받는 정의의 로봇이라는 점에서 살인? 또는 파일럿에게 심각한 중상을 입히지 못하게 매스컴을 통한 압박을 기대하며 준비시킨 것이었다. 매스컴은 이런 점에서 민감하니까 신경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 판단되었다. 아무리 무자비한 J박사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뭐 그린 비스트는 바이오 로봇이었고 여긴 사람이 탑승한 건데 조심해 주겠지.'
일말의 걱정이 있기는 했지만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닥터 노스트라는 해골로 장식된 지팡이를 들고 마이크를 통해 출격 카운트를 지시했다. 늘 그렇듯 이번 출격도 승리가 아닌 적당히 악당의 본분을 지키자는 마음을 가지고 말이다.
- 5, 4, 3, 2, 1...
- 타이탄 V 5.2 출격!
- 타이탄 출격합니다!
"무운을 빈다. 그린킹덤에 영광있으라!"
- 쿠우우웅
굉음이 격납고를 울리며 타이탄 기체의 후방에 장착된 부스터의 출력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기존의 파일럿들이 탑승한 때와는 출격에서부터 왠지 모를 차이가 느껴지는 듯 했다. 섬세하게 조작된 타이탄의 오른 손이 왼 손과 일체화된 타이탄 실드를 탕탕 두드리자 타이탄의 중중한 기체가 열려진 격납고의 허공을 향해 힘차게 날아 올랐다. 이번 타이탄의 출격에는 기존과 달리 기지 내의 모두의 염원이 함께하는 것이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 모두 실업자 신세가 될 수 있다. 싸워라 타이탄! 기지의 모두는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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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TDS와는 차이가 있지만 나쁘지 않아."
타이탄의 비행을 수동으로 제어하며 전투장소로 향하던 강훈 반장은 오랜만에 느껴지는 고양감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과거 20대 초반으로 돌아간 듯한 향수와 아직 할 수 있다는 마음이 그를 더욱 흥분시키고 있던 것이다. 자동 조작을 통해 정해진 전투장소를 향해 전날 다른 알바를 하며 피곤한 몸을 이끌고 졸면서 날아가던 기존의 파일럿들과는 달랐다. 그런 모습에 내심 놀라는 이가 있었으니..
'어...어...저거 이상해..'
왜인지 모를 위화감을 느끼게 된 팩토리엠페러의 리더 레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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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히어로 뉴스채널의 현지 중계를 맡고 있는 김루크입니다. 앞으로 5분 후 전투가 벌어질 수도권녹지개발사업장의 제6차 지역에서 오늘의 전투를 중계를 시작합니다. 앞서 방금 그린킹덤 소속의 로봇 타이탄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해설을 같이 진행하게 된 김철수 로봇문제연구소 소장님을 모시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로봇문제연구소의 소장으로 있는 김철수입니다.]
[김철수 소장님? 로봇문제연구소는 이번에 옮기신 건가요?]
[하하하 아닙니다. 아무래도 좀 더 전문화된 영역에서 로봇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차렸습니다. 앞으로 악의 조직이 만든 로봇이나 외계에서 방문한 로봇으로 인한 각종 로봇문제가 있으시면 제게 연락 부탁드립니다. 저 또한 외계인의 기술로 만들어진 로봇을 조종하며 싸워왔던 파일럿이기 때문에 각종 사태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도움드리겠습니다. 덧붙여서 이야기 드리면 저는 혼수상태에서 외계인에게 몸을 빼앗겨 파일럿이 되었던 모 경우와는 달리 직접 파일럿으로 임했습니다.]
[아무튼 개업 축하드립니다. 김철수 소장님. 방금 타이탄V5.1 아니 매번 버전업하는데 이번에는 마이너 버전업을 해서 V5.2의 타이탄이 하강하고 있습니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예, 전 이번에 전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린 비스트의 10수왕이 저번 전투에서 참패하지 않았습니까? 보통의 파일럿 들이라면 그런 전투는 바로 사양하기 때문이죠. 주변의 젊은 파일럿들에게도 물어봤는데 저번 전투의 참극이라고 할지 팩토리엠페러의 압도적인 위용에 상대방이 되는 것은 모두 생각조차 꺼려했을 정도입니다.]
[그렇군요. 저번 전투가 그 만큼 팩토리엠페러의 강함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타이탄이 예정했던 전투에 참여를 알리고 현재 나타났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제 생각에는 말이죠. 마침 저기 있는 현수막을 보고 드는 생각이지만 어쩔 수 없이 나왔다고 봅니다.]
[현수막이요? 아 저거군요. 안에는 사람이 탑승하고 있습니다. 주의해 주세요. 그린킹덤. 타이탄에 조종사가 탑승하고 있다고 알리는 문구인데 저렇게 현수막을 설치한 것은 처음보지 않습니까?]
[예? 저는 처음 봅니다. 저정도 보여주면 본인들도 위험을 인지했다는 것 같은데 말이죠. 아무튼 타이탄의 입장에서는 로봇이기 때문에 AI를 활용한 공격도 가능할 건데 파일럿이 있다고 알리는 것을 보면 뭔가 피할 수 없는 이유가 보여집니다.]
[아 해설도중 미안합니다. 타이탄이 방패를 들고 나왔습니다. 저거 꽤 오래된 것 아닙니까? 김철수 소장님.]
[저 방패는 초기 타이탄이 팩토리엠페러에게 들고 나왔다가 방패와 몸이 분리되는 아픔을 겪고 도망쳤던 일이 있을 겁니다. 나름 오늘은 방어적으로 나가겠다는 것 같은데 뭐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 기동성,...]
[김철수 소장님 기동성이요? 뭔가 이상한 점이라도 있나요?]
[아...제법 대단한데...]
[방금 첫 격돌이 이루어졌습니다. 팩토리엠페러의 핑거 미사일이 타이탄을 직격하는 듯 했지만 방패로 막았습니다. 생채기 하나 없는 듯 합니다.]
...
왜일까? 팩토리엠페러의 리더인 레드는 초조한 나머지 전투 시작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바로 핑거미사일을 발사했다. 팩토리엠페러의 손가락에서 발사된 5발의 미사일은 미려한 궤도를 그리며 가만히 서 있던 타이탄을 향해 직격해 흙먼지가 날렸다. 기잉하는 소리와 함께 발사된 손가락이 보충된 사이 먼지가 사라지며 멀쩡히 방패를 들고 있는 타이탄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점차 다가오는 타이탄에게서 레드는 기존의 전투에서 느끼지 못 한 압박감을 느꼈다. 이전 전투에서는 사실 적의 숫자로 인해 곤란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크게 와닫는 압박감은 없었다. 그러나 한번 생명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깨닫고 새로운 전투의 영역에 다가간 레드는 만만하게 보던 고물로봇 타이탄이 점차 크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당황한 레드의 옆에서 그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리더. 다음 공격은 뭐야?"
그린은 재미있다는 듯 한 모습에 레드는 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아...팩토리 빔..발사!"
"좋았어 팩토리 빔 발사!"
팩토리엠페러는 그린이 누른 버튼 입력과 동시에 양팔을 손이 모은 뒤 청색의 눈에서 푸른 레이저를 발사했다. 이번에도 타이탄은 미리 레이저의 궤도를 알아채고는 타이탄 실드로 레이저를 방어했다.
"저거 전에도 그렇지만 무지 단단하네, 장난은 이만하고 전처럼 부스터 어택을 통해 타이탄 뒤로 이동한 뒤 방패랑 왼팔을 잘라버립시다. 리더!"
그린은 아무런 압박감도 느끼지 못하는 듯 했다. 이 전에 타이탄이 실드를 들고 나왔을 때도 이렇게 공격이 거의 막혔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리고 팩토리엠페러는 기동성을 살린 부스터 어택을 통해 타이탄 실드를 향해 돌진했다. 저 번 전투에서는 부스터 어택을 통한 돌진에 두려움을 느낀 타이탄이 방패로 전면을 막고 있는 틈을 타서 살짝 옆으로 방향을 바꾼 뒤 팩토리 소드로 타이탄과 방패를 강제로 분리시켜서 적을 퇴각 시켰던 것이다. 그린은 이번에도 그런 방식이 통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내 빗나가게 되었다.
- 키이이잉!
부스터 어택을 통한 돌진 후 정해진 방향으로 몸을 트는 팩토리엠페러의 앞에 어느 틈 불쑥 타이탄의 오른 손에 들려진 거대한 전투도끼가 날아오고 있던 것이다. 재빨리 핑크의 제동으로 왼 팔을 올려 막지 않았으면 충격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았다. 그래도 그 간 단 한번도 타이탄의 공격에 상처를 입지 않았던 팩토리엠페러의 팔 장갑이 움푹 파이게 되었다.
"리더! 그린. 조심해요. 뭔가 다른 거 같아."
늘 활발던 핑크의 목소리에 경계의 빛이 서려 있었다. 동시에 레드와 그린은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의 공격이 그다지 피해를 주지 못하는 점이 아쉬웠는지 날이 나간 전투 도끼를 만지작 거리는 타이탄의 모습이 그 때부터 왠지 이전과 다른 두려움을 팩토리엠페러에게 주기 시작했다. 그만큼 타이탄의 공격이 무섭다고 느끼는 것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팩토리엠페러의 공격이 신중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
흥미진진하게 전투 방송을 시청하던 닥터 노스트라에게 간부전용 회선으로 문자가 도착했다.
[그 현수막은 뭐냐 이 비겁한 놈! 우리 마수 전대의 희생을 모독할 셈이냐!]
한 동안 뚱 한 표정을 짓던 그는 문자를 보낸 상대에게 회신을 날렸다. 아무래도 잔뜩 더 전송될 것 같기에 보내자마자 바로 통신기를 껐다. 흥분한 그린 비스트에게 보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전멸의 맛은 어때? 맛있었냐?]
그가 아는 한에서 사실보다 아픈 것은 없었다.
"하하하하. 으하하하하"
더 없는 통쾌함에 닥터 노스트라는 와인잔을 들며 조용한 개인 공간에서 호쾌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