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년 06월 04일. 07시 40분. 노르웨이 베르겐 동쪽 90Km

한국 해군이 피스랜드를 향해 진격하는 가운데 미 해군은 베르겐을
탈환하기 위해 여러 상륙모함에 나뉘어 탄 9기병사단의 출동을 도
왔다. 각 상륙모함의 비행 갑판마다 병력과 중장비를 실은 MV-45
호크가 출동할 준비를 마쳤고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독일에서 이륙
한 AC-53 건쉽 편대가 니미츠 기동부대와 대열을 맞추어 날고 있
었다.

"준비되는 대로 출격해라. 이번 작전의 승리는 신속한 공격에 달려
있다."

기병대의 출동을 의미하는 나팔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킬 고어' 소
장은 기병대 모자를 쓴 채 MV-45의 조종석에 올랐다. 모든 작전의
입안을 마친 상태에서 직접 적을 상대하러 가는 그의 방식은 대단
히 위험해 보였지만, 소장 본인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만큼 그는
대단히 배짱있고 용기 있는 군인이었다. 단지 자신이 인정하지 않
는 자에겐 대단히 무례하게 군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곧 소장이
탄 MV-45가 갑판을 이륙하는 것을 시작으로 9기병사단은 전장을
향해 날아갔다.

2202년 06월 04일. 08시 10분. 노르웨이 베르겐

"사령관님, 대공 경계반으로부터 보고입니다! 다수의 적 항공기가
이곳을 향해 날아오고 있다고 합니다."
"나토가 이쪽으로 병력을 돌릴 여유가 있나?"
"미 공군 전략 수송군이 독일로 1개 군단을 옮겨 왔다는 미확인 첩
보가 있었습니다. 그 중 한 개 사단이 분명합니다."
"대함 공격반을 호출해!"
"여의치 않습니다. 대부분의 전력이 아이슬란드에 가 있는 데다 지
금 이 부근에 남은 폭격기들의 태반이 격추 당해서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고 합니다."

부관의 보고에 목성군 노르웨이 방면군 사령관 '후지와라 다카기'
소장은 최악의 상황이 닥치자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명색에 사
령관이라는 그에게 주어진 전력은 2개 기계화 대대만이 보강된 1개
보병사단과 기갑여단만이 전부였다. 이런 판국에 베르겐을 노리고
쳐들어오는 미군이 완편 사단이라면 결과는 불을 보듯 훤했다. 정
석대로 시가전을 전개해 시간을 버는 쪽이 낳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그는 창 밖으로 보이는 베르겐 시가지를 바라보았다. 시민들에
겐 미안하지만 이제 이 도시를 방패로 삼는 수밖에 없었다.

2202년 06월 04일. 16시 15분. 후쿠오카

유럽 반대편의 큐슈에 자리한 후쿠오카는 전쟁이 발발한 후 혼슈를
빼앗긴 일본 정부가 임시 수도로 삼은 곳으로 일본의 주요 도시들
가운데 하나 였지만, 평시 때와 달리 시가지엔 활기가 흐르지 않았
다. 시민들은 도시 주요 지점에 설치된 지대공 미사일 발사기를 비
롯한 대공 화기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주둔 중인 군인들을 보는
것이 일상이나 다름 없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네르갈의 '아카츠키
나가레' 회장은 후쿠오카에 자리한 자사 건물의 최고층에서 시가지
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와인을 음미했다. 그런 그를 조용히 바라 보
던 비서 에리나가 말했다.

"회장님, 현 상황은 우리 회사에게 매우 불리합니다. 특단의 해결책
을 내놓지 않으면..."
"아직은 때가 아니야. 보잉, 록히드, 다소, 톰슨CSF와 같은 서구권
의 방산 업체들은 우리의 숨통을 끊을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지만,
그들 생각 대로 당할 우리가 아니지."
"우리와 손을 잡을 생각이 있는 기업은 대우와 현대 뿐입니다. LG
와 삼성은 일언지하에 거절했기 때문에 기대하기가 힘듭니다. 적어
도 서구권의 군산 복합체들에게 대항하려면 두 회사의 도움이 필요
합니다."

에리나와 아카츠키의 대화 내용대로 네르갈은 지금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보손 점프 체제의 붕괴, 네르갈제 무기를 주로 사
용해온 통합군의 연이은 참패가 가져온 시장 점유율 축소... 모든
것이 최악이었다.

"참 서글프군요..."
"뭐가 말인가?"
"회장님, 소니와 삼성의 대결을 아십니까?"
"물론. 두 회사의 대결은 참 극적이었지. 21세기 때였던가? 그 때부
터 표면화된 두 회사의 경쟁에서 가장 덩치가 컸던 쪽은 소니였지
만, 오랜 경쟁 끝에 최후에 승리를 거머쥔 기업은 삼성이었지. 그
이유가 참 간단하더군. 소니는 내부가 부실했어. 회사의 순이익을
게임 산업에서만 가져왔다는 통계만 봐도 이미 갈 때가 됐다는 생
각이 들고도 남을 정도로... 그러고 보니 삼성은 신입 사원을 뽑을
때도 대단히 특이한 방법을 쓴다고 들었어."
"그룹 회장이 사람의 관상을 볼 줄 아는 사람을 대동하고 입사 희
망자를 하나 하나 관찰한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아카츠키 회장은 나데시코 크루들을 생각하고는 피식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삼성이 네르갈이 택한 작전을 실행에
옮기기 전에 사람들을 물색해 그들이 적격자로 간주되어 고용 확정
에 앞서 삼성 회장 앞에 섰을 때 어떤 평가를 받았을지 궁금해졌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크게 사고를 치고 다니고도 남을 거라는 관상
인의 말에 그들을 채용하지 않았을 지도 몰랐을 거라는 생각이 들
었다.

"무엇보다도 보손 점프 체제의 붕괴는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어쩌면 잘 된 건지도 몰라..."
"보손 점프의 어두운 면을 걱정하셨군요."
"시간을 거꾸로 돌려본다는 건 인류가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행위
니까. 차라리 잘 됐어. 이번 전쟁이 우리에겐 새로운 출발이 됐으니
까."
"희망을 버리지 않으셨군요."
"그 바보들 덕분에. 그러고 보니 미 해군과의 거래는?"
"예정 대로 끝났습니다."
"에리나, 왜 미 해군이 우리 회사에 그런 일을 맡겼는지 궁금하지
않아?"
"아직은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겐 루리와
같은 소녀들을 제조할 능력이 없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방심할 수만은 없어. 언젠가 우리 회사의 전문 영역인 생명 공학
분야에도 그들이 손길을 뻗치게 될 거야. 그렇게 되기 전에 난 어
떻게든 네르갈을 제 위치에 다시 세우고 싶어. 돌아간 형을 생각해
서라도..."
SF를 좋아하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이 곳에서 활동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