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연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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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한참이던 여름 날, 나름 쾌적한 환경의 지하기지에서는 난처한 표정을 지은 체 눈 앞에 놓여진 1장의 종이를 바라보는 인물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닥터 노스트라, 그린 비스트의 통쾌한 패배를 목격하고 즐거움에 와인을 들이켰지만 다음날부터 약간의 부작용이 시작되어 있었던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단순 학살로 보이는 패배. 나름 북미에서 연승을 거두고 있던 그린 비스트의 마수전대였기 때문에 그 충격은 그린킹덤 내부에서 말로 표현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정도였다.
- 사직서 파일럿 일동!
"뭐 당연한 거겠지만 고민스럽구만"
노스트라의 혼잣말이긴 하지만 곤혹스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 전투에서 보여진 팩토리엠페러의 가공할 모습은 타이탄 팀의 파일럿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주고 전체가 퇴직희망을 담은 서류를 제출하게 된 것이다. 적어도 한 명은 남으리라 기대했지만 그런 바보가 있을 리 없었다. 거기에 덧붙여 총독으로부터의 지령이 전달되었다.
'갑작스럽지만 그린 비스트는 본국으로 송환되어 향후 전투에 나설 수 없게 되었습니다. 북미 공격이 중단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그린 매니션이 북미를 겸하게 됨에 따라 닥터 노스트라는 다음 전투 일정을 잡아서 보고토록 하시오. 총독 아스트라'
"흥 이놈이고 저놈이고 말만 많았지 현실을 보면 도망갈 줄 알았다."
그린 비스트야 마수전대 모두를 잃었으니 복구를 위해 본국으로 도망치리라 예상했지만 약삭빠른 그린 매니션은 북미 지구 공백을 빌미로 팩토리엠페러와의 전투를 피해버린 것이다. 결국 2개월도 되지 않아 다시 전투를 진행해야 하는 그 것도 파일럿들이 도망간 최악의 상황이라고 하여도 닥터 노스트라에게 계획은 있었다. 어차피 파일럿들의 이탈은 예상했던 부분이고 이를 위한 백업도 준비되어 있었다. 누구보다 타이탄을 잘 아는 인물을 통해서 말이다.
...
방금 오한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난 강훈은 곧바로 또 다른 서늘함을 느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오늘 일진이 안 좋긴 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불안함에 기름을 붙는 듯 통신기를 통해서 닥터 노스트라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타이탄 팀 긴급회의를 진행하겠다. 모두 회의실로 모이도록!
꼬박 하루를 자고 난 뒤라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꿈에도 모를 강훈이었지만 통신기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닥터 노스트라의 목소리에 왠지모를 불안감이 커져갔다.
"좀 춥게 잤나. 나중에 냉방시스템을 손 봐야겠어"
애꿎은 에어컨을 뒤로하고 강훈은 서둘러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에는 이미 닥터 노스트라와 다른 타이탄 팀의 인원들이 도착해 있었다.
닥터 노스트라가 강훈을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오게나. 자 강훈 반장이 도착했으니 이제 시작하도록 하지."
강훈은 파일럿 팀의 자리가 비어있는 점이 의아했지만 이내 닥터 노스트라의 말이 이어졌다.
"오늘 파일럿 팀 모두가 사직서를 제출했다. 3명 모두 연락두절인데 까불던 그린 비스트가 본국으로 도망간 상황이라 아스트라 총독으로부터 다음주 전투에 출전하라는 명령이 내려와서 좀 난처한 상황이고 어찌되건 좀 더 많은 시간을 벌고 싶었지만 일단 전투가 가능할지 의견을 말해보도록 하시오. 강훈 반장, 타이탄의 상태는 어떤가."
"저. 선배..파일럿팀이 모두 퇴사했단 말인가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자네가 자고 있던 사이에 전투가 있었던 건 알고 있지?"
"예 이제 막 깨어나서 회의실로 온 상황이라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요."
그러자 닥터 노스트라는 음침한 미소를 띄우며 스크린 영상 버튼을 눌렀다. 윙하는 소리와 함께 회의실 탁자의 중앙에서 입체 스크린이 나와 방송되었던 전투 상황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공포스러운 영상이 지나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강훈의 얼굴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팩토리엠페러의 변화는 자신이 알고 있던 어떤 로봇과 닮아 있었다. 과거 닥터 노스트라가 탑승하여 수 많은 적을 물리쳤던 로봇, 타이탄 말이다. 영상이 끝나자 닥터 노스트라가 말을 이었다.
"이제 알겠지. 현재의 우리 타이탄으로 팩토리엠페러와 싸운다면 아니 출격할 수 있는지만 먼저 말해보게."
강훈은 힘겹게 침을 삼켰다. 저런 상황이라면 파일럿 팀이 퇴직하겠다고 한 것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출격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런 공격이라면 ..."
"출격가능. 좋아 그러면 다음 주 출격할 수 있도록 준비하도록!"
"하지만 선배. 저건 암만봐도 타이탄 오버드라이브 시스템입니다. 지금의 우리 타이탄으로는 자살행위라고요."
급하게 말을 토해낸 강훈반장의 패닉에 빠지기 직전인지 얼굴이 좋지 않았다. 타이탄 오버드라이브 시스템은 조종사의 생명에너지를 기반으로 기동하는 김박사가 타이탄에 심어둔 파워업 시스템 중 한가지였다. 구동조건이 매우 까다로운 관계로 실제 전투에서는 단 한번 사용하고 다시는 볼 수 없었던 것인데 적의 로봇에게서 그 모습이 보인 것이다. 것도 전투까지 말이다. 과거의 전투에서는 타이탄의 무기 발사 1회차 에 에너지를 모두 사용해서 피니쉬 기술로만 사용가능했던 것이었다. 것도 피니쉬 후에는 기동조차 불가능한 진짜 문제가 많은 마지막 기술이었다. 이 때문에 봉인되었던 것인데 팩토리엠페러는 멀쩡히 구동 후 전투까지 수행이 가능한 것이다. 강훈은 혼란 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그가 알기로 김박사가 남긴 타이탄만이 오버드라이브 시스템을 탑재하고 있었는데 팩토리엠페러가 사용하다니. 확인을 해봐야 하겠지만 그의 감은 그 것이 오버드라이브 시스템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진정해라! 강훈 반장! 오버드라이브 시스템은 지금의 타이탄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지 않는가."
왠지 닥터 노스트라는 어물쩍 넘어가려는 티가 역력했다. 패닉에 빠진 강훈 팀장의 앞에 한장의 보고서가 놓여졌다. 프리랜서 전투 분석가에게 발주했던 전투력 측정 자료였다. 워낙에 히어로와 악의 조직간의 전투가 많아서 그에서 파생된 직업들이 있었는데 전투 분석 분야도 그 중에 한가지 였다. 전투 분석자체가 워낙 어려운 부분이기도 했고 다양한 비교자료가 필요한 관계로 각종 전투를 찾아다녀야 하는 바이기 때문에 대부분이 프리랜서를 쓰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린킹덤이 계약한 프리랜서는 과거 어느 악의 조직에서 스파이로 암약하던 경력이 있는 히어로 출신으로 믿을 만한 자료를 만드는 인물이었다.
주요 내용을 흝어보면 다음과 같았다.
-- 전투 분석자료
-- 전투 초기 팩토리엠페러의 공격력은 5000수준으로 보이지만 파워업으로 보이는 상태에서는 약 25000으로 생각됨.
-- 마수전대의 10수왕은 개별적으로 5000 ~ 8000수준의 공격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기동성에서 압도적인 격차가 있었음.
"지금 앞에 있는 보고서는 코드네임 [블랙]에게서 온 이번 전투에 대한 분석자료인데 우리 타이탄의 장갑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말해보게나."
단순히 계산해 보아도 승산 자체는 없었다. 파워업 전에도 팩토리엠페러와의 싸움에서 단 한번도 이겨본적이 없는 타이탄이었는데 지금와서 승패를 논하기 보다는 상부에 얼마나 잘 버텼는지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였던 것이다. 그린 비스트에 상대적으로 말이다.
"버티고 자시고가 없어요. 우리 타이탄은 팩토리엠페러의 그 어떤 공격에도 박살입니다. 기동성부터 모든 분야에서 밀려요."
강훈 반장의 말에는 타이탄의 현실에서 느껴지는 슬픔도 서려있는 듯 했다. 현실적으로 어딜봐도 무리였다. 그렇지만 닥터 노스트라의 눈빛은 전혀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이어진 그의 말에는 강한 확신과 힘이 있었다.
"자네 말이 맞겠지 우리 타이탄으로는 팩토리엠페러에게 승리할 수 있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아. 그런거 원래 없었지 이번에도 우리의 역할은 승리가 아니라는 점을 상기하게나. 내가 단언하건데 우린 이길 필요가 없어!"
그렇게 닥터 노스트라의 전략 가이드가 만들어지자 회의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어차피 승리가 아니다. 오래 버티면 그만. 그린 비스트가 참살당한 30분을 넘기면 그만이다 아니 30분을 버텨도 된다. 그린 비스트는 전멸했으니까 비슷하게만 버텨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아이디어가 튀어나온다.
- 대화를 유도하는 겁니다.
- 어떤 대화인가?
- 첩보자료에 따르면 팩토리엠페러의 파일럿들은 모두 20대 초반정도로 보인다고 합니다. 그 나이 때에 관심사를 유도하는 겁니다.
- 상부에는 어떻게 보고할 것인가?
- 심리전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 다음.
- 노래를 부르는 겁니다.
- 이유는?
- 정의의 사도이기 때문에 적어도 노래가 끝나기 전에는 공격하지 않을 겁니다.
- .... 다음.
- 우리는 휴가 언제갑니까?
- .... 이번 전투 끝나고 건의하겠네. 다음.
솔직히 마땅한 방법이 없는 것은 사실이라 개인적인 질문도 나오며 회의가 혼돈 도가니로 빠질려는 찰나에 깊은 생각에 빠졌던 강훈 반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타이탄 실드의 장착이 필요합니다."
그러자 닥터 노스트라의 눈이 빛났다. 타이탄 실드는 타이탄이 가지고 있는 외장형 방어 장비로 그 방어력은 아무리 강력한 공격이라고 할지라도 몇 번이나 타이탄을 지켜주었던 이력이 있었다. 그런데 이 타이탄 실드는 큰 단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운용이 어렵다는 점이었다. 팔 전체를 감쌓는 형태로 인하여 한 손을 방어 말고는 할 수 없는 구조인데다 자동방어시스템 자동회피시스템과 같은 자동화 장치의 보조를 받을 수 없이 순전히 파일럿의 능력에 따라 사용성에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 기존 계약직 파일럿들에게 외면받아온 것이다. 기존의 파일럿들에게는 사명감을 가지고 적의 공격을 참고 견디며 기다리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전황이 불리하면 바로 퇴각이 기본이었던 것이다. 물론 과거와 달리 적의 공격이 원패턴인 것도 아니고 초창기 실험삼아 운용했었지만 결과는 방패만 멀쩡하고 타이탄을 처참하게 부숴져 복귀해야 했었다.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되네만 파일럿이 모두 퇴직신청을 했네, 연락이 되는데로 붙잡겠지만 이번 출격은 어려울거라 보이네만 자네 생각은 어떤가? 무언가 방법이 있으니 말했을거라 생각해."
소시적에 보여주었던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마치 과거 암흑황제의 휘하 삼신장과 싸움에서 보여주었던 것 마냥 살기어린 눈 빛에 강훈 팀장은 숨이 덜컥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강한 압박에도 불구하고 강훈 팀장은 말을 이었다.
"서...선배가 계시지 않습니까. 타이탄 실드를 사용할 수 있는 고도의 숙련된 파일럿으로 말이죠."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노스트라는 쓴 웃음을 지었다.
"맞아 내가 있었지, 그런데 말이야. 내가 나서서 전투에 패배하면 한국 지부는 해산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린킹덤에서 한국을 포기할 수 있다는 걸세, 우리나라가 지정학적 이점이 있지만 그린킹덤의 이상에는 어차피 작디작은 한 조작정도야 총책임자인 내가 패배하면 최악의 경우 모두 실업자가 되는 거지, 그런데 마침 나보다 더 높은 타이탄 조종능력을 갖추고 있던 사람도 있으니까 그 사람이 나서는 게 좋을 것 같네만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저번 달에 신차 뽑았는데...
- 동생이 학교에 들어가는데...
- 다음달 등록금이...
- 결혼식을 내년에...
- 성형수술도 해야 하는데...
- 카드 값이..
강훈 반장은 급격히 위가 아파옴을 느꼈다. 노스트라가 지목한 조종능력이 탁월한 인물이 누구인지 자신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거 타이탄 조종 시뮬레이팅에서 늘 승리했던 인물이자 어떠한 결격사유로 파일럿은 되지 못한 바로 자신이었다. 주변에서 쏟아지는 압력에 그의 위가 견디기 힘든 통증을 먼저 뱉어내기 시작했다. 이건 모두 선배 닥터 노스트라의 계획이라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자신도 다음 달 있을 딸의 생일과 생활비 전달을 위해서는 갑작스런 퇴직은 있어서는 안되는 상황이었다. 이내 영혼이 빠져나간 상태와 같은 모습으로 강훈 반장이 힘없이 손을 들었다.
"제...제가 출격하겠습니다."
닥터 노스트라는 그제서야 안광을 거두고 손을 회의실의 탁자를 손으로 내리치며 회의 종료를 선언했다. 모든 것은 그의 계획대로였다.
"좋아! 다음 주 전투를 위한 준비를 하도록! 그린킹덤에 영광 있으라!"
"그린킹덤에 영광 있으라!"
"그린킹덤에 영광 있으라!"
언 뜻 자살행위에 같다고 볼 수 있는 자신의 탑승선언에도 걱정이라고는 전혀 없는 닥터 노스트라의 모습에서 야속함을 느낀 강훈이었지만 본인도 큰 두려움을 느끼지는 못하고 있었다. 필시 그 간의 전투가 그가 알던 전투라는 것과는 너무도 다른 이질적인 것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출격 전에 딸과 통화를 꼭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강훈 반장은 회의실을 벗어나고 있었다.
.....
암호화된 통신이 어딘가로 전달되었다.
[이번에는 우리가 나설거야. N님의 메시지]
[거기 파일럿이 강심장이네, 아니면 본인? J님의 메시지]
[나름 위치가 위치인지라 나는 아닐세, 그렇지만 조심하게는 게 좋을거야. N님의 메시지]
[흥. 그 말투 맘에 안들어요. 그 사람이면 죽지는 않겠네요. J님의 메시지]
[자네들은 암만봐도 이상해... N님의 메시지]
이어진 메시지는 그렇게 끊겼다. 이어 팩토리엠페러의 수장 J박사는 일주일 뒤 있을 전투에 참여할 파일럿의 포지션 변경을 지시했다. 재미있는 전투가 되겠지만 절대 질리가 없는 형태로 말이다.
- 사직서 파일럿 일동!
"뭐 당연한 거겠지만 고민스럽구만"
노스트라의 혼잣말이긴 하지만 곤혹스러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 전투에서 보여진 팩토리엠페러의 가공할 모습은 타이탄 팀의 파일럿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주고 전체가 퇴직희망을 담은 서류를 제출하게 된 것이다. 적어도 한 명은 남으리라 기대했지만 그런 바보가 있을 리 없었다. 거기에 덧붙여 총독으로부터의 지령이 전달되었다.
'갑작스럽지만 그린 비스트는 본국으로 송환되어 향후 전투에 나설 수 없게 되었습니다. 북미 공격이 중단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그린 매니션이 북미를 겸하게 됨에 따라 닥터 노스트라는 다음 전투 일정을 잡아서 보고토록 하시오. 총독 아스트라'
"흥 이놈이고 저놈이고 말만 많았지 현실을 보면 도망갈 줄 알았다."
그린 비스트야 마수전대 모두를 잃었으니 복구를 위해 본국으로 도망치리라 예상했지만 약삭빠른 그린 매니션은 북미 지구 공백을 빌미로 팩토리엠페러와의 전투를 피해버린 것이다. 결국 2개월도 되지 않아 다시 전투를 진행해야 하는 그 것도 파일럿들이 도망간 최악의 상황이라고 하여도 닥터 노스트라에게 계획은 있었다. 어차피 파일럿들의 이탈은 예상했던 부분이고 이를 위한 백업도 준비되어 있었다. 누구보다 타이탄을 잘 아는 인물을 통해서 말이다.
...
방금 오한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난 강훈은 곧바로 또 다른 서늘함을 느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오늘 일진이 안 좋긴 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불안함에 기름을 붙는 듯 통신기를 통해서 닥터 노스트라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타이탄 팀 긴급회의를 진행하겠다. 모두 회의실로 모이도록!
꼬박 하루를 자고 난 뒤라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꿈에도 모를 강훈이었지만 통신기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닥터 노스트라의 목소리에 왠지모를 불안감이 커져갔다.
"좀 춥게 잤나. 나중에 냉방시스템을 손 봐야겠어"
애꿎은 에어컨을 뒤로하고 강훈은 서둘러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에는 이미 닥터 노스트라와 다른 타이탄 팀의 인원들이 도착해 있었다.
닥터 노스트라가 강훈을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오게나. 자 강훈 반장이 도착했으니 이제 시작하도록 하지."
강훈은 파일럿 팀의 자리가 비어있는 점이 의아했지만 이내 닥터 노스트라의 말이 이어졌다.
"오늘 파일럿 팀 모두가 사직서를 제출했다. 3명 모두 연락두절인데 까불던 그린 비스트가 본국으로 도망간 상황이라 아스트라 총독으로부터 다음주 전투에 출전하라는 명령이 내려와서 좀 난처한 상황이고 어찌되건 좀 더 많은 시간을 벌고 싶었지만 일단 전투가 가능할지 의견을 말해보도록 하시오. 강훈 반장, 타이탄의 상태는 어떤가."
"저. 선배..파일럿팀이 모두 퇴사했단 말인가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자네가 자고 있던 사이에 전투가 있었던 건 알고 있지?"
"예 이제 막 깨어나서 회의실로 온 상황이라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요."
그러자 닥터 노스트라는 음침한 미소를 띄우며 스크린 영상 버튼을 눌렀다. 윙하는 소리와 함께 회의실 탁자의 중앙에서 입체 스크린이 나와 방송되었던 전투 상황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공포스러운 영상이 지나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강훈의 얼굴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팩토리엠페러의 변화는 자신이 알고 있던 어떤 로봇과 닮아 있었다. 과거 닥터 노스트라가 탑승하여 수 많은 적을 물리쳤던 로봇, 타이탄 말이다. 영상이 끝나자 닥터 노스트라가 말을 이었다.
"이제 알겠지. 현재의 우리 타이탄으로 팩토리엠페러와 싸운다면 아니 출격할 수 있는지만 먼저 말해보게."
강훈은 힘겹게 침을 삼켰다. 저런 상황이라면 파일럿 팀이 퇴직하겠다고 한 것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출격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런 공격이라면 ..."
"출격가능. 좋아 그러면 다음 주 출격할 수 있도록 준비하도록!"
"하지만 선배. 저건 암만봐도 타이탄 오버드라이브 시스템입니다. 지금의 우리 타이탄으로는 자살행위라고요."
급하게 말을 토해낸 강훈반장의 패닉에 빠지기 직전인지 얼굴이 좋지 않았다. 타이탄 오버드라이브 시스템은 조종사의 생명에너지를 기반으로 기동하는 김박사가 타이탄에 심어둔 파워업 시스템 중 한가지였다. 구동조건이 매우 까다로운 관계로 실제 전투에서는 단 한번 사용하고 다시는 볼 수 없었던 것인데 적의 로봇에게서 그 모습이 보인 것이다. 것도 전투까지 말이다. 과거의 전투에서는 타이탄의 무기 발사 1회차 에 에너지를 모두 사용해서 피니쉬 기술로만 사용가능했던 것이었다. 것도 피니쉬 후에는 기동조차 불가능한 진짜 문제가 많은 마지막 기술이었다. 이 때문에 봉인되었던 것인데 팩토리엠페러는 멀쩡히 구동 후 전투까지 수행이 가능한 것이다. 강훈은 혼란 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그가 알기로 김박사가 남긴 타이탄만이 오버드라이브 시스템을 탑재하고 있었는데 팩토리엠페러가 사용하다니. 확인을 해봐야 하겠지만 그의 감은 그 것이 오버드라이브 시스템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진정해라! 강훈 반장! 오버드라이브 시스템은 지금의 타이탄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지 않는가."
왠지 닥터 노스트라는 어물쩍 넘어가려는 티가 역력했다. 패닉에 빠진 강훈 팀장의 앞에 한장의 보고서가 놓여졌다. 프리랜서 전투 분석가에게 발주했던 전투력 측정 자료였다. 워낙에 히어로와 악의 조직간의 전투가 많아서 그에서 파생된 직업들이 있었는데 전투 분석 분야도 그 중에 한가지 였다. 전투 분석자체가 워낙 어려운 부분이기도 했고 다양한 비교자료가 필요한 관계로 각종 전투를 찾아다녀야 하는 바이기 때문에 대부분이 프리랜서를 쓰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린킹덤이 계약한 프리랜서는 과거 어느 악의 조직에서 스파이로 암약하던 경력이 있는 히어로 출신으로 믿을 만한 자료를 만드는 인물이었다.
주요 내용을 흝어보면 다음과 같았다.
-- 전투 분석자료
-- 전투 초기 팩토리엠페러의 공격력은 5000수준으로 보이지만 파워업으로 보이는 상태에서는 약 25000으로 생각됨.
-- 마수전대의 10수왕은 개별적으로 5000 ~ 8000수준의 공격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기동성에서 압도적인 격차가 있었음.
"지금 앞에 있는 보고서는 코드네임 [블랙]에게서 온 이번 전투에 대한 분석자료인데 우리 타이탄의 장갑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말해보게나."
단순히 계산해 보아도 승산 자체는 없었다. 파워업 전에도 팩토리엠페러와의 싸움에서 단 한번도 이겨본적이 없는 타이탄이었는데 지금와서 승패를 논하기 보다는 상부에 얼마나 잘 버텼는지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였던 것이다. 그린 비스트에 상대적으로 말이다.
"버티고 자시고가 없어요. 우리 타이탄은 팩토리엠페러의 그 어떤 공격에도 박살입니다. 기동성부터 모든 분야에서 밀려요."
강훈 반장의 말에는 타이탄의 현실에서 느껴지는 슬픔도 서려있는 듯 했다. 현실적으로 어딜봐도 무리였다. 그렇지만 닥터 노스트라의 눈빛은 전혀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이어진 그의 말에는 강한 확신과 힘이 있었다.
"자네 말이 맞겠지 우리 타이탄으로는 팩토리엠페러에게 승리할 수 있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아. 그런거 원래 없었지 이번에도 우리의 역할은 승리가 아니라는 점을 상기하게나. 내가 단언하건데 우린 이길 필요가 없어!"
그렇게 닥터 노스트라의 전략 가이드가 만들어지자 회의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어차피 승리가 아니다. 오래 버티면 그만. 그린 비스트가 참살당한 30분을 넘기면 그만이다 아니 30분을 버텨도 된다. 그린 비스트는 전멸했으니까 비슷하게만 버텨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아이디어가 튀어나온다.
- 대화를 유도하는 겁니다.
- 어떤 대화인가?
- 첩보자료에 따르면 팩토리엠페러의 파일럿들은 모두 20대 초반정도로 보인다고 합니다. 그 나이 때에 관심사를 유도하는 겁니다.
- 상부에는 어떻게 보고할 것인가?
- 심리전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 다음.
- 노래를 부르는 겁니다.
- 이유는?
- 정의의 사도이기 때문에 적어도 노래가 끝나기 전에는 공격하지 않을 겁니다.
- .... 다음.
- 우리는 휴가 언제갑니까?
- .... 이번 전투 끝나고 건의하겠네. 다음.
솔직히 마땅한 방법이 없는 것은 사실이라 개인적인 질문도 나오며 회의가 혼돈 도가니로 빠질려는 찰나에 깊은 생각에 빠졌던 강훈 반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타이탄 실드의 장착이 필요합니다."
그러자 닥터 노스트라의 눈이 빛났다. 타이탄 실드는 타이탄이 가지고 있는 외장형 방어 장비로 그 방어력은 아무리 강력한 공격이라고 할지라도 몇 번이나 타이탄을 지켜주었던 이력이 있었다. 그런데 이 타이탄 실드는 큰 단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운용이 어렵다는 점이었다. 팔 전체를 감쌓는 형태로 인하여 한 손을 방어 말고는 할 수 없는 구조인데다 자동방어시스템 자동회피시스템과 같은 자동화 장치의 보조를 받을 수 없이 순전히 파일럿의 능력에 따라 사용성에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 기존 계약직 파일럿들에게 외면받아온 것이다. 기존의 파일럿들에게는 사명감을 가지고 적의 공격을 참고 견디며 기다리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전황이 불리하면 바로 퇴각이 기본이었던 것이다. 물론 과거와 달리 적의 공격이 원패턴인 것도 아니고 초창기 실험삼아 운용했었지만 결과는 방패만 멀쩡하고 타이탄을 처참하게 부숴져 복귀해야 했었다.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되네만 파일럿이 모두 퇴직신청을 했네, 연락이 되는데로 붙잡겠지만 이번 출격은 어려울거라 보이네만 자네 생각은 어떤가? 무언가 방법이 있으니 말했을거라 생각해."
소시적에 보여주었던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마치 과거 암흑황제의 휘하 삼신장과 싸움에서 보여주었던 것 마냥 살기어린 눈 빛에 강훈 팀장은 숨이 덜컥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강한 압박에도 불구하고 강훈 팀장은 말을 이었다.
"서...선배가 계시지 않습니까. 타이탄 실드를 사용할 수 있는 고도의 숙련된 파일럿으로 말이죠."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노스트라는 쓴 웃음을 지었다.
"맞아 내가 있었지, 그런데 말이야. 내가 나서서 전투에 패배하면 한국 지부는 해산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린킹덤에서 한국을 포기할 수 있다는 걸세, 우리나라가 지정학적 이점이 있지만 그린킹덤의 이상에는 어차피 작디작은 한 조작정도야 총책임자인 내가 패배하면 최악의 경우 모두 실업자가 되는 거지, 그런데 마침 나보다 더 높은 타이탄 조종능력을 갖추고 있던 사람도 있으니까 그 사람이 나서는 게 좋을 것 같네만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저번 달에 신차 뽑았는데...
- 동생이 학교에 들어가는데...
- 다음달 등록금이...
- 결혼식을 내년에...
- 성형수술도 해야 하는데...
- 카드 값이..
강훈 반장은 급격히 위가 아파옴을 느꼈다. 노스트라가 지목한 조종능력이 탁월한 인물이 누구인지 자신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거 타이탄 조종 시뮬레이팅에서 늘 승리했던 인물이자 어떠한 결격사유로 파일럿은 되지 못한 바로 자신이었다. 주변에서 쏟아지는 압력에 그의 위가 견디기 힘든 통증을 먼저 뱉어내기 시작했다. 이건 모두 선배 닥터 노스트라의 계획이라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자신도 다음 달 있을 딸의 생일과 생활비 전달을 위해서는 갑작스런 퇴직은 있어서는 안되는 상황이었다. 이내 영혼이 빠져나간 상태와 같은 모습으로 강훈 반장이 힘없이 손을 들었다.
"제...제가 출격하겠습니다."
닥터 노스트라는 그제서야 안광을 거두고 손을 회의실의 탁자를 손으로 내리치며 회의 종료를 선언했다. 모든 것은 그의 계획대로였다.
"좋아! 다음 주 전투를 위한 준비를 하도록! 그린킹덤에 영광 있으라!"
"그린킹덤에 영광 있으라!"
"그린킹덤에 영광 있으라!"
언 뜻 자살행위에 같다고 볼 수 있는 자신의 탑승선언에도 걱정이라고는 전혀 없는 닥터 노스트라의 모습에서 야속함을 느낀 강훈이었지만 본인도 큰 두려움을 느끼지는 못하고 있었다. 필시 그 간의 전투가 그가 알던 전투라는 것과는 너무도 다른 이질적인 것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출격 전에 딸과 통화를 꼭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강훈 반장은 회의실을 벗어나고 있었다.
.....
암호화된 통신이 어딘가로 전달되었다.
[이번에는 우리가 나설거야. N님의 메시지]
[거기 파일럿이 강심장이네, 아니면 본인? J님의 메시지]
[나름 위치가 위치인지라 나는 아닐세, 그렇지만 조심하게는 게 좋을거야. N님의 메시지]
[흥. 그 말투 맘에 안들어요. 그 사람이면 죽지는 않겠네요. J님의 메시지]
[자네들은 암만봐도 이상해... N님의 메시지]
이어진 메시지는 그렇게 끊겼다. 이어 팩토리엠페러의 수장 J박사는 일주일 뒤 있을 전투에 참여할 파일럿의 포지션 변경을 지시했다. 재미있는 전투가 되겠지만 절대 질리가 없는 형태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