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알파고 이벤트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저 개인적으로 이번 알파고 이벤트의 진행을 보며 참 여러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뒤섞이는걸 느꼈습니다. 




1. 섭섭함 

이제 인간은 정녕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인가. 
인간은 언제나 인간이 뭔가 특별한 존재라고 여기죠. 어쩌면 일종의 본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인간이라는 대상이 "수단"이 아닌 "목적" 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고 나면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기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현대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페러다임을 찬찬히 돌아보면 대다수는 그런 감정을 느낄 겁니다. 

심지어 그런 개념을 이해하고 있어서 그런 함정에는 빠지지 않을 사람 조차도 감정적으로는 시원 섭섭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죠. 




2.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SF 팬이라면 언젠가 이런 날이 올거라고 다들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냥 게임이긴 하지만 바둑은 일종의 마지노선이었죠. 

어떤 의미로 보면 굉장히 역사적인 날이에요. 그걸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죠. 
어디선가 들은 말인데 지인이 타이거 우즈 경기를 열심히 보는 걸 보면서 우즈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던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의 지인은 딱히 그렇지는 않다고 했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열심히 보느냐고 그 사람이 묻자 그 지인은.....

"타이거 우즈는 전설이 될 사람이고 그 사람의 경기를 직접 보게 된 것을 자랑 삼아 영광으로 여길 날이 올 것."  

이라고 했다고 하더군요. 

저는 지금 그 골프팬과 비슷한 마음인 것 같습니다. 




3. 이 날이 조금 늦게 왔으면 더 좋았을텐데. 

언제가 올 일. 그러나 다음이나 다다음 정도면 안 됐을까. 
이건 좀 쪼잔함 아쉬움입니다. 

바알못이긴 하지만 저도 바둑계의 중심이 점점 한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어쩔 수 없지요. 인구수는 물론 인기에서도 차이가 있으니까. 

슬슬 밀리고는 있지만 아직 최강자의 명맥은 한국이 물려받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에게 완전히 중심이 넘어간 뒤에 인공지능에게 패배하게 되면 전설의 최강자로서 일종의 정신승리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그런 생각이 좀 들더군요. 

찌질하지만 솔직히 그랬습니다. 




4. 정치적 페러다임을 바꿀 계기가 될 수 없을까. 

어제 어떤 댓글을 봤습니다. 
"알파고 때문에 직장들 잃는다고 난리들인데 엑셀 나왔다고 사람들이 할 일 없다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 
그 밑에 대댓글이 달려 있었습니다. 

"엑셀 나오기 전에는 엑셀로 혼자 할 일을 4명이 했었음." 

사람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일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엑셀로 한명이 일을 하고 있으면 일하고 있는 한명의 직원이 눈에 보이지만 사실 그 뒤에는 엑셀이 나오기 전에 일을 했었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3명의 직원이 있었다는걸 망각하죠. 

왜냐면 그 3명은 지금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사실 지난 수십년간 계속해서 진행됐던 일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경 쓰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저는 이것 역시 끓는 물 속의 개구리 현상의 한 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중요하지만 일상에서 항상 접하는 일보다는 별볼일 없더라도 임팩트 있는 사건을 더 잘 기억합니다. 
테러로 죽는 사람보다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수만배는 많은데도 사람들이 교통사고보다 테러를 더 두려워하는 것도 그래서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알파고 이벤트는 언제나 있었던 일의 연장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건 정말 [임팩트 있는] 이벤트죠. 

요즘 애들은 답이 없다며 혀차는 노인들조차 버스 안에서 "콤퓨타가 사람들 직장을 다 훔쳐 간디야~" 이러는 걸 보면 
낫 놓고 기역자라고 알려줘도 알지도, 알 의지도, 심지어 기역자의 존재에 대해 관심조차 없던 사람들의 페러다임을 조금이라도 깨고 그것이 사회적, 정치적 인식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눈곱만큼의 기대감이 생기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