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링커 1979년 - 작가 - 요한(windkju)
글 수 29
무한곡선
2.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제레미였다. 키득거리며 웃기 시작한 제레미는 폭소를 터뜨리며 비아냥거렸다.
「네가 어떻게? 혼자서 잡기라도 한다는 거야?」
양 리는 제레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겨누었던 칼을 당겨 그대로 다시 허리춤에 채워넣었다. 나는 그의 행동이 의아했다. 그는 포기한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우리를 잡으려고 한 것도 아니었다. 칼 을 채워 무방비가 된 양 리는 고개를 돌려 창으로 걸어갔다.
겹창을 열자 희미한 빛이 흘러들어왔다. 비가 그쳤음에도 하늘은 밝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다시 비를 내릴 것만 같은 우울한 하늘을 바라보며 양 리가 중얼거렸다.
「15년이 흘렀습니다. 전쟁이 끝난지도.......」
「무슨 수작이야? 우리를 잡지 않을거야?」
제레미가 비아냥 거렸지만 양 리는 대꾸하지 않았다. 나는 제레미에게 그만 두라는 눈빛을 보냈다. 양 리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하늘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어디를 보고 있는 것일까.
「네오나치와 손을 잡고 중국을 변화시켜 보려 했습니다. 중국은 변화에 무딥니다. 무명무실해진 황제임에도 끝까지 매달려 있었지요. 그러나.......」
양 리는 잠시 말을 멈췄다. 목이 메인 것처럼 보이는 것을 왜일까.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황제는 죽었습니다.」
양 리는 담담하게 황제의 죽음을 선언했다. 선언하는 양 리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벌써 수백 수천년을 황제의 지배아래 있었던 중국인이었다. 그 마음이 어떠할지는 짐작할 만 했다. 양 리는 그 역사를 끊었다. 미카엘이 아니었다. 역사를 끊은 것은 양 리이다.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요셉이 눈을 가늘게 뜨고 소리를 가늠했지만, 그 소리는 가까이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아니 그것은 민경의 소리도 아니었다. 양 리는 중국을 바라보며 말했다.
「‘목숨을 바쳐서 미래를 산다.‘」
나는 그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미스 벤자민. 히틀러의 말이었다. 양 리는 그 말을 들었을 때를 떠올리는 듯 어깨를 파르르 떨었다. 감화받은 듯한 그의 표정에서는 약간 상기된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놀라운 말입니다. 몸서리치도록 유치한 말이지만, 인간의 길을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요. 저는 목숨을 바쳐 미래를 사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미래가 열리고 있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밖에서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웅얼거리며 들썩이던 소리가 명확히 들리는 소리로 바뀌었다. 중국을 인민에게! 나는 놀라움에 눈을 크게 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곧 깨달았다. 양 리의 말이 옳았다. 미래가 열리고 있었다. 중국이 황제의 죽음으로 새롭게 거듭나려 하고 있었다. 양 리는 들뜬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중국을 인민에게!
「당신들도 미래를 사기 위해 노력하고 있겠지요.」
「무슨 헛소리야!」
제레미가 불쾌한듯 소리쳤다. 그러자 양 리는 그런 제레미와 우리를 바라보았다. 곧 천천히 그의 고개를 숙였다. 덕분에 제레미는 당황해야 했다.
「죄송했습니다. 그 동안의 일을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지척에서 거센 함성이 들려왔다. 중국을 인민에게! 중국을 인민에게! 그 소리에 양 리는 총을 맞는 사람처럼 얼굴을 찡그렸다. 창 밖을 바라본 양 리는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어서 떠나세요. 미스 벤자민이 곧 도착할 겁니다.」
미스 벤자민이? 그녀는 유럽에 있었다. 어떻게 곧 도착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나의 의문에 양 리가 답했다.
「유럽에서 게이트를 타면 바로 북경입니다. 곧 도착할 시간입니다.」
「당신은?」
요셉이 물어왔다. 나는 요셉이 어떤 의도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순간 양 리의 표정이 급격히 가라앉았다. 양 리의 얼굴에서 씁쓸한 틈을 발견했다. 그 틈은 생의 완성을 이룬 듯한 사람에게나 보이는 관조. 또는 포기 같은 것이었다. 왜 인지 양 리가 곧 죽을 것만 같다. 그 순간 깨달았다. 과거의 인물이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우리가 떠나도 괜찮습니까? 이대로?」
나의 물음에 자조적인 웃음을 띄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슈. 당신은 참 인간적이군요. 미카엘도 떠났습니다. 그러니까 당신들은 이제 무관한 사람들입니다. 어서 떠나세요.」
그의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별 뜻이 없었을 인간적이라는 말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그러나 제레미의 행동은 빨랐다. 그는 나의 손을 잡고 문밖으로 이끌었다. 요셉도 마지막까지 양 리를 바라보다가 문 밖으로 나왔다.
문이 닫힐때 바라본 양 리의 표정은.....
슬퍼보였다.
3.
양 리의 표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사자의 유언을 들은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제레미도 비슷한 기분이었는지 인상을 찡그리며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참을 수 없는 듯 낮게 몇마디 중얼거렸다.
「끝까지....... 중국인이라 이건가. 흥」
들썩이는 함성소리는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한 곳이 아니었다. 다다닥 뛰어가는 한남자는 팔뚝에 붉은 띠를 두르고 있었다. 그는 모든 집을 향해 혁명이다! 혁명이야! 라는 말을 외쳤다. 그의 말의 꼬리표처럼 멀리서 커다란 외침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와! 하는 소리같기도 하고, 인민! 어쩌고 하는 소리같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가 골목길을 벗어났을 때 그 함성의 말을 알 수 있었다.
중국을 인민에게!
중국을 인민에게!
온통 붉은 띠를 두른 사람들이 나무판에 거칠게 쓴 글씨를 외치고 있었다. 중국을 인민에게! 거센 물결처럼 중국이 요동치고 있었다. 수백만, 아니 수천만의 사람의 물결이었다. 혁명을 부르짖는 인파에 휩쓸리지 않기는 죽기보다 힘들었다. 요셉이 열심히 길을 뚫었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물결이었다.
「이대로는 휩쓸리겠어요!」
나의 외침소리가 들리지 않았는지, 요셉은 몸으로 부딪혀가며 길을 열고 있었다. 나는 안되겠다는 듯 그를 잡으려 했지만 뒤에서 제레미가 나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개를 돌리자 제레미가 외쳤다.
「곧! 북경역이야! 여기서 얼마 되지 않으니까 이대로 가자!」
대답을 하려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를 전달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끔 보이는 골목을 휴식처 삼아 인파를 뚫고 지나갔다. 함성소리는 여기 저기서 들려오고 있어서, 혼란의 한복판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창문을 열고 밖을 구경하는 여자들이 있었다. 그녀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길을 바라보았다. 온전한 혁명이라는 것이 가능할까?
거리로는 얼마되지 않았지만,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겨우 인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인파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흐름에 거칠게 저항하다 보니, 어느새! 라는 느낌이었다. 붉은 띠를 두르고 있는 사람들이 인파에 합류하기 위해 달려가고 있었고, 걱정스런 눈빛의 외국인들이 북경역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도착했을 때, 어울리지 않게 흰옷을 차려입은 한 사람이 우리에게 달려왔다. 요셉이 경계의 눈빛을 보내자, 그는 히죽 웃으며 손목을 걷어 보였다. 꼬리를 문 뱀이었다.
「어서오십시오. 당신들을 안내할 링커입니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따라오라며 손짓하고는 먼저 북경역 안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중국식 건물을 변형한 듯한 건물은 오히려 유럽의 건물들 보다건조해 보였다. 우리는 그 북경역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북경역안에서도 붉은 띠를 두른 사람들이 호회를 날리고 있었다. 안내자는 때가 급하다며 우리를 선로로 안내했다. 선로로 들어서는 개찰구에서 그는 역무원에게 고개짓을 하며 통과했다. 우리도 약간 어이없어 하며 그대로 통과했다. 역무원은 우리를 잡지 않았다. 도대체 링커의 영향력은 어디까지일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개찰구로 들어서자 때마침 열차가 도착한 것인지, 열차 하나가 증기를 뿜으며 멈춰서고 있었다.
「저기에 타는 겁니까?」
나의 물음에 안내자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게이트를 가리켰다.
「저기에 타는 겁니다.」
나는 그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게이트는 열차외에는 통과할 수 가 없었다. 그리고 만약 게이트를 통과한다고 해도, 그것은 유럽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 내가 뭔가 착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게이트의 뒤편에 증기기관차가 하나 더 서 있었다. 그것은 본래 있어서는 안되는 위치였다. 중국을 향해 마지막 게이트 뒤편에 있는 증기기관차는. 안내자는 예의 웃음으로 말했다.
「마지막 게이트는 사실 숨겨진 길입니다. 저기를 통과하면 바로 몽골입니다.」
그제서야, 예전에 들었던 의문하나가 풀리는 것을 느꼈다. 왜 5개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꼭 5개여야 할까. 5번째 게이트는 몽골로 향햐는 숨겨진 게이트였다. 그리고 그 사실은 다른 사실을 확증하고 있었다. 요한은 몽골에 갔었다. 라는 것을.
「그럼 빨리 가자고!」
제레미가 소리쳤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너무나 익숙한, 그리고 다급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피해!」
요셉의 행동은 빨랐다. 그는 일행을 모조리 감싸듯 끌어안으며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그리고 우리가 있던 자리로 불꽃의 강이 흐르고 지나갔다. 나는 치명적인 죽음에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요셉이 다급히 몸을 일으켜 불꽃의 방향을 향해 달려갔다. 나도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공포와 반가움을 동시에 느꼈다.
새침한 표정의 니나와 분노로 얼룩진 링마스터, 미스 벤자민이었다. 기뻐해야 할지 무서워해야 할지 마음을 종잡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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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어주시길...
2.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제레미였다. 키득거리며 웃기 시작한 제레미는 폭소를 터뜨리며 비아냥거렸다.
「네가 어떻게? 혼자서 잡기라도 한다는 거야?」
양 리는 제레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겨누었던 칼을 당겨 그대로 다시 허리춤에 채워넣었다. 나는 그의 행동이 의아했다. 그는 포기한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우리를 잡으려고 한 것도 아니었다. 칼 을 채워 무방비가 된 양 리는 고개를 돌려 창으로 걸어갔다.
겹창을 열자 희미한 빛이 흘러들어왔다. 비가 그쳤음에도 하늘은 밝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다시 비를 내릴 것만 같은 우울한 하늘을 바라보며 양 리가 중얼거렸다.
「15년이 흘렀습니다. 전쟁이 끝난지도.......」
「무슨 수작이야? 우리를 잡지 않을거야?」
제레미가 비아냥 거렸지만 양 리는 대꾸하지 않았다. 나는 제레미에게 그만 두라는 눈빛을 보냈다. 양 리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하늘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어디를 보고 있는 것일까.
「네오나치와 손을 잡고 중국을 변화시켜 보려 했습니다. 중국은 변화에 무딥니다. 무명무실해진 황제임에도 끝까지 매달려 있었지요. 그러나.......」
양 리는 잠시 말을 멈췄다. 목이 메인 것처럼 보이는 것을 왜일까.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황제는 죽었습니다.」
양 리는 담담하게 황제의 죽음을 선언했다. 선언하는 양 리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벌써 수백 수천년을 황제의 지배아래 있었던 중국인이었다. 그 마음이 어떠할지는 짐작할 만 했다. 양 리는 그 역사를 끊었다. 미카엘이 아니었다. 역사를 끊은 것은 양 리이다.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요셉이 눈을 가늘게 뜨고 소리를 가늠했지만, 그 소리는 가까이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아니 그것은 민경의 소리도 아니었다. 양 리는 중국을 바라보며 말했다.
「‘목숨을 바쳐서 미래를 산다.‘」
나는 그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미스 벤자민. 히틀러의 말이었다. 양 리는 그 말을 들었을 때를 떠올리는 듯 어깨를 파르르 떨었다. 감화받은 듯한 그의 표정에서는 약간 상기된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놀라운 말입니다. 몸서리치도록 유치한 말이지만, 인간의 길을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요. 저는 목숨을 바쳐 미래를 사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미래가 열리고 있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밖에서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웅얼거리며 들썩이던 소리가 명확히 들리는 소리로 바뀌었다. 중국을 인민에게! 나는 놀라움에 눈을 크게 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곧 깨달았다. 양 리의 말이 옳았다. 미래가 열리고 있었다. 중국이 황제의 죽음으로 새롭게 거듭나려 하고 있었다. 양 리는 들뜬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중국을 인민에게!
「당신들도 미래를 사기 위해 노력하고 있겠지요.」
「무슨 헛소리야!」
제레미가 불쾌한듯 소리쳤다. 그러자 양 리는 그런 제레미와 우리를 바라보았다. 곧 천천히 그의 고개를 숙였다. 덕분에 제레미는 당황해야 했다.
「죄송했습니다. 그 동안의 일을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지척에서 거센 함성이 들려왔다. 중국을 인민에게! 중국을 인민에게! 그 소리에 양 리는 총을 맞는 사람처럼 얼굴을 찡그렸다. 창 밖을 바라본 양 리는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어서 떠나세요. 미스 벤자민이 곧 도착할 겁니다.」
미스 벤자민이? 그녀는 유럽에 있었다. 어떻게 곧 도착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나의 의문에 양 리가 답했다.
「유럽에서 게이트를 타면 바로 북경입니다. 곧 도착할 시간입니다.」
「당신은?」
요셉이 물어왔다. 나는 요셉이 어떤 의도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순간 양 리의 표정이 급격히 가라앉았다. 양 리의 얼굴에서 씁쓸한 틈을 발견했다. 그 틈은 생의 완성을 이룬 듯한 사람에게나 보이는 관조. 또는 포기 같은 것이었다. 왜 인지 양 리가 곧 죽을 것만 같다. 그 순간 깨달았다. 과거의 인물이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우리가 떠나도 괜찮습니까? 이대로?」
나의 물음에 자조적인 웃음을 띄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슈. 당신은 참 인간적이군요. 미카엘도 떠났습니다. 그러니까 당신들은 이제 무관한 사람들입니다. 어서 떠나세요.」
그의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별 뜻이 없었을 인간적이라는 말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그러나 제레미의 행동은 빨랐다. 그는 나의 손을 잡고 문밖으로 이끌었다. 요셉도 마지막까지 양 리를 바라보다가 문 밖으로 나왔다.
문이 닫힐때 바라본 양 리의 표정은.....
슬퍼보였다.
3.
양 리의 표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사자의 유언을 들은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제레미도 비슷한 기분이었는지 인상을 찡그리며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참을 수 없는 듯 낮게 몇마디 중얼거렸다.
「끝까지....... 중국인이라 이건가. 흥」
들썩이는 함성소리는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한 곳이 아니었다. 다다닥 뛰어가는 한남자는 팔뚝에 붉은 띠를 두르고 있었다. 그는 모든 집을 향해 혁명이다! 혁명이야! 라는 말을 외쳤다. 그의 말의 꼬리표처럼 멀리서 커다란 외침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와! 하는 소리같기도 하고, 인민! 어쩌고 하는 소리같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가 골목길을 벗어났을 때 그 함성의 말을 알 수 있었다.
중국을 인민에게!
중국을 인민에게!
온통 붉은 띠를 두른 사람들이 나무판에 거칠게 쓴 글씨를 외치고 있었다. 중국을 인민에게! 거센 물결처럼 중국이 요동치고 있었다. 수백만, 아니 수천만의 사람의 물결이었다. 혁명을 부르짖는 인파에 휩쓸리지 않기는 죽기보다 힘들었다. 요셉이 열심히 길을 뚫었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물결이었다.
「이대로는 휩쓸리겠어요!」
나의 외침소리가 들리지 않았는지, 요셉은 몸으로 부딪혀가며 길을 열고 있었다. 나는 안되겠다는 듯 그를 잡으려 했지만 뒤에서 제레미가 나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개를 돌리자 제레미가 외쳤다.
「곧! 북경역이야! 여기서 얼마 되지 않으니까 이대로 가자!」
대답을 하려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를 전달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끔 보이는 골목을 휴식처 삼아 인파를 뚫고 지나갔다. 함성소리는 여기 저기서 들려오고 있어서, 혼란의 한복판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창문을 열고 밖을 구경하는 여자들이 있었다. 그녀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길을 바라보았다. 온전한 혁명이라는 것이 가능할까?
거리로는 얼마되지 않았지만,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겨우 인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인파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흐름에 거칠게 저항하다 보니, 어느새! 라는 느낌이었다. 붉은 띠를 두르고 있는 사람들이 인파에 합류하기 위해 달려가고 있었고, 걱정스런 눈빛의 외국인들이 북경역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도착했을 때, 어울리지 않게 흰옷을 차려입은 한 사람이 우리에게 달려왔다. 요셉이 경계의 눈빛을 보내자, 그는 히죽 웃으며 손목을 걷어 보였다. 꼬리를 문 뱀이었다.
「어서오십시오. 당신들을 안내할 링커입니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따라오라며 손짓하고는 먼저 북경역 안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전통적인 중국식 건물을 변형한 듯한 건물은 오히려 유럽의 건물들 보다건조해 보였다. 우리는 그 북경역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북경역안에서도 붉은 띠를 두른 사람들이 호회를 날리고 있었다. 안내자는 때가 급하다며 우리를 선로로 안내했다. 선로로 들어서는 개찰구에서 그는 역무원에게 고개짓을 하며 통과했다. 우리도 약간 어이없어 하며 그대로 통과했다. 역무원은 우리를 잡지 않았다. 도대체 링커의 영향력은 어디까지일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개찰구로 들어서자 때마침 열차가 도착한 것인지, 열차 하나가 증기를 뿜으며 멈춰서고 있었다.
「저기에 타는 겁니까?」
나의 물음에 안내자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게이트를 가리켰다.
「저기에 타는 겁니다.」
나는 그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게이트는 열차외에는 통과할 수 가 없었다. 그리고 만약 게이트를 통과한다고 해도, 그것은 유럽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 내가 뭔가 착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게이트의 뒤편에 증기기관차가 하나 더 서 있었다. 그것은 본래 있어서는 안되는 위치였다. 중국을 향해 마지막 게이트 뒤편에 있는 증기기관차는. 안내자는 예의 웃음으로 말했다.
「마지막 게이트는 사실 숨겨진 길입니다. 저기를 통과하면 바로 몽골입니다.」
그제서야, 예전에 들었던 의문하나가 풀리는 것을 느꼈다. 왜 5개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꼭 5개여야 할까. 5번째 게이트는 몽골로 향햐는 숨겨진 게이트였다. 그리고 그 사실은 다른 사실을 확증하고 있었다. 요한은 몽골에 갔었다. 라는 것을.
「그럼 빨리 가자고!」
제레미가 소리쳤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너무나 익숙한, 그리고 다급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피해!」
요셉의 행동은 빨랐다. 그는 일행을 모조리 감싸듯 끌어안으며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그리고 우리가 있던 자리로 불꽃의 강이 흐르고 지나갔다. 나는 치명적인 죽음에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요셉이 다급히 몸을 일으켜 불꽃의 방향을 향해 달려갔다. 나도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공포와 반가움을 동시에 느꼈다.
새침한 표정의 니나와 분노로 얼룩진 링마스터, 미스 벤자민이었다. 기뻐해야 할지 무서워해야 할지 마음을 종잡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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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