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작품 게시판 - 영화/애니/만화/소설/드라마/다큐멘터리
슈퍼 로봇 이야기, 괴수/괴인/초인 이야기 외에... 다양한 작품과 장르를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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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변화는 문명 붕괴로, 문명 붕괴는 세계 전쟁으로 이어집니다.]
생태 SF는 환경 변화를 주로 다루는 하위 장르입니다. 정확히는 행성의 자연 환경이 거주 생명체에게 무슨 영향을 끼치는지 살핍니다. 혹은 어떤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에게 무슨 영향을 주는지 묘사하죠. 이상 기후, 사막화, 빙하기 등의 문제로 대량의 동식물이 죽거나, 번성하거나, 변이한다는 소재가 주를 이룹니다. 21세기 화두가 지구 온난화인지라 과거의 생태 SF 소설들도 요즘 시사하는 바가 다양하죠. 행성 전체의 삶을 조명하기 때문에 제법 규모가 크고요. 흥미 위주의 볼거리도 만들기 쉬운 편인데, 환경 오염과 변화를 빙자해 바이오펑크마냥 온갖 희한한 생명체가 날뛸 수 있거든요. 덕분에 생태 SF 장르는 오래 전부터 유행한 장르입니다. 다만, 생태 SF 장르는 홀로서기를 잘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른 하위 장르와 결합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뜻입니다. 아마 환경 변화 자체로는 크게 이야깃거리가 되지 못하기 때문일 겁니다. 작품으로 나오려면 뭔가 거창한 이야기를 담아야 하는데, 환경 변화만으로는 그러기가 힘들죠.
예를 들어 행성의 평균 기온이 올라간다는 사실은 별로 이야깃거리가 못 됩니다. 실제로도 그렇죠. 학자들은 지구 기온이 2도 이상 높아지면, 재앙이 닥칠 거라고 경고합니다. 하지만 그런 경고를 심각하게 여기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설사 심각하게 여긴다고 해도 인류는 생활 방식을 별로 바꾸지 않았어요. 엄청난 홍수가 도시를 휩쓸거나, 찜통 더위로 사람들이 죽거나, 작물의 수명 단축으로 흉년이 들어야 겨우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죠. SF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환경 변화를 순수하게 묘사해봤자 그건 독자의 시선을 끌지 못합니다. 변화 때문에 거주 생명체(특히 인류)의 생활이 바뀌어야 비로소 작품에 써먹을만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죠. 환경 변화가 재난을 일으켜야 독자도 읽을 마음이 생길 겁니다. 소설을 읽는 이유는 무엇보다 재미 아니겠습니까. 뭔가 행성이 뒤집어지고, 엎어지고, 회까닥 돌아가야 거창한 이야기가 탄생할 겁니다. 이 때문인지 생태 SF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엮이는 사례가 잦습니다. 환경 변화로 재난이 닥치고, 재난을 맞이한 사람들이 생존하고, 그 와중에 현대 사회의 문제를 반추합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원인을 흔히 전쟁과 질병으로 꼽는데, 환경 변화도 만만치 않습니다. 환경 변화가 원인인 작품만 꼽아도 아마 상당할 겁니다. 양산형 소설과 영화, 게임까지 거론하면, 숫자가 훨씬 늘어나겠죠. 일부 사례를 들자면, 가상의 행성을 탁월하게 표현했던 할 클레멘트의 소설이 괜찮겠네요. <질소 고정>이라는 작품인데, 산소가 질소와 결합한다는 내용입니다. 이런 변화가 전지구적으로 벌어지는데, 당연히 인류가 멀쩡할 리 없죠. 사람들은 산소를 보관한 대피소로 달려가고, 다른 동식물들은 죽음을 면치 못합니다. 그나마 환경에 적응한 변이체가 생기지만, 대기의 부식성이 높아서 인류는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하지 못합니다. 참사의 원인은 알고 보니 인류의 무분별한 개발이었고, 소설은 보존의 가치를 역설합니다. 데이비드 브린이 쓴 <지구>도 생태 SF와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결합으로 유명하죠. 중심 소재는 인공 블랙홀 회수지만, 그 와중에 온난화, 인구 과잉, 학술 조작 등의 생태 문제를 논합니다.
[환경이 너무 극단적으로 변하면, 인류 문명 역시 버틸 수 없을 겁니다.]
커트 보네거트도 종말 문학을 자주 쓴 작가입니다. 그 중에 <고양이 요람>이 생태 SF와 멸망을 결합시킨 작품으로 꼽을 만합니다. 여기서는 무분별한 환경 개발보다 미치광이 과학자의 실험이 원인입니다.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자연 파괴와 거리가 좀 멀지만, 인간의 실수로 전세계적인 참사가 벌어지는 건 여느 소설과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작중에 등장하는 개념인 '아이스 나인'은 급속도로 퍼지는 재난의 아이콘으로 널리 알려졌죠. 그렇다고 멸망을 다룬 생태 SF 문학이 전부 인간의 실수만 지적하는 건 아닙니다. 알프레드 스튜어트가 쓴 <노든홀트의 100만>은 인간의 실수를 원인으로 삼지 않습니다. 질병 때문에 작물이 죽고, 전지구적인 흉작이 들고, 그 와중에 부상한 식량 자본가의 탐욕을 그립니다. 식물의 죽음, 그러니까 농업 재앙이 인류 사회를 바꾼다는 점에서 충분히 생태 SF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 소설은 비단 환경 재난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까지 조명한다는 것에 의의가 있습니다.
한편으로 생태 SF는 우주 전쟁물이나 행성 로망스와도 친숙합니다. 아무래도 생태 SF는 국지적인 지역이 아니라 행성 전체의 판도를 이야기할 때가 많습니다. 거시적인 환경 변화는 비단 어느 한 장소에만 파국을 몰고 오지 않습니다. 현재의 이상 기후가 전지구적인 위기인 것처럼 SF 속의 환경 변화도 그렇습니다. 당연히 모든 나라가 아수라장에 빠질 테고, 아수라장 속에서는 싸움이 벌어지기 십상일 겁니다. 살기 적합한 곳이 줄어들고, 쓸만한 자원이 떨어지고, 정부마저 붕괴하면, 남는 건 당연히 개판 싸움이겠죠. 이는 곧 세계 전쟁으로 번질 우려가 높습니다. 세계 전쟁이 벌어지면, 선진국이든 개발도상국이든 커다란 비슷한 피해를 입겠죠. 특히, 파괴력이 강한 전략 병기가 발달하면서 대도시 하나가 망하는 것도 순식간입니다. 대도시가 연속으로 망하면, 문명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겠죠. 환경 변화가 대재앙이나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일으키고, 대재앙이 세계 전쟁으로 발전하고, 결국 행성 전체가 싸움판으로 변하는 셈입니다.
이처럼 생태계는 행성 전체를 조망하기 때문에 범세계적인 전쟁물이나 행성 로망스와 이어지기 쉽습니다. 리랜드 마디싯이 쓴 <아디아만테>가 이런 부류일 겁니다. 지구에 커다란 전쟁이 벌어지고, 인류는 3개 세력으로 나뉘어 싸웁니다. 그러다가 3개 세력 중 하나가 외계로 떠나고,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돌아옵니다. 3개 세력은 다시 갈등하는데, 각각 데미스, 사이브즈, 드래프츠입니다. 세력이 나뉜 이후는 뒤바뀐 환경에서 적응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데미스는 유전공학을 선택했습니다. 생명을 창조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데미갓이라고 부르고, 이를 줄여서 데미스란 이름이 붙었죠. 사이브즈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사이버네틱 기술을 씁니다. 기계적 논리성을 중시하고, 기술 수준은 세 집단 가운데서 제일 높습니다. 드래프츠는 두 세력과 달리 비교적 보통 인간입니다. 미래 세계인지라 기술 수준은 뛰어나지만, 데미스처럼 유전 공학으로 후손을 잇거나, 사이브즈처럼 기계와 결합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아디아만테>는 지구 환경 변화가 광범위한 전쟁을 어떻게 갈라놨는지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거대 괴수부터 행성 전쟁까지, 생태 SF의 풍부함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브라이언 알디스가 쓴 <헬리코니아> 시리즈는 외계 행성 헬리코니아의 삶을 다룹니다. 모두 3부작인데, 다양한 생태, 지질, 기후 그리고 이것이 사회에 미치는 면모를 설명합니다. 3부작의 제목부터 각각 <헬리코니아의 봄>, <여름>, <겨울>일 정도로 기후와 사회상의 관계를 조명하죠. 제임스 러브록의 가이아 이론을 떠올리게 하는 구석도 없지 않습니다. 어차피 이런 소설에서 행성 생태계가 스스로 정화한다는 발상은 드문 게 아니니까요. 행성 거주민은 크게 둘로 나뉘는데, 원주민인 파고어와 외계 이주민인 지구인입니다. 설정상 인류는 핵전쟁을 벌여 지구가 망했습니다. 그래서 살 길을 찾아 그나마 정착할만한 헬리코니아를 찾아왔죠. 그러나 원주민과 지구인이 사이좋게 살 리가 만무하고, 두 종족의 군사적 갈등이 깊어갑니다. 희한하게도 각 종족에게 어울리는 계절이 있기에 계절이 변할 때마다 군사적 우세까지 달라집니다. 겨울일 때는 파고어가, 여름일 때는 지구인이 유리해집니다. 두 세력이 엎치락뒤치락하며, 기후와 전쟁으로 행성의 생태를 이야기합니다.
환경 변화와 행성 주도권을 둘러싼 전쟁이라면, <듄>이 빠질 수 없죠. 모래벌레는 샤이-훌루드라고 부르는데, 사실상 아라키스 행성을 사막화한 주범(?)입니다. 이 놈들은 물을 싫어하는 터라 생체 울타리로 아라키스의 물을 죄다 가뒀고, 덕분에 푸르렀던 행성은 노란색 모래 사막으로 바뀌었습니다. 대신 모래벌레는 멜란지라는 스파이스를 생산하고, 이것 덕분에 우주 가문들이 아라키스로 몰려듭니다. 환경 변화를 비롯해 생물군 이용, 식민지 경영, 자원 채취, 치수, 원주민 착취, 제국주의 등등 행성 생태를 둘러싼 문제가 다방면으로 등장하죠. 르 귄 여사가 쓴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에도 이런 내용이 잘 나옵니다. 지배계층 인류가 피지배층 원주민을 부려먹으며 자원을 채취하죠. 이 소설에서는 환경 변화와 동식물의 변이 등을 자세히 논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환경 변화보다 소수 인권에 더 관심이 많아요. 그러나 황폐화된 지구, 벌목과 사막화, 제국주의적 착취 등으로 생태학적인 디딤돌을 깐 소설입니다. 그래서 생태 SF 소설로 분류하는 경우가 잦더군요.
이렇게 살펴본 것처럼 생태 SF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우주 전쟁물과 막역한 관계입니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환경 변화는 재앙을 부르고, 재앙이 커지면 범세계적인 전쟁으로 발발할 수 있으니까요. 덕분에 종말 문학이나 우주 전쟁물을 보면, 본의 아니게 생태 SF를 접하는 경우도 많죠.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를 보면서 생태 문제를 생각하거나, <문명: 지구를 넘어서>를 하면서 환경 변화를 고민해봄직도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보니까 <지구를 넘어서>의 새로운 확장팩이 나온다는데, 역시 환경 변화가 주제인 듯?)
커트 보네거트는 작품 속에서 세상을 여러 번 멸망케 하거나
사실상 디스토피아가 되어 버린 세상을 묘사했던 작가입니다.
유머와 풍자를 가지고 독자들을 웃기고 있어서 별로 비극적으로 와 닿지 않지만서도...
<고양이 요람>와 <갈라파고스>는 세상이 이렇게 망하는구나를 묘사했는데, 인류가 별로 불쌍하지 않습니다.
작품 속에서 인간은 너무 죄 많은 존재여서, 그렇게 인간 세상이 망하는 게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갈라파고스>는 인간 세상이 망하는 과정보다는 오히려 망한 이후 새롭게 진화한 인류의 모습이더 흥미롭죠.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도록 진화하여 문명을 내버리고 물속에서 먹이를 찾는 펭귄같은 존재가 되니까요.
결말만 보면 생태 SF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자연과 벗하며 살아가는 문명을 버린 인류의 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