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은 시리즈를 만들 때, 일관된 주제를 반복하는 경향이 잦습니다. 어떤 주제를 논하기 위해서 주변 설정을 바꿔가며 계속 작품을 만들죠. 르 귄 여사도 이런 식인데, 헤인 시리즈는 대부분 인간과 다른 행성 사람들의 차이를 다룹니다. 그 차이 속에서 소통과 억압, 폭력, 단절 등의 문제를 끊임없이 연구해요. 여러 시리즈 중에서 <어둠의 왼손>과 <빼앗긴 자들>이 유명하지만, 이것만큼 인상적이었던 소설이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이었습니다. 일종의 생태 소설로도 볼 수 있는데, 자원을 착취하기 위해 침공하는 인간과 그 인간들이 유린하는 행성 원주민 애스시의 관계를 그립니다. 외계인(사실 인간에 가깝지만)이 지구를 침공하는 게 아니라 도리어 인류에게 두들겨 맞는 구조입니다. 줄거리는 거의 예상대로 흘러가요. 인류는 무자비하게 자원을 벗겨먹지만, 그 와중에서도 인간과 가까이 지내며 일종의 각성을 겪는 애스시인이 생깁니다. 각성한 자는 인류를 몰아내기 위해 폭력을 휘두르고, 이는 전쟁으로 이어집니다.


짧은 분량답게 세력 갈등은 익히 예상한대로 흘러갑니다. 인류 지도자는 악질에 가깝고, 원주민 애스시는 폭력 따위 모르는 평화적인 인물들로 나옵니다. 단순히 착한 걸 넘어서 아예 상대를 죽이거나 복수한다는 개념조차 없습니다. 착취와 억압을 표현하기 위한 설정이겠지만, 양쪽 대비가 너무 작위적일 정도로 두드러집니다. 설마 작가가 이걸 몰랐을 리 없고, 주제에만 전념하기 위해 일부러 이렇게 쓴 것 같습니다. 책이 꽤 얇은데, 애초에 이런저런 분쟁을 추가해서 양측의 갈등을 번잡하게 만들지 않으려고 했던 듯합니다. 본래 이런 이야기에서는 원주민들도 나름대로 내분을 겪고, 인류도 무조건 나쁜 게 아니고, 각자의 사정과 목적과 욕심이 얽혀서 복잡하게 흐르기 마련이거든요. 하지만 이 책은 흑백 논리에 가깝도록 인류 대 애스시로 나뉘며, 그래서 갈등 구도가 단순하다고 실망하는 독자도 있을 겁니다. 르 귄의 작품치고 너무 안일하다는 비판도 나오더군요. 전반적으로 무난하게 흘러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그렇다고 나태하게 쓴 건 아닙니다.


허나 다소 진부한 싸움과 인물로 흘러감에도 <세상을…숲>은 막판에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깁니다. 사실 이 책이 진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단순히 나쁜 침략자와 착한 원주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애스시의 각성자이자 (전투) 지휘자인 셀버는 이렇게 말합니다. 폭력을 모르고 산 애스시가 이제 인류와 싸우면서 그걸 깨달았다고 한탄하죠. 그리고 설사 인류가 애스시를 떠나고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원주민들만의 갈등을 겪을 거라고 암시합니다. 복수는 끊임없이 돌고 돌며, 폭력은 행성과 종족을 넘어 계속해서 퍼진다는 논리입니다. 아예 복수라는 개념조차 인식하지 않던 종족이 손에 피를 묻힐 만큼 위협적으로 퍼지죠. 침략하는 인류가 나쁘다는 것보다 폭력의 전염성이 심각하다는 주제가 한층 위입니다. 인류의 침략상을 그리는 여타 SF 창작물보다 이 소설이 감동적인 까닭도 그것 때문이라고 봅니다. 다만, 셀비가 폭력의 위험성을 점점 깨닫는 부분을 좀 더 섬세하게 묘사하지 않는 게 아쉽습니다. 지속적으로 꿈을 통해 변화를 보여주긴 합니다만.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이 진지하고 정적이고 사변적이라면, <작은 친구들의 행성>은 빠르고 유쾌하고 역동적입니다. 존 스칼지가 예전에 나온 다른 작가의 소설을 리부트했습니다. 원작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원작과 리부트 모두 자원을 채취하는 인류가 등장합니다. 지표면을 폭파하고 웬 광물을 찾는데, 당연히 거기에 살던 동식물은 사방으로 날아가죠. 문제는 이 행성에 지성체라고 볼만한 종족이 나타났다는 점입니다. 개척 행성 규정은 지성체가 사는 행성을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고 명시했거든요. 주인공은 귀여운 털복숭이 원주민과 우호를 쌓으면서 이들이 정말 지성체인지 아니면 동물인지 고민합니다. 만약 지성체라면, 광석을 캐는 자기 일자리가 날아가고, 자기 몫의 엄청난 수익도 사라지니까요. 이를 눈치챈 채굴 회사는 주인공에게 계속 압박을 넣습니다. 그리하여 주인공과 주인공의 친구들과 작은 원주민이 채굴 회사에 맞서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해 싸웁니다. 전쟁까지 터지지 않지만, 대신 법정에서 공방전이 벌어지고, 전쟁만큼 치열합니다.


<작은 친구들의 행성>은 전형적인 존 스칼지 소설입니다. <세상을…숲>이 전형적인 르 귄 여사다운 것처럼요. 처음부터 끝까지 유머가 빠지지 않고, 작가는 독자의 감정을 능숙하게 쥐었다가 풀고 또 쥡니다. 개성만점 인물들은 톡톡 튀고, 그런 인물들의 융합은 상쾌한 시너지를 발산합니다. 개성이 너무 강한 나머지 책에서 튀어나올지 모르겠다 싶을 정도입니다. 사건 전개는 속도감 넘치고, 서툴게 흘리는 부분이 없습니다. 절정 대목은 심장을 짜릿하게 찌르며, 넘쳐나는 웃음 속에서도 눈물을 놓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착착 맞아 떨어지는 논리적인 전개와 기발한 발상 또한 빼놓으면 안 되겠죠. 인간 이외의 존재에게 재미난 별명을 붙이며 친근하는 구는 수법도 여전하고요. 하지만 신나고 빠르게 흘러가는 만큼, 깊이는 좀 얕습니다.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이 더 큰 권력에 의존하는 쪽이거든요. 결국 어딘가에 선한 권력이 존재하며, 거기에 호소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 대기업들의 힘싸움을 생각하면, 아리송한 갈등 해결입니다.


어쩌면 이건 미국 작가라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미국인이 바라보는 기업인의 이상이라고 할까요. 대기업에게 살인적으로 먹히는 노동자들이 즐비한 한국과 사정이 다를 테죠. 어차피 미국도 사람 사는 동네고, 거대 자본가가 횡포를 부리는 거야 어디든 마찬가지입니다만. 그래도 그쪽은 엄연히 사법 체계가 확실하고, 우리나라처럼 기업 국가 수준까지 떨어지지 않았으니까요. 만일 존 스칼지가 한국의 대기업 횡포를 알았다면 어땠을지…. 혹여 소재가 문제였을 수 있습니다. 행성과 원주민의 자유를 놓고 싸우는데, 그 방법이 전쟁이나 외교가 아니라 법정 소송이니까요. 중간에 피를 보기도 하지만, 전쟁보다야 스케일이 작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깔끔하고 너무 교과서적인 결론이 나왔을 수 있죠. 뭐, 이 작가가 너무 깔끔한 결론을 내리는 게 꼭 이 책만은 아니긴 합니다. 전쟁을 동원한 <세상을 가리키는 말은 숲>도 다소 전형적이니 꼭 법정 소송이 문제점이라고 지적할 수 없고요. 애초에 작가가 하려는 이야기가 딱 거기까지인가 봅니다.


이 두 소설을 비교한 이유는 그만큼 이미지가 상반되기 때문입니다. 여성 작가와 남성 작가, 서정적이고 진지한 시선과 빠르고 유쾌한 글솜씨, 그랜드 마스터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연륜 넘치는 고수와 어느 정도 중견 작가에 접어든 중수 등등. 그럼에도 두 사람 모두 스페이스 오페라를 자주 쓰고, 인류와 다른 종족의 갈등을 왕왕 써먹으며, 따스하고 희망적인 바람을 잃지 않습니다. 어쩐지 뭔가 섭섭하고 허전한 결말이라는 것도 공통점이긴 합니다. 서로 다른 듯 닮은 듯한 모습 때문에 두 책이 함께 떠오르더군요. 물론 어느 작품이 더 낫다고 할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목적이 다른 소설인 걸요. 둘 다 재미있고 감동적입니다. 개인적인 취향이라면, 아무래도 르 귄 여사가 마음에 드네요. 소설 후반부까지 너무 뻔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는데, 폭력의 순환과 전염을 걱정하는 모습에서 역시 르 귄 여사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둠의 왼손>처럼 특급 수작은 못 되지만, 그래도 잊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 자원 채취와 원주민 노역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듄>도 비슷한 점이 많아서 떠오르는 소설입니다. 여기는 죄다 인간들이고 외계인은 없지만, 그럼에도 침략자-원주민 관계는 여전하죠. 스파이스라는 귀중한 자원을 위해서 제국 가문들이 쳐들어오고, 원주민 프레멘들은 노예처럼 고통을 받습니다. 그런데 원주민들에게 우호적인 이방인이 나타나고,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위협적인 짐승을 올라탑니다. 그리고 그게 신화로 남죠. 동물을 탄 원주민들이 침략자에게 우르르 몰려가는 결말은 카메론의 <아바타>가 이 소설을 모방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바타>가 모티브로 삼은 소설이야 <듄> 이외에도 여럿이지만요. 위에서 말한 <세상을…숲>도 <아바타>에 영향을 줬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여하튼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자원 채취와 원주민들의 고통도 많이들 사용하는 소재 같습니다. 소위 강대국들이 자연 환경을 벗겨먹고, 원주민들에게 불공정 노동을 시키는 게 현실이니 그렇겠죠. 그걸 가지고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가는가는 작가마다 다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