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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상군이 외계 세력과 도심지에서 싸우는 건 흔한 풍경이 아닙니다. 이런 시도는 환영할 만합니다.]


얼마 전, <배틀: 로스 앤젤레스> 예고편이 나와 한창 떠들썩했을 때 YouTube에 그런 답변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이 영화의 분위기가 <크라이시스 2>랑 비슷하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별로 공감이 가지 않는 의견이었는데, 생각해보니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우선 강대한 외계세력이 지구로 쳐들어와 대도시를 폐허로 만든다는 것. 이 외계세력은 주로 항공기나 보행 병기, 강화복 등의 기계류를 이용해 침공하죠. 그리고 아비규환 속에서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지구(미군) 병사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대규모 전면전이 벌어지긴 하는데, 병사의 이야기는 맞서 싸우기보다 살아남는 쪽에 중점을 두고요. 배경은 현대이므로 지구인은 철저하게 현대 화기로 맞설 수밖에 없습니다.

 

, 이런 이유와 함께 두 영화와 게임의 개봉/출시가 비슷하다는 점도 한몫 할 겁니다. <배틀: LA>와 <크라이시스 2> 모두 2011년 3월에 뚜껑이 열리니까요. 외계인 침략물이라는 관점에서 3월은 영화와 게임 모두 대작이 터져나올 시기죠. 여러 모로 기대가 됩니다.

 

개인적으로 <배틀: LA>를 기대하는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 지상군(보병)의 시점으로 진행이 된다는 것 때문입니다. 전쟁물이라는 것은 보병이 주인공으로 나와야 재미있는 법. 화려한 공중전이나 긴장감 넘치는 수중전도 좋긴 합니다만. 결국 마지막에 깃발을 꼽는 건 보병이고, 별다른 장비 없이 단신으로 온갖 고생을 다 하는 것도 보병입니다. 고대 전쟁부터 2차 대전을 거쳐 현대전까지 그랬고, 아마 미래 우주전쟁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역시 이들 지상부대일 겁니다. <스타십 트루퍼스>의 기동 보병부터 <워해머 40K>의 스페이스 마린까지 소총을 들고 두 발로 뛰어다니는 자들이 주인공 아니겠습니까. 꼭 SF가 아니더라도 전쟁영화를 찾아보면 보병을 비롯한 지상부대가 나오는 작품이 훨씬 많을 겁니다.

 

기동보병이나 스페이스 마린 등은 엄밀히 말해서는 강하 부대이지 보병은 아닙니다. 이들은 행군을 하지도 않고, 거점 구축을 하지도 않죠. 하지만 지상에서 몸으로 뛰며 작전을 수행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그겁니다. 두 발로 땀나게 뛰어다니며 소총을 쏜다는 것. 해군 소속이든 공군 소속이든 결국 사람이 총 들고 육지에서 싸우게 되면 처지가 다 비슷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보병만큼, 어쩌면 보병보다 더 험한 꼴을 겪기도 합니다. 이건 <배틀: LA>에 나오는 해병대도 마찬가지죠. 해안 침투보다 육상 전투를 위주로 할 것 같으니 지상군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게다가 이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해병대는 도시가 전복된 고로 진짜 두 발로만 뛰어다닐지도 모르죠.

 

전에도 한 번 이야기했지만, 외계인 침공 영화에서 지상군(보병) 주인공이 나오는 건 드문 사례가 아닙니다. 하지만 <배틀: LA>처럼 대규모 전쟁 와중에, 대도시를 무대로 보병이 나온 건 못 본 듯합니다. 언급한 것처럼 이 영화의 분위기가 <크라이시스 2>와 비슷해 보이는 이유가 그것 때문일 거고요. 현대전은 점점 시가전 위주로 흘러가는 데 비해 아직도 SF 영화의 전투는 변화가 없습니다. 황량한 야외를 무대로 하거나 아니면 우주 기지 어딘가에 짱 박혀서 싸우기만 했지, 도시를 떠돌지는 않았죠. 기껏해야 <우주전쟁>에서 대도시 전투가 잠깐 나오긴 했지만, 말 그대로 잠깐이었을 뿐입니다. <고지라>나 <클로버필드> 등에서는 지상군의 전투가 비중이 크긴 했는데, 이건 외계인 침공물이 아니라 괴수물이고요.

 

SF 영화에 시가전이 드문 이유를 따지자면, 아마 촬영 비용이 많이 들어서 그런 듯합니다. 정글이나 사막에 비해 도시를 촬영장으로 삼으면 돈이 엄청나게 깨지니까요. 세트를 짓는 것도 어렵고, 촬영 장소를 임대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하죠. 예전에 <고지라> 시리즈가 한창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 제작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도시를 때려부수는 장면은 거의 안 나오고 괴수섬의 정글만 배경으로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관객들한테 욕을 많이 얻어먹었다고 합니다. 외계인 침공물도 이와 비슷하겠죠, 아마. 거기다 단순히 도시를 찍는 것도 어렵지만, 도시를 폐허로 만들려면 그만큼 대규모 군대가 침공해야 하는데 이것까지 구현하려면 돈이 천정부지로. 흠, 제가 제작자라도 외계 군대와의 시가전은 못 찍을 것 같습니다. 흠,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에서 텅텅 빈 사막을 무대로 전투씬을 찍은 이유는 에너존이 피라미드에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제작비가 깨지니까 그랬던 거였군요.

 

하긴 영화만 그런 게 아니라 게임에서도 시가전은 복잡할 겁니다. <헤일로: ODST>가 나왔을 때 시가전을 지원한다고 해서 유저들은 기대가 컸습니다. ODST 대원이 되어서 뉴 몸바사의 건물들을 누비며 코버넌트와 싸울 것을 바랐죠. 하지만 대부분의 건물은 그저 배경에 불과할 뿐 자유도가 있거나 전략적으로 이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기는커녕 문조차 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번지가 아무리 대단한 제작사라도 도시 하나를 통째로 디자인할 수는 없었던 거죠. 지금 기술로는 사실상 불가능할 거예요. 아마 <배틀: LA>가 크게 히트를 치면 관련 게임도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 만약 나온다면 FPS로 나올 가능성이 높죠. 외계인과의 시가전을 게임으로 어떻게 묘사할지 궁금합니다. 역시 <크라이시스 2>를 기다려봐야 할까요. 도시를 무대로 1편만큼의 자유도만 보장해준다면 굉장할 텐데 말이죠.

 

3월에 극장에 가서 확인해야 알겠지만, 이러한 이유로 <배틀: LA>가 외계 침공물의 전환점이 되어주기를 바라 마지 않는 바입니다. 도대체 이런 영화를 벌써부터 그렇고 그런 외계인 침략 영화로 규정하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껏 외계 침략물에서 본격적인 시가전이 없었다는 걸 감안하면 기대해도 좋은 영화 아닌가요. 소재가 좋다고 영화 자체의 재미까지 좋아지는 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뻔한 내용은 아닐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