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미 몇 년 전부터 조금씩 이슈가 되어 왔던 일이지만...
한 때 "법"이라는 특수 분야를 독점하고 있었던 법조인들도 밥 굶을 걱정을 해야 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변호사들이 변호사협회에 납입하도록 되어 있는 월 납입금을 못내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고 하더군요.
이유는 단 하나 - 개업한 변호사들이 진짜로 돈이 없어서, 돈을 잘 벌지 못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제 사촌 동생 하나도 몇 년 전 어렵사리 사법고시 패스하고 지금 로펌에 취업해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지만...
고시 준비하는 동안에는 고시 패스만 하면 세상이 다 바뀔 것처럼 생각하고 죽어라 매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목표를 달성한 지금 살아가는 모습은 저와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 그냥 평범한 직장인과 마찬가지죠.
검사 판사로 임용되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인데 보통 공무원 급여를 받기 때문에 생활하기 빠듯하다고 하고, 
변호사 사무실을 새로 열자니 워낙 변호사들이 넘쳐나서 경험도 없이 개업했다가는 곧장 망한다는 겁니다. 
결국 사시 패스하고 법무연수원 수료한 후 직장 잡는다고 취업원서 들고 한 동안 이리저리 알아보더니 
고생끝에 중소규모의 로펌에 간신히 취업해서 이제 평범한 직장인으로 자리잡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나마 자신은 스스로의 한계를 깨닫고 현명한 선택을 했고, 운도 좋은 편이었다고 하더군요.

   
과거 "법을 공부해 두면 하늘이 두쪽나도 밥 굶을 걱정 없다"는 말이 통용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설령 고시 폐인으로 사법고시에 실패하더라도, 법무사가 되거나 법무사무실의 사무장으로 일하면서
왠만한 대기업 직장인이나 사장들을 우습게 보는 수익을 올리던 시절도 그리 먼 옛날 이야기는 아니죠.
그런데 이제는 사법고시 제대로 패스하고 연수원 수료해도 취업자리 알아보려 허덕여야 하는 세상입니다.
더 나아가 멋 모르고 용감하게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가 얼마 못버티고 깡통 차는 일도 늘어나고 있죠.
   
개업의사들도 줄줄히 빚더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망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의사들이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았는데, 이제는 한의원뿐만 아니라 동네 개인병원들도 어려워지고 있죠.
그나마 의료보험에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성형외과와 치과와 같이 수익성이 높다고 알려진 분야의 병원도
지나치게 공급이 많아지고 병원이 많이 생기다보니까 전부 다 같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 처하고 있습니다. 
   

2.
이러한 변화의 내용을 잘 살펴보면,
"개인 변호사 사무실, 개인 병원"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전문직이라는 포장이 그럴싸해서 자세히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지만,
결국 변호사나 의사도 개업하고 나면 "소호사업자 = 소상공인"인 자영업자라는 것이죠. 
     
사람들이 자가용 끌고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게되면서 동네 슈퍼가 어려워지고 재래시장이 무너졌듯이,
몸이 아프면 역시 자가용 끌고 대형 병원에 가서 비싼 돈 내고 최신 의료 시술을 받기를 원하고
법률 서비스가 필요하면 이름난 대형 로펌을 찾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오랜 시간 피나는 노력을 들여 변호사 의사 회계사 등의 타이틀을 이마에 붙여놓았다고 하더라도,
개업을 선택하는 순간 그 사람은 자영업자에 불과하고 거대 자본과 조직의 기업과는 싸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제 전문직이라는 미명하에 오피스 하나 임대해서 쏠쏠한 수익을 올리며 으스대던 시대는 사라져버렸고,
결국 자영업자에 불과한 그 사람들이 대형화 기업화를 이룩한 로펌이나 병원과는 경쟁이 불가능합니다. 
   
최근 구글에서 AI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향후 회계사 사무실과 직종이 거의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더군요.
회계 업무에 밝은 사람은 물론 필요하지만, 시스템 구축이나 컨설팅할 때 그 사람들이 제대로 세팅하면
이후 대부분을 자동화할 수 있기 때문에 회계사의 역할은 모두 시스템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컨설팅 업계에서 회계 지식을 가진 사람은 우대받지만, 개인 회계사의 일과는 크게 다릅니다.
이제 회계사라는 전문직도 자기 사무실을 차려서 먹고 사는 것이 가면 갈수록 힘들어 지고 있고
앞으로는 대형 컨설팅펌에서 시스템 구축이나 컨설팅 업무를 해야 하는 것이죠. 
   
대형 마트에서 장을 볼 때마다, 시장 상인들의 역할이 오늘날 시급 알바로 완전히 대체되었음을 체감합니다.
과거 자영업을 하는 상인들이 올렸던 수익은 마트를 운영하는 거대 대기업의 주머니로 들어가고 있고,
이 구조가 훨씬 더 효율적이고 소비자 선호도가 명백하기 때문에 다시 되돌릴 수 없는 노릇입니다. 
이제 개인 역량과 노력을 믿고 소규모로 창업해 살아남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가면 갈수록 "소호 사업자 = 자영업자의 몰락"은 더욱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변호사 의사와 같은 전문직도 "자영업의 몰락"이라는 큰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과거 "시간 여유가 많고, 수익도 높다"고 하여 주변의 부러움을 샀던 전문직이라고 하더라도 
이재는 거대 기업에 소속되어 월급장이로 먹고 사는 것을 희망하는 그런 시대가 도래한 것이죠.

     

3. 

이런 시대에...오랜 시간 고학력 고스펙을 쌓아 놓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의문이 일기도 합니다.
일례로, 유난히도 교육열이 지독했던 제 외가 쪽으로 이종 사촌들이 지금 어찌 지내는가 면면을 보면... 
의사가 두 사람(모두 의학박사), 경제학/공학/사회학 박사 취득자 3명에 고시 패스한 변호사 1명입니다.
여기에 현재 시점에는 박사를 따지 못했지만 박사 수료하고 논문 과정 중인 사람이 두 명 더 있죠. 
요약하면 현재까지 박사학위 딴 사람 5명에다가 박사 수료가 2명 더 있고, 변호사까지 또 있는 겁니다.
어머니쪽 이종 사촌만 놓고 보았을 때 이렇습니다 - 스펙만 놓고 보면 어마어마한 명문가 나올 듯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현재 살아가는 모습을 놓고 보면 별로 그렇게 그럴싸하지 않습니다. 구질구질하죠.  
가장 큰 형님이신 의사가 된 분은 수도권 도시에 성형외과 차렸다가 실패했습니다 - 빚만 지고 처분했죠. 
이제는 남의 병원 월급장이 의사로 일하고 있다는데, 빚도 다 못갚고 고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은 형님은 한국에서 시간강사로 떠돌다가 포기하고 영국으로 다시 가 고생중이고,
미국에서 사회학 박사를 받은 형님 역시 지금 한국에서 시간강사로 떠돌면서 생활비조차 잘 못 벌고 있습니다. 
월급장이로 먹고 사는 저와, 역시 월급장이가 된 변호사 사촌동생, 월급장이 의사인 사촌여동생이 형편이 가장 낫죠.
다시 말해 박사 따고 변호사 되고 의사 되고 죽어라 고생한 결과 - 월급장이로 자리 잡은 사람이 그나마 좀 낫습니다. 
   
전문직 좋고, 박사 좋고, 고학력 고스펙 좋습니다.
하지만 고시 패스하고, 의사 되고, 박사 땄다고 해서 인생이 브라이트해지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과거처럼 인생 역전 같은 것은 없습니다 - 그냥 박사 직장인, 변호사 직장인, 의사 직장인으로 일할 뿐이죠.
직장에 얽매이며 사는 것이 싫다고 개업을 선택하거나, 학교 주변을 떠돌며 교수 자리를 기대하더라도,
이제는 박사이거나 변호사이거나 의사라고 해서 얻을 수 있었던 명예와 성공은 쉽게 오지 않습니다.
오래도록 전문직 공부하느라 고생한 끝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도달해서 그것을 누리는 게 아니라,
천신만고 끝에 공부를 마치고 나면 이제부터 살아남기 위한 새로운 도전과 고생이 또 다시 시작될 뿐이죠.
세상에는 잘나고 똑똑한 사람이 너무 많아서, 고학력 전문직도 월급장이가 되어 조직생활하며 고생해야 합니다.
   
다만... 조직 안에서 고학력 고스펙인 사람이 나름대로 우대를 받게 되는 것도 분명 사실입니다.
같은 의견이라도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의 말과 박사/변호사가 내는 의견은 무게감이 다릅니다.
고학력 고스펙인 사람이, 다른 사람 앞에서 뻐기기보다 그저 죽어라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면...
아무래도 어떤 조직이든 오랫 동안 생존할 가능성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비약적으로 높아집니다.  
사람은 같은 값이면 때깔이 고운 것을 삽니다 - 비슷한 내용이면 기왕지사 조건이 좋은 쪽을 선택하죠.
다시 말해 오늘날 고학력 고스펙은 거대 기업에서 일종의 생존을 위한 유효한 무기로는 충분히 가용합니다.

물론 그 사람이 다른 사람 못지 않게 - 더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비슷하게라도 열심히 노력할 때 그렇죠. 
   

   
[결론]
학위나 전문직 타이틀이 필요없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겠습니다.
박사 변호사 회계사 의사 타이틀은 그 사람이 살아가는 데 최대의 무기로 활용되는 거 맞습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학위나 전문직 타이틀을 획득하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다 해결되지 않을 뿐입니다.
전문직이라고 하더라도 광야로 나가 스스로 돈을 벌기 어렵기 때문에, 기업에서 조직생활을 해야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가 추구하는 효율성 앞에서, 개인에게는 힘들고 또 힘든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