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격전이 이어지는 전장의 한켠에서는 히어로 방송팀의 내부 회의가 현재까지도 분주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흉흉한 전투상황에 따라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스탭이 늘어나 철수를 주장하던 의견이 과반을 넘어서려 했었지만 이내 팩토리발키리라는 새로운 변신형태가 나타나자 특종 상황에 어울리는 구성으로 변경이 필요해진 참이었다. 여기저기서 의견이 도출되기 시작했다.

"로봇의 형태와 네이밍 자체도 발키리, 여성형 아닙니까. 지금 당장 여성로봇 파일럿 출신을 섭외해보는 건 어떨까요?"

"마침 은퇴한 파일럿 중에 여신로봇 아테나를 조종하던 마리아씨가 한국에서 휴양중이라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파일럿 마리아는 섹시한 누님 스타일과 말투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현재는 은퇴후 모델로서 활동하고 있었다. 수긍을 보이던 PD의 의견이 나오기도 전에 반대편에서 다른 의견이 제시되었다.

"마리아씨도 좋지만 귀여운 외모로 인기가 많았던 마법천사 프리티마스크는 어떻습니까?"

 프리티마스크는 현재도 활동 중인 귀여운 소녀 타입의 파일럿이었는데 약간의 보이쉬한 매력으로 인하여 성별 논란이 있던 히어로였다. 이밖에도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기 시작했지만 섹시 누님파와 귀여운 동생파로 팽팽하게 나뉜 상태에서 정리가 어려운 상황이라 최종 결정권은 총괄PD의 몫이었다. 힘겹게 PD가 입을 열기 시작하면서 모두가 그의 말을 숨죽이며 기다리던 중 무언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점차 크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어..이 소리 뭐야.."

- 콰아아앙!

 소리가 들린 후 바로 임시 회의실 내부로 거대한 도끼가 하늘에서 떨어져 회의실의 중심에 있던 네모난 탁자를 반으로 갈라버렸다. 그리고 그 충격파로 인하여 PD를 포함한 몇몇이 회의실 밖으로 튕겨 날아가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갑작스럽게 회의실에서 날려져 의자와 함께 제법 높은 하늘로 떠오른 히어로방송 총괄PD 고경대는 미려한 외관을 자랑하는 팩토리발키리의 모습을 직접 목도하면서 대지에 꼬꾸라지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방송팀 전원이 베리어 슈트를 입고 있어서 외부 충격을 막아줄 수 있었기에 별다른 상처를 입지 않았지만 하강하는 내내 예전에 자신이 현장 기자였을 당시 전장을 누비던 어떤 여성형 로봇이 모습이 뇌리에서 팩토리발키리와 오버랩이 되었다.

'같은 모습도 아닌데 이상하군'

 타이탄과 함께 등장하여 압도적인 실력으로 적들을 참혹하게 제압하고 파괴한 그 로봇의 정보는 오직 단 한번의 전투 참여만 있기 때문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았지만 총괄PD였던 그는 당시 현장에서 기자로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던 것이다. 그 전투 방식과 모습은 어째서인지 현재의 팩토리발키리와 닮았다고 느끼고 있던 것이다.

'뭐 기분 탓이겠지..'

 고개를 절래 저은 뒤 총괄PD는 방송국 사람들을 추스르고 서둘러 장비를 전부 이동시키기로 했다. 이러 저런생각은 일단 뒤로하고 더 격전이 이어지기 전에 안전을 위해 좀 더 멀리 방송팀을 이동시켜야 했기 때문이었다.

.....

[방금 보셨습니까? 김소장님 팩토리엠페러가 변신했습니다.]

[예. 친절하게 로봇의 네이밍을 말해주는 것을 보니 원래 있던 변신기능인 것 같습니다. 팩토리발키리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체적으로 기동성에 맞춘 듯 한 모습이네요.]

[그러고 보니 김소장님, 저렇게 변신하는 로봇이 과거에는 좀 있지 않았습니까? 언제부터인지 안보는 것 같은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맞습니다. 과거에 좀 있었죠. 동물형태에서 인간형으로 하거나 전투기, 자동차등 여러 형태에서의 다른 형태로 변화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다들 고질적인 문제로 인하여 사라져간 형태입니다.]

[고질적인 문제라면 어떠한 것이 있을까요?]

[분명 형태 변화로 좀 더 많은 전술이 가능해졌지만 파일럿에게 있어서 고도의 훈련이 추가되는 것도 있고, 예를 들면 인간형태의 격투기술을 배우던 파일럿이 헬기로 변신하는 덕분에 헬기 조작법도 훈련하는 과정에서 전문성이 떨어지는 것이죠. 이를 제외하면  변신으로 인하여 에너지 소모가 너무 크다는 것도 있습니다. 외장이 변형하는 과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들 극심한 에너지가 필요해지기 때문에 현재에 와서는 예산상의 이유로도 변신기능을 제외하고 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처럼 국가나 초국가적 재벌 쪽에서 지원을 나서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말이죠.]

[매우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군요. 그런데 팩토리발키리는 그러한 점을 모두 인지하면서도 변신을 했다고 볼 수 있겠군요.]

[조금 다른 경우이겠지만 팩토리엠페러 형태에서의 상성이 좋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선택했다고 보여집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김철수소장님. 그런데 방금 방송 중계를 진행하던 장소로 전투로 인한 파편이 떨어졌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잠시 광고 후 전투 상황을 중계토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CM : 어리버리 왕자와 사로잡힌 충신들. 리얼한 전장 디펜스 캐슬워즈 디펜스 EX!]

.....

 다시 전장으로 가서, 타이탄에 탑승한 강훈 반장은 이마에서 흐르고 있는 땀이 자신의 턱을 타고 손등으로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평소 장갑을 끼지 않는 주의이기 때문에 그 촉감이 그대로 느껴졌지만 그로서는 이를 신경쓰고 있을 틈이 없었다. 변신한 팩토리발키리의 기동성은 그가 할 수 있는 예측성을 뛰어넘는 것이기 때문에 약간의 방심도 허용치 않았던 것이다. 이미 유일한 무기마저 파괴당한 상황에서 그의 선택은 오직 방패를 이용한 것 뿐이었다.

- 카아아앙! 캉!

 날카로운 충돌음이 이어졌다.

- 콰아아앙!

 폭발음도 곧이어 이어졌다. 소리의 정체는 팩토리발키리가 가진 팩토리랜스의 공격으로 첫발은 랜스의 첫 부분이 방패와 충돌하며 났고 이어진 폭발음은 랜스의 에너지봄버가 방패에 접촉하면서 일어난 것이었다. 둘 다 타이탄의 수많은 전투에서 뒤 이리저리 땜질된 타이탄의 조악한 바디로는 버틸 수 없는 공격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타이탄의 방패는 이겨내었다. 이 때문인지 공격을 하던 팩토리발키리의 조종석에서도 감탄이 절로 흘러나왔다.

"대단해, 리더, 그린, 예전에 타이탄이 저 방패를 들고 나왔다고 했죠? 저걸 어떻게 부수었던 거에요?"

 과도한 아드레날린을 분비하는 듯 흥분상태 핑크의 모습을 보며 레드와 그린은 손사래를 쳤다.

"아냐, 우리도 저건 못 부쉈어."

"흠, 더 불 타오르네."

 말로만 들어보면 전형적인 열혈 주인공의 말투였지만, 핑크의 몸에서 발산되는 패기는 레드와 그린이 파일럿 면접장에서 J박사에게서 느낀 공포스런 압박을 상기할 수 있을 정도의 압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역시 사령관의 딸이라는 생각이 미칠 때 쯤, 갑작스럽게 팩토리발키리의 몸이 하늘로 튀어오르며 강한 압력이 조종실을 뒤흔들었다.

"좋아. 내 기필코 저 방패를 깨부술거에요. 리더, 그린 그럼 우리 힘내보아요~"

 갑작스런 충격으로 조종실 바닥을 구른 레드와 그린은 내부 스피커를 통해 제대로 들려오는 귀엽지만 패기넘치는 발언으로 인하여 조종실 의자에 서둘러 앉아 안전벨트를 매었다. 여태껏 타이탄과 전투를 벌이면서 안전벨트를 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젠 아무래도 좋았다. 그들은 빨리 전투가 끝나기 만을 빌기 시작했다. 마치 사장님과 같이 일하게 된 말단 사원의 기분이 이러할까? 사령관과 함께 전투하는 듯한 이 분위기가 그들에게는 죽을 맛이었던 것이다. 레드는 내일부터 다시 봉투를 들고 다니기로 결심하는 순간이었다.

 한편, 갑작스레 하늘로 솟구친 발키리의 모습을 보며 타이탄에 탑승한 강훈 반장은 일말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매 공격이 매서운 것이지만 이번 공격은 발키리폼의 피니쉬 어택일 확률이 컸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이제 10여분정도, 대략 현재까지의 상황을 볼 때 5~7회정도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지만 이 공격은 잘못하면 이승에서의 오늘로 굿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급하게 강훈 반장은 숨겨놓은 기능을 활성화하도록 어떤 버튼을 눌렀다. 원래부터 타이탄을 조종하던 닥터 노스트라는 외관상의 이유로 반대한 기능이었지만 자신이 끝까지 밀어붙여서 준비해 둔 기능. 좀처럼 쓰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자 타이탄의 파괴된 오른팔이 뚝 떨어지며 장난감 깜짝상자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팔이 쑤욱 튀어나와 길게 늘어지며 전방에 있는 거대한 기둥을 붙잡았다. 그 뒤 바로 하늘에서 찬란한 빛과 함께 가공할만한 에너지장을 휘감은 팩토리랜스가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며 직격했다.

[소닉 랜스 어택!]

- 쿠아아아앙!

 엄청난 굉음과 폭연이 지나간 후, 거대한 크레이터가 만들어진 중심부에서 랜스를 땅에 박은 발키리의 모습이 들어나고 이내 허공에서 타이탄 실드가 팽이처럼 빙글 돌며 떨어져 땅에 박혔다. 마치 타이탄 몸체 자체만 먼지로 만든 듯 방패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모습에 모두가 놀랐지만 팩토리발키리는 위험을 감지하고 땅에 박힌 랜스를 놓은 체 옆으로 굴러야했다.

-쉬이이이익!

 방금 전까지 발키리가 있던 자리에 조악한 장남감 같은 타이탄의 오른팔이 파란색의 빛을 뿜으며 지나가고 있었다. 이내 목표물을 상실한 탓인지 팔은 다시금 각도를 바꾸며 땅에 박힌 방패를 잡고 전장을 외부와 차단시킨 베리어 필드의 기둥에 있는 타이탄으로 복귀하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소닉 랜스 어택에서 타이탄은 그 팔의 기능을 이용하여 고속이동 후 회피에는 성공했지만 그래도 성능상의 차이라는 것이 너무 큰 관계로 완벽하게 피할 수는 없어서 방패로 충격을 완화시킨 체 피해야 했던 것이다. 덕분에 충격으로 왼팔과 일체화 되어 있던 방패가 분리되는 문제가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탈착식 형태였기 때문에 왼팔 자체가 뜯겨져 나가는 것은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팩토리발키리에게서 재미있다는 듯한 변조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굉장히 재미있어요. 타이탄에 누가 탄건지 모르지만 사람은 맞겠죠? 자 이제 랜스없이 싸워볼까요?]

 그 목소리의 주인은 팩토리 핑크였다. 사실 그녀는 DDS를 기반으로 만들어져 현재까지도 세계적인 히트를 하고있는 체감형 로봇 격투게임 발할라나이트의 챔피언이라는 숨기고 있던 내용이 있었다. 그 때문일까 처음 파일럿이 된다는 사실에 푸푼 가슴을 안고 전투에 나섰지만 게임과는 다른 현실에서의 실망을 느끼고 있었던 핑크는 엄마인 J박사와의 관계 때문에 그리고 챔피언이자 거대 길드의 수장으로서 씀씀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파일럿을 지속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DDS를 통한 리얼하고 치열한 전투에 익숙한 그녀로서는 현실에서의 타이탄과의 전투는 따분함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런데 리더인 레드가 손가락 몇번 까딱하면 끝나는 패턴이었던 전투가 지금 DDS를 뛰어넘어 생생하고 팽팽한 긴장감을 주는 격전을 연출하며 핑크가 가지고 있던 챔피언의 긍지를 불태우기 시작한 것이다.

 팩토리발키리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랜스를 버려둔 체, 방패를 회수중인 타이탄을 향해 달려갔다. 회수되는 방패의 속도와 별차이 나지 않을 정도로 빠른 기동성이었다. 거의 타이탄과 근접하게 되었을 때, 발키리는 몸을 회전하며 수도를 날렸다.

 사실 아까 소닉 랜스 어택을 사용했을 때 이미 에너지 부족으로 인하여 더이상 랜스를 통한 공격은 불가능한 상태 그렇기에 핑크는 자신이 자랑하는 체술을 통한 공격을 시작했던 것이다. 이 타이탄의 몸체를 가르는 수도 역시 핑크가 게임에서 자주 사용하는 기술 중에 하나였다. 그리고 덧붙여서 말하자면 이 팩토리발키리야 말로 그런 그녀를 위해 특별하게 게임과 같은 조작성으로 커스텀된 형태의 로봇이었던 것이다.

- 슈우욱!

 바람을 가르는 파공음과 같이 팩토리발키리의 수도가 근접하는 와중에 간신히 방패를 회수한 타이탄이 서둘러 방패로 막았다. 현재 타이탄의 그 어떤 파츠로도 발키리의 공격을 막을 수 없었기에 구사일생의 상황이었다.

- 카앙!

....

 그런 전투를 지켜보던 그린킹덤의 내부에서는 여기저기 안도의 한숨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전투 내내 태연한 모습을 하고 있던 닥터 노스트라조차 그 장면에서는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그리고 노스트라는 서둘러 자리에서 벗어나 조용한 곳으로 향했다. 슬쩍 나가며 본 타이머에는 앞으로 5분이 더 남아있었다. 가장 좋은 것은 5분을 버티는 것이지만 현재의 타이탄이 발키리를 상대로 이정도만 해도 나쁘지는 않은 성과였다. 내심 갈등하던 노스트라는 이내 결심한 듯 비밀 단말기를 통해 누군가와 문자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 상대는 도시개발사업부의 사령관 J박사였다.

[저기 저 아이 좀 말려봐. 일내겠어. N님의 메시지]

[저것도 다 데이터잖아요. 그리고 타이탄의 생명유지장치도 있고 말이죠. J님의 메시지]

 초조한 내용을 담은 노스트라와 달리 J박사의 메시지는 여유가 있었다. 자신이 아는 한에서 직접 설계에 참여했던 타이탄의 파일럿 보호장치들은 극히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파일럿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판단하기에는 적어도 파일럿이 죽을 일은 없는 것이다.

[...저기..그게.... N님의 메시지]

[설마..생명유지장치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죠? J님의 메시지]

[강훈 그 친구 전임자가 분석한다며 망가트려 놓았는지 초기부터 스테이터스가 표시되지 않아 정확하게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네. 우리가 왜 툭하면 퇴각했겠어 그러니까 얼른 말려줘! N님의 메시지]

[이런 무책임한 인간! 알겠어요. J님의 메시지]

 문자를 보내고 난 뒤, 닥터 노스트라는 초조한 내용의 메시지와 달리 살짝 미소지었다. 이 둘은 언제나 생각해도 신기한 커플인 것이다.

"난 거짓말은 안했어. 알 수 없다고 했지 작동 안한다고 한건 아니니까. 흐흐흐"

 그렇다 타이탄의 생명유지장치는 작동에는 문제가 없었다. 이정도는 하지 않으면 J박사가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닥터 노스트라는 참 아끼는 후배이지만 천성이 연구자인 그녀를 움직이기 위해 다소의 연출을 진행한 것이었다.

.....

 그런 노스트라와 달리 J박사로서에게는 상당히 상황이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냉정한 J박사였지만 그 문자를 받는 순간 가슴이 심하게 요동쳤던 것이다. 그리 좋은 사이는 아니었지만 어찌되건 비극을 보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천성이 연구자이자 비정한 과학자였던 그녀는 지금 한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로서의 걱정과 두려움이 느껴지고 있었다.

'나쁜 선배 같으니...'

 다음에 반드시 이 일에 대해서 따지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하고는 J박사는 서둘러 상황실로 이동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