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이 흐르는 공간에서 모여있던 타이탄 팀의 멤버들이 숨죽이며 방송을 시청하고 있었다.

"저거 저거 접니다!! 나라고."

 타이탄 팀 제1 연구원 스미스가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그가 가르킨 화면에서는 그린킹덤을 상징하는 복면을 쓴 누군가가 연구원의 가운을 쓴 체 무언가 골똘히 몰두하는 모습이 비추어졌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제2 연구원 제롬이 소리를 질렀다.

"와우! 이번에는 저에요."

 제롬이 등장한 장면은 복면의 뒤통수였다. 본인이 아니면 도저히 알 수 없는 장면들이지만 그는 진정으로 기쁜 듯 했다. 이렇게 모두가 심취해서 응시하는 화면은 전직 히어로 모델 마리아 디바와 함께 찍은 녹화사업캠페인 광고 겸 그린킹덤의 활동 홍보물이었다.

 아쉽게도 입장상 실제 마리아 디바와는 같이 촬영하지는 못했지만 별도로 찍은 내용이 광고에 붙여져 나오고 있던 것이다. 주요 내용으로는 그린킹덤이 사회의 녹지를 늘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어째서 도시개발사업부와 대립하고 있는지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악의 조직 주제에 홍보방송을 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 부호가 있을 수 있지만 작금의 현실에서 악과 정의의 차이점은 어떠한 이익을 대변하는 가에 따라 달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례로 그린킹덤은 해외의 자연주의성향을 가진 집단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세력이 강한 유럽 쪽에서는 악당이라는 약간 애매한 인식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치열한 전투 이후로 개발붐이 지속되었기 때문에 도시개발사업부의 인기가 더 높아 악당의 포지션이었던 것이다. 물론 위법행위가 전혀 없었기에 가능했던 부분이지만 말이다. 그린킹덤은 모두 정식 고용계약서와 모범적인 세금납부 및 철저하고 정직한 관리를 통해 운영되고 있었다. 악의 조직이지만..

 제롬의 뒤통수 복면 장면을 뒤로 대략 10여초의 시간이 흐른 후 마리아 디바의 캠페인 멘트를 끝으로 광고가 종료되었다.

[여러분은 세계의 소리가 들리나요? 마리아는 자연과 함께 걷는 미래를 꿈꾸고 싶습니다.]

[CM: 악당과의 싸움은 히어로에게 게임의 재미는 게임-히어로에게!]

- 짝짝짝!

 닥터 노스트라의 박수소리와 함께 어두웠던 실내가 밝아졌다.

"자 광고는 이걸로 마무리 짓고. 이번에 신규 파일럿들이 들어왔으니 인사나 나눕시다."

 모두가 모여 있던 곳은 기지의 회의실이었다. 오늘부터 신규 파일럿팀이 구성되어 배치되었기 때문에 광고시청과 함께 소개의 자리를 마련했던 것이다. 이어서 파일럿들의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파일럿 1호입니다. 과거 다른 로봇을 조종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린킹덤에 영광있으라!"

 목소리도 시원하고 몸도 다부진 편이라 정의의 편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호탕한 1호였다.

"나는 파일럿 2호. 나는 매우 강하다. 그린킹덤에 영광있으라!"

  호리호리한 몸에 말이 많이 짧은 2호였다.

"ㅍ..파일럿 3호입니다. 가..가사레벨의 초능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그린킹덤에 영광있으라!"

 긴장을 많이 한 듯 떨린 목소리의 3호의 소개가 끝나자 닥터 노스트라가 해골 지팡이를 높이 올리자 녹색의 광선이 나와 회의실 천장에 그린킹덤의 문장을 그렸다.

"타이탄 팀에 잘 왔다. 새로운 파일럿들이여! 이쪽은 그대들의 힘과 방패가 되어 줄 타이탄의 개조와 정비를 담당한 연구원 팀이다. 서로 박수를 보내어 이 자리를 환영하자!"

- 와아아아아아! 그린킹덤에 영광있으라!

그러자 모두의 형식적인 박수가 쏟아졌다. 그리고 이어서 바로 현안에 대한 닥터 노스트라의 질의가 이어졌다.

"강훈 반장! 타이탄의 상태를 보고하라!"

 "예. 타이탄은 완파된 가슴부위의 장갑을 보수하는 것과 동시에 타이탄 실드의 잔해를 수거해 보수하고 있습니다만 파괴의 정도가 심해서 타이탄 실드를 복구하는 것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럼 다음 번 출격은 언제쯤이면 될 것 같은가!?"

 강훈 반장은 눈을 질근 감았다.

"..원하신다면 내일도 가능합니다. 어차피 우리 타이탄의 장갑은 아무리 잘 보수해도 팩토리엠페러의 공격이면 박살납니다. 나무 판자로 대충 맞춰놓고 금속색으로 페인팅하면 됩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다 광고시청과 파일럿 팀의 소개로 약간 들 떠 있던 분위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모두가 현실인 문제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팩토리엠페러는 계속 강해져 가는 것이다. 지금의 타이탄으로는 모든 면에서 상대조차 어려운 것이다.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닥터 노스트라가 힘을 주며 말했다.

"자자 침울해하지 말자고, 팩토리엠페러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방법은 있을 것이니까! 모두의 의견을 모아보는 것이다!"

 그 후 저마다 생각하고 있던 내용을 토해내기 시작하며 몇가지 내용으로 정리가 되었다.

"공격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팩토리엠페러의 장갑을 파괴할 수 있는 고출력 공격 무기가 필요합니다."

"타이탄의 장갑을 타이탄 실드와 같은 재질로 만드는 겁니다."

"우리도 변신기능을 탑재하는 겁니다."

"....."

  다양한 의견이 나왔지만 모두 현실적으로 반영 불가능한 예산과 기간이라는 문제가 꼬리표처럼 붙어 있었다. 가뜩이나 저번 출격 때 나온 수리비용이 너무 커서 명절 보너스 자금을 사용한 문제로 재무를 담당하는 녹색왕국식품이 벼르고 있기 때문에 예산 허가가 나올리 만무했다. 그렇게 회의가 이어지는 도중 갑작스럽게 누군가가 회의실로 들어왔다. 아니 들어왔다기 보다는 갑자기 나타났다.

"이런이런 분위기가 좋지 않군. 닥터 노스트라."

 화려한 금장 장식을 수놓은 턱시도의 인물, 그는 그린킹덤의 3수장 그린 매지션이었다. 갑작스런 그린 매지션의 방문에 내부가 술렁거렸다.

"무슨 일인가. 그린 매지션. 통보도 없이 방문하다니."

"하하하. 너무 경계하지 말게나. 지금 매우 골치아픈 문제가 있어서 급하게 온거라 긴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네만 어떤가."

 평소 사이가 좋지도 않은데 부탁이라니 수상한 기운이 느껴진 닥터 노스트라였지만 입장상 그린 매지션을 내쫓을 수는 없었다.

"그럼 이상으로 회의를 마치겠다. 모두 업무에 복귀하도록!"

 회의 종료 선언과 함께 닥터 노스트라는 그린 매지션과 함께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

  - 쪼르르르륵

 닥터 노스트라는 아끼던 와인을 잔에 따라 그린 매지션에게 건냈다. 생각 같아서는 면상에 던지고 싶었지만 말이다.

"음. 여전히 좋은 것만 가지고 있군 그래."

"그대와 나는 서로 달갑지 않은 사이일터 슬슬 본론을 말해라. 그린 매지션!"

"이거 너무 차갑구만. 이걸 주려고 왔는데 함 볼텐가."

 그린 매지션의 손에서 갑자기 검은 종이가 나타났다. 꺼림찍한 백색의 해골이 그려진 종이에 닥터 노스트라의 미간이 좁혀졌다.

"도전장이군. 우리에게 싸우라는 건가? 아직 타이탄의 수리는 안끝났네만."

 그 종이는 악의 조직 공용의 도전장 양식이었다. 이러한 도전장은 국제히어로협회에서 발급을 관리하는 관계로 종이는 단지 출력물에 불과했지만 이것을 상대편에게 전달하는 것은 일종의 전통과도 같은 행위였다. 그런데 악의 조직인 그린킹덤이 같은 악의 조직에서 발급한 검은 도전장을 받은 것이다. 남들이 보면 이상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그린킹덤이 북미와 유럽에서는 악의 조직이 아니라 오히려 개발논리에 맞서 싸우는 자연보호히어로에 가깝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흠. 너무 오래 듣고 있었기 때문인지 귀가 가렵구만. 누구 덕분에 그린 비스트가 재기 불능에 빠져서 말이지. 기껏 만들어 놓은 녹화지역이 다른 조직에 의해서 불타버렸다는 소식이야. 이 도전장이 아무래도 북미 지역의 키가 될 것 같은데 여기 놓고 갈테니 한번 읽어보게나. 우리는 같은 편이잖나."

 제 할말이 끝났던지 그 뒤 그린 매지션의 모습이 흐릿해지더니 사라졌다. 나타날 때도 갑작스러웠지만 사라지는 것도 갑작스러웠다. 닥터 노스트라는 그린 매지션이 남기고 간 도전장을 잡았다.

"흥. 언제부터 같은 편이었다고. 냄새가 나지만 어쩔 수 없나..."

 어찌되건 그린 비스트가 관리하는 북미 지역이 약체화된 부분에 관여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그로서 이를 거부할 마땅한 명분이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팩토리엠페러에게 가혹할 정도로 당한 모습이 세계적으로 알려져 그린 비스트가 만만한 상대로 부각되면서 북미지역은 한층 더 치열한 이권다툼이 가열되고 있는 상황이라 언젠가는 이를 빌미로 북미 지부에 대한 지원명령이 올 것은 예상하고 있었차였다. 그러나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신입 파일럿의 교육도 타이탄의 마이너 업그레이드도 아직 명확하지 않은 것이다.

 도전장에 적혀진 시간은 앞으로 일주일정도 미리 알려주지 않은 것도 그린 매지션이 직접 온 것도 심상치 않은 함정이 있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강훈 반장이 닥터 노스트라의 집무실로 호출되었고 다시 긴급 보수를 위한 타이탄 팀 철야의 나날이 시작되었다.

......

- 쿵. 쾅! 쿵쿵 쾅쾅! 치지지지직!

 쉴세없이 수리 도구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타이탄의 완파된 가슴은 이제 곧 엉성하긴 하지만 제 모습을 찾게 될 것이다. 그러나 주변에 널부러진 연구원들의 시체같은 모습에서 강훈 반장 자신의 의식도 흐릿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인간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반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버티고 있었지만 그 또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의식이 깊은 바다로 빠지는 듯한 기분에 모든 것을 내려놓으려는 찰나 차가운 얼음이 담긴 물이 그의 몸에 끼얹졌다.

- 촤아악

"으아아아악! 차거 뭐얏!"

 갑작스런 얼음물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뒤이어 다른 연구원들도 얼음물에 당하며 깨어났다.

"주인님아 명령대로 잠 못자게 했다."

"야! 이 바사기야!"

"응? 주인님아 나 바사기 맞다. 그럼 이만 얼음물을 더 준비하러 가겠다."

 얼음물을 끼얹은 범인은 바로 간호 로봇 바사기였던 것이다. 바사기는 할일을 열심히 했다는 듯 얼음물을 모두 쏟아낸 플라스틱 물통을 들고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반장님...이건 아니잖아요."

 다른 연구원들이 원망스런 표정으로 강훈을 쳐다 보았다.

".....아냐...난 피로 회복제를 가져오라고 했단 말야."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모르겠지만 바사기의 학습능력은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라 자기본위 편향의 성격으로 발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다시 좀비 상태의 연구원들이 하얗게 자신들을 불태우기 시작하며 간신히 마무리 된 작업장에는 아무리 얼음물을 끼얹어도 깨어나지 않는 연구원의 시체같은 몸뚱이들과 쓰러진 강훈 반장의 뺨을 연신 가격 중인 바사기만 남았다고 한다.

- 퍽! 퍽! 퍽!

"주인님아 일어나라. 이대로면 죽는다고 했단 말이다! 주인님아아아아!!!!"

부풀어 오른 뺨의 주인은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