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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글도 그렇지만
웬지 세대차이 느껴지고...(저만해도 국민학교 초반까지 채변봉투가 있었던 사람이라서 -_-)
근데 뭐 다 그렇게 되는 거지만
'옛날'이라는 시간 분류에 너무나 긴 시대를 압축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돼지오줌보는 그야말로 지금 대학간 자녀 이상을 둔 아버지 어머니 세대의 이야기거든요.
그냥 <아기공룡 둘리>만이라도 정독하시면, 1980년대 한국 사회상이 오롯하게 파악될 겁니다.
물어보시는 테마 중 상당수는 1980년대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간혹 그 이전 세대 이야기...
뭐 요즘 시대에 빗자루 없는 집 흔하고, 연탄이 뭔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흔하니 세대차이 날 수 밖에요. 안도현 시인의 유명한 시인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하는 시도 이해 못할 사람 지천에 깔릴테고요. 전기절약 때문에 알전구가 퇴출된다니까 앞으로 한 20년 정도 지나면 "아빠, 전구가 뭐야?" 소리도 들을지 모르겠군요.
옛날에는 개구리를 잡아서 엉덩이에 빨대를 꽂아 풍선처럼 불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개미를 잡아 엉덩이를 쪽쪽 빨면 시큼한 물이 나오는걸 군것질거리처럼 즐겼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이건 또 제 기준 옛날 이야기. 이 개구리 풍선이나 개미산 군것질이 돼지오줌보 시절과 겹칠겁니다. 학교 짓느라 공동묘지를 밀었느니 하는 소문들과도 나이가 비슷할겁니다.
박정희 시절까지 올라가면 쥐잡기 운동이라고해서 국민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집에서 쥐를 잡아 꼬리를 잘라오는 숙제를 내주기도 했다죠.
축구공의 개념이 없는건 아니었죠, 축구라는게 뭔지도 알고 있었고 축구공을 어디서 팔고 있는지도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금전적인문제나 여러가지 사정으로 구하기 힘들기때문에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할수 있는걸 사용한거죠.
물론 돼지를 잡는게 매일 있는일은 아니니까 그마저도 흔한일은 아니지만요.
70년대 초반에 태어나신 분들까지는 아마 가지고논 경험이 있을겁니다
채변봉투는 90년대도 있었습니다. 제가 국민학교 시절에... (중간에 초등학교로 바뀌었지만) 해본 경험이 있으니까요.
.... 집 화장실이 수세식은 아니었지만 똥이 아래 모이는 거라서 그냥 화장실을 사용하면 도저히 똥을 퍼갈 수 없었기에 신문지 깔고 눴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은 모르겠습니다만 기생충약도 매년 하나씩 먹었으니까요.
.... 예전 기생충약은 독하지 않아서 기생충이 있을 경우 죽은 시체가 똥과 같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아버지께 들었습니다. 죽이기만 하니까요. 지금은... 설사 있다고 할 지라도 죄다 녹아서 안보인다고 하더군요. 뭐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식사중이신 분께는 죄송. 전 지금 밥 미리 먹고 왔습니다.)
무서운 시대라... ^^ 사실 현재가 더 무서운 시대같아 보이는데 말입니다.
돼지 방광이야 사람의 방광처럼 그 신축성이 뛰어나서 마치 풍선같이 늘어나는 성질이 있어 잘 씻은 다음에 공기를 불어 넣은다면 별 문제 없지 않을까요? 저도 76년생인지라 실제론 본건 아버지가 외갓집에서 돼지 잡을 때 돼지 방광을 가지고선 바람 불어서 공처럼 만들어주신 다음에 예전엔 이렇게 놀았단다 하고 보여주신 거 밖에는.. ^^; 하지만 그럭저럭 바람 빠진 공 정도의 느낌은 나더군요. 사실 순대나 내장 그냥 먹기도 하는데 날것 입에 닿았다고 문제 될건 없지요.
기생충이야 예전엔 워낙 비료등으로 인분을 많이 쓰기도 했고, 잘 씻지 않고 먹어서 많이 유행했고, 실제로 기생충이 있는 아이들의 경우 성장발달이 저해되고, 체력이 떨어지니 국가적으로 기생충박멸에 신경쓰는 건 당연한거지요. 인권침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지요.
얼마전까진 의대에서도 기생충학은 전공필수에서 선택과목으로 떨어지는 수치를 겪었습니다만 요즘 다시 유기농법이 유행하면서 기생충 이 의외로 또 발견된다고도 하더군요. 기생충이 국가적으로 많이 유행하면 또 다시 채변봉투가 등장할지도? ^^
돼지 오줌보 축구 이야기는 저도 들었습니다. 예전에 백기완 선생의 모 토크쇼에서 언급이 있었고, 저희 아버님에게서도 들었습니다. 중장년층대에는 있었나 봅니다. 80년대 제가 살았던 상계동은 가난한 축에 들어서 비슷하게 공놀이를 하기는 했습니다. 그때는 돼지 오줌보가 아니라, 깡통이나 막걸리 통(플라스틱)을 차면서 동네 어귀에서 축구를 했었습니다. 당시 공 살 정도의 형편되는 친구가 드물었던걸로 기억합니다.
채변 봉투는 기생충 검사를 위해서 했었습니다. 지금은 안하나 보군요.^^; 제가 유년 시절을 보냈던 80년대까지도 기생충 문제는 심각했던 것 같습니다. 보리 혼분식은.. 실제로 저학년때까지는 선생님들이 학생들 도시락을 검사 하셨었습니다. 쌀만 싸온 친구들은 좋은 소리는 못들었지요.
일부러 도시락에 넣을 보리나 조를 사러 쌀가게에 갔던 기억이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