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es #24
- Files #19에 이어서 -

- 우리 인류는 너무 오랫동안 '지구'라는 것에 속박되어 있었다.

                   < 일본 홋카이도 통신 시설 하시모토 중사 >

1998년 3월 17일.

  방금 전에 '격렬한' 공중전이 펼쳐졌던 시베리아 남부로부터 남서쪽으로 1500km 정도 떨어진 한 섬에는 80년대 중반, 대한 민국 국적의 민항기가 격추될 당시 소련군의 통신을 녹음하는 것에 성공했다 하여 화제가 되었던 한 통신 시설이 있다.

  당시, 언론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뉴스를 들은 일본의 고위층들은 상당한 만족감을 느꼈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사실, 그들이 홋카이도(북해도)라 부르는 섬에 설치된 통신 설비는 어떤 면에서 잠재적인 위험이 되는 소련군의 활동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 결과는 그들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충분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어찌되었든, 냉전의 시대가 사라졌다고 알려진 90년대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지만 예의 통신 시설은 설비를 더욱 개량되면서 존속하고 있었다. 물론 그 진짜 목적은 전과는 조금 다른 것으로 바뀌고 있었지만...

  그리고, 지금 통신 담당 하사관인 하시모토 중사는 저 멀리 시베리아 상공에서 들려오는 흥미로운 사건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의 러시아어 실력이 부족해서 정확히 알아 들을 수는 없었지만, 분명 그의 '친구'들에게 무언가 '사건'이 일어난 것으로 판단되었다. 몇 차례의 긴급한 메시지 속에는 '그 물체'가 여러번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이 그의 관심을 끌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조기 경보기인 Il-86의 승무원들이 '의문'스러운 의미를 담고 있는 메시지를 기지에 송신하고 복귀함으로서 상황이 종료된 것으로 확인한 하시모토 중사는 자신의 상관을 불렀다.

  "소위님. 이거 매우 흥미로운 통신 내용인데요."

  그의 상관이자, 통신 시스템 전체를 책임지고 있는 나까무라 소위는 중사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하시모토 중사는 그의 부하 중에서 유독 귀찮은 존재였다.

  기술 공학 분야에 특별히 뛰어난 실력이 있긴 했지만, 통신에 대한 감은 왠지 부족했으며, 이 부분에 근무하는 담당관으로서는 특히 러시아어가 '짧았다.' 때문에 소위는 때로는 그의 호출을 듣고는 즉석에서 러시아어 강좌를 해 주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다, 오늘은 아침부터 아내의 극성으로 짜증나던 상황이었던 것이다.(평소 외도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았던 소위로서도 부자들이 첩을 두는 것에 이해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또 북으로부터 온 통신인가?" 그래선지, 소위의 목소리에는 조금 귀찮다는 기분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사회 관계에 익숙치 않은 하시모토 중사는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통신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네. 확실하진 않습니다만, 우리의 친구들이 무언가와 교전을 한 모양입니다."

  "교전?" 소위는 순간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전이라니? 설마 어떤 미친 지휘관이 러시아를 공격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몇 차례의 통신 메시지와, 발사 명령 등으로 볼때. 분명히 공중전입니다."

  "그럴리가... 분명 단순한 훈련이겠지."

  "훈련같지는 않습니다. 한 번 들어 보십시오." 통신 하사관은 녹음기를 틀었다. 그와 동시에 스피커로부터 러시아어로 된 통신 전문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것은 매우 이상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초기에는 통상적인 교전과 같이 시작되다가, 갑작스레 다급한 목소리로 바뀌었다. 러시아측 지휘관은 무척이나 흥분한 듯, 말이 빨라지고 있었다.

  "이 부분은 제가 알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갑자기 통신실 가득히 엄청난 소음이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전투기 승무원들의 음성이 사라져 버렸다.

  "그 후에는 얼마동안 조기 경보기 승무원들의 호출만이 계속되었습니다. 물론 응답은 없었습니다만."

  소위는 이 해괴한 통신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하다 말을 꺼냈다.

  "그래서,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네. 제 소견에는... 이 러시아기들은 아마도 어떤 적에게 선제 공격을 가했고, 명중시켰습니다만, 도리어 공격을 가한 상대, 그러니까 '그 물체'에게 반격을 받아 격추된 것으로 판단됩니다. 공격을 가한 물체는 조기 경보기를 추적하는 것은 포기했던 모양입니다만..."
  "음... 자네 생각도 나쁘지는 않아. 그런데..."
  "...."
  "그런데, 러시아기는 최소한 6대 이상이라 했지?"
  "네. 그렇습니다."
  "적기는 3기. 거기다 러시아기들은 합쳐서 30발 정도의 미사일을 적기를 향해 발사한 것이고."
  "...."
  "거기다 그 모든 것이 명중했다고 했는데. 적기는 건제하다...."
  "통신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조기 경보기의 지원을 받아 선제 공격에 성공한 6기 이상의 러시아기가 모두 반격을 받아 격추되고 말았다는 말인가? 그리고, 적기는 아무런 무기도 갖추지 않은 조기 경보기에 대한 공격은 포기하고 회피했다?"
  "...."
  "도대체 지구상 어디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사건이 있을 수 있다는 건가? 최소한 5발의 미사일을 맞고도 격추되지 않는 전투기는? 어떤 나라건 주 목표로 삼는 조기 경보기에 대한 공격을 포기하고 돌아간 이유는 뭐겠는가?"
  "하지만, 통신에 따르면..."
  "그래서 훈련이라는 것이지. 시베리아 부근의 어떤 나라에서도 전투기를 출동시킨 일이 없었고, 러시아군 만이 출동했다. 그리고, 교전을 했다. 그건 적이 어떤 나라의 것도 아니라는 뜻이 된다는 의미가 되지 않겠는가?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네."
  "그렇다면, 최근 정세가 불안해지는 시베리아 지역에 대한 교전 훈련이라는...?"
  "그렇게 되겠지. 하지만, 그 훈련 내용은 아주 흥미가 있다. 왠지 이전의 훈련과는 다른 실감나는 훈련으로 생각되니까. 어쩌면 그들의 최신 무기를 시험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그러므로 그 녹음 테이프는 따로 보관해 두도록."

  소위가 일장 연설(?)을 마치고 돌아가자, 하시모토 중사는 통신 내용이 수록된 디지탈 테이프에 'X-8'이라는 표식을 하면서 생각했다.

  '그런 전투기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을거라고? 만약 그게 지구가 아닌 곳에서 온 비행 물체라면 어떻게 되는거지?'


  하지만, 그런 생각은 어디까지나 상식 밖의 일이었고 오래지 않아 3월 17일의 사건은 잊혀지게 되었다. 몇 개월 뒤의 그 사건이 있을 때까지...

-----------------------------------------------------------------
profile

과거를 아는 이는 현재를 이끌어가고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역사와 SF... 어딘지 어울리지 않을 듯 하지만, 그럼 점에서 둘은 관련된게 아닐까요?

SF&판타지 도서관 : http://www.sflib.com/
블로그 : http://spacelib.tistory.com
트위터 : http://www.twitter.com/pyodogi  (한글)    http://www.twitter.com/pyodogi_jp (일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