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 과학 포럼
SF 속의 상상 과학과 그 실현 가능성, 그리고 과학 이야기.
SF 작품의 가능성은 어떻게 펼쳐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떤 상상의 이야기가 가능할까요?
SF에 대한 가벼운 흥미거리에서부터 새로운 창작을 위한 아이디어에 이르기까지...
여기는 과학 소식이나 정보를 소개하고, SF 속의 아이디어나 이론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상상의 꿈을 키워나가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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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8,076
개인적으로 알파고 이벤트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저 개인적으로 이번 알파고 이벤트의 진행을 보며 참 여러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뒤섞이는걸 느꼈습니다.
1. 섭섭함
이제 인간은 정녕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인가.
인간은 언제나 인간이 뭔가 특별한 존재라고 여기죠. 어쩌면 일종의 본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인간이라는 대상이 "수단"이 아닌 "목적" 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고 나면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기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현대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페러다임을 찬찬히 돌아보면 대다수는 그런 감정을 느낄 겁니다.
심지어 그런 개념을 이해하고 있어서 그런 함정에는 빠지지 않을 사람 조차도 감정적으로는 시원 섭섭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죠.
2.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SF 팬이라면 언젠가 이런 날이 올거라고 다들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냥 게임이긴 하지만 바둑은 일종의 마지노선이었죠.
어떤 의미로 보면 굉장히 역사적인 날이에요. 그걸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죠.
어디선가 들은 말인데 지인이 타이거 우즈 경기를 열심히 보는 걸 보면서 우즈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었던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의 지인은 딱히 그렇지는 않다고 했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열심히 보느냐고 그 사람이 묻자 그 지인은.....
"타이거 우즈는 전설이 될 사람이고 그 사람의 경기를 직접 보게 된 것을 자랑 삼아 영광으로 여길 날이 올 것."
이라고 했다고 하더군요.
저는 지금 그 골프팬과 비슷한 마음인 것 같습니다.
3. 이 날이 조금 늦게 왔으면 더 좋았을텐데.
언제가 올 일. 그러나 다음이나 다다음 정도면 안 됐을까.
이건 좀 쪼잔함 아쉬움입니다.
바알못이긴 하지만 저도 바둑계의 중심이 점점 한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어쩔 수 없지요. 인구수는 물론 인기에서도 차이가 있으니까.
슬슬 밀리고는 있지만 아직 최강자의 명맥은 한국이 물려받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에게 완전히 중심이 넘어간 뒤에 인공지능에게 패배하게 되면 전설의 최강자로서 일종의 정신승리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그런 생각이 좀 들더군요.
찌질하지만 솔직히 그랬습니다.
4. 정치적 페러다임을 바꿀 계기가 될 수 없을까.
어제 어떤 댓글을 봤습니다.
"알파고 때문에 직장들 잃는다고 난리들인데 엑셀 나왔다고 사람들이 할 일 없다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
그 밑에 대댓글이 달려 있었습니다.
"엑셀 나오기 전에는 엑셀로 혼자 할 일을 4명이 했었음."
사람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일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엑셀로 한명이 일을 하고 있으면 일하고 있는 한명의 직원이 눈에 보이지만 사실 그 뒤에는 엑셀이 나오기 전에 일을 했었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3명의 직원이 있었다는걸 망각하죠.
왜냐면 그 3명은 지금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사실 지난 수십년간 계속해서 진행됐던 일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경 쓰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저는 이것 역시 끓는 물 속의 개구리 현상의 한 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중요하지만 일상에서 항상 접하는 일보다는 별볼일 없더라도 임팩트 있는 사건을 더 잘 기억합니다.
테러로 죽는 사람보다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수만배는 많은데도 사람들이 교통사고보다 테러를 더 두려워하는 것도 그래서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알파고 이벤트는 언제나 있었던 일의 연장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건 정말 [임팩트 있는] 이벤트죠.
요즘 애들은 답이 없다며 혀차는 노인들조차 버스 안에서 "콤퓨타가 사람들 직장을 다 훔쳐 간디야~" 이러는 걸 보면
낫 놓고 기역자라고 알려줘도 알지도, 알 의지도, 심지어 기역자의 존재에 대해 관심조차 없던 사람들의 페러다임을 조금이라도 깨고 그것이 사회적, 정치적 인식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눈곱만큼의 기대감이 생기기도 합니다.
2016.03.12 22:02:49
사실 지금도 분배 불균형과 생태 파괴가 굉장히 심각하죠. 하지만 사람들은 딱히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장기적인 이득보다 단기적인 이득을 중시하니까요. 먼 미래에 더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어도 당장 눈 앞의 이득을 더욱 중시하죠. 게다가 미래의 이득이 불확실하다면, 현재의 이득에 훨씬 충실합니다. 또한 사회 전체가 위기에 빠져도 자신의 밥그릇에 무리가 없다면, 굳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죠. 변화는 대개 위험을 수반하는데, 사람들은 그걸 꺼리고 현재의 안정을 추구합니다. 그리고 기득권의 조작도 대중의 사고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치죠. 기득권들은 권력 유지를 위해서 '변화는 나쁘고 현재가 좋다'고 계속 주입하니까요. 더불어 새로운 사상을 허상이나 악의로 규정하고요.
그렇다면 분배 불균형이나 생태 파괴와 달리 인공지능은 대중의 위기 의식을 자극할 수 있느냐. 일단 대중이 진짜 위기 의식을 느끼려면, 위기가 급속도로 빨리/가까이 찾아와야 할 겁니다. 인공지능 때문에 실업자가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대거 생겨야 할 겁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동질감을 느끼고, 코 앞의 위기를 주목하고, 연대의 필요성을 깨닫겠죠. 하지만 인공지능이 생겨도 기업들이 노동자들을 갑자기 해고하지 않을 겁니다. 인공지능이 과연 얼마나 쓸만한지 시험 및 적응할 여유가 필요하겠죠. 그리고 아마 정부도 고용률을 보장할 겁니다. 정부와 기업가 입장에서도 사회 불만이 폭발하기 원치 않을 테니까요.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하는 식으로 노동자들은 쫓겨나겠죠. 대중은 위기에 둔감할 테고요. 하지만 고용률은 점차 낮아질 테고, 노동자들은 꾸준히 쫓겨날 테고, 어느 순간 노동자들은 잉여 인간으로 전락할 겁니다. 그리고 그때는 연대고 단합이고 혁명이고 힘들 겁니다. 워낙 기반이 없어서 권력에 저항하기 어려울 듯해요.
결국 인공지능이 위기 의식을 강하게 자극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마 생태계 파괴보다 훨씬 잘 먹히는 주제겠지만, 과연 도화선에 불을 붙일 수 있을지…. 인공지능이 등장하면 처음에 다들 놀라겠지만, 곧이어 자연스레 적응할 테고요. 착취와 불평등과 오염은 여전하겠죠. 솔직히 화성인이 쳐들어오거나 고지라가 상륙해도 사람들은 자기 밥그릇에 신경을 쓸 겁니다. 현대 사회는 워낙 바빠서 화성인이고 고지라고 신경을 못 쓸 걸요. 설사 인공지능이 위기 의식을 자극해도 그게 노동자들의 내부 갈등으로 이어질 것 같아요. 자본가들을 향한 공격으로 이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대중들이 자연히 위기 의식을 깨닫지 못할 거라고 봐요. 다만, 인공지능 문제는 진보 세력에게 보다 힘을 실어줄 겁니다. 관건은 진보 세력이 이를 이용해서 얼마나 대중들을 자극하는가 이겁니다. 인공지능이 문제가 될 기미가 보이면, 사상가, 철학자, 운동가, 진보 세력들이 계속 떠들고 외치고 난리 부르스를 춰야죠. 그리고 인공지능을 이야기하는 김에 분배 불균형과 환경 오염까지 화제를 확장해야죠.
물론 이거야 저 혼자만의 망상이고, 미래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겠죠. 누가 그걸 정확히 예상하겠습니까. 여하튼 특이점이 언제 오든, 진보 세력은 계속 떠들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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