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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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5-6월 두 달 동안 청계 2가와 종로 2가를 오가면서 프로젝트를 했습니다.
낙원상가에서 을지로 넘어 명동성당으로 이어지는 부근을 꽤 돌아다녔는데,
매일 점심 시간에 종로 2가에 있는 알라딘 중고 매장에 들르는 것이 낙이었죠.
넥타이를 맨 직장인들이 더위도 식히고 구경도 할 겸 꽤 많이 드나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시 초여름 더위가 막 시작되었던 시절,
6월 더위에 점심 시간을 알라딘 매장에서 보내고 있으려면 그냥 마냥 행복했습니다.
일이 상당히 터프한 상황에서도 마음이 즐거우니 어려움도 긍정적으로 넘길 수 있었죠.
두 달 여 간의 프로젝트가 끝나면서 종로2가를 떠나게 되었을 때,
가장 아쉬웠던 것은 알라딘 중고 매장과 이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7월부터 종로5가에서 프로젝트를 했습니다.
부근에 종로 6가 대학천 책 도매상과 평화시장 헌책방 상가가 있었고,
종로 5가에서 북쪽으로 쭉 대로를 따라 혜화역으로 직선으로 올라간 후
성균관대로 넘어가는 젊음의 거리를 가로지르면 알라딘 중고 매장 혜화점이 있어서
7월 내내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 듯 계속 출근부 도장을 찍었습니다.
아무래도 큰 학교가 있는 지역이라 매장에는 대학생들이 많았죠.
그리고 8월 중순이 되어 프로젝트를 일단 마치고,
이번에는 강남으로 넘어와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나가는 길에 강남역쪽으로 가는 버스간에서 창 밖을 보니
어느새 강남역 CGV 극장 건물 지하에 알라딘 중고 매장 강남점이 생겼더군요.
강남점 역시 인테리어, 컨셉, 책들 거의 모두 종로2가와 혜화점과 유사했습니다.
젊은 연인들과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것이 8월 폭염을 피하면서
싸고 좋은 책들을 쾌적한 환경에서 접할 수 있다는 것을 신기해 하고들 있었습니다.
알라딘 중고 매장은 분명 헌책방입니다.
하지만 인테리어나 배치 등은 대형 자본의 힘들 빌어 일반 대형서점처럼 꾸며 놓았죠.
쾌적한 환경에서 무척 싼 가격에 책을 제공하고 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합니다.
기존 헌책방들은 고객이 먼지와 곰팡이가 가득한 낡은 책 무더기 속에서
나름 자기만의 잣대로 보물을 찾아 헤치고 다니는 방식이었고,
그래서 귀신 뺨치는 책 전문가들이 드나드는 공간이었다면...
알라딘 중고 매장은 목표로 하는 고객 층이 아예 다릅니다.
책도 헌책의 경우 매우 상태가 좋은 것만 취급하고,
출판사 창고에서 흘러나온 재고서적이 훨씬 더 많죠.
다시 말해 새책같이 상태가 우수한 책만 골라서 쾌적하게 판매한다는 방식입니다.
두 달 전 용산역 뿌리서점에 잠시 들렀다가,
정말이지 알라딘 중고 매장과 정 반대의 모습이어서
주인장 어르신 모시고 알라딘 매장 투어를 다니고 싶은 마음이 일었더랬습니다.
알라딘 중고 매장의 영업 방식은 기존 헌책방들을 초토화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인근의 새책방들도 초토화 시켜버리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어느새 곳곳에 매장을 늘려가고 있는
프랜차이즈 대형 헌책방 알라딘 중고 매장...
저는 어느새 그 분위기와 상태 좋은 책들과 싼 책 값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딴은 "알라딘의 마수"에 사로잡힌 셈이죠.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을 터인데,
마치 재래시장과 대형마트의 경쟁을 바라보는 느낌조차 듭니다.
오늘 조금 일찍 퇴근하게 되어,
집 근처 동네에 은행일을 보러 낮 시간에 좀 돌아다녔습니다.
아예 "제가 사는 동네"인 산본역 부근에 알라딘 중고 매장 산본점이 생겼더군요.
헌책방이 무엇인지 개념조차 없는 사람들도 호기심에 들러서 아주 재미있어 하고들 있었습니다.
알라딘 중고 매장이 싼 가격에 쾌적하고 멋들어진 인테리어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으니
이제 바로 인근에 위치한 나름 중견급 대형서점인 산본문고와 자유문고 산본점 등은
명줄이 경각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최근 잘 나가는 대상에 대하여 "진격의 거인"을 수식어로 붙이는 것이 유행이더군요.
저는 "진격의 거인"이라는 말과 모습이 가장 잘 어울리는 대상으로
한국 책시장을 초토화하고 있는 알라딘 중고 매장을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제가 살고 있는 인구 25만 정도 밖에 안되는 작은 중소도시까지 공략할 줄이야...
호오, 한 번도 들러본 적은 없지만, 상당히 끌리는군요. 사실 출판사에서는 표지가 살짝 헐거나 조금 찢어졌다는 이유로 재고 처리를 하거나 중고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죠. 거의 새책이나 다름없으니, 그런 걸 중고 가격으로 산다면 상당한 이득일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책을 깨끗하게 보관하고 싶은 사람한테는 그리 매력이 없을지도…. 책이란 게 결국 종이라서 덜렁대는 성격이라면 쉽게 파손되더군요. 개인적으로 작은 흠집이 점점 번져서 책장이 떨어져나간 적도 몇 번 있었습니다.
그리고 중고 책방이라고 해도 헌책방처럼 보물찾기는 힘들 듯. 진짜 레어 아이템은 헌책방을 몇 군데나 뒤져도 잘 안 나오니까요.
■ 전 책을 많이 사는 편은 아니지만, 되도록이면 제 값다주고 새책을 구매하는 편입니다. 물론 구하기 어려운 옛책들은 오래된 헌책방을 이용합니다. 비용이나 가격면에서는 더 들지 몰라도, 이쪽이 저한테는 더 맞는 듯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냥 한 번 읽어버리면 다시 않보게 되는 경우가 많더군요.
■ 요즘 같이 오래 다녔던 기존의 서점들이 하나둘씩 사라져가는 것을 보면 참으로 씁쓸하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