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 과학 포럼
SF 작품의 가능성은 어떻게 펼쳐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떤 상상의 이야기가 가능할까요?
SF에 대한 가벼운 흥미거리에서부터 새로운 창작을 위한 아이디어에 이르기까지...
여기는 과학 소식이나 정보를 소개하고, SF 속의 아이디어나 이론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상상의 꿈을 키워나가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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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가 싱긋 웃었다. "게다가 저는 물에 젖는 게 싫어요. 당신네 인간들이 우리 침팬지를 지성화한 다음에 두 번째 대상으로 돌고래가 아닌 개를 골랐어야 한다는 제 생각은 여전히 그대로에요. 돌고래가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제 가장 친한 친구들 가운데 몇 명도 돌고래거든요. 하지만 돌고래가 우주 여행 종족의 대열에 끼어드는 건 웃긴다고요." 찰스는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만약 침팬지가 그 책임을 맡았다면, 지구의 지성화 과정 전체가 훨씬 적절하게 이루어졌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이번 여행으로 돌고래가 우주 여행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워요. 저는 여전히 이 우주선에 인간과 침팬지가 더 많이 탔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침팬지가 우주 여행 종족으로 인정된 건 돌고래보다 1세기 먼저였다. 하지만 1백만 년이 지나도 침팬지들은 여전히 돌고래를 보호 종족처럼 다루리라.
위 문단은 소설 <떠오르는 행성>에서 발췌했습니다. <떠오르는 행성>은 인류 우주선 스트리커의 외계 행성 탈출을 다루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인류 우주선이라고 해도 스트리커에는 비단 인간만 탑승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대다수 승무원은 돌고래입니다. 유전자 조작 돌고래가 함장과 부함장을 맡았습니다. 여타 돌고래들도 조타와 탐사 및 수리, 연구 등을 담당합니다. 인간들은 돌고래를 후배 지성체 종족으로 이끌었죠. 그런데 인간이 돌고래보다 먼저 개조한 동물이 있으니, 그게 바로 침팬지입니다. 침팬지 역시 스트리커에 탑승했지만, 내심 돌고래에게 불만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육상 동물과 해양 동물의 차이 때문이겠죠. 작중에 등장하는 침팬지 찰스는 동료 인간 생태학자에게 불만을 늘어놓습니다. 인간은 돌고래가 아니라 개를 개조했어야 마땅했다고 투덜거리죠. 사실 인간이 가장 친근하게 여기는 동물은 개입니다. 유전자 조작이 가능하다면, 아무래도 개를 개조할 확률이 높죠. 일찍이 초기 SF 소설부터 유전자 조작 견종들이 등장했습니다.
이 분야의 큰 형님뻘은 올라프 스태플던이 쓴 <시리우스>입니다. 시리우스는 양치기 개인데, 지능 수준은 인간에 필적합니다. 아니, 워낙 공부를 많이 한 덕분에 어지간한 학자나 박사와 학술 토론을 나눌 정도입니다. 공부만 잘하는 게 아니라 지혜롭기까지 해요. 우둔한 인간보다야 시리우스가 훨씬 낫습니다. 하지만 여타 바이오펑크가 그렇듯 <시리우스>에서는 아직 생체 개조 기술이 널리 퍼지지 않았습니다. 시리우스를 개조한 박사 역시 해당 연구 성과를 섣불리 발표하지 못합니다. 인간처럼 똑똑한 동물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두려워하죠. 그나마 시리우스의 겉모습은 평범한 양치기 개이기 때문에 인간 사회에서 무리없이 어울려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과 어울릴수록 자신이 인간도, 개도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어쩔 줄 모르죠. 시리우스 같은 개가 <떠오르는 행성>처럼 유전자 조작이 보편화한 세계에서 태어났다면 훨씬 좋았을 겁니다. 저 소설의 돌고래들은 그저 인간과 어울리는 걸 넘어서 아예 자신들만의 사회를 이루는 것까지 상상하니끼요. 게다가 시리우스는 자기에게 손이 없다는 걸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도구를 이용하기 위해서 손이 필수적인데, 시리우스의 겉모습은 평범한 개니까요. 개조 돌고래들은 이와 달리 강화복(!)까지 입습니다.
본래 돌고래들은 손이 없지만, 강화복에 달린 기계 손이 작업을 대신합니다. 덕분에 돌고래는 헤엄치면서 줄을 묶거나 할 수 있습니다. 시리우스가 이 모습을 봤다면, 제임스 롤프마냥 “나는 너무 일찍 태어났어!”라고 외쳤겠죠. 뭐, 생체 개조를 소제로 삼는 바이오펑크는 이렇듯 지성화 동물을 통해 인간의 진면목을 부각하거나 (인간처럼 똑똑하지만) 타인일 수 밖에 없는 동물들을 고찰합니다. 허버트 웰즈가 <모로 박사의 섬>을 썼을 때부터 그랬죠. 이런 바이오펑크의 유지를 잇는 소련 소설이 불가코프가 쓴 <개의 심장>일 겁니다. 여기서 주인공은 그저 동물의 지능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아예 인간 신체를 이식해서 동물, 그러니까 개를 완전한 인간으로 만듭니다. 실험 대상은 뒷골목의 비참한 똥개였지만, 실험 이후에 어엿한 인간으로 행동합니다. 다만, <개의 심장>은 <시리우스>와 달리 동물의 한계를 고민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실험 결과물이 개가 아니라 개에게서 비롯한 인간이니까요. 아마 불가코프는 당시 유행한 우생학이나 과학 만능주의를 비판할 생각이었겠지만, <개의 심장>은 그보다 앞서 공산주의 혁명의 단점을 폭로합니다. 소련 공산주의 혁명으로 프롤레타리아의 지위가 올라갔듯 뒷골목 똥개가 실험으로 인간이 된 셈이라고 할까요.
<개의 심장>을 읽으면, 바이오펑크 자체를 논하기보다 레닌이나 스탈린의 전체주의를 더 열심히 까는 것 같습니다. 네, 전체주의는 까야 제맛이죠. 까지 않으면, 우리나라 현 정부처럼 자꾸 대가리를 처들거든요. 하지만 개가 인간으로 변하는 바이오펑크 설정이 아니었다면, 전체주의를 그토록 신랄하게 까기 어려웠을 겁니다. 동물을 개조하는 바이오펑크는 그 기괴함 때문에 주제를 부각하기 좋죠. 모로 박사가 동물들의 살가죽과 뼈를 뜯어고치는 장면만 봐도 참…. 한편으로 유전자 조작 기술이 보다 신비하고 세련되게 등장하는 작품들도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퍽 인상적인 소설이 <스타쉽 트루퍼스>였습니다. 여기에는 일명 네오 독이라고 하는 군견이 등장합니다.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칼렙 견종입니다. 칼렙은 어린 아이 수준으로 똑똑하고, 어눌하지만 말을 할 수 있고, 일반 개에게 불가능한 임무를 수행합니다. 더군다나 군견 부대 장교와 정신적으로 감응하기 때문에 사실 초능력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음, 칼렙은 시리우스나 인간-개보다는 멍청하지만, 인류 연합 군대는 칼렙이 임무 수행에 모자라지 않는다고 판단하나 봅니다. 주요 임무는 탐지와 수색인데, 땅굴에 숨은 아라크니드를 찾죠. 어쩌면 군대는 후각 신경 등도 개조했을지 모릅니다.
과연 미래 군대가 개조 군견을 쓸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그 정도 기술이 발달하면, 굳이 군견을 개조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요. 탐지 로봇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어차피 <스타쉽 트루퍼스>는 정신 감응자처럼 각종 초인들이 은근히 등장하는 설정입니다. 그런 마당에 유전자 조작 군견이 나오지 못할 게 없겠네요. 유전자 조작과 개를 이용한 작품으로서 <모래와 슬러그의 사람들> 역시 인상적입니다. 바치갈루피가 썼는데, 아마 북미에서 최고의 바이오펑크 작가가 아닌가 싶어요. <모래와 슬러그의 사람들>에는 유전자 조작 견종이 안 나옵니다. 오히려 작중에 등장하는 개는 지극히 평범합니다. 하지만 이 평범함이 오히려 유전자 조작을 강조합니다. 이 소설의 설정은 그저 디스토피아를 넘어 거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수준입니다. 사실상 행성 환경이 광범위하게 싸그리 날아갔고, 각종 동물들은 오래 전 멸종했습니다. 인간들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유전자 조작을 아끼지 않습니다. 심지어 흙만 퍼먹고 살 수 있습니다. 소화 기관이 워낙 대단하기 때문에 흙이나 바위에서도 충분히 양분을 뽑을 수 있거든요. 재생력은 가히 트롤이 부럽지 않습니다.
그렇게 모든 게 유전자 조작으로 돌아갑니다. 유전자 조작 없이는 어떤 생물도 제대로 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주인공 일행은 우연히 평범한, 아주 정상적이고 자연적인 개를 발견합니다. 그들은 고민하죠. 이 놈을 어떻게 할지…. 내용을 누설할 수 없지만, 이처럼 씁쓸하고 충격적인 바이오펑크도 드물 것 같습니다. 작가가 하필 개를 선택한 이유도 그 때문이겠죠. 개는 인간과 가까우니까. 인간과 어울릴 수 있는 동물이니까. 평범함과 자연스러움을 강조하기 좋습니다. 비록 유전자 조작 견종이 등장하지 않지만, <모래와 슬러그의 사람들>은 생체 개조와 견종을 논할 때 꼭 언급해야 할 책일 겁니다. 게다가 바치갈루피는 <와인드 업 걸>이나 <쉽브레이커> 등등 디스토피아와 바이오펑크를 결합한 작품을 자주 썼습니다. 특히 <쉽브레이커>에는 그야말로 인간처럼 똑똑한 경비견들도 자주 등장합니다. 단순히 시리우스처럼 머리만 똑똑하거나, 인간-개처럼 그냥 인간이 아닙니다. 겉모습이 유사 인간 견종이라서 차라리 늑대인간에 가깝죠. 이런 개조 경비견들은 특유의 충성심 때문에 인간에게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설정은 <떠오르는 행성>에서 주인 종족 인간에게 의지하는 돌고래 설정과 비슷하죠.
이 밖에도 개조 견종이 등장하는 작품음 많을 겁니다. <소년과 개>처럼 대단한 작품들도 더 많고요. 아마 그것도 개가 그만큼 친숙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개가 인간의 친구인 이상 이런 작품들은 앞으로 계속 나오겠죠.
프리폴의 플로렌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