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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문학관 - 작가 : nitrocity1
글 수 40
외전 형식인데다가 세계관 정립도 아직 끝나지 않아 허접한 글입니다만...
그래도 한번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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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알고 있나요...
그대 등 뒤에서 내가 항상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뒤돌아보지 않아도 좋아요.
마주보며 웃어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지금 이 순간만으로도 행복하니까..."
우주를 바탕으로 돋보이는 하얀 피부의 완벽한 몸매, 절묘하게 가슴을 가리면서 아름다움을 한층 더 증폭시켜주는 빛나는 긴 금발머리, 그리고 손에 든 금빛 하프가 내는 화음과 조화를 이루며 울려퍼지는, 미러클 보이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달콤한 목소리로 부르는 사랑 노래.
만약 그녀의 허리 아랫부분이 기계와 전선으로 이루어진 암석의 형태를 띄고 있지 않았다면, 천사가 내려와서 노래를 부른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그 암석에 찍혀있는 '메카닉 바드 시리얼 넘버 10483 - For Love Song'이 그녀의 정식 이름이다. 언제든지 원하는 음악을 듣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은 사람을 위해 음악을 재생하는 수많은 기계들을 만들어냈지만, 여기에 '라이브'로 재생되는 음악에 대한 한층 더 고차원적인 욕망은 직접 노래부르며 연주하는 재생 머신, 메카닉 바드의 개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전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지금 노래를 부르고 있는 메카닉 바드는 이른바 '전설의 483번대 메카닉 바드'. 시리얼 넘버 00483과 07483, 두대의 메카닉 바드와 더불어 전 세상에 단 세대만이 남아있는 초 고가의 예술품이다. 메카닉 바드의 명장, 제인 야거는 483이라는 시리얼 넘버로 끝나는 자신의 제작 활동을, 이 '10483 - For Love Song'을 끝으로 마감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제인 야거가 '나의 꿈은 천사를 지상에 강림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소망은 이루어졌다'는 말을 남기고 자살했다는 설도 있지만, 이미 사람들의 관심은 이미 죽어버린 사람이 아닌, 그가 남긴 최고의 메카닉 바드들에게로 모아지고 있었다. 수많은 483씨리즈가 주인이 바뀌는 과정에서 손상되고, 파괴되어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지금, 우주를 통틀어 남아있는 483 메카닉 바드는 단 세대 뿐.
그리고 소행성 한 두개 정도의 천문학적 가격이 매겨져있는 다른 두대와는 달리 시리얼 넘버 10483의 메카닉 바드는 공식 가격이 없었다. 그 아름다운 외형과 목소리는 정당한 방법으로 이 기계를 손에 넣은 사람이나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손에 넣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사로잡아 버렸으며, 떄문에 그 주인들 중에서는 아무도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은 내놓으려 하지 않았고, 결국 마지막에는 누군가의 의뢰로 이 메카닉 바드를 훔쳐내는데 성공한 한명의 도둑이 그 목소리에 빠져 함께 잠적해 버린 이후로 종적이 묘연해진 상태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붙여준 또 하나의 이름. "사랑을 노래하는 천사". 바로 그 전설의 메카닉 바드가 박물관도, 대부호의 수집실도 아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소 - 전투기 조종석 뒷자석에 놓여있었다.
"언제나 당신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
전달되지 않는 나의 목소리.
그러나 상관없어요.
지금 이 순간만으로도 행복하니까..."
그리고 "사랑을 노래하는 천사"가 부르는 노랫소리를 듣는 일생 일대의 행운을 맛보고 있는 이 남자. 전투기를 조종중인 회색머리의 파일럿이자, 거대 용병업체인 '뉴트럴 컴퍼니'의 신입 사원인 리우 웬은 이 고상한 예술품이 놓인 장소만큼이나 언밸런스한, 지금껏 천사의 노래를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언제나 감격에 겨워 부르짖었던 격조높은 감탄과 찬사와는 극명하게 대조되는 감상 소감을 내뱉었다.
"미치겠군. 정말로 이 망할놈의 골동품을 닥치게 만드는 방법은 없는거냐..."
곧이어 낄낄거리는 소리와 함께 조종석 화면의 통신 디스플레이 창이 떠올랐다.
"무슨 그런 무식한 소리를 하는거냐, 리우 웬. 네녀석은 지금 돈으로는 값어치를 매길수도 없는 고귀한 노래를 듣고 있는 거라구. 안그래, '이글'?"
"그렇군... 절대 동감이야, 더글라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고 해야할까나. 전투기에 자리만 남았어도 내가 '천사'를 호위하는 영광을 누리는 건데 말이야."
자신의 절친한 동료이자 라이벌인 동시에 이번 호송 임무의 서포터인 두명의 파일럿이 합심해서 비웃는 목소리를 내자, 리우 웬은 한층 더 화를 내며 소리쳤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가져가! 이 지긋지긋한 닭살 노래 플레이어를 가져가라구!"
"너도 잘 알잖아. 이글과 나의 전투기는 부조종석 대신에 센서 컴퓨터를 탑재했으니... 천사를 모실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없다구. 와하하하핫!"
"그나저나 리우 웬, 자네도 참 희한하군. 모든 사람이 극찬을 마다않는 그 전설적인 노래를 들으면서도 그렇게 끊임없이 투덜댈 수 있다니.."
"이글! 그러고도 네녀석이 사나이냐! 남자라면 당연히 헤비메탈이나 락이다! 이따위 건드리면 깨질듯한 노래는 질색이라구!"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비록 엔진 소음을 중화시키기 위해서였지만 일년 365일 헤비메탈 음악을 틀어놓은 수송선을 몰고 다니던 밀수업자 출신의 리우 웬은 뉴트럴 컴퍼니의 전투기 파일럿으로 직업을 바꾼 이후에도 그 음악만은 항상 변함없이 틀어놓았다.
그러던 것이, 단순한 수송물품이라고 여기고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인 '천사'에 의해 전투기 내의 모든 오디오 시스템을 장악당해버린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에게 고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귓가에 앵앵대는 모기 소리와 새벽에 흐느끼는 여자의 울음소리를 합성시켜놓은 듯한 기분이 드는 러브 송만 줄기차게 들어야 했으니...
결국 리우 웬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몸을 돌려 '천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 말이야... 제발 부탁인데, 제발 조용히 좀 해줄수 없냐? 힘든 것도 아니잖아? 그냥 입만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된다구."
갑자기 노래를 멈추고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메카닉 바드.
"그래! 그거야! 그렇게 조용히만 해주면..."
"그대 눈빛이, 나의 눈과 마주칠 때~ 우리는 알 수 있었죠, 사랑에 빠졌음을..."
"끄아아아아!!"
단지 곡을 바꿔 부르게 만드는 것으로 그친, 부질없는 시도의 불발로 인한 리우 웬의 절망에 찬 비명이 그의 전투기를 흔들었다.
"어떻게 된 놈의 기계가, 전원 버튼도 없냔 말이야!"
"하핫... 제인 야거가 자신의 작품에 환원식 발전기를 사용한 영구적인 동력장치를 넣으며 전원 버튼을 없애버렸다는 건 이미 유명한 사실이지.."
더글라스의 능글거리는 말을 들으며 리우 웬은 '그래, 참자. 앞으로 세시간만 더 하이퍼 스페이스로 이동하면 목적지에 도착하고, 그떄부터는 이 지옥과 영원히 안녕이다.'라는 일념으로 전투기 조종에만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자동 항법장치가 도맡아서 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긴 궤적을 그리며 지나치는 별의 모습만 바라보며 앉아있어야 하는 전투기 파일럿에게, '조종에 집중하자'라고 마음을 다진 것은 결국 '아무 일도 하지 말자'라는 결심과 마찬가지였고,
절대 무심의 경지라는, 고승들의 수도 생활이 가져다 줄법한 결과물과는 인연이 없는 리우 웬이었기에, 결국 억지로 눈을 감고 잠을 청하다가도 '그대 잠든 모습을 바라보며...'로 시작하는 노래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비참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젠장... 이대로 가다간 미쳐버릴 것 같아...."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리우 웬을 비롯한 세대의 전투기는 강력한 어떤 힘에 이끌려 통상 우주 공간으로 튕겨나왔다.
"이게 무슨...?"
더글라스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그 뒤를 이어 거의 동시에 이글과 리우 웬이 소리쳤다.
"빌어먹을!"
"해적이야!"
그들의 앞에는 약 20여대의 전투기가 중력 발생기를 장착한 프리깃(Frigate:구축함)을 중심으로 둥글게 대기하고 있었다.
"하이브로 연결해!"
"소용없어! 재밍(jamming:전파방해)이야!"
"도대체 어떤 녀석들이야? 식별부호는!"
"전투기 기종은 MST계열. 불법 개조품이라서 분명하지는 않아. 어디 소속의 해적인지는 불명."
우주전의 역사가 시작되고, 파이터 클래스의 전투기들이 생산된 이래 가장 많이 판매된 기체중의 하나. MST계열. 화력도 그저 그런 수준이고, 속도나 기동성이 좋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비슷한 가격대의 저가품 사이에서의 이야기. 단지 '고장이 잘 나지 않고' '개발된 관련 부품이 많아 개조가 쉬우며' '저렴하다'라는 빈민층의 3대 요구사항에 걸맞기 때문에 많이 팔렸을 뿐이다.
그에 비하면 이글의 '메르카바' 계열이나 리우 웬과 더글라스의 'RST'계열의 기체는 상당한 고가품이라고할 수 있었다. 단순히 소형 레일건 2문이 무장의 전부인 MST계열에 비하면 객관적인 화력은 거의 3~4배에 이를 정도로 뛰어난 전투기들이니까.
하지만 캐노피에 찍히는 'Enemy Fighter : 22'라는 숫자는 리우 웬이 참담한 심정으로 머리를 감싸쥐게 만들었다. 그리고 여기에...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그대와 함께라면 이겨낼 수 있어요~"
뒷좌석에서 들리는 아름다운 노랫소리는 한층 더 리우 웬을 절망으로 빠트리고 있었다.
"여어~ 안녕하신가, 뉴트럴 컴퍼니의 강아지들!"
통신 창이 열리며 덥수룩한 턱수염의 중년 사내가 나타났다. 갈색과 회색의 희끗희끗하게 섞인 지저분한 턱수염에, 얼굴에 길게 그어진 흉터, 주름진 얼굴과 악의에 찬 표정은 이마 위에 '나는 해적 두목이요'라고 써붙인 것보다 훨씬 더 명확한 표현을 하고 있었다.
"우리 '빛나는 혜성단'의 영역에 들어온 것을 환영하네! 물론 거기 뒷좌석에 앉아있는 483 메카닉 바드는 더더욱 환영이지."
"아쉽군."
이글이 폐쇄 통신망으로 중얼거렸다.
"뭐가 아쉽다는거야, 이글?"
"저놈 얼굴 말이야.. 아예 한쪽 눈이 애꾸였더라면 완벽한 삼류 해적선장이었을텐데 말이야."
"크큭.. 그렇군."
이글과 더글라스가 해적 두목의 험담을 하는 사이, 리우 웬은 재빨리 데이터 베이스에서 화상 자료를 입력, 자신들이 상대하고 있는 해적단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빛나는 혜성단? 웃기고 있군..."
"왜, 뭔가 알아낸건가? 리우 웬..."
"저 삼류 해적선장의 이름은 니콜슨. 일명 '콜타르 찌꺼기 니콜슨'으로 통하는 놈이지. 사방 팔방에 끈적대며 잡다한 범법행위만 도맡아하는 녀석이야. 저녀석이 이끌고 있는 해적단 역시 그렇고 그런 놈들 뿐이고. 해적 데이터 베이스에는 '거세된 돼지들'이라는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군."
"결국 삼류라는 건가?"
"아아... 하지만 아무리 MST계열이라도 22대 3은 좀 껄끄럽군."
그 사이 침을 튀겨가며 자신의 악명을 부풀려 늘어놓던 니콜슨 선장은 마지막으로 '메카닉 바드와 기체를 넘기고 얌전히 항복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는 요지의 연설을 끝마치고 있었다.
"어이, 돼지 두목."
리우 웬이 이죽거리며 던진 한마디에, 니콜슨은 화면을 잡아먹을 듯이 앞으로 튀어나오며 누런 이빨을 들이밀었다.
"뭐,뭐,뭐, 뭐라고오오오! 네녀석 지금 뭐라고 했나! 내가 제일 싫어하는 놈들이 바로 우리를 거세당한 돼지라고 놀리는 녀석들이다! 알아? 물론 우리가 변변치 못한 일만 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에 크게 한껀 하고 나서도 그따위 소리를 지껄이는지 두고 보자구!"
"난 그냥 돼지 두목이라고 했는데..."
"그냥 돼지나, 거세당한 돼지나!"
"아아... 미안하군. 제대로 불러주지. '거세당한 돼지 두목'"
"이놈자시이이이이이익!!! 어이! 뭐하고 있나! 저녀석을 당장 날려버려!"
하지만 잠시 침묵이 이어질 뿐.
"뭐하고 있냐! 저녀석을 없애버리라니까아아아!"
"저어.. 선장님?"
곧이어 약간은 웃음을 억지로 참는 듯한 목소리가 말을 이었다.
"지금 저녀석의 전투기에 우리가 노리는 물건이 실려있는데요.."
"어엉? 그, 그러냐?"
잠시 바보같은 표정을 지으며 뒷통수를 긁적이는 니콜슨에게, 리우 웬이 말을 이었다.
"어이.. 뭐라고 부르건 간에... 질문이 하나 있는데."
"뭐냐?"
"너... 만약에 우리가 항복을 안 한다면 어떻게 할거지?"
"그야 당연히 우주의 먼지로..."
"내 전투기에 '사랑을 노래하는 천사'가 있는데?"
"그, 그러면 강제 착륙을 시켜서..."
"내가 알기로 중력 발생 프리깃에는 트랙터 빔이 탑재가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무리 개조를 한다고 해도 그 구닥다리 MST 전투기가 트랙터 빔이 요구하는 고출력의 융합로를 사용한다는 것도 불가능해 보이고."
"그건 사실이지만..."
"그러니, 우주선을 강제 착륙시킬 수 있는 트랙터 빔이 없는 이상, 우리가 순순히 항복해서 너희 프리깃 함에 착륙해주기 전에는 이 보물을 손에 넣을 수가 없는 거겠지?"
"그, 그렇다면 네 동료들! 네녀석의 친구들을 박살내주마! 그래도 항복하지 않을테냐?"
"큭.."
"크큭..."
"푸훗!"
리우 웬과 이글, 더글라스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곤 그들이 지겹도록 교육받은 대사를 말했다.
"돈과 임무완수는..."
"그 어떤것보다..."
"우선시되는 사항이다. 우리 뉴트럴 컴퍼니의 모토지. 몰랐나? 팀장으로서 한마디 하겠는데, 나나 더글라스가 죽더라도 리우 웬은 눈하나 깜짝 않고 너희들을 때려부술 거다. 만약 도망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거고."
"어이, 어이! 이글! 누구 마음대로 팀장이냐!"
"하이브에서 출발할 때부터. 내가 팀장이었잖아."
"야! 나나 리우 웬이 팀장일 때는 그냥 넘어가더니, 네녀석이 팀장되니까 괜히 생색을 내?"
"뭐 어때? 돌아가면서 임명되는 팀장, 이럴 때라도 한번 뻐겨보는거지. 괜히 팀장 보너스 5%가 가산되는 게 아니라구."
막 말다툼이 시작되려는 찰나, 그들을 가로막은 것은 니콜슨의 고함 소리였다.
"다 필요없어! 이놈들! 감히 '빛나는 혜성단'의 대장인 나를 무시해? 용서 못해! 죽여버려!"
그의 절규의 가까운 목소리와 함께, 적 전투기들이 돌진을 시작했다.
"쳇... 목소리로 봐서는 '돼지 멱따기'도 나쁘지 않겠어."
"돌진하는 모습은 '불붙은 멧돼지'가 딱 어울리는데 말이야."
일부러 통신 회선을 열어놓고 이야기한 탓에, 니콜슨은 지병인 고혈압으로 인해 거의 쓰러지기 직전까지 가야만 했다. 하지만 워낙 거리가 가까웠던 탓에 더 이상 농담을 할 여유는 없었고, 뉴트럴 컴퍼니 소속의 용병 세명은 본격적인 전투에 들어갔다.
"저녀석들, 장거리 무기는 없을테니 일단 미사일로 첫타를 날린 후에.."
"이글, 지금 막 스캐닝 완료. 다섯대 빼고는 쉴드도 없는데?"
"좋아, 더글라스. 그러면 쉴드 없는 녀석들 먼저 잡으면 되겠군. 리우 웬, 너는 뒤를 맡아."
"뭐야! 너희들만 보너스 카운트를 챙기겠다는 거야?"
"하핫.. 천사를 모시는 몸이 전투에 직접 뛰어들어서는 안되겠지...라는 건 농담이고.."
싱글거리며 말하던 더글라스가 갑자기 정색하며 말을 이었다.
"우리의 임무는 메카닉 바드의 안전한 수송이다. 해적 토벌이 아니야. 그 점을 명심해."
"하아.. 어쩔 수 없군."
"좋아. 그렇다면... 이글! 우리 내기나 할까? 격추 카운트가 가장 적은 사람이 술 사기다!"
"오케이!"
"어, 어이, 잠깐! 후미를 맡는 내가 가장 떨어질 것은 당연하잖아!"
"시작!"
리우 웬의 황당하다는 듯한 목소리에도 아랑곳 없이 이글과 더글라스는 적들을 향해 출발했고, 시작과 동시에 발사된 미사일은 그 둘에게 각각 격추 카운트 1씩을 올려주었다.
"이런 빌어먹을! 나보고 술 사라는 이야기냐, 망할 놈들아!"
"술잔을 기울이며 당신과 함께하는 저녁~ 이제 내게 사랑을 속삭여 줘요..."
"넌 좀 입 다물고 있어!"
리우 웬은 메카닉 바드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기라도 하려는 듯이 가속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좋아, 내가 질것 같으냐!"
한층 더 뛰어난 메르카바의 속도에 힘입은 이글은 이미 적들 사이에 뛰어들어 난전을 벌이고 있었고, 더글라스는 적의 진영에 도착하기 전에 미사일을 한번 더 날린 상태였다. 때문에 먼저 출발한 그 둘의 요격 카운트가 3과 2로 올라갔을때야 비로소 리우 웬은 한대의 적기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우선 네녀석부터!"
동시에 기체에 약간의 반동이 일어나며 초당 14발의 우라늄탄을 쏟아붓는 중형 매스 드라이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상에서와는 달리, 우주 공간에서는 우라늄탄을 막을 그 어떠한 저항도 없었기에, 리우 웬의 전투기에서 빠져나온 탄환은 순식간에 불운한 적기의 소형 이온화 엔진을 관통했고, 그 결과는 밝은 빛을 내는 조그만 폭발로 이어졌다.
"좋았어! 이제 다른..."
"투둥!"
다음 목표를 찾으려고 타겟 설정을 하던 리우 웬이 '가장 가까운 적 : 좌표13.45.138. 거리 25m'라는 디스플레이에 경악한 것과, 그의 전투기 뒷부분에 소형 레일건에서 빠져나온 탄환이 정통으로 맞은 것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위험! 후측방 쉴드 손실. 34%"
"상처입은 그대, 내 품에 안겨~ 이제 그만 편히 쉬어요~ 그대와 나의 사랑이 영원하..."
"미치겠네에에에!"
적기에게 꼬리를 잡혔기 때문인지, 아니면 끝까지 자신을 괴롭히는 노래때문인지 모를 탄식을 내지르며 리우웬은 급격한 역출력을 시작했다.
"쿵!"
상대방이 직접 충돌해 오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불쌍한 해적은 피하는데만 급급한 나머지 컨트롤을 잃고 말았고, 그 결과 1.25초만에 정상 컨트롤을 회복한 리우 웬이 발사한 입자 가속 캐논의 푸른 불덩이와 함께 흔히 말하는 '우주의 먼지'가 되고 말았다.
"이제, 둘!"
"하아? 나는 여섯!"
"나는 일곱대."
호기롭게 외친 리우 웬의 기를 꺾어버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더글라스와 이글이 연달아 소리쳤다.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어떻게 겨우 세 놈에게 이따위로 당할 수가!"
"그러길래, 상대를 잘 보고 덤볐어야지. 돼지는 어디까지나 돼지일 뿐이야."
니콜슨에게 빈정대듯 말하던 이글은, 그러나 곧이어 폐쇄회로 통신 모드로 들어와 중얼거렸다.
"쩝... 자신있게 말하긴 했지만... 난 이미 미사일은 다 썼고.. 쉴드도 13%밖에 안 남았는데..."
"난 미사일 두발. 하지만 양자 어뢰라서 전투기에게 맞추기는 힘들어. 저 구축함이라면 또 모를까. 쉴드는... 7%. 제대로 걸리면 한방에 죽겠군."
"흠.. 그렇다면 나는 너희 둘의 제삿상에 올릴 술을 사면 되는건가?"
"쳇."
마음에 안든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더글라스는 곧바로 또 다른 전투기에게 달려들며 우라늄탄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전자기식 코일로 구성된 구경 50mm의 중형 매스 드라이버가 초전도 자기장에 의해 가속된 탄환을 적기에 박아넣었지만, 이번에는 적기 역시 표면에 파란 스파크를 낼 뿐, 격추당하지는 않았다.
"왜 하필이면 쉴드를 가진 놈이 걸린 거냐..."
더글라스가 투덜대며 회피 기동을 시작한 적의 뒤를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자, 그러면 2차전 시작인가!"
이글 역시 또 한대의 적기를 향해 돌진하며 '조준하지 않아도 맞는다'는 설정으로 장착한 여덟문의 레일건을 발사했다.
반면 리우 웬은....
"또 한번의 시작~ 우리 함께 시작해요~ 아무리 힘든 길이라 해도, 우리 사랑 영원할테니~"
시작하기도 전에 좌절을 맛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카가강!"
재수없게도 아까 파손되었던 부위의 쉴드가 채 회복되기도 전에 적의 이온 빔이 또다시 상처를 들쑤셨고, 그 결과 극히 일부였지만 이온 빔의 파괴력이 방어막을 뚫고 본체를 긁어놓았다.
"젠장!"
머릿쪽으로 급격히 선회한 후, 자신을 노리던 적기를 찾았으나 범인은 어느 새 상당한 거리를 두고 멀리 떨어져 있었다.
"흐흥... 이온빔을 탑재한 개조 MST에... 재빠른 상황 판단...만만치는 않는 놈이라는 건가?"
리우 웬이 냉소를 하며 추격을 시작했고, 전투기가 보여주는 성능의 차이로 인해 둘 사이의 간격이 매스 드라이버 사정거리 안으로 거의 다 좁혀졌을 즈음.
"파캉!"
엄청난 충격과 함께 푸른색의 이온 빔이 눈 앞에 작렬했다.
"경고! 경고! 전방부 쉴드 전면 파손! 전투기 동체 11% 파손! 3번 매스 드라이버 작동 불능! 생명 유지 장치의 복구를 위해 9초간 셧다운 상태로 돌입합니다."
적은 360도 회전이 가능한 이온 포탑을 뒤로 돌린 채, 거짓으로 쫒기다가 회심의 일격을 가한 것이었다.
그것도 자신의 전투기가 낼 수 있는 모든 동력을 끌어모아 한방에 날리는 '챠징 샷'으로.
"크윽! 이런..."
일시적인 쇼크상태에 빠졌던 리우 웬이 정신을 차리자 가장 먼저 한 일은, 프로 정신에 입각해서, 뒷자석의 '천사'가 무사한지 살펴보는 일이었다.
"나를 보호해주는 당신의 따뜻한 품 속. 그안에서 나는 행복해요~ 언제나 나만을 생각하는 그대 모습에..."
"멀쩡하군."
리우 웬은 재빨리 앞을 보며 손톱을 깨물었다. 모든 동력을 방금의 한방에 써버린 적과, 생명 유지장치의 복구를 위해 앞으로도 몇초간은 더 정지상태로 머물러야 하는 자신. 그 둘중에 누가 먼저 동력을 회복할 것인가. 그 짧은 차이가 생사의 갈림길을 결정지을 것이었다.
그리고 불행히도, 운명은 리우 웬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위이이이잉..."
바로 코 앞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 적의 이온 캐논이 다시 충전되며 조금씩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콰앙!"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눈을 감은 순간.
"우리 항상 함께해요. 언제 어디서라도~"
"어라?"
분명히 죽어있어야 할 자신의 귀에 계속 들려오는 노래소리. 의아한 마음에 눈을 뜬 리우 웬 앞에는 적기의 파편이 널려있었다.
"뭐 하나, 리우 웬! 자장가를 불러주는 미녀가 뒷좌석에 앉아있어서 잠이라도 잔거야?"
더글라스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오자 리우 웬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훗. 더글라스 녀석에게 빚을 지고 말았군."
다시 가동을 시작한 전투기의 디스플레이에는 이글이 10대, 더글라스가 8대, 리우 웬은 2대라는 전적이 떠올랐고, 남은 두대의 적기는 전속력으로 도주중이라는 정보 역시 친절하게 뜨고 있었다.
"자, 이제 돼지 두목을 사냥해볼까?"
"좋지. 더글라스, 스캔 결과는?"
"중형 중력 발생 프리깃. 터보 레이져 2기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지원 사격용이야. 사각지대가 너무 많아서 어디부터 파고 들어가야 할지 모르겠군."
"자, 잠깐!"
니콜슨의 다급한 모습이 통신창에 나타났다.
"미,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지금 당장 중력 발생기를 끌테니 목숨만 살려줘!"
"...라는데?"
더글라스가 어깨를 으쓱하며 묻자, 리우 웬이 대신 대답했다.
"니콜슨. 일명 콜타르 찌꺼기 니콜슨. 현상금 350탈러. 생사 불문. 그리고 컴퍼니에서 제시한 가격표에 의하면 저 프리깃의 격추 보너스가 500드램. 오늘 시세의 탈러로 환산하면 700탈러 정도군."
"...라는데?"
다시 더글라스가 이글에게 묻자, 누구나 예상했던 뻔한 대답이 나왔다.
"자신이 타고다니는 우주선보다 가치가 없는 녀석이 주제도 모르고 날뛰었으니, 그 댓가는 치루게 해줘야지. 게다가... 너희들도 알잖아?"
"돈은 영원한 우리의 친구."
"모을 수 있을 때 반드시 모아놓을 것."
리우 웬과 더글라스가 웃으며 대꾸하고, 속력을 내어 프리깃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아, 안돼애애!"
니콜슨의 겁먹은 목소리와 더불어 둔중한 프리깃함에서, 전투기에서 발생한 이온 빔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파괴력을 지닌 두줄기의 에너지 빔이 우주를 갈랐지만, 이미 사각지역으로 들어선 세대의 전투기에게는 아무런 효과도 주지 못했다.
"잘가라. 거세당한 돼지."
더글라스가 작별인사와 함께 남긴 두발의 양자 어뢰는 구축함에 부딪히며 강력한 충격파를 만들어냈고, 그 결과 니콜슨의 함선은 세조각으로 갈라지며 폭발을 일으켰다.
"잘 구워졌겠군."
"아아.. 나는 사양하겠어. 왠지 맛 없을 것 같은데."
"동감."
전투가 끝난 뒤에 으례히 오고가는 농담을 하며 한 숨 돌린 세명은, 다시 복귀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그런데...
"어.. 잠깐만.. 나.. 하이퍼 스페이스 모듈이 고장난 것 같아."
"이글, 너도? 나도 하이퍼 스페이 엔진이 작동하지 않는데?"
"나, 나도! 나도 마찬가지야!"
당황하던 세명의 레이더에 또 다른 신호가 잡힌 것은 바고 그 직후였다.
"맙소사..."
거대한 워프 게이트가 형성되며, 소용돌이치는 빛의 길을 통해 또 다른 중력 발생 프리깃과... 전투기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세대의 강습 프리깃, 그리고 '소형'이라는 딱지가 붙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우주 순양함 한척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었다.
"저건.. 또... 뭐야?"
"망했다.. 진짜 빛나는 혜성단이야."
전투 의욕을 완전히 상실한 세명을, 세대의 강습 프리깃과 순양함에서 출발한 수십대의 전투기들이 겹겹이 에워쌌다.
"에... 우선 여러분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네."
통신창에 떠오른 것은 상당히 냉혹한 인상을 주는 사내였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나를 '해피 데이'라고 부르지. 내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언럭키 데이'였겠지만 말이야. 하하하핫!"
어울리지 않는 썰렁한 유머를 지껄이던 '해피 데이'는 아무도 웃어주지 않자, 다시 정색하고 말을 이었다.
"흠..흠... 어쨌거나.. 여러분이 '빛나는 혜성단'을 사칭하며 우리 영역에서 야금야금 좀도둑질을 해먹던 돼지 떼거리를 없애 준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야. 때문에, 여러분에게 보답을 하도록 하지."
"그냥 보내준다는 뜻?"
"아니... 얌전히 항복하면 깨끗하게 단칼에 죽여주고, 어줍잖게 반항 따위를 하면 살아있는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준다는 뜻이야."
생긴것과 완전히 일치하는 멘트를 읊는 '해피 데이'의 얼굴을 보며, 뉴트럴 컴퍼니의 사원들은 자신들에게 있어서도 오늘은 '언럭키 데이'라는 사실을 실감해야 했다. 모두가 말을 잃은 채 침묵을 지키자, 들리는 것은 천사가 부르는 노랫소리 뿐이었다.
"좋아, 내 특별히 은혜를 하나 더 베풀도록 하지. 저 아름답고 몸값 비싸기로 유명한 숙녀분의 노래가 끝날 때까지 선택할 시간을 주겠어. 그 후에는... 뭐, 우리는 돼지 떼거리와는 달리 무기도 충분하고 트랙터 빔도 있으니... 알아서 하라구."
절망의 연속. 그 질식할듯 이어지는 침묵 속에서 한줄기 빛이 되어 들리는 메카닉 바드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리우 웬은 처음으로 그 애틋한 러브 송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서...
우리 만남과 헤어짐의 갈림길에 서서...
어떠한 미래가 우리를 기다려도,
사랑은 영원히 계속 되어요.
당신이 걸어가는 길을 따라,
나도 함께 따라갈테니
언제나 마음만은 항상 함께 할테니...
헤어짐은 또 한번의 시작을 품고,
눈을 뜨지 않은 사랑의 씨앗은 서로의 마음 속에...
만남은 또 한번의 기적을 낳고,
꽃을 피운 사랑의 씨앗은 서로의 마음속에...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서...
우리 만남과 헤어짐의 갈림길에 서서...
어떠한 미래가 우리를 기다려도,
사랑은 영원히 계속 되어요."
상당히 느린 박자의, 상당히 긴 곡이었지만, 그 노래를 듣는 사람들 그 누구에게도 결코 길다고 느껴지지 않는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노래를 이루던 모래시계의 마지막 모래 한알이 떨어지자, 천사의 노래는 그 제목을 바꾸었고, 마치 최면에서 깨어난 듯한 '해피 데이'의 목소리가 곧바로 들려왔다.
"허어.. 굉장하군. 역시 사랑을 노래하는 천사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아. 반드시 손에 넣어야겠어."
"아아... 나도 이럴 줄 알았으면 노래를 좀 더 즐겨놓는건데 그랬어."
왠지 억울한 듯한 느낌이 드는 리우 웬의 투정이었다.
"자아, 어쨌거나! 감상도 끝났으니... 이제 그만 선택하실까? 참고로 내가 요즘 즐겨보는 책은 '고대 지구인의 고문 풍습'이야. 개인적으로는 한두명 정도 반항해주길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미리 말해두는게 좋겠군"
"뉴트럴 컴퍼니 기본 수칙 제 4장."
"밑져야 본전일 경우는 일단 투자해 볼 것."
"자, 죽던 살던 끝까지 덤벼보자구!"
'어쩔 수 없군'이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해피 데이가 통신을 끊자, 곧이어 강습 프리깃함의 무식하게 거대한 포탑들이 회전을 시작했다.
"하아.. 호기롭게 외치기는 했지만... 여기까지인가..."
약간은 맥빠진 목소리로 전투기의 속력을 더하는 리우 웬의 등 뒤에서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몇 분 채 지나지도 않아, 무익한 항전을 시도하던 세대의 전투기는 그 뒤로도 용케 몇대의 적 전투기를 파괴시킨 후, 강습 프리깃함에서 발사한 탄환에 의해 반쯤 걸레가 된 상태로 정지된 채 둥둥 떠다니는 고철로 변해있었다. 그리고 트랙터 빔의 조준을 완료한 적의 순양함이 서서히 다가오는 것을 보며,
리우 웬은 이럴 때를 대비해 준비해놓았던 알약을 하나 꺼내들었다.
"이걸 쓰게 될 날이 올거라고는 각오하고 있었지만.. 설마 뉴트럴 컴퍼니에 입사한지 일년도 채 되지 않아 쓰게 될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역시 밀수업자 일이나 계속할 걸 그랬어..."
마지막 말을 한숨과 함께 내뱉은 리우 웬은 떨리는 손으로 알약을 입에 넣었다. '편안한 죽음'을 보장하는 알약이 목구멍을 막 넘어간 순간.
"번쩍!"
"뭐, 뭐야!"
거대한, 두께가 거의 전투기의 크기와 맞먹을 정도의 강력한 이온 빔이 강습 프리깃을 관통했다. 순식간에 강습 프리깃과 그 주변의 전투기 서너척을 함께 집어삼킨 빛줄기는, 그것으로는 모자랐는지 그 뒤에 있던 순양함의 사령탑까지 함께 뒤흔들어 버렸다.
그리고 워프 게이트를 통해, 방금 이온 빔을 발사한 레이져 프리깃 여섯 대와, 여덟 대의 강습 프리깃, 소형 순양함 두척과 그에 비하면 거의 두 세배 가까이는 더 큰 중형 순양함 한척이 위용을 과시하며 나타났다. 그리고 그 함선들 표면에는 한결같이 붉은색 헥사그램과 함께 '골칫거리가 있으십니까? 언제든 의뢰만 하세요!'라는 광고 멘트 뒤에 항상 따라붙는 이름. '뉴트럴 컴퍼니'가 그려져 있었다.
"지원군인가... 으으.. 욱.. 우욱! 우웨에엑!"
뉴트럴 컴퍼니의 로고 마크를 확인한 순간, 리우 웬은 곧바로 목구멍에 손을 넣어 방금 삼켰던 알약을 토해냈고, 다행히도 아직 녹을 기회를 잡지 못했던 알약은 자신의 탄생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도로 튀어나와야만 했다.
"하아... '즉사형 청산가리'를 안 산게 천만 다행이군..."
한숨을 내쉬며 뒤로 기댄 리우 웬의 눈에는, 이미 전멸 완료 될때까지 남은 시간이 초단위로 줄어버린 '빛나는 혜성단'이 마지막 빛을 발하며 사라져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귓가에는 여전히, 뒷좌석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 에필로그
"더 많은 돈은 더 좋은 무기를 낳고, 더 좋은 무기는 더 많은 돈을 가져다 준다"
이 철칙은, 이제부터 약간 더 밝아진 리우 웬의 미래를 보장하는 말이기도 했다.
'또 다른 목표인 빛나는 혜성단을 전멸시키기 위해 이중으로 의뢰를 맡았고, 이때문에 이번 작전에서 전투기 세대만을 투입시켜 미끼로 삼았다.'는 정보를 처음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최악으로 치닫던 리우 웬의 기분은 '입사 이래 최대의 흑자'라는 단어가 가져다 준 선물인, 새로 구입한 신형 메르카바급 전투기를 보는 순간 완전히 풀어져 버렸다.
결국 리우 웬은 '그래. 어차피 자유 계약이었으니... 앞 뒤 안가리고 덥썩 지원해버린 내게도 잘못이 있지.'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새 전투기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락 음악을 틀어놓고 조종석에 드러누웠다.
"....!"
"?"
".....웬!"
누군가 자신을 부르고 있다고 생각한 리우 웬은 음악을 껐고, 곧이어 목이 터져라 외치는 오퍼레이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리이이이!! 우우우우우우!!! 웨에에에에에엔!!!!"
"왜 그래?"
새빨게진 얼굴로 한참동안이나 헉헉대며 숨을 몰아쉬던 오퍼레이터는 잡아먹을듯한 눈초리로 리우 웬을 쏘아보며 디스크를 한장 건네주었다.
"뭐야?"
"몰라, 나도. 네 앞으로 온 것이니까."
그 말을 끝으로 되돌아선 오퍼레이터에게는 한조각의 관심도 주지 않은 채, 리우 웬은 자신에게 배달된 디스크를 플레이시켰다.
"목숨을 걸고 천사를 지켜주셨다던데... 덕분에 제가 원하던 최고의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물건은 약소하지만 저와 '사랑을 노래하는 천사'가 보내는 감사의 선물입니다."
디스플레이에 글자가 떠오름과 동시에, 락음악을 듣기 위해 맥시멈에 가까운 볼륨으로 설정해 놓았던 전투기에서 또 다시 아름다운 러브 송이 흘러나와 전투기 격납고를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서...
우리 만남과 헤어짐의 갈림길에 서서...
어떠한 미래가 우리를 기다려도,
사랑은 영원히 계속 되어요."
"쳇... 이따위 물건이 무슨 감사의 선물이야.. 차라리 감사비나 송금해줄것이지."
투덜대며 다시 자리에 눕는 리우 웬의 입가에는, 그러나 보일듯 말듯한 희미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래도 한번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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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알고 있나요...
그대 등 뒤에서 내가 항상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뒤돌아보지 않아도 좋아요.
마주보며 웃어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지금 이 순간만으로도 행복하니까..."
우주를 바탕으로 돋보이는 하얀 피부의 완벽한 몸매, 절묘하게 가슴을 가리면서 아름다움을 한층 더 증폭시켜주는 빛나는 긴 금발머리, 그리고 손에 든 금빛 하프가 내는 화음과 조화를 이루며 울려퍼지는, 미러클 보이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달콤한 목소리로 부르는 사랑 노래.
만약 그녀의 허리 아랫부분이 기계와 전선으로 이루어진 암석의 형태를 띄고 있지 않았다면, 천사가 내려와서 노래를 부른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그 암석에 찍혀있는 '메카닉 바드 시리얼 넘버 10483 - For Love Song'이 그녀의 정식 이름이다. 언제든지 원하는 음악을 듣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은 사람을 위해 음악을 재생하는 수많은 기계들을 만들어냈지만, 여기에 '라이브'로 재생되는 음악에 대한 한층 더 고차원적인 욕망은 직접 노래부르며 연주하는 재생 머신, 메카닉 바드의 개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전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지금 노래를 부르고 있는 메카닉 바드는 이른바 '전설의 483번대 메카닉 바드'. 시리얼 넘버 00483과 07483, 두대의 메카닉 바드와 더불어 전 세상에 단 세대만이 남아있는 초 고가의 예술품이다. 메카닉 바드의 명장, 제인 야거는 483이라는 시리얼 넘버로 끝나는 자신의 제작 활동을, 이 '10483 - For Love Song'을 끝으로 마감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제인 야거가 '나의 꿈은 천사를 지상에 강림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소망은 이루어졌다'는 말을 남기고 자살했다는 설도 있지만, 이미 사람들의 관심은 이미 죽어버린 사람이 아닌, 그가 남긴 최고의 메카닉 바드들에게로 모아지고 있었다. 수많은 483씨리즈가 주인이 바뀌는 과정에서 손상되고, 파괴되어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지금, 우주를 통틀어 남아있는 483 메카닉 바드는 단 세대 뿐.
그리고 소행성 한 두개 정도의 천문학적 가격이 매겨져있는 다른 두대와는 달리 시리얼 넘버 10483의 메카닉 바드는 공식 가격이 없었다. 그 아름다운 외형과 목소리는 정당한 방법으로 이 기계를 손에 넣은 사람이나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손에 넣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사로잡아 버렸으며, 떄문에 그 주인들 중에서는 아무도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은 내놓으려 하지 않았고, 결국 마지막에는 누군가의 의뢰로 이 메카닉 바드를 훔쳐내는데 성공한 한명의 도둑이 그 목소리에 빠져 함께 잠적해 버린 이후로 종적이 묘연해진 상태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붙여준 또 하나의 이름. "사랑을 노래하는 천사". 바로 그 전설의 메카닉 바드가 박물관도, 대부호의 수집실도 아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소 - 전투기 조종석 뒷자석에 놓여있었다.
"언제나 당신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
전달되지 않는 나의 목소리.
그러나 상관없어요.
지금 이 순간만으로도 행복하니까..."
그리고 "사랑을 노래하는 천사"가 부르는 노랫소리를 듣는 일생 일대의 행운을 맛보고 있는 이 남자. 전투기를 조종중인 회색머리의 파일럿이자, 거대 용병업체인 '뉴트럴 컴퍼니'의 신입 사원인 리우 웬은 이 고상한 예술품이 놓인 장소만큼이나 언밸런스한, 지금껏 천사의 노래를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언제나 감격에 겨워 부르짖었던 격조높은 감탄과 찬사와는 극명하게 대조되는 감상 소감을 내뱉었다.
"미치겠군. 정말로 이 망할놈의 골동품을 닥치게 만드는 방법은 없는거냐..."
곧이어 낄낄거리는 소리와 함께 조종석 화면의 통신 디스플레이 창이 떠올랐다.
"무슨 그런 무식한 소리를 하는거냐, 리우 웬. 네녀석은 지금 돈으로는 값어치를 매길수도 없는 고귀한 노래를 듣고 있는 거라구. 안그래, '이글'?"
"그렇군... 절대 동감이야, 더글라스.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고 해야할까나. 전투기에 자리만 남았어도 내가 '천사'를 호위하는 영광을 누리는 건데 말이야."
자신의 절친한 동료이자 라이벌인 동시에 이번 호송 임무의 서포터인 두명의 파일럿이 합심해서 비웃는 목소리를 내자, 리우 웬은 한층 더 화를 내며 소리쳤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가져가! 이 지긋지긋한 닭살 노래 플레이어를 가져가라구!"
"너도 잘 알잖아. 이글과 나의 전투기는 부조종석 대신에 센서 컴퓨터를 탑재했으니... 천사를 모실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 없다구. 와하하하핫!"
"그나저나 리우 웬, 자네도 참 희한하군. 모든 사람이 극찬을 마다않는 그 전설적인 노래를 들으면서도 그렇게 끊임없이 투덜댈 수 있다니.."
"이글! 그러고도 네녀석이 사나이냐! 남자라면 당연히 헤비메탈이나 락이다! 이따위 건드리면 깨질듯한 노래는 질색이라구!"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비록 엔진 소음을 중화시키기 위해서였지만 일년 365일 헤비메탈 음악을 틀어놓은 수송선을 몰고 다니던 밀수업자 출신의 리우 웬은 뉴트럴 컴퍼니의 전투기 파일럿으로 직업을 바꾼 이후에도 그 음악만은 항상 변함없이 틀어놓았다.
그러던 것이, 단순한 수송물품이라고 여기고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인 '천사'에 의해 전투기 내의 모든 오디오 시스템을 장악당해버린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에게 고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귓가에 앵앵대는 모기 소리와 새벽에 흐느끼는 여자의 울음소리를 합성시켜놓은 듯한 기분이 드는 러브 송만 줄기차게 들어야 했으니...
결국 리우 웬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몸을 돌려 '천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 말이야... 제발 부탁인데, 제발 조용히 좀 해줄수 없냐? 힘든 것도 아니잖아? 그냥 입만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된다구."
갑자기 노래를 멈추고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메카닉 바드.
"그래! 그거야! 그렇게 조용히만 해주면..."
"그대 눈빛이, 나의 눈과 마주칠 때~ 우리는 알 수 있었죠, 사랑에 빠졌음을..."
"끄아아아아!!"
단지 곡을 바꿔 부르게 만드는 것으로 그친, 부질없는 시도의 불발로 인한 리우 웬의 절망에 찬 비명이 그의 전투기를 흔들었다.
"어떻게 된 놈의 기계가, 전원 버튼도 없냔 말이야!"
"하핫... 제인 야거가 자신의 작품에 환원식 발전기를 사용한 영구적인 동력장치를 넣으며 전원 버튼을 없애버렸다는 건 이미 유명한 사실이지.."
더글라스의 능글거리는 말을 들으며 리우 웬은 '그래, 참자. 앞으로 세시간만 더 하이퍼 스페이스로 이동하면 목적지에 도착하고, 그떄부터는 이 지옥과 영원히 안녕이다.'라는 일념으로 전투기 조종에만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자동 항법장치가 도맡아서 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긴 궤적을 그리며 지나치는 별의 모습만 바라보며 앉아있어야 하는 전투기 파일럿에게, '조종에 집중하자'라고 마음을 다진 것은 결국 '아무 일도 하지 말자'라는 결심과 마찬가지였고,
절대 무심의 경지라는, 고승들의 수도 생활이 가져다 줄법한 결과물과는 인연이 없는 리우 웬이었기에, 결국 억지로 눈을 감고 잠을 청하다가도 '그대 잠든 모습을 바라보며...'로 시작하는 노래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비참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젠장... 이대로 가다간 미쳐버릴 것 같아...."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리우 웬을 비롯한 세대의 전투기는 강력한 어떤 힘에 이끌려 통상 우주 공간으로 튕겨나왔다.
"이게 무슨...?"
더글라스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그 뒤를 이어 거의 동시에 이글과 리우 웬이 소리쳤다.
"빌어먹을!"
"해적이야!"
그들의 앞에는 약 20여대의 전투기가 중력 발생기를 장착한 프리깃(Frigate:구축함)을 중심으로 둥글게 대기하고 있었다.
"하이브로 연결해!"
"소용없어! 재밍(jamming:전파방해)이야!"
"도대체 어떤 녀석들이야? 식별부호는!"
"전투기 기종은 MST계열. 불법 개조품이라서 분명하지는 않아. 어디 소속의 해적인지는 불명."
우주전의 역사가 시작되고, 파이터 클래스의 전투기들이 생산된 이래 가장 많이 판매된 기체중의 하나. MST계열. 화력도 그저 그런 수준이고, 속도나 기동성이 좋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비슷한 가격대의 저가품 사이에서의 이야기. 단지 '고장이 잘 나지 않고' '개발된 관련 부품이 많아 개조가 쉬우며' '저렴하다'라는 빈민층의 3대 요구사항에 걸맞기 때문에 많이 팔렸을 뿐이다.
그에 비하면 이글의 '메르카바' 계열이나 리우 웬과 더글라스의 'RST'계열의 기체는 상당한 고가품이라고할 수 있었다. 단순히 소형 레일건 2문이 무장의 전부인 MST계열에 비하면 객관적인 화력은 거의 3~4배에 이를 정도로 뛰어난 전투기들이니까.
하지만 캐노피에 찍히는 'Enemy Fighter : 22'라는 숫자는 리우 웬이 참담한 심정으로 머리를 감싸쥐게 만들었다. 그리고 여기에...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그대와 함께라면 이겨낼 수 있어요~"
뒷좌석에서 들리는 아름다운 노랫소리는 한층 더 리우 웬을 절망으로 빠트리고 있었다.
"여어~ 안녕하신가, 뉴트럴 컴퍼니의 강아지들!"
통신 창이 열리며 덥수룩한 턱수염의 중년 사내가 나타났다. 갈색과 회색의 희끗희끗하게 섞인 지저분한 턱수염에, 얼굴에 길게 그어진 흉터, 주름진 얼굴과 악의에 찬 표정은 이마 위에 '나는 해적 두목이요'라고 써붙인 것보다 훨씬 더 명확한 표현을 하고 있었다.
"우리 '빛나는 혜성단'의 영역에 들어온 것을 환영하네! 물론 거기 뒷좌석에 앉아있는 483 메카닉 바드는 더더욱 환영이지."
"아쉽군."
이글이 폐쇄 통신망으로 중얼거렸다.
"뭐가 아쉽다는거야, 이글?"
"저놈 얼굴 말이야.. 아예 한쪽 눈이 애꾸였더라면 완벽한 삼류 해적선장이었을텐데 말이야."
"크큭.. 그렇군."
이글과 더글라스가 해적 두목의 험담을 하는 사이, 리우 웬은 재빨리 데이터 베이스에서 화상 자료를 입력, 자신들이 상대하고 있는 해적단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빛나는 혜성단? 웃기고 있군..."
"왜, 뭔가 알아낸건가? 리우 웬..."
"저 삼류 해적선장의 이름은 니콜슨. 일명 '콜타르 찌꺼기 니콜슨'으로 통하는 놈이지. 사방 팔방에 끈적대며 잡다한 범법행위만 도맡아하는 녀석이야. 저녀석이 이끌고 있는 해적단 역시 그렇고 그런 놈들 뿐이고. 해적 데이터 베이스에는 '거세된 돼지들'이라는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군."
"결국 삼류라는 건가?"
"아아... 하지만 아무리 MST계열이라도 22대 3은 좀 껄끄럽군."
그 사이 침을 튀겨가며 자신의 악명을 부풀려 늘어놓던 니콜슨 선장은 마지막으로 '메카닉 바드와 기체를 넘기고 얌전히 항복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는 요지의 연설을 끝마치고 있었다.
"어이, 돼지 두목."
리우 웬이 이죽거리며 던진 한마디에, 니콜슨은 화면을 잡아먹을 듯이 앞으로 튀어나오며 누런 이빨을 들이밀었다.
"뭐,뭐,뭐, 뭐라고오오오! 네녀석 지금 뭐라고 했나! 내가 제일 싫어하는 놈들이 바로 우리를 거세당한 돼지라고 놀리는 녀석들이다! 알아? 물론 우리가 변변치 못한 일만 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에 크게 한껀 하고 나서도 그따위 소리를 지껄이는지 두고 보자구!"
"난 그냥 돼지 두목이라고 했는데..."
"그냥 돼지나, 거세당한 돼지나!"
"아아... 미안하군. 제대로 불러주지. '거세당한 돼지 두목'"
"이놈자시이이이이이익!!! 어이! 뭐하고 있나! 저녀석을 당장 날려버려!"
하지만 잠시 침묵이 이어질 뿐.
"뭐하고 있냐! 저녀석을 없애버리라니까아아아!"
"저어.. 선장님?"
곧이어 약간은 웃음을 억지로 참는 듯한 목소리가 말을 이었다.
"지금 저녀석의 전투기에 우리가 노리는 물건이 실려있는데요.."
"어엉? 그, 그러냐?"
잠시 바보같은 표정을 지으며 뒷통수를 긁적이는 니콜슨에게, 리우 웬이 말을 이었다.
"어이.. 뭐라고 부르건 간에... 질문이 하나 있는데."
"뭐냐?"
"너... 만약에 우리가 항복을 안 한다면 어떻게 할거지?"
"그야 당연히 우주의 먼지로..."
"내 전투기에 '사랑을 노래하는 천사'가 있는데?"
"그, 그러면 강제 착륙을 시켜서..."
"내가 알기로 중력 발생 프리깃에는 트랙터 빔이 탑재가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무리 개조를 한다고 해도 그 구닥다리 MST 전투기가 트랙터 빔이 요구하는 고출력의 융합로를 사용한다는 것도 불가능해 보이고."
"그건 사실이지만..."
"그러니, 우주선을 강제 착륙시킬 수 있는 트랙터 빔이 없는 이상, 우리가 순순히 항복해서 너희 프리깃 함에 착륙해주기 전에는 이 보물을 손에 넣을 수가 없는 거겠지?"
"그, 그렇다면 네 동료들! 네녀석의 친구들을 박살내주마! 그래도 항복하지 않을테냐?"
"큭.."
"크큭..."
"푸훗!"
리우 웬과 이글, 더글라스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곤 그들이 지겹도록 교육받은 대사를 말했다.
"돈과 임무완수는..."
"그 어떤것보다..."
"우선시되는 사항이다. 우리 뉴트럴 컴퍼니의 모토지. 몰랐나? 팀장으로서 한마디 하겠는데, 나나 더글라스가 죽더라도 리우 웬은 눈하나 깜짝 않고 너희들을 때려부술 거다. 만약 도망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거고."
"어이, 어이! 이글! 누구 마음대로 팀장이냐!"
"하이브에서 출발할 때부터. 내가 팀장이었잖아."
"야! 나나 리우 웬이 팀장일 때는 그냥 넘어가더니, 네녀석이 팀장되니까 괜히 생색을 내?"
"뭐 어때? 돌아가면서 임명되는 팀장, 이럴 때라도 한번 뻐겨보는거지. 괜히 팀장 보너스 5%가 가산되는 게 아니라구."
막 말다툼이 시작되려는 찰나, 그들을 가로막은 것은 니콜슨의 고함 소리였다.
"다 필요없어! 이놈들! 감히 '빛나는 혜성단'의 대장인 나를 무시해? 용서 못해! 죽여버려!"
그의 절규의 가까운 목소리와 함께, 적 전투기들이 돌진을 시작했다.
"쳇... 목소리로 봐서는 '돼지 멱따기'도 나쁘지 않겠어."
"돌진하는 모습은 '불붙은 멧돼지'가 딱 어울리는데 말이야."
일부러 통신 회선을 열어놓고 이야기한 탓에, 니콜슨은 지병인 고혈압으로 인해 거의 쓰러지기 직전까지 가야만 했다. 하지만 워낙 거리가 가까웠던 탓에 더 이상 농담을 할 여유는 없었고, 뉴트럴 컴퍼니 소속의 용병 세명은 본격적인 전투에 들어갔다.
"저녀석들, 장거리 무기는 없을테니 일단 미사일로 첫타를 날린 후에.."
"이글, 지금 막 스캐닝 완료. 다섯대 빼고는 쉴드도 없는데?"
"좋아, 더글라스. 그러면 쉴드 없는 녀석들 먼저 잡으면 되겠군. 리우 웬, 너는 뒤를 맡아."
"뭐야! 너희들만 보너스 카운트를 챙기겠다는 거야?"
"하핫.. 천사를 모시는 몸이 전투에 직접 뛰어들어서는 안되겠지...라는 건 농담이고.."
싱글거리며 말하던 더글라스가 갑자기 정색하며 말을 이었다.
"우리의 임무는 메카닉 바드의 안전한 수송이다. 해적 토벌이 아니야. 그 점을 명심해."
"하아.. 어쩔 수 없군."
"좋아. 그렇다면... 이글! 우리 내기나 할까? 격추 카운트가 가장 적은 사람이 술 사기다!"
"오케이!"
"어, 어이, 잠깐! 후미를 맡는 내가 가장 떨어질 것은 당연하잖아!"
"시작!"
리우 웬의 황당하다는 듯한 목소리에도 아랑곳 없이 이글과 더글라스는 적들을 향해 출발했고, 시작과 동시에 발사된 미사일은 그 둘에게 각각 격추 카운트 1씩을 올려주었다.
"이런 빌어먹을! 나보고 술 사라는 이야기냐, 망할 놈들아!"
"술잔을 기울이며 당신과 함께하는 저녁~ 이제 내게 사랑을 속삭여 줘요..."
"넌 좀 입 다물고 있어!"
리우 웬은 메카닉 바드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를 풀기라도 하려는 듯이 가속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좋아, 내가 질것 같으냐!"
한층 더 뛰어난 메르카바의 속도에 힘입은 이글은 이미 적들 사이에 뛰어들어 난전을 벌이고 있었고, 더글라스는 적의 진영에 도착하기 전에 미사일을 한번 더 날린 상태였다. 때문에 먼저 출발한 그 둘의 요격 카운트가 3과 2로 올라갔을때야 비로소 리우 웬은 한대의 적기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우선 네녀석부터!"
동시에 기체에 약간의 반동이 일어나며 초당 14발의 우라늄탄을 쏟아붓는 중형 매스 드라이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상에서와는 달리, 우주 공간에서는 우라늄탄을 막을 그 어떠한 저항도 없었기에, 리우 웬의 전투기에서 빠져나온 탄환은 순식간에 불운한 적기의 소형 이온화 엔진을 관통했고, 그 결과는 밝은 빛을 내는 조그만 폭발로 이어졌다.
"좋았어! 이제 다른..."
"투둥!"
다음 목표를 찾으려고 타겟 설정을 하던 리우 웬이 '가장 가까운 적 : 좌표13.45.138. 거리 25m'라는 디스플레이에 경악한 것과, 그의 전투기 뒷부분에 소형 레일건에서 빠져나온 탄환이 정통으로 맞은 것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위험! 후측방 쉴드 손실. 34%"
"상처입은 그대, 내 품에 안겨~ 이제 그만 편히 쉬어요~ 그대와 나의 사랑이 영원하..."
"미치겠네에에에!"
적기에게 꼬리를 잡혔기 때문인지, 아니면 끝까지 자신을 괴롭히는 노래때문인지 모를 탄식을 내지르며 리우웬은 급격한 역출력을 시작했다.
"쿵!"
상대방이 직접 충돌해 오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불쌍한 해적은 피하는데만 급급한 나머지 컨트롤을 잃고 말았고, 그 결과 1.25초만에 정상 컨트롤을 회복한 리우 웬이 발사한 입자 가속 캐논의 푸른 불덩이와 함께 흔히 말하는 '우주의 먼지'가 되고 말았다.
"이제, 둘!"
"하아? 나는 여섯!"
"나는 일곱대."
호기롭게 외친 리우 웬의 기를 꺾어버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더글라스와 이글이 연달아 소리쳤다.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어떻게 겨우 세 놈에게 이따위로 당할 수가!"
"그러길래, 상대를 잘 보고 덤볐어야지. 돼지는 어디까지나 돼지일 뿐이야."
니콜슨에게 빈정대듯 말하던 이글은, 그러나 곧이어 폐쇄회로 통신 모드로 들어와 중얼거렸다.
"쩝... 자신있게 말하긴 했지만... 난 이미 미사일은 다 썼고.. 쉴드도 13%밖에 안 남았는데..."
"난 미사일 두발. 하지만 양자 어뢰라서 전투기에게 맞추기는 힘들어. 저 구축함이라면 또 모를까. 쉴드는... 7%. 제대로 걸리면 한방에 죽겠군."
"흠.. 그렇다면 나는 너희 둘의 제삿상에 올릴 술을 사면 되는건가?"
"쳇."
마음에 안든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더글라스는 곧바로 또 다른 전투기에게 달려들며 우라늄탄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전자기식 코일로 구성된 구경 50mm의 중형 매스 드라이버가 초전도 자기장에 의해 가속된 탄환을 적기에 박아넣었지만, 이번에는 적기 역시 표면에 파란 스파크를 낼 뿐, 격추당하지는 않았다.
"왜 하필이면 쉴드를 가진 놈이 걸린 거냐..."
더글라스가 투덜대며 회피 기동을 시작한 적의 뒤를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자, 그러면 2차전 시작인가!"
이글 역시 또 한대의 적기를 향해 돌진하며 '조준하지 않아도 맞는다'는 설정으로 장착한 여덟문의 레일건을 발사했다.
반면 리우 웬은....
"또 한번의 시작~ 우리 함께 시작해요~ 아무리 힘든 길이라 해도, 우리 사랑 영원할테니~"
시작하기도 전에 좌절을 맛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카가강!"
재수없게도 아까 파손되었던 부위의 쉴드가 채 회복되기도 전에 적의 이온 빔이 또다시 상처를 들쑤셨고, 그 결과 극히 일부였지만 이온 빔의 파괴력이 방어막을 뚫고 본체를 긁어놓았다.
"젠장!"
머릿쪽으로 급격히 선회한 후, 자신을 노리던 적기를 찾았으나 범인은 어느 새 상당한 거리를 두고 멀리 떨어져 있었다.
"흐흥... 이온빔을 탑재한 개조 MST에... 재빠른 상황 판단...만만치는 않는 놈이라는 건가?"
리우 웬이 냉소를 하며 추격을 시작했고, 전투기가 보여주는 성능의 차이로 인해 둘 사이의 간격이 매스 드라이버 사정거리 안으로 거의 다 좁혀졌을 즈음.
"파캉!"
엄청난 충격과 함께 푸른색의 이온 빔이 눈 앞에 작렬했다.
"경고! 경고! 전방부 쉴드 전면 파손! 전투기 동체 11% 파손! 3번 매스 드라이버 작동 불능! 생명 유지 장치의 복구를 위해 9초간 셧다운 상태로 돌입합니다."
적은 360도 회전이 가능한 이온 포탑을 뒤로 돌린 채, 거짓으로 쫒기다가 회심의 일격을 가한 것이었다.
그것도 자신의 전투기가 낼 수 있는 모든 동력을 끌어모아 한방에 날리는 '챠징 샷'으로.
"크윽! 이런..."
일시적인 쇼크상태에 빠졌던 리우 웬이 정신을 차리자 가장 먼저 한 일은, 프로 정신에 입각해서, 뒷자석의 '천사'가 무사한지 살펴보는 일이었다.
"나를 보호해주는 당신의 따뜻한 품 속. 그안에서 나는 행복해요~ 언제나 나만을 생각하는 그대 모습에..."
"멀쩡하군."
리우 웬은 재빨리 앞을 보며 손톱을 깨물었다. 모든 동력을 방금의 한방에 써버린 적과, 생명 유지장치의 복구를 위해 앞으로도 몇초간은 더 정지상태로 머물러야 하는 자신. 그 둘중에 누가 먼저 동력을 회복할 것인가. 그 짧은 차이가 생사의 갈림길을 결정지을 것이었다.
그리고 불행히도, 운명은 리우 웬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위이이이잉..."
바로 코 앞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 적의 이온 캐논이 다시 충전되며 조금씩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콰앙!"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눈을 감은 순간.
"우리 항상 함께해요. 언제 어디서라도~"
"어라?"
분명히 죽어있어야 할 자신의 귀에 계속 들려오는 노래소리. 의아한 마음에 눈을 뜬 리우 웬 앞에는 적기의 파편이 널려있었다.
"뭐 하나, 리우 웬! 자장가를 불러주는 미녀가 뒷좌석에 앉아있어서 잠이라도 잔거야?"
더글라스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오자 리우 웬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훗. 더글라스 녀석에게 빚을 지고 말았군."
다시 가동을 시작한 전투기의 디스플레이에는 이글이 10대, 더글라스가 8대, 리우 웬은 2대라는 전적이 떠올랐고, 남은 두대의 적기는 전속력으로 도주중이라는 정보 역시 친절하게 뜨고 있었다.
"자, 이제 돼지 두목을 사냥해볼까?"
"좋지. 더글라스, 스캔 결과는?"
"중형 중력 발생 프리깃. 터보 레이져 2기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지원 사격용이야. 사각지대가 너무 많아서 어디부터 파고 들어가야 할지 모르겠군."
"자, 잠깐!"
니콜슨의 다급한 모습이 통신창에 나타났다.
"미,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지금 당장 중력 발생기를 끌테니 목숨만 살려줘!"
"...라는데?"
더글라스가 어깨를 으쓱하며 묻자, 리우 웬이 대신 대답했다.
"니콜슨. 일명 콜타르 찌꺼기 니콜슨. 현상금 350탈러. 생사 불문. 그리고 컴퍼니에서 제시한 가격표에 의하면 저 프리깃의 격추 보너스가 500드램. 오늘 시세의 탈러로 환산하면 700탈러 정도군."
"...라는데?"
다시 더글라스가 이글에게 묻자, 누구나 예상했던 뻔한 대답이 나왔다.
"자신이 타고다니는 우주선보다 가치가 없는 녀석이 주제도 모르고 날뛰었으니, 그 댓가는 치루게 해줘야지. 게다가... 너희들도 알잖아?"
"돈은 영원한 우리의 친구."
"모을 수 있을 때 반드시 모아놓을 것."
리우 웬과 더글라스가 웃으며 대꾸하고, 속력을 내어 프리깃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아, 안돼애애!"
니콜슨의 겁먹은 목소리와 더불어 둔중한 프리깃함에서, 전투기에서 발생한 이온 빔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파괴력을 지닌 두줄기의 에너지 빔이 우주를 갈랐지만, 이미 사각지역으로 들어선 세대의 전투기에게는 아무런 효과도 주지 못했다.
"잘가라. 거세당한 돼지."
더글라스가 작별인사와 함께 남긴 두발의 양자 어뢰는 구축함에 부딪히며 강력한 충격파를 만들어냈고, 그 결과 니콜슨의 함선은 세조각으로 갈라지며 폭발을 일으켰다.
"잘 구워졌겠군."
"아아.. 나는 사양하겠어. 왠지 맛 없을 것 같은데."
"동감."
전투가 끝난 뒤에 으례히 오고가는 농담을 하며 한 숨 돌린 세명은, 다시 복귀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그런데...
"어.. 잠깐만.. 나.. 하이퍼 스페이스 모듈이 고장난 것 같아."
"이글, 너도? 나도 하이퍼 스페이 엔진이 작동하지 않는데?"
"나, 나도! 나도 마찬가지야!"
당황하던 세명의 레이더에 또 다른 신호가 잡힌 것은 바고 그 직후였다.
"맙소사..."
거대한 워프 게이트가 형성되며, 소용돌이치는 빛의 길을 통해 또 다른 중력 발생 프리깃과... 전투기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세대의 강습 프리깃, 그리고 '소형'이라는 딱지가 붙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우주 순양함 한척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었다.
"저건.. 또... 뭐야?"
"망했다.. 진짜 빛나는 혜성단이야."
전투 의욕을 완전히 상실한 세명을, 세대의 강습 프리깃과 순양함에서 출발한 수십대의 전투기들이 겹겹이 에워쌌다.
"에... 우선 여러분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네."
통신창에 떠오른 것은 상당히 냉혹한 인상을 주는 사내였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나를 '해피 데이'라고 부르지. 내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언럭키 데이'였겠지만 말이야. 하하하핫!"
어울리지 않는 썰렁한 유머를 지껄이던 '해피 데이'는 아무도 웃어주지 않자, 다시 정색하고 말을 이었다.
"흠..흠... 어쨌거나.. 여러분이 '빛나는 혜성단'을 사칭하며 우리 영역에서 야금야금 좀도둑질을 해먹던 돼지 떼거리를 없애 준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야. 때문에, 여러분에게 보답을 하도록 하지."
"그냥 보내준다는 뜻?"
"아니... 얌전히 항복하면 깨끗하게 단칼에 죽여주고, 어줍잖게 반항 따위를 하면 살아있는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준다는 뜻이야."
생긴것과 완전히 일치하는 멘트를 읊는 '해피 데이'의 얼굴을 보며, 뉴트럴 컴퍼니의 사원들은 자신들에게 있어서도 오늘은 '언럭키 데이'라는 사실을 실감해야 했다. 모두가 말을 잃은 채 침묵을 지키자, 들리는 것은 천사가 부르는 노랫소리 뿐이었다.
"좋아, 내 특별히 은혜를 하나 더 베풀도록 하지. 저 아름답고 몸값 비싸기로 유명한 숙녀분의 노래가 끝날 때까지 선택할 시간을 주겠어. 그 후에는... 뭐, 우리는 돼지 떼거리와는 달리 무기도 충분하고 트랙터 빔도 있으니... 알아서 하라구."
절망의 연속. 그 질식할듯 이어지는 침묵 속에서 한줄기 빛이 되어 들리는 메카닉 바드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리우 웬은 처음으로 그 애틋한 러브 송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서...
우리 만남과 헤어짐의 갈림길에 서서...
어떠한 미래가 우리를 기다려도,
사랑은 영원히 계속 되어요.
당신이 걸어가는 길을 따라,
나도 함께 따라갈테니
언제나 마음만은 항상 함께 할테니...
헤어짐은 또 한번의 시작을 품고,
눈을 뜨지 않은 사랑의 씨앗은 서로의 마음 속에...
만남은 또 한번의 기적을 낳고,
꽃을 피운 사랑의 씨앗은 서로의 마음속에...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서...
우리 만남과 헤어짐의 갈림길에 서서...
어떠한 미래가 우리를 기다려도,
사랑은 영원히 계속 되어요."
상당히 느린 박자의, 상당히 긴 곡이었지만, 그 노래를 듣는 사람들 그 누구에게도 결코 길다고 느껴지지 않는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노래를 이루던 모래시계의 마지막 모래 한알이 떨어지자, 천사의 노래는 그 제목을 바꾸었고, 마치 최면에서 깨어난 듯한 '해피 데이'의 목소리가 곧바로 들려왔다.
"허어.. 굉장하군. 역시 사랑을 노래하는 천사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아. 반드시 손에 넣어야겠어."
"아아... 나도 이럴 줄 알았으면 노래를 좀 더 즐겨놓는건데 그랬어."
왠지 억울한 듯한 느낌이 드는 리우 웬의 투정이었다.
"자아, 어쨌거나! 감상도 끝났으니... 이제 그만 선택하실까? 참고로 내가 요즘 즐겨보는 책은 '고대 지구인의 고문 풍습'이야. 개인적으로는 한두명 정도 반항해주길 바라고 있다는 사실을 미리 말해두는게 좋겠군"
"뉴트럴 컴퍼니 기본 수칙 제 4장."
"밑져야 본전일 경우는 일단 투자해 볼 것."
"자, 죽던 살던 끝까지 덤벼보자구!"
'어쩔 수 없군'이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해피 데이가 통신을 끊자, 곧이어 강습 프리깃함의 무식하게 거대한 포탑들이 회전을 시작했다.
"하아.. 호기롭게 외치기는 했지만... 여기까지인가..."
약간은 맥빠진 목소리로 전투기의 속력을 더하는 리우 웬의 등 뒤에서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몇 분 채 지나지도 않아, 무익한 항전을 시도하던 세대의 전투기는 그 뒤로도 용케 몇대의 적 전투기를 파괴시킨 후, 강습 프리깃함에서 발사한 탄환에 의해 반쯤 걸레가 된 상태로 정지된 채 둥둥 떠다니는 고철로 변해있었다. 그리고 트랙터 빔의 조준을 완료한 적의 순양함이 서서히 다가오는 것을 보며,
리우 웬은 이럴 때를 대비해 준비해놓았던 알약을 하나 꺼내들었다.
"이걸 쓰게 될 날이 올거라고는 각오하고 있었지만.. 설마 뉴트럴 컴퍼니에 입사한지 일년도 채 되지 않아 쓰게 될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역시 밀수업자 일이나 계속할 걸 그랬어..."
마지막 말을 한숨과 함께 내뱉은 리우 웬은 떨리는 손으로 알약을 입에 넣었다. '편안한 죽음'을 보장하는 알약이 목구멍을 막 넘어간 순간.
"번쩍!"
"뭐, 뭐야!"
거대한, 두께가 거의 전투기의 크기와 맞먹을 정도의 강력한 이온 빔이 강습 프리깃을 관통했다. 순식간에 강습 프리깃과 그 주변의 전투기 서너척을 함께 집어삼킨 빛줄기는, 그것으로는 모자랐는지 그 뒤에 있던 순양함의 사령탑까지 함께 뒤흔들어 버렸다.
그리고 워프 게이트를 통해, 방금 이온 빔을 발사한 레이져 프리깃 여섯 대와, 여덟 대의 강습 프리깃, 소형 순양함 두척과 그에 비하면 거의 두 세배 가까이는 더 큰 중형 순양함 한척이 위용을 과시하며 나타났다. 그리고 그 함선들 표면에는 한결같이 붉은색 헥사그램과 함께 '골칫거리가 있으십니까? 언제든 의뢰만 하세요!'라는 광고 멘트 뒤에 항상 따라붙는 이름. '뉴트럴 컴퍼니'가 그려져 있었다.
"지원군인가... 으으.. 욱.. 우욱! 우웨에엑!"
뉴트럴 컴퍼니의 로고 마크를 확인한 순간, 리우 웬은 곧바로 목구멍에 손을 넣어 방금 삼켰던 알약을 토해냈고, 다행히도 아직 녹을 기회를 잡지 못했던 알약은 자신의 탄생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도로 튀어나와야만 했다.
"하아... '즉사형 청산가리'를 안 산게 천만 다행이군..."
한숨을 내쉬며 뒤로 기댄 리우 웬의 눈에는, 이미 전멸 완료 될때까지 남은 시간이 초단위로 줄어버린 '빛나는 혜성단'이 마지막 빛을 발하며 사라져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귓가에는 여전히, 뒷좌석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 에필로그
"더 많은 돈은 더 좋은 무기를 낳고, 더 좋은 무기는 더 많은 돈을 가져다 준다"
이 철칙은, 이제부터 약간 더 밝아진 리우 웬의 미래를 보장하는 말이기도 했다.
'또 다른 목표인 빛나는 혜성단을 전멸시키기 위해 이중으로 의뢰를 맡았고, 이때문에 이번 작전에서 전투기 세대만을 투입시켜 미끼로 삼았다.'는 정보를 처음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최악으로 치닫던 리우 웬의 기분은 '입사 이래 최대의 흑자'라는 단어가 가져다 준 선물인, 새로 구입한 신형 메르카바급 전투기를 보는 순간 완전히 풀어져 버렸다.
결국 리우 웬은 '그래. 어차피 자유 계약이었으니... 앞 뒤 안가리고 덥썩 지원해버린 내게도 잘못이 있지.'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새 전투기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락 음악을 틀어놓고 조종석에 드러누웠다.
"....!"
"?"
".....웬!"
누군가 자신을 부르고 있다고 생각한 리우 웬은 음악을 껐고, 곧이어 목이 터져라 외치는 오퍼레이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리이이이!! 우우우우우우!!! 웨에에에에에엔!!!!"
"왜 그래?"
새빨게진 얼굴로 한참동안이나 헉헉대며 숨을 몰아쉬던 오퍼레이터는 잡아먹을듯한 눈초리로 리우 웬을 쏘아보며 디스크를 한장 건네주었다.
"뭐야?"
"몰라, 나도. 네 앞으로 온 것이니까."
그 말을 끝으로 되돌아선 오퍼레이터에게는 한조각의 관심도 주지 않은 채, 리우 웬은 자신에게 배달된 디스크를 플레이시켰다.
"목숨을 걸고 천사를 지켜주셨다던데... 덕분에 제가 원하던 최고의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물건은 약소하지만 저와 '사랑을 노래하는 천사'가 보내는 감사의 선물입니다."
디스플레이에 글자가 떠오름과 동시에, 락음악을 듣기 위해 맥시멈에 가까운 볼륨으로 설정해 놓았던 전투기에서 또 다시 아름다운 러브 송이 흘러나와 전투기 격납고를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서...
우리 만남과 헤어짐의 갈림길에 서서...
어떠한 미래가 우리를 기다려도,
사랑은 영원히 계속 되어요."
"쳇... 이따위 물건이 무슨 감사의 선물이야.. 차라리 감사비나 송금해줄것이지."
투덜대며 다시 자리에 눕는 리우 웬의 입가에는, 그러나 보일듯 말듯한 희미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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