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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AW3 후기입니다. Two Weeks In Normandy라는 시나리오를 연합군으로 플레이 했는데, 제목에서 짐작이 가시겠지만 1944년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한 후 첫 2주간의 작전을 묘사한 시나리오입니다.

배경 :
 역사적으로 작전명 오버로드는 6월6일 새벽에 82공수사단과 101공수사단이 생 메르 에글리즈와 카랑탕 북쪽에 각각 강하하는 것을 시작으로 당일 아침 노르망디 해변에 내릴 대규모 상륙부대와 함께 해변의 교두보를 확보함으로써 독일 파시스트 정권을 서유럽에서 몰아내고자 하는 연합군의 큰 포부를 실행에 옮긴 첫걸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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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에 강하한 공수부대가 독일군의 후방을 혼란시키고 상륙부대의 수월한 전진을 위해 교량이나 도로, 거점시설 등을 확보하는 동안 상륙부대에게는 해안 동쪽에서부터 시작해서 유타해변의 미 7군단, 오마하 해변의 미 5군단, 골드 해변의 영 30군단, 쥬노 해변의 캐나다 3사단, 소드 해변의 영 1군단이 각각 상륙하여 독일군의 해안방어선을 돌파하고 이어질 아군 증원병력과 보급물자가 도착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라는 임무가 내려졌습니다. 따라서 상륙지점과 가장 가까운 항만시설인 셰르부르항의 개항이 오버로드 작전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로 부상했고, 그 임무는 나중에 유타해변에 상륙하는 미 7군단의 몫이 됩니다.

 시나리오의 플레이타임인 6월 6일부터 17일까지의 실제 역사적 경과를 간단히 보면, 최초 계획은 소드해변에 상륙하는 영 3사단이 D데이 당일날 빠르게 전진해서  캉(Caen) 코앞까지 도착하는 것이었으나, 독일 21기갑사단과 롬멜의 B집단군 예비병력의 저항으로 초반에 그 기도가 꺾여버립니다. 오마하 해변의 미 5군단은 생로(St. Lo)를 향해서 천천히 진격하고 있었지만, 그 동쪽 해안에 박혀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한 영국군은 현 상황을 타개하고자 독 352사단과 기갑교도사단(Panzer Lehr Division)간에 벌어진 간격 사이로 영 7기갑사단을 돌파시켜 캉 남서쪽 25킬로미터 지점까지 진출시켜보지만, 오히려 타이거탱크로 무장한 501중전차대대와 최근에 증원되어 도착한 2기갑사단의 반격을 받아 약 20대가량의 전차 손실만 기록하고 6월 15일에 다시 8킬로미터 후방으로 철수하게 됩니다(비슷한 시기에 미 5군단도 보카쥬 지대에서 저항하는 독일군을 압도하지 못해 일시적인 고착상태에 빠지죠). 게다가 히틀러의 승인을 받은 룬트슈테트가 1 SS기갑사단 및 2 SS기갑사단을 포함한 더 많은 부대를 영국군 방향으로 이동시킴으로써 6월달 안으로 있어야 할 연합군의 캉 점령은 실패로 돌아갔고, 이는 곧 7월달에 있은 작전명 Goodwood를 통해서 다시 부활하게 됩니다.

 코탕탱반도에 상륙한 미 7군단은 17일까지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했고, 101공수가 카랑탕(Carentan)을 놓고 벌인 공방전을 빼면 얘기할 것이 별로 없습니다. 롬멜은 해안에 상륙한 미군을 효과적으로 묶어두기 위해서는 카랑탕을 반드시 사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D데이 당일날 가능한 많은 병력을 끌어모아서 카랑탕을 방어하려고 했지만 근처에 있는 B집단군의 예비병력은 남아있는게 별로 없었죠. 당시 카랑탕에 주둔하던 독일군은 6공수연대 하나 밖에 없었고, 캉 방면으로 투입되고 남은 유일한 예비군은 17기갑척탄병사단 하나 뿐이었기에 롬멜은 이 사단을 카랑탕으로 즉시 증원하지만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방해공작으로 6월 11일까지 카랑탕에 도착하지 못합니다. 해군의 함포사격과 야전포대의 지원을 등에 업은 101공수는 그날 저녁부터 12일 동틀녘까지 이어진 공격 끝에 카랑탕을 수중에 넣었고, 그날 아침에 늦게나마 도착한 독 17척탄병사단이 반격을 가해보지만 그 때는 이미 유타해변에 내린 미 4사단이 카랑탕으로 증원된 다음이었기 때문에 별 성과도 없이 물러나고 맙니다.

후기 :
 처음에는 오버로드 작전의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서 아는바가 없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저 역시 실제 역사적 배경과 비슷한 전철을 많이 밟았습니다. 미군이 상륙한 노르망디 서해안은 독일군의 병력밀도나 준비상태가 굉장히 낮은데다 초반 3턴정도까지 연합군에게 주어지는 쇼크효과덕분에 해안방어를 담당하는 352사단이나 716사단 등등은 전차대대를 앞세워 쉽게 포위섬멸이 가능했습니다만 보카쥬지형이 가져오는 공격페널티나 보급품 소모페널티가 영 만만찮게 작용해서 후반부에는 역시나 휴식을 취히지 않고는 안될 타이밍이 찾아오더군요.

 미 5군단의 진격상황은 29사단과 2사단은 327글라이더 연대가 확보한 비르강의 교량을 건너 강의 서안을 따라 남쪽으로 진격했고, 1사단과 나중에 증원된 2기갑사단 전투단(Combat Command), 19군단은 강의 동안의 넓은 정면을 따라 생로(St. Lo)를 향해 전진합니다. 군단은 쓰리지(Cerisy) 숲에 도달할 때까지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고 진격했지만 생로 북쪽 15킬로미터 지점까지 도착했을 때 강을따라 방어하는 독일 275사단과 3공수사단, 해안으로부터 퇴각한 352사단이 구축한 방어선과 마주치게 됩니다만 시나리오가 거의 끝날 타이밍이라 별다른 공격을 해보지 못하고 끝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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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 소드해변과 쥬노, 골드해변에 상륙한 영국군과 캐나다군은 게임 내내 독일 기갑사단을 상대로 힘든 싸움을 벌여야 했습니다. 노르망디 최 동쪽에 상륙한 영 1군단은 시작부터 페리에(Periers)능선에서 독 21기갑사단의 저항에 부딪혔고, 오른(Orne)강 동안에 착륙해서 페가수스교를 점령한 영 6공수사단도 346사단과 21기갑사단 일부 병력의 저항에 부딪혀 공격은 커녕 교두보를 방어하는 일도 1 특수전여단의 도움을 빌려서 겨우 해내고 있었습니다. 페가수스교는 영국군 입장에서는 캉에 대해 우회공격을 허락하는 유일한 교량이며, 독일군 입장에서는 교두보에 상륙한 영 1군단의 좌측면을 칠 수 있는 유일한 교량이다보니, 6공수사단과 독일군 사이에 벌어진 치열한 공방전은 매우 당연했던 것 같습니다.

 캉 북쪽에서 영국군과 캐나다군이 사실상 고착상태에 빠지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바이유(Bayeux)를 해방한 영 30군단 8기갑여단과 151보병여단은 바이유-카르피케 도로를 따라 그대로 캉의 서쪽으로 접근해 영 1군단의 공격을 지원하고자 했지만, 두 부대가 카르피케에 도달했을 땐 독 12 SS기갑사단이 이미 마을에 도착한 상태였고, 두 사단은 캐나다 3사단과의 협조로 약간의 투닥질 끝에 전차대대 하나를 제외한 12기갑사단 병력의 대부분을 포위해서 섬멸하는데 성공합니다. 문제는 이 전차대대 하나가 살아남아서 나중에 영국군의 캉 북부 점령을 막아내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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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12사단을 전멸 직전에 몰아넣고 있을 무렵 남쪽에서 증원된 기갑교도사단이 바이유-카르피케 도로로 다가오며 8기갑여단의 병참선을 위협하길래, 저 역시 새로 증원된 7기갑사단과 69보병여단을 증원해서 맞서게 했습니다. 다소 얼마 안되는 병력이지만 방공포대대까지 동원해서 무리하게 포위를 할 수 있었고 전차대대 하나를 포함한 보병연대 전부를 포위망에 가두고나서 좋아하고 있었는데, 곧 그 남쪽에 130기갑연대 병력 일부인 전차대대 2개와 구축전차대대 1개, 기갑수색대대1개 등이 버티고 있는걸 발견했고 기갑전력의 핵심은 하나도 포위하지 못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교도사단은 반격을 걸어서 포위망 속의 독일군을 구출하긴 했지만 보급이 차단된 상태로 보병만 약 1개 연대병력 가량이 전멸했기 때문에, 전차만 단독으로 쉽게 공격을 펼치지는 못하고 영 7기갑사단과 대치를 이루게 됩니다.

 그런 상태로 영 30군단은 캉 북쪽 방면의 독일군 병력을 교란하기 위해 포위망 소탕을 끝낸 151여단으로 하여금 포위당할 위험을 무릅쓰고(다행히 AI가 바보라서 그런 일은 없었지만) 독일군 종심으로 10킬로미터 이상을 침투해 남부 캉 방향으로 접근해 독일군과 접적하는 한편 6월 14일에 영 8기갑여단과 캐나다 3사단, 페리에 능선을 돌파한 영 1군단은 캉 북부로 진입해 독일군과 시가전을 벌였습니다. 남부 캉은 15일에 영 8기갑여단과 231여단이 점령을 마쳤고 북부 캉의 외곽은 모두 점령했지만 마지막 턴에 도심지에 대한 포위공격이 실패함으로 해서 캉을 완벽히 해방하는 데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시나리오 결과는 일단 승리로 뜨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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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설로, 노르망디 시나리오를 하면서 애를 먹는 것 중 하나는 독궈 해안포의 지원사격 능력이 실제와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인데, 실제로 노르망디 해변에 있던 독일 해안포는 콘트리트 벙커에 설치되어 해안을 향해서만 사격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지 야포처럼 내륙을 향해서 사격할 수 있는게 아닌걸로 아는데, 이놈의 TOAW는 그런 구분 없이 택티컬 리저브로 설정해 두기만 하면 온 해안과 대륙의 장거리 해안포가 육군의 방어전투나 공격전투를 지원한답시고 불을 뿜어댑니다. 그것도 한 두 포대가 아닌 동시에 6개 포대가 말이죠.. 구경이나 작으면 모르겠는데 기본 120밀리를 넘어가니 때로는 야포사격만으로 아군 병력을 격퇴시키는 일도 가능하더군요. 독일군은 정말 더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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