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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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지불받는 사회는 이상적인 사회일 것입니다.
인류가 생존을 위해 무엇인가 땀을 흘리기 시작한 이래로
이것은 언제나 인간의 화두였습니다.
처음에 인간이 그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일했을 때엔 노동의 결과물은 오로지 자신과 가족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족장과 권력이 인간의 노동력을 함께 부리고 댓가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그 노동력의 댓가를 정당하게 받고 있는가 고민하기 시작했죠.
과거보다 더 잘 먹고 더 빠른 교통수단과 첨단 통신장비를 사용하면서 비교적 잘 살아가는 오늘날에도
그 고민은 여전합니다.
나는 내 노동의 댓가를 제대로 받고 있는가.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노동의 댓가를 조금이라도 더 옳게 지불해주는 기업의 문을 끝없이 두드립니다.
하지만 거기서는 그 젊은이들을 원하지 않습니다.
한 기업에서 개개인이 생산하는 부가가치의 합은 그 기업의 이익과 직결됩니다.
그렇지만 개개인은 그 기업의 부가가치를 나누어 받지 못합니다.
그들이 판 것은 노동력이고 그들이 받는 것은 노동력의 댓가 뿐이죠.
그 부가가치의 대부분은 기업과 같은 시스템을 구축하고 고안한 사람, 운영하는 사람, 시스템을 만드는 데
자본을 투자한 사람이 가져가죠.
이것이 현대 사회의 룰입니다.
이 상황에서 노력을 해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발생합니다.
노력이 부족하거나, 노력이 다른 방향으로 향했거나, 사회적으로 그 노력의 가치는 평가절하 되어 있거나
가족이나 가정의 상황때문에 충분한 노력을 기울일 수 없거나, 자신이 한 노력을 타인에게 빼앗기거나
장애가 있거나 병이 있거나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사회가 그 노력의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는 걸 거절하거나
....
아주 많고 다양한 사정들이 있을 수 있죠.
이런 상황에서도 누군들 자신이 노력한 것에 대해 그 나름의 댓가를 얻을 수 있다면 그 사회는 그렇지 못한 사회에 비해
더 나은 사회일 겁니다.
그 과정에는 기업의 시스템을 운영하는 운영자들의 도덕에 기대기 보다는
사회적 시스템, 법과 질서, 국가의 개입이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인간은 그런 사회를 만드는 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완벽한 사회는 아직 없죠.
공산주의의 몰락처럼 이상향을 꿈꾸던 이들이 왜곡된 길로 흘러갈 수도 있습니다.
혹은 그건 이상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며 부패하고 불합리한 현실을 합리화 할 수도 있겠죠.
적어도 확실한 것은 세상에는 우리보다 더 낫고, 공정한 나라도 분명 존재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들은 외계인이라 도덕적이고 인간과 달리 탐욕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닙니다.
우리도 그런 길로 나아가고 보다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가 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그 길을 택하지 않고 있는 것 뿐.
부패와 비리를 막을 수 있는 정책은 있습니다.
그걸 우리가 택하지 않을 뿐.
그걸 시행할 수 있는 사람들을 지지하지 않을 뿐이죠.
세상은 원래 비정한 법이야.
노동에 가격이 매겨지는 순간, 이미 인간 존엄과 별개 문제가 됩니다.
미래자본은 노동이 아니라 창조력에 대해 댓가를 지불합니다.
노동은 더이상 제한된 자원이 아니기 때문이죠. 결국 절대 다수가 시스템으로부터 소외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과 사회, 국가 생태계를 유지시키려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기본소득제를 지지합니다.
사실, 정당한 대가라는 말 자체가 이미 '가치판단'이 들어있습니다.
노력에도 '좋은 노력'과 '나쁜 노력'이 있다는 거죠. 도둑이 '열심히 노력해서 도둑질을 하므로' 돈을 많이 훔쳐서 부자가 되는 걸 정당한 노력이라 부르진 않겠죠.
그럼 이런 건 제쳐놓고...무익한 노력은 어떨까요?
가령 영구기관을 만들기 위해 인생을 투자하는 발명가라든지...
축구에는 눈곱만큼도 재능이 없는데 축구선수가 되기 위해 땀흘리는 소년이라든지.
이들에게 주어질 수 있는 '정당한 대가'가 뭘까요?
원 글의 정당한 댓가는 노동과 그에 대한 댓가를 의미하므로, 피고용인에 한정해서 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사장인 도둑이나 영구기관 발명가, 꿈나무 축구선수는 스스로의 시간과 돈과 노력을 투자한 투자자, 사장으로 봐야지요.
정당한 대가에는 반대급부로 월급 도둑도 있게 마련인건 맞습니다. 남들 땀흘리고 일하는데 혼자 띵가띵가 하고는 똑같은, 혹은 더 많은 월급 챙기는 사람들이 거기에 해당하겠죠. 그런 사람들은 인맥, 학연, 지연 등으로 단단하게 등을 받치고 있어서 정당하게 받아야 할 댓가인 "해고"라는 댓가도 잘만 피해들 가더군요.
하지만 그런걸 다 떠나서 피고용인으로서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여기에는 월급도둑도 있다고 치고) 회자에 지급한 자신의 노동분, 자신의 인생분에 대한 댓가를 제대로 정산을 받고 있는가는 다른 문제입니다.
'정당한 대가'를 논하려면 '가치 있는 노력'에 대한 정의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반복적인 노력, 누구나 할 수 있는 노력에 대해서는 대가가 낮아지고 있고,
기계로 대체할 수 있는 노력의 경우에는 그냥 알바 수준의 대우만 받게 되죠.
'가치있는 노력'이란, 노력의 결과 현재 시대와 세상이 필요로하는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세상이 필요로하는 부가가치는 무엇인가,
지금 내가 기울이는 노력이 그러한 부가가치 창출에 얼마나 기여하는가,
이 부분이 들어맞아야 자신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기대할 수 있고 요구할 수 있을 겁니다.
특히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나 기계와 같은 다른 수단이 마땅치 않아서 그 사람의 노고가 절실하게 꼭 필요할 때,
그 사람은 자신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고,
대가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그것을 충족시켜주는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을 겁니다.
정당한 노동의 댓가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선사시대 수렵생활할때 한그룹이 사냥을 나섰다 칩시다. 어떤날은 운이 좋아서 소위 대박나서 멧돼지며 고라니며
많이 잡는날도 있겠죠. 어떤날은 토끼 몇마리 밖에 구하지 못하는 날도 있을겁니다.
그럼 많이 잡은날은 노력을 더하고 적게 잡은 날은 노력을 덜했다? 그거 아니잖아요. 노력,노동에 대한 댓가는 항상 일정하다고
볼수는없죠. 길게 한달 일년잡아서 봐도 어떤 달은 좀더 수확이 많을수도 있고, 적을수도 있죠.
농경이 시작되고도 마찬가지죠. 흉년이 들때도 있고 풍년이 들때도 있으니까요.
노동의 댓가는 고정되어 있지 않지만 그 분배비율은 선사시대부터 일정했죠.
짐승을 잡은 사냥꾼이 아무래도 약간 더 가져가긴 했겠지만 나머지는 부족민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갔다고 하거든요.
늙어서 이제 일못나가는 사람이나 아이를 키우는 엄마나 애들이나 다 그사람에 맞게 적정량을 나눴죠
원시 공산사회라고 일컫는 사회상이죠.
사냥에 실패해서 빈손으로 돌아온 날은 다 같이 공평하게 굶었죠.
지금처럼 누구는 손가락만 빠는데 누구는 한끼에 몇만원하는 고급레스토랑에서 쳐먹고 그러진 않았지요.
지금도 그런 전통이 기업에 인센티브제도로 남아있죠. 기업실적이 좋으면 연말에 특별상여금.보너스란 명목으로 나오는데
이게 원시수렵시대 사냥실적이 대박칠때 각자에게 돌아가는 몫이 많아지는 거랑 같은거죠.
정당한 노력의 댓가는 변하지만 그 성과에 대한 분배는 공평해야 되죠.
현대사회에서 그럼 정당한 노력의 댓가.노동의 댓가는 뭘까.
똑같은 일을 했으면 똑같이 받는게 맞죠. 동일노동 동일임금 근데 정규직, 비정규직 나눠서 넌 100프로 넌 50프로. 이러니 말썽이 생기는거죠. 더구나 사람이 살려면 최소한의 기본생계는 꾸려나갈 임금이 필요한데 거기에도 못미치는 임금을 준다면,
선사시대보다 지금이 낫다고 말할수 있을련지 모르겠군요. 생활은 편리해지고 수명을 늘고 안전해졌을지 몰라도
삶의 질적인 측면에선 인류 문명이 부끄러울 정도로 발전이 없네요. 이것에 대해 언급하자면 너무 글이 길어질테니 그만 하겟습니다.
정당한 대가에 대해서 경제적 관점으로만 파악했기 때문에 현재 문제가 발생했다는게 유럽 좌파의 최신 견해중 하나죠.
국가 사회라는게 개인의 안녕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고 당연히 이곳에서 가치는 사회적 가치 기여도 역시 중대한
가치라고 판단되어여야만 한다는 기본적인 정의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정당한 대가를 경제적 가치가 아닌 사회적 가치로 환원하는 연구가 있었고..
그 결과 환경미화원이 현재 경제적 가치보다는 10배 이상 높은 가치를 보였고
세무사와 같은 직업은 사회기여도에서 환경미화원의 1/10정도의 가치정도를 보였다고 하죠.
물론 거의 최초의 개량연구였기 때문에 수치 자체의 정밀도는 신뢰하기 힘들겠지만
적어도 노동의 가치에 대한 기존의 경제적 가치반영이 사회에 어떤 악재를 불러들여왔는가와
연계해서 생각해보면 노동에 대한 가치 평가에 있어서 새로운 가치 평가 기준의 도입이 필요하지
않은가에 대해선 충분히 가치가 있는 내용이겠죠.
행복한 사회라는걸 의미합니다.
아니, 그 자체가 행복한 사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