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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데시코 외전 : 호넷 - 작가 : Frank
글 수 87
2202년 06월 04일. 16시 00분. 독일 상공
일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호네트는 예정 대로 대기권을 지나
강하하고 있었다.
"그레그는 무사할까?"
"그러길 비는 수밖에..."
밋첼 중위의 행방이 묘연해진 탓인지 함내 분위기는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이와는 무관하게 햄튼 제독은 사령석에 부착된 전
용 디스플레이로 상부에 현황을 보고 하고 있었다.
-수고했네.
"당연히 할 일을 한 겁니다."
-준비가 되는 대로 프랑크푸르트로 향하게. 거기서 공군에 성과물
과 연구원들을 인계하면 돼. 이만 끊겠네.
그 말을 끝으로 존 제독의 모습이 화면에서 사라지자 햄튼 제독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함교 너머로 보이는 푸른 대지에 시선을 옮
겼다.
전쟁이 점점 격화되면서 지구의 환경은 점점 심각해져 가고 있었
다. 화석 연료의 사용이 중지되면서 그간 시달리던 남극이 원상태
로 회복되어 갔지만, 목성군이 22세기 말의 전쟁 때 지구 곳곳에
떨어뜨린 튤립에 의한 낙진 문제로 각국이 골머리를 썩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2202년 06월 04일. 16시 15분. 독일 뮌헨
목성군이 퇴각한 뮌헨엔 독일군이 진주하고 있었다. 고속도로 위로
육군 공수부대의 비젤-3 장갑차들이 질주하는 가운데 시가지를 방
어하던 미군은 재편성을 위해 임무를 인계하고 철수하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한 곳에선 미군 독자의 수색 작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제기랄. 우리들한테 이런 짓을 시키다니."
"까라면 까야지."
전투복 위에 열 방출 자켓을 착용한 델타포스 대원들은 허리 까지
올라올 정도로 긴 풀들이 무성한 지역을 수색하고 있었다. 열선 탐
지기 까지 동원된 이 수색 작전의 목적이 여자애 한 명을 찾아내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원들은 크게 불만을 품었지만, 명령은 명령이었
다.
그들이 그렇게 움직이는 동안 라피스는 한 쪽에서 두려움에 떨며
미군이 돌아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점점 가까이
다가왔고, 얼마 후 미군 한 명이 그녀를 내려다 보게 되었다.
"장군님, 찾았습니다."
2202년 06월 04일. 16시 20분. 스웨덴 베네르스보리
하나기크는 NATO가 공표한 안전 항로를 따라 날고 있었다. 근처
상공에 E-6 플라잉 센트리 조기 경보기가 엄호를 받지 않은 채 날
고 있을 정도로 이곳은 대단히 안전해 보였다.
"이대로라면 문제 없이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기장의 말에 루리는 고개를 끄덕인 후 11살 때 있었던 일을 떠올렸
다. 그때 자신의 출생에 관한 일들을 전부 알았다고 생각했지만, 그
것은 완전하지가 못했다. 피스랜드 국왕 내외가 자식을 얻기 힘들
었다면 정자나 난자 혹은 그 두 개를 모두 다른 사람에게서 얻어
왔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지금 그것을 알고 싶은 것이었
다.
그런 와중에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하나기크 바로 위로 미
해군의 EP-7 전자 첩보기가 느닷 없이 지나간 것이다.
"제기랄! 미국놈들 제정신인가?"
"기장님, 큰일 났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나기크는 큰 충격을 받아 그대로 추락
하기 시작했다.
"괜찮겠습니까?"
"겁먹지마. 안 그랬다간 우리가 죽었을거야..."
자신들을 노리고 날아온 광학 추적식 미사일을 따돌리기 위해 하나
기크를 희생양으로 삼은 미 해군 조종사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상부에 이를 알리기 위해 교신을 시작했다.
2202년 06월 04일. 16시 25분. 피스랜드
"그게 정말입니까?"
"들은 대로야. 함장 대리."
다케다 대령의 말을 듣고 유리카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무사히 다
녀올 거라 생각한 루리가 조난 당했다는 소식은 크루들 모두를 걱
정하게 만들었다.
"그러면 구조 활동은?"
"그쪽에서 구조반을 보내겠다고 했으니 곧 소식이 있을 거야."
대령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한편으론 무언가 석연치 않은 듯 의문에
찬 표정을 지었다.
2202년 06월 04일. 16시 35분. 스웨덴 베네르스보리
"으윽..."
루리는 꼼짝 없이 갇힌 가운데 고개를 움직이며 내부 상황을 확인
하려고 애썼다.
"괜찮으세요?"
앞 자리에 앉은 기장에게 말을 걸었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의
식을 잃었거나 목숨을 잃은 것에서 둘 중 하나였다. 곧 몸을 움직
이려고 했지만, 그녀는 엄청난 통증을 느꼈다.
"아악!"
다리를 도저히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루리는 제발 구조
의 손길이 오기를 바랬다.
"바로 저깁니다."
"아주 엉망이 됐군."
적십자 마크가 그려진 미 해군의 SH-3 시 이로코이II 헬기는 숲속
에 추락한 하나기크를 발견하고 호버링을 한 상태에서 고도를 낮추
기 시작했다. 매우 불안한 지역인 탓에 헬기엔 의무반 외에 소총으
로 무장한 세 명의 수병이 더 타고 있었다. 헬기가 50m 까지 내려
왔을 때 일이 터지고 말았다. 숲 속에서 미사일 한 발이 솟아오른
것이었다.
"맙소사!"
기장은 날아오는 미사일을 피하기 위해 급히 조종간을 움직였지만,
때는 너무 늦었다. 미사일은 후방 동체에 명중했고, 헬기는 심하게
요동치면서 그대로 추락해 버렸다.
"다들 괜찮아?"
"둥지, 이로코이 다운. 반복한다. 이로코이 다운."
기장이 뒤쪽에 탄 이들의 생사를 확인하는 동안 부기장은 무전기로
추락 사실을 카테카트 해협에 있는 제3 수상함대에 알렸다.
"둘은 죽었고 넷은 멀쩡해."
"좋아. 그러면 챙길 수 있는 것부터 챙기고 하나기크가 있는 쪽으로
가자."
곧 헬기에서 빠져나온 이들이 무기와 통신기, 레이션을 들고 하나
기크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2202년 06월 04일. 16시 45분. 피스랜드
"그게 정말인가?"
-네. 제독님.
"..."
유리카의 말에 '한신수' 제독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기 시작
했다.
"알았네. 곧 조치를 취하지."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곧 통신을 끝내고 나서 한 제독은 청해진의 함장에게 물었다.
"구출 부대를 편성해. 내가 직접 가겠다."
한국 해군이 분주히 움직이는 가운데 나데시코에선 미 해군의 구조
헬기가 공격을 받아 추락했다는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
"우리에게 주어진 정보는 너무 제한되어 있어요. 우리가 직접 현장
을 확인해야 해요."
"그건 우리도 잘 알지만 무슨 수로?"
"미군이 현장 상황을 감시하려고 유럽으로 이동시켰을 정찰 위성에
몰래 접속하는 거예요."
리리스가 그렇게 말하면서 키보드를 눌러 어딘가에 접속하기 시작
했다.
"NSA?"
"미국이 보유한 인공 위성의 대부분은 여기서 관리하고 있다고 해
도 과언이 아니에요. 오모이카네, 유럽 상공에 있는 인공 위성들을
찾아내줘."
그 말이 떨어지자 오모이카네가 NSA의 위성 관리망을 조사해 유
럽 상공에 떠 있는 것들을 모두 찾아내 그 중 사고 현장을 지켜 보
고 있는 것을 골라냈다.
"KH-45?"
"키홀... 미국의 사진 정찰 위성 가운데 하나지. 냉전 때부터 쓰인
이름이야."
"곧 화면이 들어올 거예요. 자 빨리. 그래 그렇지."
리리스가 바짝 긴장하며 계속 키보드를 두드렸고, 곧 함교 중앙에
뜬 윈도우에 현장 화면이 실시간 모드로 전송되기 시작했다.
"맙소사! 교전 중이잖아."
"저대로 내버려두면 전멸이에요."
"대령님, NSA에서 우리가 접속한 걸 확인 했습니다. 그들이 외부
연결망을 봉쇄하기 시작했습니다."
"리리스, 연결을 끊어. 이젠 틀렸어."
"하지만..."
"어서!"
곧 화면이 꺼졌고, 함교의 분위기는 그대로 내려 앉고 말았다. 함장
이 위기에 처했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그들을 절망에 빠뜨린 것이었다.
2202년 06월 04일. 16시 50분. 스웨덴 베네르스보리
"이런! 망할..."
"총알을 아껴!"
"소용 없습니다. 사방에서 몰려오는 걸 막으려면 완전 자동으로 긁
어야 합니다."
하나기크를 중심으로 급한 대로 엄폐물을 쌓은 채 접근해 오는 목
성군을 상대로 교전 중인 미군들은 의무병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
두가 총을 든 채 싸우고 있었다.
"괜찮아요?"
"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죽었어요. 손을 쓸 여유도 없었습니다."
루리는 미 해군 의무병이 다리 쪽에 응급 처치를 해주며 같이 타고
있던 두 사람에 대해 말해주자 죄책감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나만 아니었어도...'
거기 까지 생각이 미치자 루리는 눈을 감은 채 울먹였고, 의무병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 갖고 계세요. 우리가 죽게 되면..."
의무병이 그렇게 말하며 서스팬더에 매둔 수류탄을 손에 쥐어주자
루리는 정신을 추스린 후 고개를 끄덕였다.
2202년 06월 04일. 17시 00분. 피스랜드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방금 말한 대로네. 우린 도와줄 수 없네.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이유? 자네들도 알겠지만, 지금 그 쪽으로 목성군이 몰려들고 있
어. 조인트 스타즈가 포착한 것들까지 더하면 무려 2개 연대가 그
곳에 있다는 얘기란 말일세. 그런 곳으로 헬기나 MV를 더 보냈다
간 제2의 블랙호크다운이 되고 말거야... 미안하네.
해당 지역 인근에 주둔 중인 미군 지휘관은 대령의 지원 요청을 묵
살해 버리고는 그대로 통신을 끊어버렸다. 이것이 미군의 현 상황
에 대한 판단이 어떠한지 말해주고 있었다. 그밖에 다른 NATO 회
원국 군대들도 지원 요청을 받자 크게 망설일 정도로 문제가 심각
했다.
"제독님, 준비 완료입니다."
"좋아. 출발한다."
"잠깐 기다리십시오."
"무슨 일인가?"
"참모본부로부터 제독님께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지시라니?"
"이 시간을 기해 통합군의 모든 지원 요청에 응하지 말라고 합니
다."
"뭐라고?"
"대신 읽어 드리겠습니다. '현 시간을 기해 귀관의 통합군 장교 구
출을 위한 모든 행동을 금지한다. 유능한 통합군 사관 한 명이 잘
훈련된 목성군 백만 대군보다 대한 민국의 장래에 더 위협적임을
상기하라.'"
"그 따위 명령을 누가 내린 건가?"
"국군 통수권자이신 대통령 각하께서 직접 지시하신 거라고 합니
다."
"말도 안돼..."
제독을 비롯해 그 앞에 도열해 있던 해군 UDT/SEAL 대원들은 출
동 금지 명령에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한 제독님이 편성한 구출 부대가 출동을 금지당했다고 합니다."
"뭐야?"
"엎친데 덮친 격이군..."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악재에 나데시코 크루들은 더더욱 무기력해
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에겐 어떻게든 함장을 구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곧 다케다 대령이 좌중을 돌아보며 말했다.
"하는 수 없다. 우리 힘으로 해결하자."
2202년 06월 04일. 스웨덴 우데발라
사고 현장에 가까운 곳인 우데발라의 미 육군 101공수사단 83연대
2대대의 주둔지에선 병사들이 방금 들려온 소식에 크게 웅성거리고
있었다.
"모두 조용히."
대대장 '로렌스 맥진스키' 중령이 마이크에 입을 대고 말하자 병사
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모두 들은 대로다. 상부에선 그들을 버리겠다고 한다. 가까운 곳에
있는 우릴 보내면 될 텐데 그들을 그냥 죽게 내버려두겠다는 얘기
다."
그러자 병사들은 상부의 비겁함에 야유를 터뜨렸고 맥진스키 중령
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나는 그들을 버리고 싶지 않다. 어떻게 해서든 그들을 집으로 돌아
가게 해 주고 싶단 말이다. 귀관들의 생각은 어떤가?"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제 생각도 마찬가지 입니다."
"까짓 것 한 번 해봅시다!"
2202년 06월 04일. 17시 05분. 스웨덴 베네르스보리
쉴 틈 없이 저항하던 여섯 명의 미군은 종말을 맞이하고 있었다.
다들 한 군데씩 총상을 입은데다 탄약을 거의 소진해 버려 죽을 순
간만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제기랄... 윗놈들이 우릴 버렸어!"
미군 한 명이 그렇게 분통을 터뜨리는 가운데 들 것 위에 누운 루
리 옆에 앉아 있는 의무병은 총에 맞은 왼팔에 붕대를 감으며 말했
다.
"소령님. 이제 우리 먼저 가야 될 것 같군요."
"저 때문에..."
루리는 자신을 지키려다가 이제 목숨을 잃어야 할 지경이 된 여섯
명에게 죄책감을 느낀 나머지 흐느꼈다.
"울지 마세요. 다들 간신히 버티고 있는데 소령님이 그러시면..."
소매에서 휴지를 꺼내 눈물을 닦아준 의무병이 마악 일어서려던 순
간 날아온 총알이 그의 몸을 꿰뚫어 버렸다. 그는 그대로 피를 흘
리며 쓰러졌고, 루리는 그가 흘린 피가 자신의 얼굴을 적시자 멍한
표정을 지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곧 여기 저기서 함성과 총
성이 뒤섞인 채 들려왔고, 비명 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일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호네트는 예정 대로 대기권을 지나
강하하고 있었다.
"그레그는 무사할까?"
"그러길 비는 수밖에..."
밋첼 중위의 행방이 묘연해진 탓인지 함내 분위기는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이와는 무관하게 햄튼 제독은 사령석에 부착된 전
용 디스플레이로 상부에 현황을 보고 하고 있었다.
-수고했네.
"당연히 할 일을 한 겁니다."
-준비가 되는 대로 프랑크푸르트로 향하게. 거기서 공군에 성과물
과 연구원들을 인계하면 돼. 이만 끊겠네.
그 말을 끝으로 존 제독의 모습이 화면에서 사라지자 햄튼 제독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함교 너머로 보이는 푸른 대지에 시선을 옮
겼다.
전쟁이 점점 격화되면서 지구의 환경은 점점 심각해져 가고 있었
다. 화석 연료의 사용이 중지되면서 그간 시달리던 남극이 원상태
로 회복되어 갔지만, 목성군이 22세기 말의 전쟁 때 지구 곳곳에
떨어뜨린 튤립에 의한 낙진 문제로 각국이 골머리를 썩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2202년 06월 04일. 16시 15분. 독일 뮌헨
목성군이 퇴각한 뮌헨엔 독일군이 진주하고 있었다. 고속도로 위로
육군 공수부대의 비젤-3 장갑차들이 질주하는 가운데 시가지를 방
어하던 미군은 재편성을 위해 임무를 인계하고 철수하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한 곳에선 미군 독자의 수색 작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제기랄. 우리들한테 이런 짓을 시키다니."
"까라면 까야지."
전투복 위에 열 방출 자켓을 착용한 델타포스 대원들은 허리 까지
올라올 정도로 긴 풀들이 무성한 지역을 수색하고 있었다. 열선 탐
지기 까지 동원된 이 수색 작전의 목적이 여자애 한 명을 찾아내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원들은 크게 불만을 품었지만, 명령은 명령이었
다.
그들이 그렇게 움직이는 동안 라피스는 한 쪽에서 두려움에 떨며
미군이 돌아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점점 가까이
다가왔고, 얼마 후 미군 한 명이 그녀를 내려다 보게 되었다.
"장군님, 찾았습니다."
2202년 06월 04일. 16시 20분. 스웨덴 베네르스보리
하나기크는 NATO가 공표한 안전 항로를 따라 날고 있었다. 근처
상공에 E-6 플라잉 센트리 조기 경보기가 엄호를 받지 않은 채 날
고 있을 정도로 이곳은 대단히 안전해 보였다.
"이대로라면 문제 없이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기장의 말에 루리는 고개를 끄덕인 후 11살 때 있었던 일을 떠올렸
다. 그때 자신의 출생에 관한 일들을 전부 알았다고 생각했지만, 그
것은 완전하지가 못했다. 피스랜드 국왕 내외가 자식을 얻기 힘들
었다면 정자나 난자 혹은 그 두 개를 모두 다른 사람에게서 얻어
왔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지금 그것을 알고 싶은 것이었
다.
그런 와중에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하나기크 바로 위로 미
해군의 EP-7 전자 첩보기가 느닷 없이 지나간 것이다.
"제기랄! 미국놈들 제정신인가?"
"기장님, 큰일 났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나기크는 큰 충격을 받아 그대로 추락
하기 시작했다.
"괜찮겠습니까?"
"겁먹지마. 안 그랬다간 우리가 죽었을거야..."
자신들을 노리고 날아온 광학 추적식 미사일을 따돌리기 위해 하나
기크를 희생양으로 삼은 미 해군 조종사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상부에 이를 알리기 위해 교신을 시작했다.
2202년 06월 04일. 16시 25분. 피스랜드
"그게 정말입니까?"
"들은 대로야. 함장 대리."
다케다 대령의 말을 듣고 유리카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무사히 다
녀올 거라 생각한 루리가 조난 당했다는 소식은 크루들 모두를 걱
정하게 만들었다.
"그러면 구조 활동은?"
"그쪽에서 구조반을 보내겠다고 했으니 곧 소식이 있을 거야."
대령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한편으론 무언가 석연치 않은 듯 의문에
찬 표정을 지었다.
2202년 06월 04일. 16시 35분. 스웨덴 베네르스보리
"으윽..."
루리는 꼼짝 없이 갇힌 가운데 고개를 움직이며 내부 상황을 확인
하려고 애썼다.
"괜찮으세요?"
앞 자리에 앉은 기장에게 말을 걸었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의
식을 잃었거나 목숨을 잃은 것에서 둘 중 하나였다. 곧 몸을 움직
이려고 했지만, 그녀는 엄청난 통증을 느꼈다.
"아악!"
다리를 도저히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루리는 제발 구조
의 손길이 오기를 바랬다.
"바로 저깁니다."
"아주 엉망이 됐군."
적십자 마크가 그려진 미 해군의 SH-3 시 이로코이II 헬기는 숲속
에 추락한 하나기크를 발견하고 호버링을 한 상태에서 고도를 낮추
기 시작했다. 매우 불안한 지역인 탓에 헬기엔 의무반 외에 소총으
로 무장한 세 명의 수병이 더 타고 있었다. 헬기가 50m 까지 내려
왔을 때 일이 터지고 말았다. 숲 속에서 미사일 한 발이 솟아오른
것이었다.
"맙소사!"
기장은 날아오는 미사일을 피하기 위해 급히 조종간을 움직였지만,
때는 너무 늦었다. 미사일은 후방 동체에 명중했고, 헬기는 심하게
요동치면서 그대로 추락해 버렸다.
"다들 괜찮아?"
"둥지, 이로코이 다운. 반복한다. 이로코이 다운."
기장이 뒤쪽에 탄 이들의 생사를 확인하는 동안 부기장은 무전기로
추락 사실을 카테카트 해협에 있는 제3 수상함대에 알렸다.
"둘은 죽었고 넷은 멀쩡해."
"좋아. 그러면 챙길 수 있는 것부터 챙기고 하나기크가 있는 쪽으로
가자."
곧 헬기에서 빠져나온 이들이 무기와 통신기, 레이션을 들고 하나
기크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2202년 06월 04일. 16시 45분. 피스랜드
"그게 정말인가?"
-네. 제독님.
"..."
유리카의 말에 '한신수' 제독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기 시작
했다.
"알았네. 곧 조치를 취하지."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곧 통신을 끝내고 나서 한 제독은 청해진의 함장에게 물었다.
"구출 부대를 편성해. 내가 직접 가겠다."
한국 해군이 분주히 움직이는 가운데 나데시코에선 미 해군의 구조
헬기가 공격을 받아 추락했다는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
"우리에게 주어진 정보는 너무 제한되어 있어요. 우리가 직접 현장
을 확인해야 해요."
"그건 우리도 잘 알지만 무슨 수로?"
"미군이 현장 상황을 감시하려고 유럽으로 이동시켰을 정찰 위성에
몰래 접속하는 거예요."
리리스가 그렇게 말하면서 키보드를 눌러 어딘가에 접속하기 시작
했다.
"NSA?"
"미국이 보유한 인공 위성의 대부분은 여기서 관리하고 있다고 해
도 과언이 아니에요. 오모이카네, 유럽 상공에 있는 인공 위성들을
찾아내줘."
그 말이 떨어지자 오모이카네가 NSA의 위성 관리망을 조사해 유
럽 상공에 떠 있는 것들을 모두 찾아내 그 중 사고 현장을 지켜 보
고 있는 것을 골라냈다.
"KH-45?"
"키홀... 미국의 사진 정찰 위성 가운데 하나지. 냉전 때부터 쓰인
이름이야."
"곧 화면이 들어올 거예요. 자 빨리. 그래 그렇지."
리리스가 바짝 긴장하며 계속 키보드를 두드렸고, 곧 함교 중앙에
뜬 윈도우에 현장 화면이 실시간 모드로 전송되기 시작했다.
"맙소사! 교전 중이잖아."
"저대로 내버려두면 전멸이에요."
"대령님, NSA에서 우리가 접속한 걸 확인 했습니다. 그들이 외부
연결망을 봉쇄하기 시작했습니다."
"리리스, 연결을 끊어. 이젠 틀렸어."
"하지만..."
"어서!"
곧 화면이 꺼졌고, 함교의 분위기는 그대로 내려 앉고 말았다. 함장
이 위기에 처했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그들을 절망에 빠뜨린 것이었다.
2202년 06월 04일. 16시 50분. 스웨덴 베네르스보리
"이런! 망할..."
"총알을 아껴!"
"소용 없습니다. 사방에서 몰려오는 걸 막으려면 완전 자동으로 긁
어야 합니다."
하나기크를 중심으로 급한 대로 엄폐물을 쌓은 채 접근해 오는 목
성군을 상대로 교전 중인 미군들은 의무병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
두가 총을 든 채 싸우고 있었다.
"괜찮아요?"
"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죽었어요. 손을 쓸 여유도 없었습니다."
루리는 미 해군 의무병이 다리 쪽에 응급 처치를 해주며 같이 타고
있던 두 사람에 대해 말해주자 죄책감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나만 아니었어도...'
거기 까지 생각이 미치자 루리는 눈을 감은 채 울먹였고, 의무병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 갖고 계세요. 우리가 죽게 되면..."
의무병이 그렇게 말하며 서스팬더에 매둔 수류탄을 손에 쥐어주자
루리는 정신을 추스린 후 고개를 끄덕였다.
2202년 06월 04일. 17시 00분. 피스랜드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방금 말한 대로네. 우린 도와줄 수 없네.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이유? 자네들도 알겠지만, 지금 그 쪽으로 목성군이 몰려들고 있
어. 조인트 스타즈가 포착한 것들까지 더하면 무려 2개 연대가 그
곳에 있다는 얘기란 말일세. 그런 곳으로 헬기나 MV를 더 보냈다
간 제2의 블랙호크다운이 되고 말거야... 미안하네.
해당 지역 인근에 주둔 중인 미군 지휘관은 대령의 지원 요청을 묵
살해 버리고는 그대로 통신을 끊어버렸다. 이것이 미군의 현 상황
에 대한 판단이 어떠한지 말해주고 있었다. 그밖에 다른 NATO 회
원국 군대들도 지원 요청을 받자 크게 망설일 정도로 문제가 심각
했다.
"제독님, 준비 완료입니다."
"좋아. 출발한다."
"잠깐 기다리십시오."
"무슨 일인가?"
"참모본부로부터 제독님께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지시라니?"
"이 시간을 기해 통합군의 모든 지원 요청에 응하지 말라고 합니
다."
"뭐라고?"
"대신 읽어 드리겠습니다. '현 시간을 기해 귀관의 통합군 장교 구
출을 위한 모든 행동을 금지한다. 유능한 통합군 사관 한 명이 잘
훈련된 목성군 백만 대군보다 대한 민국의 장래에 더 위협적임을
상기하라.'"
"그 따위 명령을 누가 내린 건가?"
"국군 통수권자이신 대통령 각하께서 직접 지시하신 거라고 합니
다."
"말도 안돼..."
제독을 비롯해 그 앞에 도열해 있던 해군 UDT/SEAL 대원들은 출
동 금지 명령에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한 제독님이 편성한 구출 부대가 출동을 금지당했다고 합니다."
"뭐야?"
"엎친데 덮친 격이군..."
여기 저기서 들려오는 악재에 나데시코 크루들은 더더욱 무기력해
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에겐 어떻게든 함장을 구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곧 다케다 대령이 좌중을 돌아보며 말했다.
"하는 수 없다. 우리 힘으로 해결하자."
2202년 06월 04일. 스웨덴 우데발라
사고 현장에 가까운 곳인 우데발라의 미 육군 101공수사단 83연대
2대대의 주둔지에선 병사들이 방금 들려온 소식에 크게 웅성거리고
있었다.
"모두 조용히."
대대장 '로렌스 맥진스키' 중령이 마이크에 입을 대고 말하자 병사
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모두 들은 대로다. 상부에선 그들을 버리겠다고 한다. 가까운 곳에
있는 우릴 보내면 될 텐데 그들을 그냥 죽게 내버려두겠다는 얘기
다."
그러자 병사들은 상부의 비겁함에 야유를 터뜨렸고 맥진스키 중령
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나는 그들을 버리고 싶지 않다. 어떻게 해서든 그들을 집으로 돌아
가게 해 주고 싶단 말이다. 귀관들의 생각은 어떤가?"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제 생각도 마찬가지 입니다."
"까짓 것 한 번 해봅시다!"
2202년 06월 04일. 17시 05분. 스웨덴 베네르스보리
쉴 틈 없이 저항하던 여섯 명의 미군은 종말을 맞이하고 있었다.
다들 한 군데씩 총상을 입은데다 탄약을 거의 소진해 버려 죽을 순
간만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제기랄... 윗놈들이 우릴 버렸어!"
미군 한 명이 그렇게 분통을 터뜨리는 가운데 들 것 위에 누운 루
리 옆에 앉아 있는 의무병은 총에 맞은 왼팔에 붕대를 감으며 말했
다.
"소령님. 이제 우리 먼저 가야 될 것 같군요."
"저 때문에..."
루리는 자신을 지키려다가 이제 목숨을 잃어야 할 지경이 된 여섯
명에게 죄책감을 느낀 나머지 흐느꼈다.
"울지 마세요. 다들 간신히 버티고 있는데 소령님이 그러시면..."
소매에서 휴지를 꺼내 눈물을 닦아준 의무병이 마악 일어서려던 순
간 날아온 총알이 그의 몸을 꿰뚫어 버렸다. 그는 그대로 피를 흘
리며 쓰러졌고, 루리는 그가 흘린 피가 자신의 얼굴을 적시자 멍한
표정을 지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곧 여기 저기서 함성과 총
성이 뒤섞인 채 들려왔고, 비명 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SF를 좋아하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이 곳에서 활동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