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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문학관 - 작가 : nitrocity1
글 수 40
"헉! 허억!"
끊어질듯한 숨소리를 내며 달리는 라제스. 몸에는 온통 피와 먼지가 묻고,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된, 한마디로 엉망인 모습이었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않고 계속 달렸다.
"하아... 하아...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아직 수면증의 피해를 입지 않은 소수의 쿠와르 해방군이 마지막 항전을 벌이며 곳곳에서 산발적인 총성이 들려오고는 있었지만, 누가 보더라도 그러한 저항은 오래가지 못할것이 분명했다. 때문에 라제스는 점점 줄어드는 포성과, 언뜻언뜻 보이기 시작하는 미르사의 흰색 제복을 입은 군인들을 보며 이미 한계까지 다다른 속도를 더욱 빨리했다.
"아.. 드디어..."
다가브 시의 외곽으로 빠지는 외부 쉘터의 입구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라제스는 절망과 희망이 뒤섞인 표정으로 쓰러질듯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느정도 가까워지자 이미 쉘터의 입구에 봉쇄선을 형성한 미르의 병사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고, 라제스는 더 이상 뒤돌아 도망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그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어이! 거기, 넌 누구냐?"
"..."
"이봐! 어서 대답하지 못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미르의 군인들을 보고도 그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멍하니 넋을 놓고 바라만 보는 라제스 릴.
"대장, 어떻게 할까요?"
"우선은 본부로 압송한다. 수면증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보아 외국인일테니까. 신원을 확인한 후에 사후처리는 윗쪽의 녀석들이 알아서 하겠지. 끌고 가."
"옛써"
대장이라고 불린 남자의 지시에 따라 두명의 병사가 라제스를 일으켜 세웠다. 라제스는 자신의 몸이 다른 누군가에게 끌려가는 것을 인지하고서야 조금씩 정신을 차릴 수 있었고, 곧 이어질 신원확인 절차와 감금, 그리고 세뇌작업을 떠올리며 절망에 빠졌다.
"시.... 싫어.."
"뭐라구?"
"싫어어!"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는 평범한 여자라고 방심하던 병사들은 그다지 경계를 하지 않았고, 그 틈을 타서 라제스는 자신을 잡고있는 사람들을 뿌리치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훗. 저런 몸으로 도망치겠다는 건가? 잡아!"
"넷."
대답과 함께 서너명의 병사가 달려나갔다. 멀쩡한 상태에서라도 도망치기는 어려웠을텐데, 더구나 대부분의 체력을 소모하고 난 라제스는 잘 훈련된 병사들을 따돌릴 힘이 없었다. 때문에 잠깐 벌어졌던 거리는 순식간에 0으로 좁혀졌고, 미르의 경계병들은 진압봉과 전자수갑을 꺼내들고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 손이 라제스의 몸에 닿기 직전.
"콰앙!"
"뭐, 뭐냐?!"
"적이다! 쿠와르의 스타 파이터가 아직 남아있었어!"
거대한 폭음과 함께 바리케이트를 형성하던 장갑차가 순식간에 조각나며 화염기둥을 만들어냈고, 병사들은 소나기를 만난 흰개미떼처럼 흩어지며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반격을 하란 말이다, 빌어먹을!"
"대장이 해봐요! 마하 3.0이상으로 대기권을 비행하는 놈을 무슨 수로 잡으라는 겁니까!"
"젠장! 일단 모두 숨어!"
병사들이 건물이나 쉘터 뒤로 숨으며 허둥대는 동안, 하늘에서부터 서서히 스타파이터가 하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까워질수록 더욱 더 선명하게 보이는 붉은 육망성 모양의 마크.
"뉴트럴... 컴퍼니?"
"여어~ 풋내기 여기가 주제에 용케도 살아남았군!"
"당신은..."
눈물로 흐려진 탓에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익숙한 목소리. 그리고 그보다 더 익숙한, 아직도 거리가 상당히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귀를 괴롭히는 헤비 락의 소음.
"자, 빨리 올라오라구!"
"뭐, 뭐야.. 저 여자, 중요인물인가? 잡아!"
"어딜 기어나와!"
스타파이터에서 내려온 인명 구조용 로프를 잡고 라제스가 탈출을 시도하자, 그제서야 병사들은 그녀를 잡기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파바바밧!"
"으아앗!"
숨어있는 곳에서 고개를 내밀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쏟아부어지는 전투기의 에너지 탄 세례에 쓸데없는 만용을 부리며 돌진을 감행하던 병사들만 애꿎은 희생양이 되어버렸다. 덕분에 라제스는 안전하게 전투기 부조종석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고, 대공무기가 없는 병사들은 닭 쫒던 개 마냥 하늘만 바라볼수밖에 없었다.
"자, 제대로 앉았나?"
"네.."
"좋아, 그러면 출발!"
리우 웬이 조종간을 당기며 고도를 높이려는 순간, 라제스가 황급히 말렸다.
"저, 자, 잠깐만!"
"응? 미안하지만 화장실은 중립지역에 가서 사용하라구. 지금 이 상황에서 다시 착륙하기는 힘드니까."
"그게 아니라! 카림.. 카림이 부상당한 채 아직 아래쪽에 있다구요!"
"그래서?"
"그래서.. 라니? 당연히 구하러 가야하잖아요?"
"어쨰서? 이번 임무는 당신을 무사히 복귀시키는 거야. 아군의 구출이 목적이 아니니까."
"그, 그런!"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절대 이해가 불가능한, '전우애'나 '동료의식' 혹은 최소한의 '인간성'조차도 찾아볼 수 없는 무뚝뚝한 발언에 라제스가 경악하며 뭐라고 말하려 했지만, 이어지는 리우 웬의 말이 그녀의 입을 막아버렸다.
"게다가.. 내가 어떻게 당신의 위치를 알아냈다고 생각해? 이미 카림을 만나고 왔다구."
"그렇다면... 어째서 데려오지 않은 거예요!"
"지금 타고있는 전투기는 파워슈츠 견인장비가 없어. 구조용 장비가 없으면 녹아내려 엉겨붙은 파워슈츠를 벗겨내지도 못하고. 파워슈츠를 벗겨내지 못하면 카림을 구할 수도 없지. 이제 이해가 된건가? 나도 버려두고 싶어서 버려두고 온게 아니야."
"하지만..."
"하지만이고 저지만이고 간에. 어쩔 수 없어. 그게 용병의 운명이지. 임무 완수. 그게 전부야."
"웃기지 말고 기수를 돌려요! 일단 가보면 뭔가 수가 생기겠죠! 의뢰인인 내가 말하는 거니까 카림을 구하러 가자구요!"
"아.. 그러고보니, 카림이 당신에게 주라고 내게 맡긴 것이 있는데.."
"에?"
"손을 앞으로 내밀어봐."
얼떨결에 앞쪽으로 손을 내민 라제스. 그리고 리우 웬은 뒷좌석을 돌아보며 그녀의 손에 뭔가를 찔렀다.
"아얏! 이게 무슨..."
"카림이 갖고있던 거야. 수면침이지. 당신이 이렇게 나올 줄 알고 있었는지, 내게 주더라구. 아마 중립지역에 도착할때까지는 푹 자게 될걸?"
하지만 이미 깊은 잠에 빠져든 라제스는 마지막 말은 듣지도 못하고 있었다.
"흠.. 벌써 잠들었나? 그렇다면... 어이! 괜찮아?"
라제스가 잠든 것을 확인한 리우 웬은 통신기를 조작하며 누군가를 불러냈고, 곧이어 스피커 너머로 끊어질듯 약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쿨럭.. 죽을 때는 좀 편안하게 내버려두면 안되는 거예요?"
"야아.. 용케도 살아있군. 아까 봤을 떄는 곧 숨이 끊어질 것 같더니만.."
"하아.. 아직은 그럭저럭 버틸만해요. 뭐, 길어야 한두시간 정도가 한계겠지만."
"그래.. 너도 알겠지만, 이제 조금 후면 통신 가용 범위에서 벗어난다. 혹시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라도 있냐?"
"별로.. 그다지 길지도 않은 인생. 뚜렷하게 기억에 남을만한 일도 없었고.."
"쳇. 왠지 맥빠지는 녀석이군."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는 리우 웬.
"카림.."
"왜요? 불렀으면 말을 하라구요."
"... 미안하다."
"크큭.. 쿨럭! 쿨럭! 크으읏! 리우 웬.. 아무리 내가 미워도 그렇지 얼마 남지도 않은 목숨, 그렇게 빨리 저세상으로 보내고 싶어요? 웃는 바람에 상처가 더 벌어졌잖아요."
"미안하다. 정말로."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당연한 일을 하는 거잖아요."
"하지만.."
"게다가, 오늘은 내가 먼저지만, 리우 웬도 며칠 후엔 날 따라올지도 모르는 일이구요."
"어이, 어이."
"그러니까, 미안할 필요 전혀 없어요. 어디까지나 일이니까요. 아.. 그리고.."
"그리고?"
"컴퍼니의 내 개인 카르고에 보면 이것저것 잡다한 장비들이 있을 거예요. 그거 다 라제스에게 전달 좀 해줄래요?"
"너... 설마 이 여자하고 잤냐?"
"쿨럭! 커헉! 지, 진짜... 진짜로 죽을 뻔 했잖아요! 아아.. 이 피좀 봐..."
"그렇지 않고서야 남은 전재산을 넘길 생각을 할 리가..."
"그나마 개인적으로 함께 지낸 시간이 가장 많은 사람이니까요. 어릴때부터 용병으로 지내온 나에겐, 마치 누나와도 같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같이 잤어, 안잤어?"
"그런 일 없었어요. 뭐, 눈이 즐거운 위기상황은 몇 번 있었지만... 큭큭큭.."
"젠장! 잘도 그런 부러운 짓을! 그대로 죽어버렷!"
"안그래도 이대로 죽을 것 같으니까.. 하아.. 힘든데.. 이제 그만 통신을 끊도록 하죠."
"그래.. 그러면 다음에.. 저 세상에서라도 다시 만나자구."
"힘들걸요.. 나야 아직 미성년자니까 천국에 간다고 해도.. 리우 웬은 지옥행이잖아요?"
"뭐? 야! 뭐야, 이 소음은?! 통신을 끊어버린 거냐? 야, 이 빌어먹을 놈아! 대답 안 해?!"
그러나 스피커 너머에서는 치직거리는 잡음만 들려올 뿐. 리우 웬은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그러나 그의 입가에 걸린 씁쓸한 미소는 왠지 모를 슬픔과 안타까움이 함께 섞여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자 보이는 콕핏의 디스플레이. 그곳에는 어느새 편대를 이루어 접근하는 미르 사의 스타파이터들이 보이고 있었다.
"그래.. 기분도 별로인데.. 차라리 잘됐어. 뒤에서 비명을 질러댈 사람도 지금은 푹 자고있으니, 네놈들이 화풀이 상대라도 되어줘야겠다!"
전투 시작을 알리는 나팔소리 대신, 콕핏 안을 가득 메우는 헤비 락의 찢어질듯한 소음. 그 음악에 맞추어 리우 웬의 전투기가 춤을 추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메르카바급 중형 전투기가 별 볼일 없는 화력의 초기형 전투기를 모두 격추시키는 데 소요된 시간은 단 15분. 정찰기 편대가 모두 당하고 나서야 상대의 수준을 알아챈 미르의 전함에서는 요격기들이 발진을 시작했지만, 이미 정체 불명의 전투기는 사라진 후였다.
그리고 정확하게 그 열배의 시간인 150분이 흐른 뒤, 리우 웬의 스타 파이터는 안전한 중립지역에 들어서며 이번 임무의 종결을 알리고 있었다.
끊어질듯한 숨소리를 내며 달리는 라제스. 몸에는 온통 피와 먼지가 묻고,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된, 한마디로 엉망인 모습이었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않고 계속 달렸다.
"하아... 하아...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아직 수면증의 피해를 입지 않은 소수의 쿠와르 해방군이 마지막 항전을 벌이며 곳곳에서 산발적인 총성이 들려오고는 있었지만, 누가 보더라도 그러한 저항은 오래가지 못할것이 분명했다. 때문에 라제스는 점점 줄어드는 포성과, 언뜻언뜻 보이기 시작하는 미르사의 흰색 제복을 입은 군인들을 보며 이미 한계까지 다다른 속도를 더욱 빨리했다.
"아.. 드디어..."
다가브 시의 외곽으로 빠지는 외부 쉘터의 입구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라제스는 절망과 희망이 뒤섞인 표정으로 쓰러질듯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느정도 가까워지자 이미 쉘터의 입구에 봉쇄선을 형성한 미르의 병사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고, 라제스는 더 이상 뒤돌아 도망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그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어이! 거기, 넌 누구냐?"
"..."
"이봐! 어서 대답하지 못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미르의 군인들을 보고도 그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멍하니 넋을 놓고 바라만 보는 라제스 릴.
"대장, 어떻게 할까요?"
"우선은 본부로 압송한다. 수면증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보아 외국인일테니까. 신원을 확인한 후에 사후처리는 윗쪽의 녀석들이 알아서 하겠지. 끌고 가."
"옛써"
대장이라고 불린 남자의 지시에 따라 두명의 병사가 라제스를 일으켜 세웠다. 라제스는 자신의 몸이 다른 누군가에게 끌려가는 것을 인지하고서야 조금씩 정신을 차릴 수 있었고, 곧 이어질 신원확인 절차와 감금, 그리고 세뇌작업을 떠올리며 절망에 빠졌다.
"시.... 싫어.."
"뭐라구?"
"싫어어!"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는 평범한 여자라고 방심하던 병사들은 그다지 경계를 하지 않았고, 그 틈을 타서 라제스는 자신을 잡고있는 사람들을 뿌리치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훗. 저런 몸으로 도망치겠다는 건가? 잡아!"
"넷."
대답과 함께 서너명의 병사가 달려나갔다. 멀쩡한 상태에서라도 도망치기는 어려웠을텐데, 더구나 대부분의 체력을 소모하고 난 라제스는 잘 훈련된 병사들을 따돌릴 힘이 없었다. 때문에 잠깐 벌어졌던 거리는 순식간에 0으로 좁혀졌고, 미르의 경계병들은 진압봉과 전자수갑을 꺼내들고 손을 뻗었다.
그러나 그 손이 라제스의 몸에 닿기 직전.
"콰앙!"
"뭐, 뭐냐?!"
"적이다! 쿠와르의 스타 파이터가 아직 남아있었어!"
거대한 폭음과 함께 바리케이트를 형성하던 장갑차가 순식간에 조각나며 화염기둥을 만들어냈고, 병사들은 소나기를 만난 흰개미떼처럼 흩어지며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반격을 하란 말이다, 빌어먹을!"
"대장이 해봐요! 마하 3.0이상으로 대기권을 비행하는 놈을 무슨 수로 잡으라는 겁니까!"
"젠장! 일단 모두 숨어!"
병사들이 건물이나 쉘터 뒤로 숨으며 허둥대는 동안, 하늘에서부터 서서히 스타파이터가 하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까워질수록 더욱 더 선명하게 보이는 붉은 육망성 모양의 마크.
"뉴트럴... 컴퍼니?"
"여어~ 풋내기 여기가 주제에 용케도 살아남았군!"
"당신은..."
눈물로 흐려진 탓에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익숙한 목소리. 그리고 그보다 더 익숙한, 아직도 거리가 상당히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귀를 괴롭히는 헤비 락의 소음.
"자, 빨리 올라오라구!"
"뭐, 뭐야.. 저 여자, 중요인물인가? 잡아!"
"어딜 기어나와!"
스타파이터에서 내려온 인명 구조용 로프를 잡고 라제스가 탈출을 시도하자, 그제서야 병사들은 그녀를 잡기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파바바밧!"
"으아앗!"
숨어있는 곳에서 고개를 내밀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쏟아부어지는 전투기의 에너지 탄 세례에 쓸데없는 만용을 부리며 돌진을 감행하던 병사들만 애꿎은 희생양이 되어버렸다. 덕분에 라제스는 안전하게 전투기 부조종석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고, 대공무기가 없는 병사들은 닭 쫒던 개 마냥 하늘만 바라볼수밖에 없었다.
"자, 제대로 앉았나?"
"네.."
"좋아, 그러면 출발!"
리우 웬이 조종간을 당기며 고도를 높이려는 순간, 라제스가 황급히 말렸다.
"저, 자, 잠깐만!"
"응? 미안하지만 화장실은 중립지역에 가서 사용하라구. 지금 이 상황에서 다시 착륙하기는 힘드니까."
"그게 아니라! 카림.. 카림이 부상당한 채 아직 아래쪽에 있다구요!"
"그래서?"
"그래서.. 라니? 당연히 구하러 가야하잖아요?"
"어쨰서? 이번 임무는 당신을 무사히 복귀시키는 거야. 아군의 구출이 목적이 아니니까."
"그, 그런!"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절대 이해가 불가능한, '전우애'나 '동료의식' 혹은 최소한의 '인간성'조차도 찾아볼 수 없는 무뚝뚝한 발언에 라제스가 경악하며 뭐라고 말하려 했지만, 이어지는 리우 웬의 말이 그녀의 입을 막아버렸다.
"게다가.. 내가 어떻게 당신의 위치를 알아냈다고 생각해? 이미 카림을 만나고 왔다구."
"그렇다면... 어째서 데려오지 않은 거예요!"
"지금 타고있는 전투기는 파워슈츠 견인장비가 없어. 구조용 장비가 없으면 녹아내려 엉겨붙은 파워슈츠를 벗겨내지도 못하고. 파워슈츠를 벗겨내지 못하면 카림을 구할 수도 없지. 이제 이해가 된건가? 나도 버려두고 싶어서 버려두고 온게 아니야."
"하지만..."
"하지만이고 저지만이고 간에. 어쩔 수 없어. 그게 용병의 운명이지. 임무 완수. 그게 전부야."
"웃기지 말고 기수를 돌려요! 일단 가보면 뭔가 수가 생기겠죠! 의뢰인인 내가 말하는 거니까 카림을 구하러 가자구요!"
"아.. 그러고보니, 카림이 당신에게 주라고 내게 맡긴 것이 있는데.."
"에?"
"손을 앞으로 내밀어봐."
얼떨결에 앞쪽으로 손을 내민 라제스. 그리고 리우 웬은 뒷좌석을 돌아보며 그녀의 손에 뭔가를 찔렀다.
"아얏! 이게 무슨..."
"카림이 갖고있던 거야. 수면침이지. 당신이 이렇게 나올 줄 알고 있었는지, 내게 주더라구. 아마 중립지역에 도착할때까지는 푹 자게 될걸?"
하지만 이미 깊은 잠에 빠져든 라제스는 마지막 말은 듣지도 못하고 있었다.
"흠.. 벌써 잠들었나? 그렇다면... 어이! 괜찮아?"
라제스가 잠든 것을 확인한 리우 웬은 통신기를 조작하며 누군가를 불러냈고, 곧이어 스피커 너머로 끊어질듯 약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쿨럭.. 죽을 때는 좀 편안하게 내버려두면 안되는 거예요?"
"야아.. 용케도 살아있군. 아까 봤을 떄는 곧 숨이 끊어질 것 같더니만.."
"하아.. 아직은 그럭저럭 버틸만해요. 뭐, 길어야 한두시간 정도가 한계겠지만."
"그래.. 너도 알겠지만, 이제 조금 후면 통신 가용 범위에서 벗어난다. 혹시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라도 있냐?"
"별로.. 그다지 길지도 않은 인생. 뚜렷하게 기억에 남을만한 일도 없었고.."
"쳇. 왠지 맥빠지는 녀석이군."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는 리우 웬.
"카림.."
"왜요? 불렀으면 말을 하라구요."
"... 미안하다."
"크큭.. 쿨럭! 쿨럭! 크으읏! 리우 웬.. 아무리 내가 미워도 그렇지 얼마 남지도 않은 목숨, 그렇게 빨리 저세상으로 보내고 싶어요? 웃는 바람에 상처가 더 벌어졌잖아요."
"미안하다. 정말로."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당연한 일을 하는 거잖아요."
"하지만.."
"게다가, 오늘은 내가 먼저지만, 리우 웬도 며칠 후엔 날 따라올지도 모르는 일이구요."
"어이, 어이."
"그러니까, 미안할 필요 전혀 없어요. 어디까지나 일이니까요. 아.. 그리고.."
"그리고?"
"컴퍼니의 내 개인 카르고에 보면 이것저것 잡다한 장비들이 있을 거예요. 그거 다 라제스에게 전달 좀 해줄래요?"
"너... 설마 이 여자하고 잤냐?"
"쿨럭! 커헉! 지, 진짜... 진짜로 죽을 뻔 했잖아요! 아아.. 이 피좀 봐..."
"그렇지 않고서야 남은 전재산을 넘길 생각을 할 리가..."
"그나마 개인적으로 함께 지낸 시간이 가장 많은 사람이니까요. 어릴때부터 용병으로 지내온 나에겐, 마치 누나와도 같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같이 잤어, 안잤어?"
"그런 일 없었어요. 뭐, 눈이 즐거운 위기상황은 몇 번 있었지만... 큭큭큭.."
"젠장! 잘도 그런 부러운 짓을! 그대로 죽어버렷!"
"안그래도 이대로 죽을 것 같으니까.. 하아.. 힘든데.. 이제 그만 통신을 끊도록 하죠."
"그래.. 그러면 다음에.. 저 세상에서라도 다시 만나자구."
"힘들걸요.. 나야 아직 미성년자니까 천국에 간다고 해도.. 리우 웬은 지옥행이잖아요?"
"뭐? 야! 뭐야, 이 소음은?! 통신을 끊어버린 거냐? 야, 이 빌어먹을 놈아! 대답 안 해?!"
그러나 스피커 너머에서는 치직거리는 잡음만 들려올 뿐. 리우 웬은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그러나 그의 입가에 걸린 씁쓸한 미소는 왠지 모를 슬픔과 안타까움이 함께 섞여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자 보이는 콕핏의 디스플레이. 그곳에는 어느새 편대를 이루어 접근하는 미르 사의 스타파이터들이 보이고 있었다.
"그래.. 기분도 별로인데.. 차라리 잘됐어. 뒤에서 비명을 질러댈 사람도 지금은 푹 자고있으니, 네놈들이 화풀이 상대라도 되어줘야겠다!"
전투 시작을 알리는 나팔소리 대신, 콕핏 안을 가득 메우는 헤비 락의 찢어질듯한 소음. 그 음악에 맞추어 리우 웬의 전투기가 춤을 추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메르카바급 중형 전투기가 별 볼일 없는 화력의 초기형 전투기를 모두 격추시키는 데 소요된 시간은 단 15분. 정찰기 편대가 모두 당하고 나서야 상대의 수준을 알아챈 미르의 전함에서는 요격기들이 발진을 시작했지만, 이미 정체 불명의 전투기는 사라진 후였다.
그리고 정확하게 그 열배의 시간인 150분이 흐른 뒤, 리우 웬의 스타 파이터는 안전한 중립지역에 들어서며 이번 임무의 종결을 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