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노포스와의 전투를 앞두고 전날 밤, 쏟아지는 비와 몰아치는 번개 아래에서 그린킹덤의 동북아지부 비밀기지로 향하는 의문의 그림자가 있었다.

- 번쩍!

 언뜻 내리치는 번개의 빛에 의해 매우 길게 드리워졌지만 얼핏보면 가냘픈 모습의 그림자는 얼마 후 비밀기지의 숨겨진 입구에 도착해 방문객을 위한 벨을 누르게 된다.

- 삐이이

 그 모습을 모니터로 확인한 닥터 노스트라와 강훈 반장이 반갑게 맞이하며 문을 열었다. 그림자의 주인은 바로 하루 일찍 도착하게 된 그린킹덤 마도대박사 중 한명 기계의 천재라는 이명을 가진 요정족 픽시아였던 것이다. 그린킹덤이 자랑하는 마도대박사 중 한명으로 마도기계과학의 전문가였으며 같은 대박사 메스의 추천으로 휴가를 틈타 타이탄의 메카닉 기술을 구경하러 방문한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이 닥터 노스트라의 계획이었는 줄도 모르고 그녀 픽시아는 문으로 들어섰다.

"그대가 마도대박사 픽시아인가? 이야기는 대박사 메스를 통해 들었네. 방문을 환영하지."

 노스트라가 반갑게 맞이하자 픽시아는 입고 있던 우비의 머리 부분을 걷어 깜찍하고 쾌활한 전형적인 귀여운 상을 가진 소녀의 얼굴을 드러냈다.

"반갑게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닥터 노스트라님. 마도대박사 픽시아입니다~헤헷~"

 픽시아가 밝은 미소를 짓자 내부가 환해지는 듯한 효과가 나왔다. 실제로 그녀의 몸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노스트라가 옆에 있던 강훈에게 고개를 돌렸다.

"흠. 이정도면 충분하겠지. 훈, 자네 생각은 어떤가?"

"예 선배. 크기는 충분합니다."

 강훈의 손에는 아이들이 가지고 놀 것 같은 장난감 집이 들려져 있었다. 크기는 평범한 장난감 집 보다는 조금 더 큰 편이라 그의 상체만한 크기였으나 목적에는 충분할 것 같았다. 그가 장난감 집의 문을 열자 노스트라가 말을 이었다.

"픽시아, 우리가 마련한 거처일세, 오늘은 늦었으니 여기서 쉬고 아침에 인사를 하세나."

"우와아아아 너무 좋아 보이는 집이네요. 정말 고맙습니다. 비 때문에 날개가 젖어서 찝찝하던 참이에요."

 픽시아가 그렇게 말하고 우비를 모두 벗어버리자. 엘프족 중에 제일 작다고 알려진 픽시종 특유의 나비 날개가 펄럭거리며 나타나고 이내 고운 빛의 가루를 흘리더니 강훈 반장이 들고 있던 장난감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녀는 요정족 중에서도 가장 작은 크기를 가진 픽시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몸이 장난감 집으로 쏙 들어가자 강훈이 집의 옆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 철컹! 피시이이이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문이 잠기고 준비된 수면가스가 흘러나오기 장난감 집 안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잠깐만요. 무슨 짓이예요. 문이 안열려...."

 애처로운 소녀의 목소리는 더이상 흘러나오지 않았다. 양심의 가책을 받은 강훈이 슬픈 표정을 지었지만 이는 영혼마저 불사를 기세로 타이탄 수리를 진행하는 정비팀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지금 그들을 움직이는 에너지는 다름 아닌 요정족 미녀 연구원의 방문이었다. 그 정체가 이런 작은 픽시라는 것을 알게된다면 어찌될지는 자명한 일. 파국을 막기 위해 강훈과 노스트라는 갸냘픈 픽시아를 상대로 악마가 되기로 한 것이었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가게나 강훈 타이탄의 마무리를 부탁하지."

 닥터 노스트라가 강훈의 어깨를 토닥이더니 그의 손에서 장난감 집을 받아 몸을 돌렸다. 수리가 끝나는 내일 아침까지 안전한 곳에 숨겨두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

 그 것은 기적이라고 불러도 무방했다. 평균 노동시간을 뛰어넘어 너나 할 것 없이 영혼마저 불사른 마냥 희생한 정비 인력의 시체같은 물체 저편에서 완벽한 모습의 타이탄V5.4가 모습을 들어낸 것이다. 망가진 가슴과 사라진 두 팔은 물론 자잘한 외관의 손상도 완벽에 가까운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성공했습니다. 선배...이젠 뒤를 맡기겠습니다..."

 마지막 보고를 끝낸 뒤 쓰러진 강훈을 뒤로하고 닥터 노스트라가 비장한 표정으로 해골 지팡이를 휘둘렀다.

"타이탄 출동하라! 그린킹덤에 영광있으라!"

- 5, 4, 3, 2, 1...
- 타이탄 V 5.4 출격!
- 타이탄 출격합니다.

"타이탄 다녀오겠음!"

 3호 김다크, 특유의 짧은 응답이 이어진 후 반짝거리는 외장을 뽐내며 타이탄이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2호가 탑승해야 했으나 2호는 가루다와 가벨을 보살피며 얻게된 스트레스성 장염으로 제 컨디션이 아니었기 때문에 3호가 드디어 첫 실전에 나서게 된 것이다. 걱정과 달리 3호가 안정적으로 발진하자 노스트라는 바로 몸을 돌려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헛!"

 사무실 앞에 선 그가 다급한 헛기침을 토해냈다. 분명히 닫혀있던 사무실의 문이 작게 열려있는 게 아닌가. 아뿔사, 급히 안으로 들어서자 간밤에 놔둔 장난감 집이 사라진 체였다.

'설마 탈출했단 말인가? 어찌된 일이지?'

 일이 복잡해진다고 생각이 든 그의 귓가에 무언가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포착한 노스트라는 정신을 집중하고 해골 지팡이를 땅에 꼽고 눈을 살짝 감았다. 그의 귓가로 작은 소리가 증폭되어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기 이름이 뭐예요?"

"나 말야? 스미스. 꼬마 아가씨는 이름이 뭐지?"

"아이 참~ 나 꼬마 아니라고요. 성인이라고요. 제 이름은 픽시아에요. 구해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그럼 픽시아'씨'라고 해야겠네. 그런데 픽시아씨는. 대체 이 장난감 집에 왜 갇혀있던거야?"

"그게요. 저희 픽시들은 요정파우더라는 가루를 날개에서 뿌릴 수 있는데요. 이 집에 요정파우더를 뿌려서 떠올린 뒤 문을 두드리던 와중에 스미스 당신이 절 구해준 거예요. 그리고 절 이 집에 가둔 사람은요.."

 픽시아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말하려는 순간 누군가가 나타나 그녀의 말을 막아버렸다. 닥터 노스트라가 온 것이다. 노스트라는 장난감 집에서 풀려나온 픽시아와 곧 잠들 것 같은 모습의 스미스 연구원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험. 잠깐! 나머지는 내가 말하도록 하지."

"꺄악!"

 그의 등장에 놀란 픽시아가 스미스의 뒤로 숨어버렸다.

"왜 그래 픽시아. 우리 기지의 최고 책임자 노스트라 님이셔, 노스트라 님... 설마?...윽..."

 픽시아의 반응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짖던 스미스는 노스트라가 해골 지팡이를 들고 천천히 원을 그리자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떨구어 버렸다. 철야로 인해 피곤하던 몸이었지만 잠이 들고 만 것이다. 스미스가 고개를 떨구자 픽시아가 다급하게 나서며 닥터 노스트라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이 사람을 놔둬요! 제발..."

 픽시아는 고개를 숙이고 잠이든 스미스의 얼굴을 그 작은 손으로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애처로운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부디..이 사람은 살려주세요. 이이에겐 죄가 없어요. 이게 다 제 죄인거죠. 알아요. 이사람을 만나고서야 제 죄를 알아차렸어요. 지구인을 사랑하게 되는 죄...그래서 절 가둔 것이란 걸 알아요. 노스트라 님."

 노스트라는 기가막혔다. 대박사 메스도 그렇지만 이 마도대박사는 어떤 기준으로 뽑히는 것인지 심히 걱정되기 시작한 것이다. 잠시 말도 안되는 드라마를 시청한 기분을 느낀 노스트라가 말없이 해골 지팡이를 내밀었다. 픽시아가 고개를 돌려 지팡이를 바라보자 아까와 같이 지팡이가 조금씩 원을 그리며 돌더니 픽시아의 날개와 몸이 힘없이 주저 않아 잠든 스미스의 품을 파고들어 잠이들고 말았다.

"대체 마도대박사라는 것들은 다 이런건가?"

 의문이 들었지만 3명중 2명이 이렇다는 건 나머지도 정상은 아닐 확률이 컷다. 어찌되건 일을 정리한 그는 다시 상황실로 몸을 돌렸다. 지금쯤이면 테크노포스가 있는 전장에 타이탄이 도착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