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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문학관 - 작가 : nitrocity1
글 수 40
"이래서야, 원... 이건 며칠 뒤에는 내 주변의 모든 국가가 너나할 것 없이 집중 공격을 감행해 들어오겠다는 소리 아닌가..."
수정구를 통해 비추어 본 나의 영토 곳곳에서는 다른 나라에서 파견된 첩자들이 보내는 전서구가 날아가는 모습이 수없이 포착되었다. 그리고 그 중 몇마리를 잡아본 결과 한결같이 이런 내용을 달고 날아가고 있었다.
"모든 방어병력의 소멸. 노드의 상태로 보아 마나 폭주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확실시 됨. 아직까지 영혼의 계약의 징후는 보이지 않고 있음. 전쟁시 승리 확률 90% 이상을 확신함. 조속한 병력 파견을 요함"
순백색의 비둘기가 겁먹은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마음만 같아서는 모가지를 비틀어버리고 싶었지만 이놈 하나 죽인다고 해서 벌써 날아가버린 수백마리의 다른 전서구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잠시 후에 행할 명상을 위해서는 심리적인 안정이 매우 중요했기에 꾹 눌러 참기로 했다.
"켄톤?"
"네, 마스터"
"가급적이면 명상은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준비는 다 끝났나?"
"네... 명상의 방에 연화좌를 비롯한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좋아, 내가 명상의 방에서 나오는 사흘 후까지 최대한의 복구 준비를 끝마쳐 놓도록. 특히 마나의 충전과 좀비의 생산이 급선무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사흘만으로는 이전 병력의 3분의 1수준 이상은 회복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만..."
"어쩔 수 없지. 마나 폭주가 일어난 이상 영토의 손실이 아예 없으리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 손실이 얼마나 되느냐일 뿐."
"알겠습니다, 마스터. 사흘동안 전 국력을 마나 충전과 병력 증강으로 돌리도록 하겠습니다."
켄톤이 물러가고 나서 얼마 후, 나도 명상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탑의 최상층. 나 이외에는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곳. 내 영토 전역을 뒤덮은 먹구름 조차도 도달하지 못하는 곳. 그곳이 바로 명상의 방이 존재하는 곳이다. 방 자체의 크기는 꽤 크다고 볼 수 있지만, 창문은 하나도 없는 특이한 구조를 갖고 있으며, 아무것도 없는 방 한가운데 유일하게 놓여있는 마법진과 문에 조각되어있는 고대의 룬 문자는 이곳이 아크메이지들의 명상을 위해 만든 곳임을 끊임없이 일깨워 주고 있었다.
"내가 나 자신을 가두는 꼴이라니... 이래서 명상은 하기 싫었는데..."
명상을 하지 않으면 시체에 달려드는 까마귀떼처럼 주변 국가들이 모두 나의 영토로 몰려들 것은 뻔했기에 인내심을 발휘해서 참고 있었지만, 육중한 철문을 닫으며 터져나오는 불평까지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문을 닫는 순간, 룬 문자가 빛을 발하기 시작하더니 강력한 고대의 마법으로 명상의 방을 외부와 격리시키기 시작했다. 앞으로 사흘 후까지는 그 어떤 것도, 심지어는 나 자신조차도 나를 이곳에서 나가게 하지 못할것임을 일깨워주는 빛이었다.
"후우... 어쩔 수 없군. 이왕 이렇게 된 것 마음 편안히 먹고 명상을 하는 수밖에..."
나는 서둘러 방 한가운데의 마법진 중앙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이제 저 문에서 나오는 룬 문자의 빛마저도 점점 희미해질 것이고, 조금 더 지나면 이 방은 그 어떤 육체적인 감각도 반응하지 못하도록 일체의 자극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블랙홀로 변화할 것이다. 때문에 저 희미한 빛이라도 있을 동안에 되도록 편한 자리를 찾아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잠시 후. 완벽한 어둠과 침묵이, 마치 죽음과도 같은 고요함이 내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실제로 죽음은 고요함의 극에 달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고요함의 극에 달하면 죽음의 본질을 꿰뚫어 볼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때문에 어중간한 마법으로 행세하는 삼류 네크로맨서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흑마법사들은 적어도 한번 정도는 명상을 통해 자신의 정신을 단련하기 마련이고, 이러한 명상을 통한 수련은 한단계 높은 마법 체계로의 발판이 되어주기도 한다.
이러한 명상의 효용성에도 불구하고 모든 흑마법사들이 매일매일 명상의 방에만 틀어박히지 않는 이유로는 몇가지를 꼽을 수 있는데,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아크메이지의 육체에 너무 많은 무리가 가기 때문일 것이다. 사흘동안 일체의 물이나 음식을 섭취하지 않고, 모든 감각을 박탈당한 상태에서 지낸다는 것은 정신적으로는 수행이 될지도 모르지만 육체적인 면에 있어서는 고문과도 다름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명상은 사흘을 한계로 하고, 그나마도 끝내고 나면 얼마동안은 절대 안정을 취해야만 한다.
또 다른 이유로는 고요함이 자주 다다를 수 있는, 그런 쉬운 경지가 아니라는 데 있다. 전쟁, 마법의 시전, 아이템의 사용 등, 아크메이지들이 행하는 대부분의 일들은 거의 모두가 마나를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운용하기 마련이고, 이렇게 뒤틀린 마나의 흐름을 갖고서는 명상을 할 수 있을만큼 평정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때문에 명상을 하기 전엔 언제나 하루정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 일반화 되어있다. 그러나, 마법사들에게 있어서 하루라도 마법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 어디 말만큼이나 그렇게 쉬운 일인가!
명상이 가져오는 또 다른 문제점은 아크메이지와 그의 영토가 완전히 단절됨으로 인해서 그동안 유지되어오던 모든 마법이 무효화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한 나라에 끊임없이 이어지며 영향을 끼치는 마법은 그 마법을 시전한 아크메이지의 무의식적인 제어에 의해 유지된다. 그런데 마법사가 외부와 격리되면, 제어자를 잃은 마법들은 모두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때문에 명상을 끝낸 마법사들은 언제나 자신이 전에 걸어두었던 마법들을 다시 한번 시전해야하는 번거로움을 겪어야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한 것은, 이렇게 명상중인 아크메이지가 그의 영토와 단절되는 한편, 다른 의미에서는 한층 더 깊은 연관 상태로 빠져들게 된다는 데 있다. 즉, 육체의 한계를 벗어난 아크메이지의 정신은 그가 다스리는 나라의 전반적인 마나의 흐름과 하나가 되며, 이는 결국 나라 전체가, 명상에 빠져드는 것처럼 외부와의 모든 접촉이 끊기는 결과를 가져온다. 국경에서부터 마법사 고유의 흐름을 지닌 마나의 기류가 흘러나와 온 나라를 덮어버리며, 때문에 명상중인 아크메이지의 국가는 어떠한 외부의 침략으로부터도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지금 명상을 수행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내가 지금 느끼는 외부와의 완전한 격리. 이는 다시 말해 내 나라가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시간 감각도 완전히 사라졌고, 내가 이곳에 들어온지 몇분이나 지났는지, 아니 몇시간이 되었는지도 분간할 수 없는 무의식의 영역으로 빠져들었다. 그래, 이렇게 무아지경에 몰입할수록 내 명상의 결계는 더욱 더 강력해진다.
그런데...
".....는가?"
뭐지?
"...의 준비가 되었는가?"
뭐지, 내 머릿속에 울리는 이 소리는? 어디선가 들어본 것도 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련한 기억으로만 떠오를 뿐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가... 아직 테라의 균형을 이루는 위대한 법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여질 준비는 되지 않은 것인가..."
여자... 그래, 젊은 여자의 목소리. 어딘가 약간 어두워 보이는, 그리고 위엄이 넘치는 목소리... 그런데... 누구지?
"누구? 누가 나의 명상을 방해하는 것인가?"
분명히 말을 했건만 모든 자극을 삼켜버리는 명상의 방은 내 목소리마저도 무로 되돌려 버렸다. 그러나 그 뜻은 내 의식속에 들어와 있는 정체 불명의 상대방에게 충분히 전달된 듯 했다.
"명상이라... 좋아... 아직 인간의 감정이 남아있을 때 충분히 즐겨두는 편이 좋겠지... 그대가 테라를 움직이는 빛과 어둠의 영역에 들어선다면 그때부터는 이러한 유희도 즐길 수 없을테니까..."
점점 더 멀어지는 듯한 목소리... 내 무의식의 영역에서 잃어버린 듯한 기억이 잔잔하게 떠오르는 순간, 그 존재는 사라져 버렸다.
"이봐, 기, 기다려! 잠깐만!"
거의 다 도달했는데, 조금만 더 손을 내밀면 붙잡을 수 있을듯한 나의 숨겨진 무언가가 바로 앞에 있었는데, 끝내 놓치고 말았다.
"헉!"
깜짝 놀라며 눈을 뜨자, 활짝 열려진 문으로 햇빛이 들어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벌써... 사흘이 지난 것인가...?"
의식상으로는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사흘이 지나지 않으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열리지 않는 문이 열린것으로 보아, 그리고 내 몸이 앉아있던 자세 그대로 굳어있고 극심한 갈증과 허기가 나를 괴롭히는 걸 보면 분명 사흘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는 틀림없었다.
그런데... 그건 뭐였지? 지금까지의 명상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가장 강력하다고 여겨지는 명상의 결계마저도 손쉽게 넘어들어온 그 거대한 존재는 무엇이었을까...
설마... 신?
"훗... 그럴 리가..."
내가 믿는 것은 오직 나 하나뿐이라는 좌우명 아래, 신이라는 존재에 의지할 생각은 추호도 없는 나에게... 신들의 제단이 있는 거리로는 발걸음조차 들여놓지 않은 나에게 그 어떤 신이 관심을 갖겠는가...
"어쩌면, 신경을 너무 쓴 탓일지도..."
그래, 그렇게 믿는 것이 편하다. 내가 명상을 끝낸 것을 알아차린 적들을 막기 위해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환청을 들은 것이겠지.
"좋아, 이제부터는 다시 전쟁의 연속인가."
사흘간 어떠한 움직임도 없었던 내 몸 곳곳에서는 뼈마디가 뚜둑거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갑자기 일어서자 어지러움증이 확 일어나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정도의 통증에 허비할 시간은 없다.
"마스터의 명령이다. 모든 단장급 이상 고위 간부들은 연회장으로 집결 할 것. 지금부터 최단시간 내에 가장 효율적인 방어태세로 들어간다. 모든 단장급 이상 간부들은 연회장으로 집결하라."
마나를 이용한 목소리의 확대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아 마나 폭주의 복구는 다 끝난 것 같군. 문제는 병력의 복구와 아이템 수급 현황, 그리고 무엇보다도, 앞으로 얼마나 많은 적들이 내게 공격을 감행할 것이냐일 뿐.
"좋아, 내가 흘리는 피, 적이 흘리는 피, 따질 것까지는 없겠지. 전쟁이라면 언제나 환영이다."
수정구를 통해 비추어 본 나의 영토 곳곳에서는 다른 나라에서 파견된 첩자들이 보내는 전서구가 날아가는 모습이 수없이 포착되었다. 그리고 그 중 몇마리를 잡아본 결과 한결같이 이런 내용을 달고 날아가고 있었다.
"모든 방어병력의 소멸. 노드의 상태로 보아 마나 폭주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확실시 됨. 아직까지 영혼의 계약의 징후는 보이지 않고 있음. 전쟁시 승리 확률 90% 이상을 확신함. 조속한 병력 파견을 요함"
순백색의 비둘기가 겁먹은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마음만 같아서는 모가지를 비틀어버리고 싶었지만 이놈 하나 죽인다고 해서 벌써 날아가버린 수백마리의 다른 전서구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잠시 후에 행할 명상을 위해서는 심리적인 안정이 매우 중요했기에 꾹 눌러 참기로 했다.
"켄톤?"
"네, 마스터"
"가급적이면 명상은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준비는 다 끝났나?"
"네... 명상의 방에 연화좌를 비롯한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좋아, 내가 명상의 방에서 나오는 사흘 후까지 최대한의 복구 준비를 끝마쳐 놓도록. 특히 마나의 충전과 좀비의 생산이 급선무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사흘만으로는 이전 병력의 3분의 1수준 이상은 회복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만..."
"어쩔 수 없지. 마나 폭주가 일어난 이상 영토의 손실이 아예 없으리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 손실이 얼마나 되느냐일 뿐."
"알겠습니다, 마스터. 사흘동안 전 국력을 마나 충전과 병력 증강으로 돌리도록 하겠습니다."
켄톤이 물러가고 나서 얼마 후, 나도 명상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탑의 최상층. 나 이외에는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곳. 내 영토 전역을 뒤덮은 먹구름 조차도 도달하지 못하는 곳. 그곳이 바로 명상의 방이 존재하는 곳이다. 방 자체의 크기는 꽤 크다고 볼 수 있지만, 창문은 하나도 없는 특이한 구조를 갖고 있으며, 아무것도 없는 방 한가운데 유일하게 놓여있는 마법진과 문에 조각되어있는 고대의 룬 문자는 이곳이 아크메이지들의 명상을 위해 만든 곳임을 끊임없이 일깨워 주고 있었다.
"내가 나 자신을 가두는 꼴이라니... 이래서 명상은 하기 싫었는데..."
명상을 하지 않으면 시체에 달려드는 까마귀떼처럼 주변 국가들이 모두 나의 영토로 몰려들 것은 뻔했기에 인내심을 발휘해서 참고 있었지만, 육중한 철문을 닫으며 터져나오는 불평까지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문을 닫는 순간, 룬 문자가 빛을 발하기 시작하더니 강력한 고대의 마법으로 명상의 방을 외부와 격리시키기 시작했다. 앞으로 사흘 후까지는 그 어떤 것도, 심지어는 나 자신조차도 나를 이곳에서 나가게 하지 못할것임을 일깨워주는 빛이었다.
"후우... 어쩔 수 없군. 이왕 이렇게 된 것 마음 편안히 먹고 명상을 하는 수밖에..."
나는 서둘러 방 한가운데의 마법진 중앙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이제 저 문에서 나오는 룬 문자의 빛마저도 점점 희미해질 것이고, 조금 더 지나면 이 방은 그 어떤 육체적인 감각도 반응하지 못하도록 일체의 자극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블랙홀로 변화할 것이다. 때문에 저 희미한 빛이라도 있을 동안에 되도록 편한 자리를 찾아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잠시 후. 완벽한 어둠과 침묵이, 마치 죽음과도 같은 고요함이 내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실제로 죽음은 고요함의 극에 달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고요함의 극에 달하면 죽음의 본질을 꿰뚫어 볼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때문에 어중간한 마법으로 행세하는 삼류 네크로맨서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흑마법사들은 적어도 한번 정도는 명상을 통해 자신의 정신을 단련하기 마련이고, 이러한 명상을 통한 수련은 한단계 높은 마법 체계로의 발판이 되어주기도 한다.
이러한 명상의 효용성에도 불구하고 모든 흑마법사들이 매일매일 명상의 방에만 틀어박히지 않는 이유로는 몇가지를 꼽을 수 있는데,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아크메이지의 육체에 너무 많은 무리가 가기 때문일 것이다. 사흘동안 일체의 물이나 음식을 섭취하지 않고, 모든 감각을 박탈당한 상태에서 지낸다는 것은 정신적으로는 수행이 될지도 모르지만 육체적인 면에 있어서는 고문과도 다름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명상은 사흘을 한계로 하고, 그나마도 끝내고 나면 얼마동안은 절대 안정을 취해야만 한다.
또 다른 이유로는 고요함이 자주 다다를 수 있는, 그런 쉬운 경지가 아니라는 데 있다. 전쟁, 마법의 시전, 아이템의 사용 등, 아크메이지들이 행하는 대부분의 일들은 거의 모두가 마나를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운용하기 마련이고, 이렇게 뒤틀린 마나의 흐름을 갖고서는 명상을 할 수 있을만큼 평정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때문에 명상을 하기 전엔 언제나 하루정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 일반화 되어있다. 그러나, 마법사들에게 있어서 하루라도 마법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 어디 말만큼이나 그렇게 쉬운 일인가!
명상이 가져오는 또 다른 문제점은 아크메이지와 그의 영토가 완전히 단절됨으로 인해서 그동안 유지되어오던 모든 마법이 무효화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한 나라에 끊임없이 이어지며 영향을 끼치는 마법은 그 마법을 시전한 아크메이지의 무의식적인 제어에 의해 유지된다. 그런데 마법사가 외부와 격리되면, 제어자를 잃은 마법들은 모두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때문에 명상을 끝낸 마법사들은 언제나 자신이 전에 걸어두었던 마법들을 다시 한번 시전해야하는 번거로움을 겪어야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한 것은, 이렇게 명상중인 아크메이지가 그의 영토와 단절되는 한편, 다른 의미에서는 한층 더 깊은 연관 상태로 빠져들게 된다는 데 있다. 즉, 육체의 한계를 벗어난 아크메이지의 정신은 그가 다스리는 나라의 전반적인 마나의 흐름과 하나가 되며, 이는 결국 나라 전체가, 명상에 빠져드는 것처럼 외부와의 모든 접촉이 끊기는 결과를 가져온다. 국경에서부터 마법사 고유의 흐름을 지닌 마나의 기류가 흘러나와 온 나라를 덮어버리며, 때문에 명상중인 아크메이지의 국가는 어떠한 외부의 침략으로부터도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지금 명상을 수행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내가 지금 느끼는 외부와의 완전한 격리. 이는 다시 말해 내 나라가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시간 감각도 완전히 사라졌고, 내가 이곳에 들어온지 몇분이나 지났는지, 아니 몇시간이 되었는지도 분간할 수 없는 무의식의 영역으로 빠져들었다. 그래, 이렇게 무아지경에 몰입할수록 내 명상의 결계는 더욱 더 강력해진다.
그런데...
".....는가?"
뭐지?
"...의 준비가 되었는가?"
뭐지, 내 머릿속에 울리는 이 소리는? 어디선가 들어본 것도 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련한 기억으로만 떠오를 뿐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가... 아직 테라의 균형을 이루는 위대한 법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여질 준비는 되지 않은 것인가..."
여자... 그래, 젊은 여자의 목소리. 어딘가 약간 어두워 보이는, 그리고 위엄이 넘치는 목소리... 그런데... 누구지?
"누구? 누가 나의 명상을 방해하는 것인가?"
분명히 말을 했건만 모든 자극을 삼켜버리는 명상의 방은 내 목소리마저도 무로 되돌려 버렸다. 그러나 그 뜻은 내 의식속에 들어와 있는 정체 불명의 상대방에게 충분히 전달된 듯 했다.
"명상이라... 좋아... 아직 인간의 감정이 남아있을 때 충분히 즐겨두는 편이 좋겠지... 그대가 테라를 움직이는 빛과 어둠의 영역에 들어선다면 그때부터는 이러한 유희도 즐길 수 없을테니까..."
점점 더 멀어지는 듯한 목소리... 내 무의식의 영역에서 잃어버린 듯한 기억이 잔잔하게 떠오르는 순간, 그 존재는 사라져 버렸다.
"이봐, 기, 기다려! 잠깐만!"
거의 다 도달했는데, 조금만 더 손을 내밀면 붙잡을 수 있을듯한 나의 숨겨진 무언가가 바로 앞에 있었는데, 끝내 놓치고 말았다.
"헉!"
깜짝 놀라며 눈을 뜨자, 활짝 열려진 문으로 햇빛이 들어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벌써... 사흘이 지난 것인가...?"
의식상으로는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사흘이 지나지 않으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열리지 않는 문이 열린것으로 보아, 그리고 내 몸이 앉아있던 자세 그대로 굳어있고 극심한 갈증과 허기가 나를 괴롭히는 걸 보면 분명 사흘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는 틀림없었다.
그런데... 그건 뭐였지? 지금까지의 명상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가장 강력하다고 여겨지는 명상의 결계마저도 손쉽게 넘어들어온 그 거대한 존재는 무엇이었을까...
설마... 신?
"훗... 그럴 리가..."
내가 믿는 것은 오직 나 하나뿐이라는 좌우명 아래, 신이라는 존재에 의지할 생각은 추호도 없는 나에게... 신들의 제단이 있는 거리로는 발걸음조차 들여놓지 않은 나에게 그 어떤 신이 관심을 갖겠는가...
"어쩌면, 신경을 너무 쓴 탓일지도..."
그래, 그렇게 믿는 것이 편하다. 내가 명상을 끝낸 것을 알아차린 적들을 막기 위해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환청을 들은 것이겠지.
"좋아, 이제부터는 다시 전쟁의 연속인가."
사흘간 어떠한 움직임도 없었던 내 몸 곳곳에서는 뼈마디가 뚜둑거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갑자기 일어서자 어지러움증이 확 일어나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정도의 통증에 허비할 시간은 없다.
"마스터의 명령이다. 모든 단장급 이상 고위 간부들은 연회장으로 집결 할 것. 지금부터 최단시간 내에 가장 효율적인 방어태세로 들어간다. 모든 단장급 이상 간부들은 연회장으로 집결하라."
마나를 이용한 목소리의 확대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아 마나 폭주의 복구는 다 끝난 것 같군. 문제는 병력의 복구와 아이템 수급 현황, 그리고 무엇보다도, 앞으로 얼마나 많은 적들이 내게 공격을 감행할 것이냐일 뿐.
"좋아, 내가 흘리는 피, 적이 흘리는 피, 따질 것까지는 없겠지. 전쟁이라면 언제나 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