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헤일로 : 리치>를 하다 보면 우주 전투기를 타고 리치 행성 밖으로 나가는 미션이 있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전투기가 낯이 익길래 어디서 봤나 싶었더니 <홈월드 2>에 나왔던 히가라 인터셉터랑 비슷하더군요. 다른 분들은 어떠실지 모르겠는데, 제 눈에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홈월드> 전투기들 생각도 나고 해서 몇 자 적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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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봤던 우주전투기 중 가장 인상적인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주저 없이 쿠샨 전투기를 꼽겠습니다. <홈월드>를 하기 이전까지 제가 생각했던 우주전투기의 고정관념을 한방에 날려버렸기 때문입니다. X-윙이나 타이파이터 등으로 대변되는 기체를 하도 많이 봐서 그런지 지금의 전투기와는 다르지만, 여하튼 조종석이 앞에 있고 날개가 붙어있는 비행체를 우주전투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애로우 전투기는 어딜 봐도 비행기다운 구석이 없습니다. 특히 블레이드 인터셉터 쪽은 그런 특성이 더하죠. 그렇다고 자동차도 아니고, 배라고 하기도 좀 희한합니다. 잠수함이나 잠수정이라고 부르기도 어색하죠. 허나 명칭과 상관없이 애로우는 효율적인 모양새를 갖추었습니다. 우주에서 고속으로 비행할 수 있는 요소들로 구성했죠. 현재의 그 어느 교통수단과도 비교가 힘든 것, 하지만 우주를 비행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쿠샨 파이터의 매력입니다. 첫 등장 시에 배경음 카락 시스템과 함께 하면 가히 감동의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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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너무 기능만 따져도 재미없죠. 그 점에 있어서 타이단 피르칸 전투기는 멋과 실용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았습니다. 저는 타이단 함선 디자인은 진짜 싫어하지만, 파이터 부류는 참 좋습니다. 언뜻 보기에 이 기체는 미래형 비행기 같습니다. 조종석이 기체 전방 중앙에 붙어있고, 동체 뒤엔 날개가 있습니다. 그러나 동체는 수평이 아니며 완만한 부채꼴을 이루며 구부러졌습니다. 마치 하인드 헬리콥터의 조종석만 떼어내 과장시켜 부풀린 모습이죠. 머리부터 분사구까지 일직선을 이루는 여타 비행기들과는 현저히 다릅니다. 또한 네 날개도 수평을 이루지 않으며, 거의 방사선으로 뻗었습니다. 양력을 받는 날개라기보다 균형을 잡기 위한 추에 가까워 보입니다. 이런 모습이 우주 전투에 얼마나 어울릴지야 모르겠습니다만. 비행기의 기본 골격을 따르면서도 이질적인 형태를 만들었기에 SF 속 우주전투기의 요건에 딱 알맞다고 생각합니다. 저한테 가장 인상적인 우주전투기는 쿠샨 파이터입니다만, 가장 좋아하는 기체는 피르칸 전투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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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샨 파이터의 충격이 꽤 컸던 터라 <홈월드 2>에 나오는 히가라 스카웃을 보고서 좀 실망한 것도 사실입니다. 쿠샨 함선은 거대한 모선부터 작은 드론까지 하나같이 명품 디자인이었습니다. 헌데 히가라는 모선만 빼고 기존 디자인을 버렸습니다. 두드러진 게 스카웃인데, 곡선미가 상당히 두드러집니다. 애로우 파이터가 밋밋한 직선 위주였다는 것과 큰 차이죠. 하지만 히가라 스카우트는 곡선미를 살리는 데 그치지 않고 아예 과장까지 갔습니다. 둥그런 헤드라이트를 박아놓은 것마냥 보이는 전반부, 울퉁불퉁한 기체, 상투적으로 붙은 날개까지. 저는 이걸 처음 보고 E.T. 얼굴에 작대기를 붙여놨지?란 생각을 했습니다. 헤드라이트가 정말 눈알처럼 보입니다. 전면에서 가만히 쳐다보면 윙크라도 할 것 같아요. 설마 우주전투기 중에서 눈깔괴물이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인터셉터나 봄버는 그런대로 무난한 모양입니다만. 여러 의미로 애로우 파이터를 처음 봤을 때만큼이나 충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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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쿠샨의 디자인을 진정으로 이어받은 건 베이거라고 생각해요. 파이터가 아니라 인터셉터 쪽이지만 여하튼. 베이거 전투기는 쿠샨 것만큼 좋기도 하고, 최소한 히가라보단 낫습니다. 일단 첫인상이 비행기란 관념을 깨기에 알맞습니다. 멀리서 보면 가느다란 바늘 같고, 가까이서 봐도 별로 다를 건 없습니다. 구조물이 좀 달리긴 했는데, 이게 날개인지 뭔지 구별이 안 가죠. 쿠샨 애로우를 길~게 잡아당긴 느낌? 더군다나 이 인터셉터는 조종석이 기체 후방에 붙었습니다. 일반적인 비행기가 전방 조종석인 것과는 큰 차이죠. 더군다나 애로우처럼 조종석이 중심축에서 약간 기울어졌고. 그래서 저는 베이거 인터셉터가 단순한 전투기라기보다 우주선의 축소판이라고 봅니다. 내부 보급이야 우주선보다 열악할 테지만요. 겉보기가 그렇다는 겁니다. 으로 볼 때도 쿠샨보단 베이거가 더 낫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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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 가능한 종족은 아니지만, 카데쉬 스워머도 괜찮습니다. 이건 비행기라기보다 우주선 부품이 떨어져 굴러다니는 것 같은 기분. 전투기보다 드론에 가까운 모양입니다. 원래 용도도 그렇고요. 드론을 방어가 아니라 공격에 쓰는 점이 차이점이지만. 작달막한 체구에 그러면서도 포대와 분사구 등 갖출 건 다 갖추었죠. 만약 실제로 우주 전투가 벌어진다면, 우주전투기들은 기껏해야 드론 역할을 할 겁니다. 2차 대전마냥 전투기가 날아가 모선을 공격하는 일은 없겠죠. 모선 근처에서 방어만 할 테니 아마 이런 모양새로 만들 겁니다. 무인 조종이니까 조종석 따위 필요 없고, 모함이 근처에 있으니까 연료 탱크도 넓을 이유가 없죠. 무조건 탐지기, 어느 정도의 연료, 최대한의 탄약을 싣고 빠른 속도로 비행하면서 있는 대로 퍼붓는 겁니다. 1~2편 통틀어서 우주 전투기의 실제 모양과 역할에 제일 충실한 기체가 아닐까요.

 

, 쿠샨이든 베이거든 우주전투기 자체가 말이 많은 물건이죠. 이걸 집어넣자니 뻔한 2차 대전과 다를 게 없고, 빼자니 속도감이 안 나서 전투가 심심하고. 저는 우주 전투를 구상할 때 거대 함선들끼리 미사일을 쏘고 회피기동을 하는 위주로 설정합니다만. 다른 사람이 구상한 우주 전투를 볼 때 전투기가 안 나오면 고개를 돌립니다. 모순이긴 한데, 역시 우주전투기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인가 봅니다. 좌우지간 저는 <홈월드> 크래프트가 제일 인상 깊었던 우주전투기였고, 그 중에 최고를 하나 꼽자면 단연 타이단 피르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