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킹덤 북미지부 회복실, 걷으로는 회복실이라고 써 있었지만 표찰이 덧붙여져서 떼고보면 개조수술실이라고 써 있는 공간에서 이제 막 마지막으로 회복 캡슐을 사용한 강훈 반장이 나오고 있었다. 그가 나오자 반색한 인물은 닥터 노스트라였다.

"몸이 좀 어떤가."

"매우 좋습니다. 이 캡슐 우리 기지에도 하나 들여놓고 싶네요. 하하. 힉!!"

 상쾌한 기분인 듯 팔을 이리저리 휘두르던 그는 뜨거운 시선의 소유자 둘과 마주치자 긴장하며 살짝 흠칫했다. 나름 이상한 눈 빛으로 그의 전신을 흩으며 들고 있는 데이터 차트를 이리저리 휘갈기던 인물이 하나, 그리고 형용할 수 없는 그윽한 눈 빛으로 그를 바라보는 거대한 덩치의 인물이 또 하나있는 것이다.

"음음..데이터 수치도 정상. 아쉽네요. 조금 만 더 해보면 진짜 다른 결과도 볼 수 있을텐데 말이죠."

 데이터 차트를 가지고 머리를 긁적이며 아쉬움을 내뱉은 인물은 마도대박사 메스였다. 의외로 시료체와 상성이 좋은 실험체를 떠나 보내야 한다는 점에서 자신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다. 그러나 개조수술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던 강훈 반장의 강력한 거부로 인하여 그녀도 어쩔 수 없었다.

 뒤이어 그녀의 옆에 있던 부드럽고 자애롭기까지한 눈 빛의 소유자 그린 비스트가 강훈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강훈! 나의 영혼의 형제여! 이 몬스터 캡슐을 받아라."

 평소와 같지 않게 부드러운 말투로 말을 건낸 것은 그린 비스트가 내민 것은 야구공보다 조금 더 큰 2개의 동그란 캡슐이었는데 중앙에 가로 라인을 따라서 위 아래의 색이 각각 황색과 흰색, 흑색과 흰색으로 되어 있었다. 왠지 부담스러운 눈 빛과 말투에 거절하고 싶은 강훈 이었지만 지금은 공손하게 그 몬스터 캡슐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유전자 데이터가 일부 싱크로 했다고 형제가 되다니 자신의 개념상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지만 그린 비스트가 본성에서도 거의 유일한 특이 생명체의 존재이며 평소 형제가 있는 그린 매지션을 부러워 했다는 본인의 설명을 듣고 난 이후에는 거부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이것도 유전자의 힘이라면 하루 빨리 원래대로 돌아가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밀고 올라오는 강훈이었다.

"이 몬스터 캡슐은 환수와 마수 그리고 종래에는 신수를 봉인할 수 있는 것. 지금 이 캡슐에는 ....동생과 같이 싸운 환조 가루다와 환수 가벨이 잠들어 있다. 지금은 모든 마나를 잃고 아기처럼 연약해졌지만 종래에는 다시 본 모습으로 돌아가 ....동생의 힘이 되어줄 것이다. 나의 선물이니 받아라."

 '왜 동생이라는 말을 할 때마다 그 덩치에 살짝씩 부끄러워 하냐고!!!'

 거부는 거부하겠다는 단호함을 느끼며 강훈은 입 밖으로 토해져 나오려는 말을 간신히 틀어막아야 했다.

"이러한 것을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린 비스트님"

"강훈 그대는 나의 영혼의 형제! 나를 형, 형님, 브라더라고 원하는데로 불러도 좋다."

"아..아니요. 아직 거기까지는..저는 출발 준비를 하러 가보겠습니다."

 진땀을 흘리며 캡슐을 건내 받은 강훈은 서둘러 자리를 피해 후다닥 개조수술실, 아니 회복실에서 벗어나 버렸다. 그의 뒷 모습을 보면서 그린 비스트는 껄껄 웃는다.

"크하하하핫, 나와 같이 위대한 형이 생겨서...동생이 부끄러운가 보군. 내가 이해해 주어야겠지. 안그런가 닥터 노스트라!"

'아냐. 네가 문제라고. 지구인 혐오였으면서'

 독설을 날리는데 평소 주저함이 없는 닥터 노스트라였지만 지금 그린 비스트를 자극했다가는 어떠한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없었기에 순화시킬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생각에 살짝 강훈을 치켜주는 것 만으로도 그린 비스트는 자신을 칭찬하는 것으로 받아 들일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탐내지 마라. 강훈 반장은 매우 훌륭한 내 부하다. 다른 전투에 대한 이야기는 없나?"

"그런가. 역시 이 나의 ..동생이군."

 흡족한 표정의 그린 비스트는 고개를 끄떡이며 말을 이었다.

"기다그룹 및 협회에서의 연락은 아직 없다. 그쪽에서도 전투에 난입하여 베리어까지 파괴한 의문의 세력이 신경쓰이는 것 일테지."

"좋다. 그린 비스트. 이제 나는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괜찮은가?"

"이제는 괜찮다. 본성처럼 내 본체를 마음놓고 현신할 수 있어도 이런 빚을 지지 않았을텐데 이 지구는 정말이지 마음에 안드는 곳이다. 그러니 더욱 지구에 녹지를 늘려서 마나수를 심어야 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그것이 우리 그린킹덤의 목적이지. 그럼 다음 간부 회의서 보도록 하자."

 그렇게 말한 노스트라가 몸을 돌려 나가려고 하자, 그린 비스트의 거대한 손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닥터 노스트라. 너에게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내 동생을 부탁하지. 이제 캡슐에 들어가야 하니 배웅하지는 않겠다."

 이제 그의 말에서 동생이란 단어에서의 주저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강훈 반장은 내 오른 팔이다. 천년을 살아온 마신의 말치고는 너무 걱정이 많다. 그린 비스트."

"천년 만에 걱정거리가 생긴 탓이겠지. 크하하하하하"

....


 공항에 도착한 닥터 노스트라는 서둘러 인력들을 챙기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무승부로 끝난 전투 이후 하루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처럼 모두가 출발 전보다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배경에는 마도대박사 메스의 회복 캡슐이 있었다. 개조수술을 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교대로 캡슐로 들어가며 감시해야 했지만 효과는 역시 모든 악의 조직을 통털어 생체마도과학의 최고봉이라 불리울 만큼 완벽했던 것이다. 그리고 모두의 감시 속에서 더이상의 피해자 없이 마무리 된 점도 다행이었고 말이다.

 이번에는 1호가 휴가를 내고 사라졌기 때문에 강훈 반장이 타이탄을 몰고 돌아가고 나머지 인력들이 비행기를 이용해야 했다. 노스트라 일행이 탑승하고 얼마 후 이륙하기 시작하며 닥터 노스트라는 금새 멀어져가는 공항을 내려다 보며 상념에 빠지기 시작했다.

'아무이야기 없는 것을 보니 역시 제시카는 잘 돌아간 듯 하군. 협회의 추적을 피하다니 나름 그날을 위해서 대비를 해두었단 것이겠지. 역시 대단한 친구야.'

 그가 생각하기에 제시카박사는 김박사의 진전을 이어 받은 제자들 중 가장 뛰어난 인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비록 다른 제자들과 달리 양산형 모델의 극한을 추구하는 이상한 집착이 있었지만 그녀는 나름 자신의 가치관에 입각하여 양산형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장점을 모아 팩토리시리즈를 만들어낸 것이다. 공장에서 찍어내 듯 가능한 모든 부품의 규격화를 이룬 그녀가 얻은 것은 현재로서는 나름 한국을 제외한 국가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신흥 조직 그린킹덤의 천적이라는 타이틀과 그런 그린킹덤의 숙적 기다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이었다.

 그리고 인맥적 동맹관계인 자신에게도 알리지 않은 체 숨겨놓은 팩토리시리즈를 뛰어넘는 기체도 있었다. 네오서울시와 기다그룹의 관리하에서 팩토리시리즈를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기도 했지만 협회의 추적을 뿌리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인데 현재까지 그와 관련하여 어떠한 소식도 없는 것을 보니 완전하게 흔적을 지우고 사라질 수 있었던 것이다. 내심 강훈을 스카웃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느끼는 그였다. 적어도 그녀에게 유일한 약점이 있다면 강훈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

"말도 안되잖아. 누가 왜 전투를 방해한거지?"

"기다그룹이 난개발 의혹도 있으니 그 반대세력 중 하나 아닐까요?"

"그렇지만 기다그룹은 친환경 도시개발을 하기 때문에 자연주의에 엄격한 그린킹덤 말고는 적도 없단 말이죠."

"흔적도 없고...베리어를 간섭하는 EMP라니 현재까지의 외계종족과 이계인들 어디에서도 못 본 기술력입니다."

 시끌벅적 갑론을박이 한참인 이곳은 히어로협회의 회의실이었다. 중견 히어로이자 현역 국제히어로협회의 이사로 참여하고 있는 이들은 방금전까지 그린킹덤과 기다그룹의 북미지역 전투가 누구에게 방해를 받은 것인지 토의중이었던 것이다.

"자자. 조용히! 회장님께서 발언 하시겠습니다."

 회의실 중앙에 놓여진 테이블의 상석에 앉아있던 인물의 옆에서 누군가가 손뼉을치며 좌중을 조용히 시켰다. 그러자 상석의 인물이 손가락을 허공에 올려 돌리기 시작했다.

- 기이이잉.

 그의 손가락의 움직임에 맞추어 허공에서 정교한 홀로그램이 나타나며 논의의 대상이 된 전투의 영상이 다각도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아카식레코드를 기반한 필드 레코딩의 데이터. 공간 그자체를 모두 담아둘 수 있는 현재의 기술력이 가진 최고의 기록방식이었다. 그러나 난입자는 이런 인과의 존재라면 피할 수 없는 기록도 벗어나 있었다. 도무지 어디서 어떻게 공격하고 사라진 것인지 지구를 지키는 최고의 기관인 국제 히어로 협회에서 알 수 없다는 점은 매우 큰 충격인 것이다.

 한동안 화면을 시켜보더니 회장으로 짐작되는 그 인물은 누구나 매력적이라고 느껴지는 중저음 음색으로 입을 열었다.

"큰일인 것은 맞습니다. 우리 협회에서 포착이 불가능한 공격자라니 협회가 생긴 이후로 이런 일이 처음이라 다들 혼란에 빠진 것도 이해가 되지만 생각해보면 이런 미스테리한 적의 등장에서 지구를 지켜온 우리가 아닙니까. 외부의 혼란도 있으니 우선 이 일은 협회에서만 극비로 취급하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마침 전투기록관에게서 분석자료가 왔는데 같이 보도록 하지요."

 회장이 다시 손가락을 움직이자 그 전투의 기록이 수치상으로 표시되기 시작했다.

-- 전투 분석자료 by 닌자 히어로 Tobi
-- 기다그룹 검은 삼총사 데이터
-- 대장기체 헤르멧MK2 파일럿 마일스 : 종합 전투력 3000
-- 기체 헤르멧MK1 파일럿 에릭 : 종합 전투력 2500
-- 기체 헤르멧MK1 파일럿 션 : 종합 전투력 2400

-- 그린 킹덤 타이탄 V5.2.2f 데이터
-- 대장기체 타이탄 파일럿 2호 : 종합 전투력 3500
-- 환조형 환수 가루다 : 종합 전투력 2000
-- 마수형 환수 가벨 : 종합 전투력 1800

-- 전투 종반 그린킹덤의 타이탄에서 파일럿 교체 및 합체 기믹이 있었음.
-- 대장기체 킹타이탄(타이탄+가루다+가벨) 파일럿 0호 : 종합 전투력 4000

-- 전투 분석 의견란 : 타이탄의 합체 후 종합전투력의 효율이 다른 합체형 케이스에 비하여 매우 좋지 않았지만 검은 삼총사의 기체의 연식이 오래되어 약간의 우위를 보여줍니다. 전투 종반에 발생한 EMP공격이 아니더라도 상황상 무승부가 이어질 수 있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EMP공격으로 이득을 본 것은 양측 모두의 피해가 적게 끝났다는 점에서 누구라고 특정은 불가능했습니다.

 자료를 모두 확인하는 시간을 가진 후 회장이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보신 자료와 같이 전투 자체도 특이할 것 없는 평범한 내용이었지만 난입으로 인하여 누가 더 이득을 본 것도 아니었습니다. 히어로 Tobi는 은밀조사 및 자료분석의 전문가로서 그가 파악하지 못했다면 그런 것이겠지요. 내 생각에 이것이 끝이라고 생각이 되지는 않습니다. 이 문제는 좀 더 기다리도록 합시다. 반대하시는 이사님은 있습니까?"

 그의 깊은 눈 빛이 회의장의 모두를 흩고 지나갔지만 아무도 반대의 의견을 내보이지 않았다.

"그럼 다음 안건을 부탁합니다. 캉가 부회장."

- 탕탕

 회장의 옆에서 있던 인물, 무적 합금 초인 캉가 부회장이 의사봉을 휘두른 뒤 다음 안건을 말하기 시작했다.

"김철수 소장을 공격해 비공식 대결을 진행한 그린킹덩의 제재에 누구를 파견할 것인지 입니다."

 잠시 뜸을 들이던 그는 슬쩍 회장을 본 뒤 말을 이었다.

"이건 제 생각이지만 로봇 히어로 테크노포스에게 맡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로봇 분쟁에서 그보다 더 뛰어난 히어로가 없지 않습니까?"

 테크노포스는 합금 초인 캉가와 같이 로봇 생명체로 분류되는 히어로였다. 기계생명체의 최상위 종족 중 하나였으며 로봇에 대한 문제에서 탁월한 처리를 자랑했다. 그리고 캉가 부회장의 라인으로 분류되는 이사회 후보였다. 언젠가 현 회장이 물러나면 자신의 입지에 도움이 될 것이기에 그를 추천한 것이다.

"아  좋습니다. 테크노포스라면 충분하겠지요. 그런데 얼마 전에 트럭형태로 변신한 어떤 히어로가 신호위반에 걸렸다는데 들은 적 있으십니까? 캉가 부회장님."

 회장의 우측에 있던 캉가 부회장과 달리 회장의 좌측에 앉아 있던 인물이 이의를 제기하는 듯 했다. 그는 캉가와 같은 국제 히어로 협회의 부회장으로 있는 마신 사이보그 크로노스라는 인물로 금속 생명체로 이루어진 캉가 측과는 회장의 자리를 두고 경쟁하고 있는 상태였다. 특기로는 마신 합체, 일반적인 부분 합체와 달리 종속된 외장갑 로봇과 하나가 되어 천지수화의 힘을 빌어 최대 3번까지 강해지는 것, 로봇 그 자체인 캉가와 부분은 로봇이지만 로봇을 갑옷으로 보는 크로노스는 이런 견해의 차이로 인하여 불과 기름에 가까운 사이이기도 했다.

"테크노포스가 도로 위에서 변신하다 정지선을 넘어선 것은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신호위반은 아니었다고 하니 모르겠군요."

 겉으로는 온화한 대화였지만 둘 사에서 일어난 파이팅 오라는 그리 온화하지 않은 듯 서로 간섭하며 에너지를 주변으로 방전시키고 있었다. 기계형태를 히어로의 특성상 에너지를 상시 체내에 상용시켜서 감정과 같이 흘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 둘 사이에서 전기 폭풍의 자극으로 인해 머리가 꺼꾸로 올라선 회장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다시 움직였다.

"두 사람 모두 그만 합시다. 매번 이렇게 전기를 흘려대니 내 머리가 꺼꾸로 솟아 버리지 않습니까. 이거 주문이라도 꺼꾸로 외워야 할 판인데 하하하. 응?"

- 쉬익.

 그러자 주변이 얼어 붙는 듯한 파동이 공간을 쓸고가며 거짓말처럼 부회장들의 파이팅 오라가 사라졌다. 회의장이 안정화 된 것을 확인한 회장은 다시 입을 열었다.

"크로노스 부회장님은 테크노포스 파견에 반대하는 겁니까?"

"하하, 회장님 아닙니다. 반대라니요. 저도 찬성입니다."

 사실 크로노스 입장에서도 딱히 반대하고 추천할 대안은 없는 게 사실이었다.

"좋습니다. 다른 의견이 없으시다면 이번 건은 로봇 생명체 히어로 테크노포스를 파견하는 것으로 결정하겠습니다."

- 짝짝짝! 짝!

 모두의 박수가 이어지며 회의가 마무리되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