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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링커 1979년 - 작가 - 요한(windkju)
글 수 29
오늘 완결을 위해 절정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비축분은 넉넉하니...폭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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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륜
5.
그녀가 정말 신일까. 위엄에 가득차 있는 신의 벽화를 떠올렸지만, 도무지 이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권능에 가득찬 창을 휘두르지도, 그렇다고 이적을 보이지도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이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속엔진. 그것이 미래의 유산이라고 말했지만 그것 자체로 기적에 가깝지 않던가. 그러나 신의 모습이 권위에 찬 남자로 그려지는 반면은 그녀는 여자이다. 그것도 어린 소녀.
납득하기 힘들었다. 나를 슬프게 바라보던 그녀가 신이라는 것을 납득 할 수 없었다. 하지만......그녀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말한 ‘인류의 끝이다’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녀가 말한 ‘인류는 모두 이어져 있다’ 라는 말은 요한의 말이었다. 그가 말한 의미는 아마도 인류는 모두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녀의 말은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다. 영향에 끝이 있을까. 그럴 수 없다. 영향의 파장은 끝없이 이어질 수 밖에.
어쩌면 신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여기입니다.」
문 앞에 멈춰선 양 리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양 리는 따라오던 민경에게 자리를 지키라고 하고 문을 열었다. 문 안에는 시체가 한구 누워있었다. 시체로 걸어갔다. 뚜벅거리는 소리가 좁은 공간에 크게 울렸다. 시체 앞에 멈춰선 양 리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생각했다. 시체가 있었다. 제레미가 죽인 사람이다. 양 리에게 떼를 쓰다싶이 해서 확인을 하자고 했다.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을까. 나는 제레미가 죽였을거라 생각하지 않는걸까. 제레미의 마음속 소리가 가끔 이명처럼 들려왔다. 거리가 멀어질 수록 그 소리는 멀어지는 모양으로 아주 멀게만 느껴졌다.
「확인해보시죠.」
그가 시체에 덮여진 흰 천을 슬며시 치웠다. 순간 나는 눈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망막에 잠깐 들어온 그 모습은 잔혹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시체는 손상되어 있었다. 양 리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죽인 시체입니다. 칼같은 걸로 두어번 찌른 뒤로는 물어뜯은 건지 몸이 손상되어 있더군요. 목격자들 말로는 제레미가 달려들어 짐승처럼 삼키려 했다고 했습니다.」
부지불식간에 상상이 들었다. 제레미가 사람을 집어삼키려 하는 모습이. 우적우적대며 씹어삼키는 그 모습은 너무나 적나라하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구역질이 났다. 내가 시체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자, 양 리는 다시 천을 덮었다. 나는 그에게 감사해야 했다. 구역질을 참으며 시체를 바라보았다.
흰 천 아래의 시체가 상상이 되었다.
「괜찮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후우.」
숨을 쉬자, 바로 후회했다. 방부제로 처리되어있었지만, 시체 썩은내가 풍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양 리는 그런 냄새도 나지 않는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잔혹한 범죄입니다. 이런 사체는 저도 처음봅니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먹으려고 들었을까요.」
-잡아먹으러 간다-
양 리의 말에서 이명처럼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한이 들정도로 무서운 소리였다. 그러나 그것이 과거의 기억인지 현재의 상상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양 리의 말에서 몇가지 기억들이 솟아올랐다.
드미트리와 제레미. 둘은 잡아먹는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제레미의 마음속을 본 적이 있다. 그 속에서 나는 잊혀진 기억의 조각들을 건져낼 수 있었다. 그것은 피가 흥건한 가운데 무언가를 뜯어먹고 있는 제레미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는 이자도 먹으려고 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왜?
그때 나의 눈에 기묘한 것이 들어왔다. 흰 천의 밖으로 슬며시 나와있는 사체의 팔이었다. 그 시체의 손등에 그려진 기묘한 모양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꼬리를 문 뱀. 지혜의 상징인 뫼비우스의 띠이다. 피로 얼룩진 그 뫼비우스의 띠는 서툴게 그려진 듯했다.
「이것은?」
나의 질문에 양 리도 그 손등을 바라보았다. 양 리는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잠시 그 뫼비우스의 띠를 바라보았다. 연금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상징이었다. 지혜를 상징하는 동그라미를 두 개이어 붙인 형태의 모양.
「확인하셨으면 이만 돌아가죠.」
양 리가 말했다. 그는 천을 움직여 팔까지 덮었다. 나는 마지막까지 그 손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체보관실 밖으로 나왔다. 시체 냄새가 몸에까지 밴 것 같은 불쾌한 기분에 몸을 털었다. 양 리는 그 모습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냄새가 지독하죠?」
「그렇군요.」
「그런데 무엇을 확인하고 싶으셨던 겁니까?」
양 리는 물음에 나 역시 의문이 들었다.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글쎄요. 저도 모르겠군요.」
양 리는 위로하듯 나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의 위로에 적잖이 마음이 누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지만 불편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양 리는 나의 그런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평소에 굳어있던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피어오르자 따뜻한 인상의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 할 수 있었다.
「아, 그리고 좋은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비적때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소식입니다. 중국변방수비대에서 그 흔적을 추적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곧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의 니나를.」
나의 니나? 약한 의문이 들었지만 니나를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겼다는 것이 기뻤다. 내가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이자 양 리도 미소를 지었다.
「꼭 찾을 수 있을겁니다. 힘내세요.」
「고맙습니다.」
6.
돌아오는 길은 갈때의 재현이었다. 폭죽에 놀라며, 인력거를 급하게 피하며 거리를 걸었다. 집집마다 걸어둔 홍등은 축제가 한창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길거리에 나온 수많은 사람들은 총천연색의 옷을 입고 있어서 보고만 있어도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가끔 아이들이 나의 모습에 놀라며 도망치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국인인 나의 모습에 별로 놀라지 않는 듯 했다.
「아마도 중국도 익숙해진 탓이겠지요.」
양 리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씁쓸함이 담겨있었다.
「전쟁 이후에 중국은 급변하는 시대에 대처해야 했습니다. 아직도 황제께서 다스리고 있지만, 사실 유명무실하지요. 급하게 들어오는 이국의 물물에 적응하기 위해 지금 중국은 꿈틀거리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곧.......」
그의 말이 멈췄다.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다. 어쩌면 열망일지도 모른다. 얼음에 닿은 불꽃처럼 그의 얼굴은 빠르게 식었다. 그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쓸데없는 말이었군요.」
말의 휴지에 담겨있는 의미가 신경쓰였다. 그렇지만 추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되도록 주위의 풍경을 돌아보려 애썼다. 아름다운 도시였다. 복잡하고 혼란스럽지만 그만큼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화려한 색채가 눈을 어지럽히고 요란한 소리가 귀를 어지럽혔지만, 변화의 아름다움이었다. 양 리의 말을 듣고 난 뒤라 그런지 그 아름다움이 더욱 새롭게 보였다. 변화하고 있었다. 나라 전체가. 양 리처럼 정복을 입은 사람들도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변발에 전통복식을 입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과거와 현재가 뒤죽박죽인 혼란의 도시. 적응할 수 없지만 아름다움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이리로-
그 순간 머릿속을 울리는 생각하나가 있었다. 나는 그 소리에 놀라지 않으려 노력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그 노인은 행상을 벌이고 있었는데, 여러 가지 공예품들이 늘어져 있었다.
「공예품에 관심이 가십니까?」
「아. 네,네.」
양 리는 중국의 공예품에 대해서 설명이라도 해줄듯 나를 인도했다. 나는 그를 따라 행상앞으로 다가갔다. 분명히 제레미의 생각이었다. 나는 수상해보이지 않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주위에 제레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공예품을 바라보았다. 흙으로 빗은 듯한 여러 가지 도자기와 공예품. 그리고 종이로 만든 홍등이 있었다.
양 리는 내가 중국 전통 공예품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기쁜듯 여러 가지 설명을 해주었다. 나는 물건들을 하나하나 만져가며 제레미의 생각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홍등 하나를 집었을 때였다.
-그것을-
나는 고개를 들었다. 노인은 반쯤 감긴 눈으로 앉아있을 따름이었다. 이것을 사라는 말인가. 양 리는 내가 고른 홍등을 보며 말했다.
「전통 홍등이군요. 부와 행운을 상징하는 부적같은 것이지요.」
「그렇군요.」
나는 제레미의 생각을 기다렸지만,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것을 사라는 말인것 같았다. 나는 값을 치르고 홍등을 구매했다. 양 리는 홍등의 모습을 보며 짧게 말했다.
「당신에게도 부와 행운이 깃들면 좋겠군요. 행운이 필요한 때이니까요.」
「행운이 오면 좋겠지요.」
홍등을 들고 양 리의 집으로 돌아왔다. 양 리는 나를 집으로 들여보내고 자신은 볼 일이 있다며 떠났다. 나는 방으로 들어와 홍등을 놓고 고심했다. 요셉이 내가 들고 온 홍등을 보며 물었다.
「그게 뭡니까?」
「홍등이라는군요. 그런데 아무래도 제레미가 이걸 저에게 주길 원한 것 같아요.」
나는 주위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엿듣는 귀는 없는 듯했다. 나의 말에 요셉의눈이 가늘어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홍등을 구석구석 뒤졌다. 하지만 단순한 구조로 되어있는 홍등에는 아무런 글자도 없었다. 하다못해 표시도 없었다. 단순한 구조인탓에 홍등 자체를 뒤지는 것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요셉도 홍등을 뒤졌지만, 그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나는 포기하듯 홍등을 던지며 말했다.
「뭔가 착각한 모양입니다.」
「아니면 우리가 발견하지 못하는 것일 테구요.」
하지만 홍등에는 더 이상 있을 만한 것이 없었다. 바닥의 홍등을 지긋이 노려보며 한참을 고민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내가 착각한 것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요셉이 바닥을 박차며 일어섰다.
「어쩌면!」
「뭐,뭡니까.」
「나치식의 비밀편지가 있습니다!」
나는 의문의 표정을 지었지만, 그는 다급하게 홍등을 집어들었다. 나의 질문을 모두 무시하며 그는 홍등의 가운데 있는 초에 불을 붙였다. 다급한 마음에 여러번 불꽃이 튕긴 뒤에야 불이 붙었다. 붉은 빛이 방안을 비쳤다. 아직은 밝은 오후였지만, 홍등자체는 꽤 밝은 편이었다. 나는 멍하니 홍등을 바라보았다. 요셉이 중얼거렸다.
「열을 닿으면 글자가 떠오르는 비밀편지가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도 그런 형식일지 모릅니다.」
요셉의 생각은 옳았다. 곧 종이로 된 홍등의 표면에 글씨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희미하게 떠오르던 무늬는 곧 읽을 수 있는 글로 바뀌었다. 나는 홍등을 돌려가며 그 글씨를 읽었다.
‘뱀의 고리가 표식. 양 리를 믿지마시오.’
제레미의 전언은 그뿐이었다. 양 리를 믿지 말라고 말했다. 아마도 뱀의 고리라는 것은 아까 내가 본 그것인 모양이었다. 요셉이 전언을 보고 의문을 표했다. 나는 내가 본 것에 대해 요셉에게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요셉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레미는 뭔가 함정에 빠진 것 같군요.」
나는 그의 말에 의문을 느꼈다.
「당신은 제레미를 믿고 있나 보군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제레미는 나치차일드인데도 당신은 그의 말을 모두 믿고 있는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그를 믿을 수 있습니까?」
요셉의 눈이 가늘어졌다. 침묵이 자리잡았다. 한참뒤에 나온 요셉의 말은 다른 것을 말하고 있었다.
「니나는 제레미를 통해 나치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절대적인 믿음. 요셉은 정말 니나를 신으로 여기고 있었다. 거기에 의문은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에게 니나와의 대화를 말해주려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니나가 인류의 끝이니, 인류가 모두 이어져 있다. 라고 말한 것들을 요셉이 제대로 받아들여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감정은 신에 대한 열망같은 것이 아니었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러면 일단 제레미를 믿고 도와주도록 하지요. 그런데 양 리를 믿지 말라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제 추측이지만, 그 살인. 제레미가 벌인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너무 짧은 시간이었어요.」
「그건......아닙니다. 시체를 확인했습니다. 분명 제레미의 짓이었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와 저는 이어져 있다는 것을.」
「그렇군요.」
그는 생각에 빠졌다. 그러다가 그가 되물었다.
「확실한 겁니까?」
「거의 확실합니다.」
깊이 있는 생각이 시간을 채웠다. 침묵의 끝에 우리는 제레미의 다음 전언이 올때까지 판단을 내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추리의 조각들이 너무 부족했다. 양 리는 그저 엄정하고 따뜻한 경찰일 뿐이고, 우리는 그에게서 의심점을 찾을 수 없었다. 요셉은 홍등의 흔적을 없애야 한다고 말하며 촛불로 홍등의 종이를 태웠다. 홍등은 금방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벌써 5일째. 얼마지나지 않아 비행선이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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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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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륜
5.
그녀가 정말 신일까. 위엄에 가득차 있는 신의 벽화를 떠올렸지만, 도무지 이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권능에 가득찬 창을 휘두르지도, 그렇다고 이적을 보이지도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이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속엔진. 그것이 미래의 유산이라고 말했지만 그것 자체로 기적에 가깝지 않던가. 그러나 신의 모습이 권위에 찬 남자로 그려지는 반면은 그녀는 여자이다. 그것도 어린 소녀.
납득하기 힘들었다. 나를 슬프게 바라보던 그녀가 신이라는 것을 납득 할 수 없었다. 하지만......그녀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말한 ‘인류의 끝이다’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녀가 말한 ‘인류는 모두 이어져 있다’ 라는 말은 요한의 말이었다. 그가 말한 의미는 아마도 인류는 모두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녀의 말은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다. 영향에 끝이 있을까. 그럴 수 없다. 영향의 파장은 끝없이 이어질 수 밖에.
어쩌면 신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여기입니다.」
문 앞에 멈춰선 양 리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양 리는 따라오던 민경에게 자리를 지키라고 하고 문을 열었다. 문 안에는 시체가 한구 누워있었다. 시체로 걸어갔다. 뚜벅거리는 소리가 좁은 공간에 크게 울렸다. 시체 앞에 멈춰선 양 리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생각했다. 시체가 있었다. 제레미가 죽인 사람이다. 양 리에게 떼를 쓰다싶이 해서 확인을 하자고 했다.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을까. 나는 제레미가 죽였을거라 생각하지 않는걸까. 제레미의 마음속 소리가 가끔 이명처럼 들려왔다. 거리가 멀어질 수록 그 소리는 멀어지는 모양으로 아주 멀게만 느껴졌다.
「확인해보시죠.」
그가 시체에 덮여진 흰 천을 슬며시 치웠다. 순간 나는 눈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망막에 잠깐 들어온 그 모습은 잔혹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시체는 손상되어 있었다. 양 리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죽인 시체입니다. 칼같은 걸로 두어번 찌른 뒤로는 물어뜯은 건지 몸이 손상되어 있더군요. 목격자들 말로는 제레미가 달려들어 짐승처럼 삼키려 했다고 했습니다.」
부지불식간에 상상이 들었다. 제레미가 사람을 집어삼키려 하는 모습이. 우적우적대며 씹어삼키는 그 모습은 너무나 적나라하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구역질이 났다. 내가 시체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자, 양 리는 다시 천을 덮었다. 나는 그에게 감사해야 했다. 구역질을 참으며 시체를 바라보았다.
흰 천 아래의 시체가 상상이 되었다.
「괜찮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후우.」
숨을 쉬자, 바로 후회했다. 방부제로 처리되어있었지만, 시체 썩은내가 풍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양 리는 그런 냄새도 나지 않는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잔혹한 범죄입니다. 이런 사체는 저도 처음봅니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먹으려고 들었을까요.」
-잡아먹으러 간다-
양 리의 말에서 이명처럼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한이 들정도로 무서운 소리였다. 그러나 그것이 과거의 기억인지 현재의 상상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양 리의 말에서 몇가지 기억들이 솟아올랐다.
드미트리와 제레미. 둘은 잡아먹는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제레미의 마음속을 본 적이 있다. 그 속에서 나는 잊혀진 기억의 조각들을 건져낼 수 있었다. 그것은 피가 흥건한 가운데 무언가를 뜯어먹고 있는 제레미의 모습이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는 이자도 먹으려고 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왜?
그때 나의 눈에 기묘한 것이 들어왔다. 흰 천의 밖으로 슬며시 나와있는 사체의 팔이었다. 그 시체의 손등에 그려진 기묘한 모양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꼬리를 문 뱀. 지혜의 상징인 뫼비우스의 띠이다. 피로 얼룩진 그 뫼비우스의 띠는 서툴게 그려진 듯했다.
「이것은?」
나의 질문에 양 리도 그 손등을 바라보았다. 양 리는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잠시 그 뫼비우스의 띠를 바라보았다. 연금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상징이었다. 지혜를 상징하는 동그라미를 두 개이어 붙인 형태의 모양.
「확인하셨으면 이만 돌아가죠.」
양 리가 말했다. 그는 천을 움직여 팔까지 덮었다. 나는 마지막까지 그 손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체보관실 밖으로 나왔다. 시체 냄새가 몸에까지 밴 것 같은 불쾌한 기분에 몸을 털었다. 양 리는 그 모습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냄새가 지독하죠?」
「그렇군요.」
「그런데 무엇을 확인하고 싶으셨던 겁니까?」
양 리는 물음에 나 역시 의문이 들었다.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글쎄요. 저도 모르겠군요.」
양 리는 위로하듯 나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의 위로에 적잖이 마음이 누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지만 불편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양 리는 나의 그런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평소에 굳어있던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피어오르자 따뜻한 인상의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 할 수 있었다.
「아, 그리고 좋은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비적때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소식입니다. 중국변방수비대에서 그 흔적을 추적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곧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의 니나를.」
나의 니나? 약한 의문이 들었지만 니나를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겼다는 것이 기뻤다. 내가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이자 양 리도 미소를 지었다.
「꼭 찾을 수 있을겁니다. 힘내세요.」
「고맙습니다.」
6.
돌아오는 길은 갈때의 재현이었다. 폭죽에 놀라며, 인력거를 급하게 피하며 거리를 걸었다. 집집마다 걸어둔 홍등은 축제가 한창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길거리에 나온 수많은 사람들은 총천연색의 옷을 입고 있어서 보고만 있어도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가끔 아이들이 나의 모습에 놀라며 도망치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국인인 나의 모습에 별로 놀라지 않는 듯 했다.
「아마도 중국도 익숙해진 탓이겠지요.」
양 리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씁쓸함이 담겨있었다.
「전쟁 이후에 중국은 급변하는 시대에 대처해야 했습니다. 아직도 황제께서 다스리고 있지만, 사실 유명무실하지요. 급하게 들어오는 이국의 물물에 적응하기 위해 지금 중국은 꿈틀거리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곧.......」
그의 말이 멈췄다.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다. 어쩌면 열망일지도 모른다. 얼음에 닿은 불꽃처럼 그의 얼굴은 빠르게 식었다. 그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쓸데없는 말이었군요.」
말의 휴지에 담겨있는 의미가 신경쓰였다. 그렇지만 추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되도록 주위의 풍경을 돌아보려 애썼다. 아름다운 도시였다. 복잡하고 혼란스럽지만 그만큼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화려한 색채가 눈을 어지럽히고 요란한 소리가 귀를 어지럽혔지만, 변화의 아름다움이었다. 양 리의 말을 듣고 난 뒤라 그런지 그 아름다움이 더욱 새롭게 보였다. 변화하고 있었다. 나라 전체가. 양 리처럼 정복을 입은 사람들도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변발에 전통복식을 입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과거와 현재가 뒤죽박죽인 혼란의 도시. 적응할 수 없지만 아름다움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이리로-
그 순간 머릿속을 울리는 생각하나가 있었다. 나는 그 소리에 놀라지 않으려 노력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한 노인이 앉아 있었다. 그 노인은 행상을 벌이고 있었는데, 여러 가지 공예품들이 늘어져 있었다.
「공예품에 관심이 가십니까?」
「아. 네,네.」
양 리는 중국의 공예품에 대해서 설명이라도 해줄듯 나를 인도했다. 나는 그를 따라 행상앞으로 다가갔다. 분명히 제레미의 생각이었다. 나는 수상해보이지 않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주위에 제레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공예품을 바라보았다. 흙으로 빗은 듯한 여러 가지 도자기와 공예품. 그리고 종이로 만든 홍등이 있었다.
양 리는 내가 중국 전통 공예품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기쁜듯 여러 가지 설명을 해주었다. 나는 물건들을 하나하나 만져가며 제레미의 생각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홍등 하나를 집었을 때였다.
-그것을-
나는 고개를 들었다. 노인은 반쯤 감긴 눈으로 앉아있을 따름이었다. 이것을 사라는 말인가. 양 리는 내가 고른 홍등을 보며 말했다.
「전통 홍등이군요. 부와 행운을 상징하는 부적같은 것이지요.」
「그렇군요.」
나는 제레미의 생각을 기다렸지만,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것을 사라는 말인것 같았다. 나는 값을 치르고 홍등을 구매했다. 양 리는 홍등의 모습을 보며 짧게 말했다.
「당신에게도 부와 행운이 깃들면 좋겠군요. 행운이 필요한 때이니까요.」
「행운이 오면 좋겠지요.」
홍등을 들고 양 리의 집으로 돌아왔다. 양 리는 나를 집으로 들여보내고 자신은 볼 일이 있다며 떠났다. 나는 방으로 들어와 홍등을 놓고 고심했다. 요셉이 내가 들고 온 홍등을 보며 물었다.
「그게 뭡니까?」
「홍등이라는군요. 그런데 아무래도 제레미가 이걸 저에게 주길 원한 것 같아요.」
나는 주위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엿듣는 귀는 없는 듯했다. 나의 말에 요셉의눈이 가늘어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홍등을 구석구석 뒤졌다. 하지만 단순한 구조로 되어있는 홍등에는 아무런 글자도 없었다. 하다못해 표시도 없었다. 단순한 구조인탓에 홍등 자체를 뒤지는 것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요셉도 홍등을 뒤졌지만, 그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나는 포기하듯 홍등을 던지며 말했다.
「뭔가 착각한 모양입니다.」
「아니면 우리가 발견하지 못하는 것일 테구요.」
하지만 홍등에는 더 이상 있을 만한 것이 없었다. 바닥의 홍등을 지긋이 노려보며 한참을 고민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내가 착각한 것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요셉이 바닥을 박차며 일어섰다.
「어쩌면!」
「뭐,뭡니까.」
「나치식의 비밀편지가 있습니다!」
나는 의문의 표정을 지었지만, 그는 다급하게 홍등을 집어들었다. 나의 질문을 모두 무시하며 그는 홍등의 가운데 있는 초에 불을 붙였다. 다급한 마음에 여러번 불꽃이 튕긴 뒤에야 불이 붙었다. 붉은 빛이 방안을 비쳤다. 아직은 밝은 오후였지만, 홍등자체는 꽤 밝은 편이었다. 나는 멍하니 홍등을 바라보았다. 요셉이 중얼거렸다.
「열을 닿으면 글자가 떠오르는 비밀편지가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도 그런 형식일지 모릅니다.」
요셉의 생각은 옳았다. 곧 종이로 된 홍등의 표면에 글씨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희미하게 떠오르던 무늬는 곧 읽을 수 있는 글로 바뀌었다. 나는 홍등을 돌려가며 그 글씨를 읽었다.
‘뱀의 고리가 표식. 양 리를 믿지마시오.’
제레미의 전언은 그뿐이었다. 양 리를 믿지 말라고 말했다. 아마도 뱀의 고리라는 것은 아까 내가 본 그것인 모양이었다. 요셉이 전언을 보고 의문을 표했다. 나는 내가 본 것에 대해 요셉에게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요셉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레미는 뭔가 함정에 빠진 것 같군요.」
나는 그의 말에 의문을 느꼈다.
「당신은 제레미를 믿고 있나 보군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제레미는 나치차일드인데도 당신은 그의 말을 모두 믿고 있는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그를 믿을 수 있습니까?」
요셉의 눈이 가늘어졌다. 침묵이 자리잡았다. 한참뒤에 나온 요셉의 말은 다른 것을 말하고 있었다.
「니나는 제레미를 통해 나치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절대적인 믿음. 요셉은 정말 니나를 신으로 여기고 있었다. 거기에 의문은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에게 니나와의 대화를 말해주려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니나가 인류의 끝이니, 인류가 모두 이어져 있다. 라고 말한 것들을 요셉이 제대로 받아들여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감정은 신에 대한 열망같은 것이 아니었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러면 일단 제레미를 믿고 도와주도록 하지요. 그런데 양 리를 믿지 말라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제 추측이지만, 그 살인. 제레미가 벌인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너무 짧은 시간이었어요.」
「그건......아닙니다. 시체를 확인했습니다. 분명 제레미의 짓이었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와 저는 이어져 있다는 것을.」
「그렇군요.」
그는 생각에 빠졌다. 그러다가 그가 되물었다.
「확실한 겁니까?」
「거의 확실합니다.」
깊이 있는 생각이 시간을 채웠다. 침묵의 끝에 우리는 제레미의 다음 전언이 올때까지 판단을 내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추리의 조각들이 너무 부족했다. 양 리는 그저 엄정하고 따뜻한 경찰일 뿐이고, 우리는 그에게서 의심점을 찾을 수 없었다. 요셉은 홍등의 흔적을 없애야 한다고 말하며 촛불로 홍등의 종이를 태웠다. 홍등은 금방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벌써 5일째. 얼마지나지 않아 비행선이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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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