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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을 찾아서'(너무 어려워서 사놓고 안읽었음)의 저자인 복거일씨의 분단소설'높은 땅 낮은 이야기'를 다 읽었습니다.
2009 메모리즈 소송 사건을 바탕으로 한, '보이지 않는 손'의 현이립이 처음 나오는 이야기지요.
저는 '높은 땅 낮은 이야기'가 작가의 군생활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캠프 세네카의 기지촌'(다 읽었음)도 작가의 경험담이지요. 물론 타임머신타고 조선시대로 건너가는 혁명가의 이야기(역사속의 나그네)는 '당연히' 아닐겁니다.
그런데 '그라운드 제로'에 나오는 사람들은 아무리 봐도 어디선가 본듯한 인물들입니다.
질문은 세 가지입니다.
1. 배경은 최전방으로 1960년대로, 북한국과 교전도 있는 지역입니다. 보초가 총들고 있는데, 버스가 지나갑니다. 보초는 "서라!"고 했는데, 버스가 말안듣고 가버리자 바로 발포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몇명 죽거나 다쳤는데, 오히려 보초는 상받습니다. 이건 무슨 의미인가요? 군대에 대한 풍자인가요? 아니면 비판하는건가요?
2. 복거일씨의 소설에서는 유독 '부녀관계'가 강조되는 듯합니다. 데뷔작에서는 주인공이 딸을 위해서 사람죽이고, 단편'꿈꾸는 지놈의 노래'는 나이든 과학자가 고대인의 복제인 딸을 키우다가 결혼으로 떠나보내는 내용입니다. 동화'숨은 나라의 병아리 마법사'의 주인공은 여자아이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만 있습니다. (부녀관계가 강조됨. 참고로 여기서 등장하는 이웃나라 침략자는 김정일을 암시하는 인물임) '서울, 2029년 겨울'에서는 레즈비언 부부가 정자은행을 이용해서 낳은 딸이 자신의 친부(정자만 준 사람)를 찾으러 떠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xxx가 터질때의 상황에서는, xx들이 여자친구들의 아버지와 연애 문제로 싸우느라....
3. 작가의 소설들을 보면 뭔가 '정치'성향이랄까.. 뭔가가 떠오릅니다... 앞서 말한 '그라운드 제로'의 조지프 메가리스인가, 스티븐 메가리스인가 하는 인물들은 아무리봐도 자꾸 누군가가 연상됩니다.
1.
군인이 경계를 서는 지역에서, "서라"는 초병의 요구를 묵살하면 즉각 발포는 당연한 겁니다. 더구나 한반도는 엄연히 휴전상태이지, 전쟁이 종결된 상태가 아닙니다. 적과 마주하고 있는 최전방 지역에서 초병이 "서라"고 했는데 서지 않는다면, 그 초병은 당연히 해당 차량이나 사람을 어떻게 해서든지 제압하여야 합니다. 차량의 경우 발포해서라도 제압하는 것은 그 초병의 의무입니다. 군인이라는 것이 의무에 살고 의무에 죽는다는 것은 결코 농담이 아닙니다. 경계를 서는 초병은 자신이 경계를 담당한 지역에 관한한 목숨을 걸고 사수해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습니다. 누군가 멋대로 그 지역을 통과하려고 했다면, 자기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것이죠.
작년 금강산에서 북한 초병에 의해 한국 관광객(주부)가 피살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군경계지역을 멋모르고 넘어선 한국의 관광객이 북한 초병에게 발각되었고, 북한 초병은 "서라"고 요구했지만 한국 관광객은 그냥 뛰어서 도망가려고 했습니다. 따라서 북한 초병이 발포하여 한국 관광객이 죽고 만 것은 불행한 사건이었지만 군인의 의무를 다한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죠. 만일 해당 초병이 발포하지 않아서 한국 관광객이 뛰어서 도망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면, 그 초병은 부대로 돌아가 아무리 큰 벌을 받아도 사실상 할 말이 없는 상황인 겁니다 - 전시였다면 이 건은 "경계에 실패"한 것이기 때문에 상관에게 즉결처분(사살) 당할 수도 있는 레벨의 문제이죠. 관광객들에게 사전에 교육하면서 초병이 "서라"고 요구하면 서야하고, 군 경계지역으로 넘어가면 안된다고 철저히 단도리하지 못한 여행사가 더 문제였던 것이지, 북한군이 문제였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경계를 서는 초병이 어떻게 행동하여야 하는 것인가'는 군대를 다녀오셨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2.
<숨은 나라의 병아리 마법사>는 <마법성의 수호자, 나의 끼끗한 들깨>에 등장하는 동화의 확장판입니다. 복거일이 유독 부녀 관계에 몰입한다기 보다, <마법성의 수호자, 나의 끼끗한 들깨>는 사실상 <비명을 찾아서>에서의 인물 설정과 상당히 많은 부분이 거의 판박이입니다. 주인공 성격에서부터, 아내와 딸을 사랑하면서도 딴 여자를 그리워하는 설정, 그리고 딸과의 교감, 이런 것이 작품의 중요 테마를 이룹니다. 따라서 <마법성의 수호자, 나의 끼끗한 들깨>는 독립적인 작품의 관점에서만 생각한다면 완성도가 상당한 수준이라고 평할 수 있겠지만, 십 수 년 전에 쓴 <비명을 찾아서>를 극복하지도 못했고 오히려 평이한 수준에서 되풀이하고만 있기 때문에 별로 점수를 줄 수 없습니다. 복거일은 <파란 달 아래>와 같이 청춘 남녀의 연애를 다루기도 하고, 단편 <애틋함의 로마>에서는 스캔한 자기 자신의 젊은 복제인간을 아들처럼 대하는 내용을 다루는 등, 부녀 관계만을 유독 중요시한다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작가가 딸 키우는 아버지라면 그것이 어느 정도 작품에 반영될 수는 있겠지만, 거기에 매몰된다고 보기는 어렵죠.
제가 알기로 자식을 키우는 아버지 입장에서 자녀 교육과 아이들의 문제를 소설 작품을 통해 정면으로 들이댄 작가라면 오히려 최인호를 들고 싶습니다. 나중에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된 <도단이>와 같은 작품은 작가가 당시 국민학교를 다니던 자신의 아들을 주인공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최인호 아들의 아명이 도단이였죠)
3.
복거일이 현실 정치를 작품 속에 그대로 대입하여 쓴 작품이라면, 단연 <목성잠언집>이 절정을 이룹니다.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복거일이 여타 다른 작품들 속에서 현실 정치를 풍자하고 있는 것은 <목성잠언집>에 비하면 거의 애교이고 별로 강도가 세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겁니다. <목성잠언집>은 껍데기는 SF이지만 사실상 내용은 정치 팜플렛에 가깝습니다. <목성잠언집>에서는 무대만 SF로 하고 있을 뿐이지 대부분 어마어마한 강도로 DJ 정권을 비판하는 데 지면을 할애하고 있으며,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별로 호의적이지 않은 시각으로 비판하고 있죠. 더 나아가 복거일씨는 <목성잠언집>에서 현실 정치에 대해 퍼부운 비판적인 메시지를 널리 알리고 싶었는지, 일개 작가가 자기 개인돈 들여서 중앙일간지에 <목성잠언집>을 선전하는 커다란 책광고까지 싣기도 했습니다. 출판사에서 뒤늦게 알고 깜짝 놀랐다고 하죠.
그렇지만 복거일이라는 사람이 그래도 나름 역량이 있는 작가라는 것이, 최근에 나온 작품집 [애틋함의 로마]에 수록되어 있는 단편 <내 얼굴에 어린 꽃>은 줄거리상 <목성잠언집>의 후일담이라고 할 수 있는 속편인데, 놀랍게도 그 문학적 완성도가 상당합니다. 인간이 멸종한 끔직하고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인간의 사체를 비료 삼아 꽃을 키우는 로봇의 따뜻함과 인간애를 묘사한 <내 얼굴에 어린 꽃>은 해외 유수의 SF 작품들과 비교해봐도 별로 꿀릴 게 없는 수작이라고 할 만 하죠. (약간은 졸렬한) 정치 팜플렛에 불과했던 전작 <목성잠언집>의 테마를 가지고, 이렇게 뛰어난 후속편을 생산해 냈다는 것이 거의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1번같은 이야기는 흔히 도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보초병이 접근하는 괴한을 발견했는데 그 괴한은 암구어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마침 애인과 잘 안풀려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보초병은 그 괴한을 좀 가혹하게 다루었다. 다음날 그 괴한은 사단장으로 밝혀졌으며, 사단장은 그 보초병에게 임무를 잘 수행했다는 이유로 포상휴가를 주었다.
위와 같은 식으로 풀이할 수 있을지도... 더구나 종종 교전까지 일어나는 지역에서 보초의 명령에 불복하는 버스에 발포하는 것은 보초의 임무에 충실한 것입니다. 군대에 대한 풍자 같은 것이 아니라 당시 사회상을 그렸을 뿐인 것 같습니다. 즉, 625가 끝난지 얼마 안되어 모두가 북한에 치를 떠는 상황, 그리고 516혁명 이후 사회 전반에 뻗어나가던 군사문화 등이 합쳐져서 생긴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