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작품들은 종종 장르 전형을 벗어납니다. 그리고 그런 작품들은 독특한 전개 때문에 걸작으로 대접을 받죠. 걸작 대접을 못 받아도 그 명성을 길이 남길 수 있습니다. 저는 <떠오르는 행성>, 그러니까 <스타타이드 라이징>도 그런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 겉표지는 이 책이 장대한 우주 전쟁물이자 스페이스 오페라라고 홍보합니다. 하지만 홍보 문구는 원래 과장이 심한 법이고, <스타타이드 라이징>은 우주 전쟁물이 아닙니다. 게다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스페이스 오페라도 아니죠.

물론 스페이스 오페라로서의 자격 요소는 모두 갖췄습니다. 장거리 항해 우주선, 수많은 종족들과 이질적인 문화, 끊임없는 다툼과 분쟁, 낯선 행성의 낯선 생태계, 기괴한 괴물, 머나먼 우주 탐사 등등. 이것만 보면, 인류가 우주선을 타고 외계 종족들과 신나게 싸우는 내용 같죠. 하지만 이 소설의 본질은 바이오펑크에 가깝습니다. 올라프 스태플던의 <시리우스>처럼 인간과 개조 동물의 관계에 집중합니다. 우주 전쟁, 여타 외계인들, 낯선 행성 등은 바이오펑크 주제를 보조하기 위한 디딤돌에 가깝습니다.


가령, 작중에서 인류 우주선은 함대 전투에 휘말리지 않습니다. 우주 함대 전투가 자주 등장하지만, 대결 구도는 언제나 외계인 대 외계인입니다. 그러니까 인류는 멀찍이서 구경하고, 외계인들끼리 치고 박는다는 뜻입니다. 외계인들이 행성 대기권 밖에서 박 터지게 싸울 동안 정작 인간 승무원들은 행성 내부에서 이것저것 탐사하기 바쁩니다. 당연히 소설의 비중은 주인공(인류)에게 쏠리기 마련입니다. 외계인들의 함대 전투는 주인공들의 위기 상황을 부채질하지만, 그 자체로서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마 외계인들을 제외해도 소설의 주제는 얼마든지 전달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주제가 무엇인가 하면, 개조 동물의 독립입니다. 앞서 언급한 <시리우스>처럼 인간은 동물을 개조했습니다. 여기서는 돌고래들과 침팬지가 나오는데, 지적 수준이 인간과 동일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지적 수준이 동일해도 개조 돌고래와 침팬지는 결국 피조물입니다. 창조자 인간이 만들었고, 인간은 주인 종족이고, 동물들은 피지배 계층입니다. 대부분 이런 작품에서는 피지배 계층의 혁명을 강조합니다. <프랑켄슈타인>이나 <로섬의 만능 로봇>처럼 인공 피조물이 자유를 부르짖고, 결국 지배 종족(인간)과 커다란 갈등을 벌입니다.


하지만 <스타타이드 라이징>의 궤도는 저런 작품들과 다릅니다. 개조 돌고래와 침팬지는 피지배 종족이지만, 대놓고 지배 종족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인류 전체는 이 동물들을 지배하지만, 주인공 승무원들과 돌고래와 침팬지의 관계는 꽤나 다양합니다. 어떤 승무원은 절반쯤 돌고래이고, 어떤 승무원은 돌고래와 불알 친구 사이이고, 어떤 승무원은 침팬지에게 쩔쩔 맵니다. 그리고 돌고래들의 성향도 다양합니다. 누구는 현명하고 어진 지도자이고, 누구는 지배 종족을 본능적으로 존경하고, 누구는 반란 기질이 강하고, 누구는 인간을 성추행(?)합니다. 자연히 돌고래들끼리 싸움도 하고, 뭉치기도 합니다. 각자 좋아하는 인간들이 다르고, 그래서 새로운 갈등이 파생하죠.

따라서 이 책은 여타 바이오펑크 혹은 로봇 소설과 다릅니다. 피조물이 반란을 일으킨다는, 뻔한 줄거리를 따르지 않습니다. 그런 분열이 없지 않지만, 인간과 돌고래와 침팬지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관계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 책은 외계인보다 개조 동물을 더 중요시하고, 가끔 외계인은 들러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까 스페이스 오페라보다 바이오펑크에 가깝죠. 흠, 차라리 <중력의 임무>가 떠오른다고 할까요. 절대로 <노인의 전쟁> 같은 부류는 아닙니다. 그런 면모가 없지 않지만, 중심이 아니라는 겁니다.


아마 우주 전쟁물을 기대한 독자는 실망할 겁니다. 인류 우주선이 머나먼 우주를 항해하며 외계 우주선들과 미사일을 주고 받거나 그런 거 없습니다. 인간 승무원들이 나오는 장면만 따로 추리면, 이게 정말 스페이스 오페라가 맞는지 아닌지 헛갈릴 겁니다. 그보다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에 관심이 많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개조 돌고래들이 여타 스페이스 오페라의 외계인 비중을 죄다 가져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더군다나 이 책은 단지 의인화한 돌고래 묘사에 그치지 않습니다. 비록 실제 돌고래 생태와 관련이 없지만, 소설 속의 돌고래들은 그야말로 해양 포유류처럼 행동하고 사고합니다. 그들의 사고는 인간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장르 작품은 인간과 다른 종족의 차이점을 강조하기 위해 종종 가상 언어를 언급하죠. 이 책의 3중시 역시 가상 언어로서 돌고래만의 차이점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미국 작가의 와패니즘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런 것과 거리가 한참 멉니다. 그야말로 돌고래답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위에서 언급한 <시리우스>에서 주인공 시리우스는 개조 양치기 개입니다. 시리우스는 태생적인 한계 때문에 인간과 어울릴 수 없고, 그것 때문에 고통을 받죠. <스타타이드 라이징>의 돌고래들은 엄연히 우주선 승무원이니까 시리우스보다 사정이 훨씬 낫습니다. 그러나 역시 생명은 외부 환경과 태생 조건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죠. 돌고래들도 그런 속박에 매달리고,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서 뭔가 원대하고 특별한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개조 돌고래가 자각하는 대목은 엄숙하면서 기이합니다. 새로운 생명이 다시 태어난다고 할까요. 프랑케슈타인이 자신의 사상을 설파하고, 시리우스가 자기의 불행을 토로하고, 로섬의 로봇들이 진정한 생명으로 각성하는 것처럼…. 개조 돌고래도 그와 비슷한 과정을 거치고, 거기에서 절정을 맞이합니다. 결국 바이오펑크는 생명을 이야기하고, 이 장르의 카타르시스는 신종 탄생에서 나오기 마련이죠. 이 책은 그런 카타르시스에 충실합니다. 게다가 돌고래답게 사상의 바다를 헤엄치는 듯합니다.


이처럼 돌고래가 주인공이니까 배경 무대 역시 평범한 우주선이나 지상이 아닙니다. 돌고래 승무원들이 충분히 활약할 수 있도록 우주선 내부는 수중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우주선이 물로 가득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우주선은 낯선 행성의 바다에 불시착하고, 돌고래 승무원들은 거기서 마음껏 헤엄칩니다. 아마 바다가 이토록 줄기차게 나오는 우주 탐사물도 없을 겁니다. 아니, 그런 소설들도 아마 수두룩하겠지만, 주인공이 돌고래라서 해양 환경이 더욱 독특하게 보입니다. 스페이스 오페라가 아니라 오션 오페라로 불러도 될 겁니다. (오션 오페라, 이거 괜찮은 장르 명칭이네요. 바다는 우주처럼 신비롭고 놀라운 공간이니까 오션 오페라를 하위 장르로 분류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주연 우주선은 사실 우주선이 아니라 침몰한 잠수함 취급입니다. 우주를 누비기보다 심해에서 오도가도 못하는데, 이게 무슨 우주선이겠어요. 잠수함이라고 불러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돌고래 승무원과 잠수함 같은 우주선이라니…. 게다가 그런 돌고래 승무원의 각성과 다양한 관계와 변화를 다루니까 독자들이 이 책에 열광한 게 당연하죠. 다만, 소설 속의 개조 동물은 두 종류인데, 침팬지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약합니다. 인간-돌고래-침팬지 3파전이 벌어졌다면 소설 전개가 좀 산만헸겠죠. 그래도 침팬지의 비중은 좀 아쉽더군요. 어쩌면 다른 시리즈를 보면, 침팬지들이 좀 더 비중있게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스타타이드 라이징>은 온전한 독립 작품이 아닙니다. 기나긴 시리즈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소설의 떡밥, 의문, 설정, 갈등은 완전히 풀리지 않습니다. 소설 자체도 재미있지만, 저런 떡밥과 의문이 그대로 남아서 섭섭했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시리즈가 나올지 어떨지 모르겠어요. 여하튼 다른 시리즈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독특하고 재미있는 소설을 읽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