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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멸망으로 공룡 시대를 강렬하고 유사하게 재현했습니다.]


가끔 보면, 텍스트를 가지고 그림 그리는 작가가 있습니다. 타이포그래피를 만든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경치 묘사가 기막히다는 겁니다. 페이지 하나하나가 한 폭의 그림과 같기에 눈으로 그리면서 읽기 마련입니다. 거기다 그 기이한 절경을 바라보는 인물의 의식 또한 몽환적으로 흘러가요. 이것 또한 장르 소설만의 장점일 텐데, 그런 작가로 잘 알려진 인물이 바로 제임스 발라드입니다. 발라드라는 이름(?)처럼 작가가 묘사하는 세계는 꿈결마냥 젖어들고, 인물의 심상까지 아련하게 파고듭니다. 이렇게 보자면 굉장히 서정적인 작품 같습니다만. 사실 제임스 발라드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즐겨 쓰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이토록 부드러운 필력의 작가가 멸망 이야기를 쓰다니, 좀 이상하기도 하죠. 다만, 발라드는 여타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다르게 폭력이나 절망, 광기보다 매혹과 경외를 노래합니다. 그렇다고 폭력과 광기를 아예 제외한다는 건 아닙니다. 미쳐버려도 한 줄기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는 뜻이죠.


제임스 발라드는 소위 뉴웨이브 SF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작가입니다. 기존 공식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써보자는 주의는 SF 사조에도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발라드의 소설을 읽으면, 논리적인 전개이나 과학적 정합성이 없이, 그저 손 가는 식으로 썼다는 느낌이 듭니다. 덕분에 기존 SF 소설에 익숙한 작가나 독자는 뉴웨이브 사조에 호의적이지 않다고 하죠. 발라드 작품은 뚜렷한 플롯이 없으며, 심리 상태나 의식 흐름의 비중이 크고, 온갖 사변과 철학을 포함하며, 몽환적인 이미지를 남기기 일쑤입니다. 솔직히 줄거리가 없어서 좀 아리송하지만, 그만큼 읽는 맛이 뛰어나요. 이런 문체로 한 편의 그림처럼 글을 쓰는데, 그걸 뒷받침하는 장치가 멸종과 죽음입니다. 발라드가 만든 인물들은 대개 멸망하는 세계나 죽음을 목전에 둡니다. 그러나 두려워하기보다 오히려 압도적인 풍경과 개념에 매료됩니다. 사신에게 경외감을 느끼는 신도라고 해야 할까요. 발라드가 수용소 생활을 거쳤기에 이런 설정을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런 멸망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세 작품이 <물에 잠긴 세계>, <불타버린 세계>, <크리스털 세계>입니다. 종말 3부작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발라드 묵시록이라고도 하더군요. 무슨 명칭이든 간에 줄거리나 기법, 주제는 대개 비슷합니다. 모두 포스트 아포칼립스이거나 혹은 아포칼립스에 돌입한 상태입니다. 원인은 제각기 다릅니다. 태양열 때문에 빙하가 녹아 물에 잠기거나, 폐기물을 버려 환경이 오염되어 가뭄이 찾아오거나, 갑자기 사물이 얼어붙어 세상이 정지합니다. 이쯤 되면 암울하고 절망적인 생존물이 떠오르겠죠. 그러나 발라드는 약탈자의 광기를 그리는 것에 흥미가 없는 듯합니다. 전형적인 포스트 아포칼립스처럼 무너진 세상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떠도는 방랑자는 없습니다. 약탈자와 방랑자도 나오지만, 비중이 다릅니다. 각 소설의 주인공은 포기하고 오열하는 대신 기이하게 변한 세상에 점차 빠져듭니다. 수중 도시와 거대한 사막, 얼어붙은 숲을 홀린 듯이 바라보고, 죽음이 기다리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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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사막의 열기와 거기에서 허우적거리는 인물을 묘사합니다.]


세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낯선 세계를 묘사하는 필체입니다. 의식의 흐름으로 표현한 그림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초반부에 소설 주인공은 세상과 거리를 두고, 기이한 풍경을 관조적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다 환경이 정신을 잠식하는 걸 느끼며, 종국에는 거부할 수 없는 변화에 몸을 맡깁니다. 여타 작가라면 이걸 공포로 서술했겠죠. 세상이 바이러스에 몸부림치고, 주인공이 거기에 걸렸다고 생각해보세요. 그걸 즐길 여력이 있겠습까. 허나 발라드는 외부 세계(멸망한 환경)와 내부 세계(주인공 심리)를 환상적으로 조합합니다. 책장을 덮고 나면, 아련하면서 신비로운 장면들이 눈에 선합니다. 발라드 본인이 그림을 얼마나 잘 그리는지 모르겠지만, 삽화도 그렸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분명 지구 속 풍경이지만, 마치 별세계를 보는 듯한 그림이 나왔을 텐데요. 때때로 그림을 그리고 싶은 충동이 불쑥 고개를 듭니다. SF 소설이라고 과학적 정합성을 기대하는 건 좀 무리입니다. 작중에도 참신한 설정이 나오지만, 그리 논리적이지는 않죠.


3개 소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걸 꼽으라면, <물에 잠긴 세계>입니다. 강력한 태양열 때문에 극지방이 녹아 홍수가 일어난다는 배경 상황은 다소 뻔한 감도 있습니다. 허나 그보다 중요한 건 선사시대로 퇴행하는 듯한 묘사입니다. 제목과 달리 물에 잠긴 도시만큼이나 열대 정글도 커다란 비중을 차지합니다. 높은 기온과 해수면 상승으로 북위도 지방까지 정글이 무성하거든요. 소설 무대가 런던인데도 하루 종일 땀을 흘리고, 이구아나와 왕도마뱀들이 물가와 수풀 속을 배회합니다. 나중에는 여기에 악어들도 가세하고, 파충류들이 득실거리는 바다와 정글 왕국이 탄생합니다. 인류는 더위와 수중 생활을 견디지 못해 대부분 극지방으로 피신하고, 일부 탐사대나 약탈자만 세상을 떠돕니다. 주인공 케런스는 그런 탐사대의 일원인데, 덕분에 석호에 고립된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사방에 도마뱀과 악어들이 가득하고, 포유류인 인간은 소수에 불과하니, 파충류 시대가 도래한 것처럼 보이죠. 오오, 로망입니다, 오오. 유사 공룡 시대라니….


케런스는 처음에 파충류들을 보고 진저리를 칩니다. 인류의 무의식 속에 잠재한 파충류 공포가 발동한 셈입니다. 그러나 석호에서 지내는 동안 압박하는 환경에 버티지 못하고, 결국 수중 세계와 정글, 파충류 왕국을 받아들입니다. 그냥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아예 자신까지 까마득한 트라이아이스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마른 땅을 선호해야 할 인간이 물 속과 정글과 파충류에 정신을 바칠 지경입니다. 이토록 정신이 빼앗기는 와중이니, 주인공 눈에 비친 세상이 어떻겠습니까. 한 폭의 장대한 선사시대를 보는 듯할 테고, 실제로 작가는 풍경화를 그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작중 배경 시기는 2145년이지만, 시간여행으로 과거, 그것도 공룡 시대에 돌아간 느낌이 듭니다. 실제 공룡이 나오지 않지만, 이구아나와 악어만으로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종말 3부작 중에서 자연 생태계, 그것도 공룡을 연상시키는 대목이 많기에 상당히 독특한 포스트 아포칼립스라고 생각합니다. 타임머신이나 유전자 조작도 없이, 홍수 재난으로 공룡물을 만들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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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찬란하게 얼어붙은 종말. 이처럼 화려한 묵시록도 없을 걸요.]


개인적인 취향과는 별개로 3부작 중에 가장 유명한 건 역시 <크리스털 세계>죠. 우리나라에도 <물에 잠긴 세계>나 <불타버린 세계>는 뒤늦게 나왔지만, <크리스탈 월드>라고 진작 그리폰 북스에서 출간한 바 있습니다. 우리나라 독자들도 대부분 이 소설을 통해 발라드를 접했다고 하네요. <물에 잠긴 세계>처럼 이 소설 역시 외따로 고립된 특정 지역이 무대입니다. 다만, 여기는 유럽이 아니라 아프리카이며, 물에 잠긴 대신 숲이 얼음 결정으로 변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모든 사물이 반짝거리는 보석으로 변하는데, 이걸 묘사하는 필력은 작중에 나오는 수정처럼 찬란하게 빛납니다. 눈이 부셔서 책을 못 읽겠다면 과장이겠지만, 그만큼 의식의 흐름을 갈 데까지 밀어붙입니다. 오죽하면 이 책을 읽으면서 <변신>이나 <플라이>가 떠올랐습니다. <변신>을 읽으면 자신이 벌레로 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는데, <크리스털 세계>도 그런 느낌을 주거든요. <플라이>에서 팔이 변한 것처럼 당장 팔이 얼어붙을 것 같죠.


예전에도 한 말이지만, 세계를 설명하는 운치는 작가 이름처럼 발라드에 가깝습니다. 더군다나 수정으로 변한 세계라니, 발상부터 묘사까지 독특하기 그지 없죠.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대개 칙칙하고 허름한데, 이 책은 찬란하고 눈부십니다. 아마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묵시록 소설도 드물 걸요. <물에 잠긴 세계>는 선사시대의 원시성이 강렬했고, 나름대로 공룡물 분위기도 풍기고, 의식의 흐름이 그렇게까지 거슬리지 않기에 책장이 술술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크리스털 세계>는 아예 마음먹고 한계까지 다다르기 때문에 머리가 혼란스러울 정도입니다. 전형적으로 줄거리를 따라가가는 게 아니라, 문체에 눈을 돌리게 되고, 책을 읽고 나면 머릿속에 나무들이 반짝거립니다. 세상이 멸망하지만, 죽음보다는 그저 정지한다는 이미지에 가깝습니다. 아이디어가 이렇게 기똥찰 수가 없습니다. 독자를 수정 숲으로 안내하는 체험이 그만큼 대단하기에 뉴웨이브 SF의 대표작으로 꼽히겠죠. 덕분에 장르 작가임에도 순문학 독자에게 호평을 받는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개인적으로는 3부작 중에서 다소 재미없게 본 책이 <불타버린 세계>입니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말이지, 못 썼다는 게 아닙니다. 재난 상황이 가뭄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이야기 전개나 분위기 조성은 나머지 두 작품과 비슷합니다. 다만, 황량한 사막과 물 부족이라는 점은 다른 두 작품에 비하면 다소 진부한 설정이죠. 홍수 때문에 선사시대를 떠올리거나 온 세상이 수정에 갇히는 파격적인 면모에 견주면 그렇습니요. 발라드의 장기인 '그린 듯한 필체'는 여전하지만, 이거 말고도 사막 풍경을 다룬 작품은 많으니…. 오히려 이 부분은 <듄> 같은 작품이 훨씬 인상적으로 다가왔네요. 그래서인지 여기 주인공은 다른 두 작품과 달리 사막에 그렇게까지 빠져들지 않습니다. 매혹보다 생존이 두드러집니다. <물에 잠긴 세계>와 <크리스털 세계>는 주인공이 풍경에 완전히 잠식을 당하지만, <불타버린 세계>는 그런 환경의 잠식이 비교적 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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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공룡물 같은 원시성이 제일 마음에 들었네요.]


끝으로 종말 3부작의 특징 중 하나를 말하자면, 동물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는 점입니다. <물에 잠긴 세계>는 어디로 보나 공룡물입니다. 유사 공룡 시대를 재현하고, 깊은 물 속에는 악어가 헤엄치며, 열대 밀림에는 왕도마뱀이 꿈틀거립니다. 공룡과 파충류의 생물학적 관계는 접어두고, 거기서 풍기는 원시 정서의 강렬함은 말도 못 하죠. <불타버린 세계>는 동물원이 나오고, 거기서 풀려난 고양이과 맹수가 돌아다니죠. 맹수가 돌아다니는 도시는 위험을 한층 강조합니다. 사람이 없어진 세계를 동물이 돌아다니는 셈입니다. <크리스털 세계>는 악어가 자주 나오는데, 얼음 결정으로 덮어놔서 기이한 몰골을 자랑합니다. 작중 표현에 따르면, 마치 전설 속의 용이나 샐러맨더 비슷하게 보이는 듯합니다. 제임스 발라드는 짐승의 도래나 변화가 세계의 멸망을 상징한다고 생각하나 봐요. 아무래도 인간들 이야기만 하는 것보다 자연 풍경을 함께 강조해야 효과적이겠죠. 다른 두 소설이야 그렇다 치고, <물에 잠긴 세계>의 파충류 묘사는 정말 두드러집니다.


요즘 모 공룡 영화가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중이죠. 영리하고 흥행할만한 영화지만, 개인적으로 좀 시시하게 본 터라…. 오히려 <물에 잠긴 세계>가 떠오르더군요. 정작 공룡이 나오는 영화는 시시하고, 유사 공룡이 나오는 소설에서 강렬한 원시성을 느끼다니. 그래서 <물에 잠긴 세계>를 이야기하는 김에 다른 두 작품도 이야기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