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이곳은 무엇이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유 게시판입니다. (댓글 기능을 다시 활성화시켰습니다.)
sf 쪽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아마 네이버 연재중인 양영순님의 덴마를 보신 분도 많이 계시지 않을까 추측합니다.
그런데 전 이 웹툰을 보면서 큉 이라는 존재의 설정에 대해서 깜짝 놀랐어요. 여러가지 의미로 신선한 충격을 많이 받았지요.
웹툰을 보며 파악한 바로는
우주의 물리적 오류,모순 때문에 큉이라는 존재가 탄생합니다. 퀑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초능력자죠.
이들이 우주의 물리적 오류 때문에 탄생했다면 반대로 이 오류를 해결하기 위한 대항체인 전사체, 통칭 가래떡도 존재하죠.
근데 왜 이것을 보며 신선한 충격을 느꼈냐면,
우선은 우주의 물리적 오류와 모순이 존재 => 그로 인해 초능력자인 퀑이 탄생함.
이라는 공식이 일단 자연스럽지가 않아 보이는데 이에 대해서는 아무 의문제기가 없더군요.
이런 근본적인 설정까지 따지고 들면 피곤하기만 하고, 애초에 초능력이라는 것이 뭔가 합리적으로 설명되기는 힘들테니
이건 그냥 그려러니 할 수는 있겠습니다. 이건 제가 애당초 글의 본제로 삼으려던 것은 아니고요.
정말 충격적이였던 것은
우주에 물리적 오류와 모순이 존재한다는 발상 자체였지요.
전 이런 생각을 해본적이 없거든요.
항상 너무나 자연스럽게 우주는 그 자체로 신비롭고 완전하다고 생각했으며,
우주나 자연 그 자체에 모순이 존재한다는 그런 상상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설정을 접할 때 제 나름대로는 엉뚱한 상상도 했지요.
마치 슬레이어즈에서 리나인버스가 기가슬레이브를 실패하면 세상이 붕괴하듯.
우주에 모순이 존재한다면 그 즉시 붕괴되어 버려야 정상이 아닐까 하는 상상요.
곰곰히 생각해봤습니다. 이런 발상 자체는 확실히 틀에 박힌 사람은 할 수 없겠구나 하고요.
우주에 존재하는 물리법칙과 자연현상에도 오류가 존재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사실 이보다 더 근본적이랄까. 머리 속에서 훨씬 더 깊숙히 맴도는 의문점이 있어요.
과연 오류라는 것이 우주에 통용될 수 있는 단어일까라는 점이지요.
머리 속에 떠도는 생각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표현하기가 힘들고 저도 제대로 정립이 안되지만,
만약 우리가 상자속에 과일을 5개를 먹고 5개를 남겨뒀다고 칩시다.
이걸 누가 건드리지 않았다면 당연히 5개가 남아있어야 겠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4개만 남고 한개가 사라졌다면 이건 인간이나 다른 생명체의 개입이 없는 한 우주의 물리적 오류가
발생했다고 할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건 양자역학과 상대론 이론 사이의 충돌과는 전혀 다른 성질이겠죠.)
그러나 이것은 한편으로는 우리가 10-5=5라는 수식이 너무나 당연하게 성립하는 이 우주에서 살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식할 수 있는 것이지 만약 10개 중 5개를 먹고 5개를 남겼는데 너무도 당연하게도 어떤 때는 3개가 남기도 하고 어떤 때는
4개가 남기도 하는 이상한 세상에서 사는 존재들은 이것을 오류라고 인식할 수가 없겠죠. 거기선 당연한 하나의 현상이니깐요.
즉, 우주에 오류가 있다고 해도 인간이 인식할 수도 없을 뿐더러,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 자체로 어떤 현상이지,
오류판단의 대상이 애시당초 아니지 않은가 하는 점...(과일이 3개가 남기도 4개가 남기도 하는 세상에선 몇 개 남았느냐를
가지고 오류니 모순이니 따지지도 않겠죠. )
아.. 이렇게 생각하자니 너무 해골이 아파지네요.
인식하지 못한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는 말도 충분히 나올 수 있고, 윗 생각 자체가 허접한 느낌도 많이들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갈릴 것 같은데...저는 이미 존재하는 규칙이 현상으로 나타난게 우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규칙을 규명하는 이론들이 과학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고, 그 규명행위가 실제와 차이난다고 오류라 부르는 것은 자기가 찾아낸 해답과 실재하는 우주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오류라고 부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오류라 불리는 것 조차도 결국 규칙 속에 속하는 것이고, 우리가 그 규칙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떄문에 오류라고 부를 뿐이라고 생각하는거죠.
자연에 완벽함이란 없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물리학도 그렇거니와 생물 발달사를 살펴봐도 이상한 점이 많습니다. 생명은 완벽함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우연과 조합에 따라 어떻게든 살아남는 방법을 찾아가죠. 그 와중에 별별 모순도 다 생기고요. (그걸 모순이라고 불러도 된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이 세운 기준에는 맞지 않아도 자연계는 그렇게 돌아갑니다. 원래 그런 성질이 있는데, 그걸 오류라고 지적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니까… 이미 존재하는 자연 현상을 우리가 모순이라고 지적하는 건 앞뒤가 바뀐 것 같습니다.
해당 작품을 안봐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무엇이 오류이며 무엇이 완전인가의 개념없이 오류와 보정을 논한다면 이는 단순히 '인간적인' 설정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말하자면 물리, 역학 이런 거랑은 무관한, 종교적인 설화(인간에 관한 이야기죠, 우주가 아니라)에 가깝네요. 예컨대 신이 만물을 창조했는데, 그게 생각대로 안돌아가니 그걸 수정하려고 세상에 이것저것 개입하는 이야기와 비슷한 발상이랄까요. 이야기의 설정으로서는 재미있을 수도 있는데,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멀리갈것도 없이 매트릭스만 하여도 네오라는게 버그의 집합체이고 스미스가 버그를 잡는 프로그램으로 나오지요.
그렇게 천지개벽적인 아이디어로 보이지는 않아요.
다만 그건 우리가 사는 우주, 우리가 사는 세계를 어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린 문제 아닐까 싶네요.
'나'라는 존재가 실재하는지, 아니면 물통속에뇌를 담궈놓고 전극을 꽂은것인지, 아니면 고차원적인 존재들이 플레이하는 심즈같은 게임속 인공지능에 불과한걸지 모르는거니까요. 이런 우주라면 충분히 오류가 생길 여지가 있지 않을까요.
이런쪽에서 얘기를 접근시켜나가면 우주의 오류라는 개념만을 생각하기 위해 틀에서 벗어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 덴마는 제가 재미있게 보고 날마다 기다리는 작품입니다)
매제키덕님이 하시는 얘기를 쉽사리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인지 '덴마'를 처음부터 다시보자며 마음먹습니다. 직접보며 감상하면 이런 얘기를 하신 사정을 헤아릴 수 있으니까요.
상대론 vs. 양자역학
이 둘 간의 모순은 아직도 해결 안났을 텐데요.
아인슈타인이 죽을 때까지 어떻게든 하나로 모아보려고 했는데,
결국 통일장 이론 전개는 미완으로 주저앉았고 아직도 그 연구는 답보 상태죠.
우주는 본래 매우 아름답게도 완벽한데 아직 사람들이 실체를 다 못 밝혀낸 것인지,
아니면 본래 물리적으로 모순에 차 있는 것인지... 그것은 아직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죠.
조금 다른 방향의 여담으로...
만화가 양영순씨는 데뷔 초기부터 알아주는 SF 매니아였습니다.
양영순의 데뷔 초기에 나온 <정크북>인가 옴니버스 단편집을 보면,
만화가 본인이 작중에 출현하여 서점에 가서 "마술팬티 주세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골수 SF 팬이라면 바로 알아들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 장면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아채기 어렵죠.
서점에 가서 "마술팬티"를 찾다니 <누들누드>의 작가다운 농담이구나 하고 넘어갈 사람도 물론 많겠지만,
실제로 과거 '호암'에서 출간되었던 <마술팬티>은 퀄리티 높은 주옥같은 SF 단편들을 모은 희귀본이거든요.
프레데릭 브라운 단편집 <섬씽 그린>을 중심으로 브래드버리의 <멜랑콜리의 묘약>의 일부을 발췌하고
웰즈의 대표적인 단편 <벽문>, <맹인의 나라에서는 애꾸눈이 왕이다>를 하나로 합쳐서 역은 책이었죠.
특히 <맹인의 나라에서는 애꾸눈이 왕이다>는 스필버그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중에 대사로 나오고,
콜린 윌슨의 비평서 <아웃사이더>의 첫번째 챕터가 <맹인의 나라>였던 것을 생각하면 필견의 작품입니다.
15년 전 양영순의 단편집 <정크북>에서 "마술팬티" 운운하는 것을 보고
"언제고 이 만화가는 SF를 작심하고 그릴만한 배경이 있는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이제 드디어 제대로 달려들어 작품 하나 만들어 내고 있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