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본격적인 SF 소설의 시발점은 <프랑켄슈타인>이라고 합니다. 이게 정설은 아니지만, 대개 평론가들이 그렇게 평가하죠. 아시다시피 소설 제목의 프랑켄슈타인은 작중 등장하는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가리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인조인간을 기억하고, 인조인간이 실질적인 주인공 같지만, 제목은 박사 이름을 땄죠. '프랑켄슈타인의 인조인간'이 아니고, 달랑 박사 이름만 들어갔으니까요. 그리고 보면, <모로 박사의 섬>, <지킬 박사와 하이드>, <허버트 웨스트> 등등 박사 이름이 들어간 소설 제목이 더러 있네요. <로섬의 만능 로봇>처럼 정작 로섬의 비중은 희박한 경우도 있지만, 과학자 이름이 제목에 들어가면, 그 작품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작품들은 대개 과학자가 어떤 실험을 하고, 그 실험 결과가 세상에 파장을 미친다고 경고합니다. 과학 만능주의를 비판하는 전형적인 줄거리입니다. 다만, 시간이 흐를수록 과학자 하나만 내세우는 SF 소설은 점점 줄어드는 듯합니다. 더 이상 일개 과학자의 연구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일 겁니다. 현대 학계는 개인이 좌우하기에 너무 방대하고 복잡하니까요. <오릭스 앤 크레이그> 같은 소설이 없지 않지만.


사실 현대 사회에서는 과학자보다 자본가가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과학자가 연구하고 실험하려면 결국 돈줄이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자본가는 이익 추구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편이죠. 어느 사회주의 서적의 말처럼 자본주의는 "자본 축적을 멈추지 않는 런닝 머신이자 저거노트" 아니겠습니까. 과학자와 자본가 중에서 후자의 입김이 더 세기 마련입니다. <블러드 뮤직>이나 <쿼런틴> 같은 작품에서는 일개 연구자보다 회사의 책임이 더 크다고 나옵니다. 연구자도 잘못했지만, 그보다 회사(자본가 집단)가 훨씬 더 잘못한 셈입니다.

마이클 크라이튼 같은 양반은 아예 이걸로 줄창 시리즈를 썼죠. 상업 기술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델로스>부터 <쥬라기 공원>을 거쳐 <넥스트>까지 줄줄이 썼으니까요. <쥬라기 공원>에서 과학자나 기술자는 별로 힘이 없습니다. 자본가의 입맛대로 행동할 뿐입니다. 앨런 그랜트가 “부자들 시중 드는 건 질색이다.”고 말한 것처럼요. 아이언 말콤은 작가의 입을 대변하는데, 자본과 신기술의 관계를 아주 나노 마이크로미터 단위까지 신랄하게 깝니다. 그래도 상황은 바뀌지 않아요. 쥬라기 공원이 아니라 '해먼드 공원'이라고 불러도 될 걸요.


그럼에도 SF 작품에서 과학자들의 입지는 결코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1930~60년대의 황금 시대에서도 중요하게 활약한 과학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일종의 선례 내지 전형을 마련했고, 덕분에 요즘도 수많은 과학자들이 그런 선례를 따라갑니다. 19세기부터 1960년대까지 이어지는 과학자의 활약과 계보는 이후에도 지울 수 없는 영향을 남겼습니다. 영화와 게임에서 주로 나오는, 던전 속을 방황하며 싸우는 과학자/기술자의 이미지조차 그렇습니다. 이미 19세기에 <타임머신>이 그런 '싸우는 과학자'의 유형을 보여줬죠.

작중의 시간여행자는 어딜 보나 공돌이 타입입니다. 과학자가 아니라 기술자지만, 어쨌든 학구파에 가깝죠. 그럼에도 쇠파이프 하나 들고, 어둡고 복잡한 지하실을 헤매며, 온갖 몰록들을 줄줄이 때려잡습니다. 고든 프리먼이나 아이작 클라크는 시간 여행자에게 선배님이라고 불러야 할 겁니다. 작금의 여러 엔터테이먼트에서 우려먹는 과학자 이미지는 기존 선배들의 유형을 조합했다고 할 수 있겠죠. 게다가 설정 스케일이 넓어질수록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미치는 영향력도 거대해집니다. 모로 박사는 무인도에서 실험한 게 전부였지만, 해리 샐던은 은하계를 뒤집었죠.


해당 작품이 어떤 하위 장르에 속하는가에 따라 과학자의 전공 분야도 바뀝니다. 핵전쟁 아포칼립스에는 물리학자가 나와야 어울릴 겁니다. 공룡을 찾아 시간여행을 떠나면, 고생물학자가 주인공으로 나서야 할 겁니다. 우주를 탐구하고 외계인과 조우한다면, 천문학자가 대동해야 그럴 듯하겠죠. 전공 분야마다 유명한 가상의 과학자가 존재하기 마련이고, 이들은 해당 분야와 장르의 인식을 크게 뒤흔들었습니다. 유전 공학 분야에서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모로 박사를 뗄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중에는 <파운데이션>의 해리 샐던이나 <스페이스 비글>의 게이브너처럼 기상 전공 분야를 연구하기도 합니다. 심리역사학과 종합 과학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분야죠. 실제 학계에서도 통섭이 크게 유행했고, 수많은 학자들이 서로 협력하니까, 언젠가 심리역사학이나 종합 과학이 실제로 등장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지구 생태학처럼 거대 학문 분야는 지리적인 연구 네트워크를 상당히 중시하죠. 생태계 자체가 행성 전체를 이해하는 작업이니까요. 게다가 정보 기술 혁명 덕분에 수많은 학자들이 서로 네트워크를 이루고, 소통하고, 공동 작업까지 가능합니다. 미래의 과학 연구는 이런 쪽일지도?


생태학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개인적으로는 <듄>의 행성 생태학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듄>은 환경 변화와 식생과 동물 서식과 자원 채취와 원주민을 이야기합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맞물렸고 복잡하게 돌아갑니다. 행성 생태학자는 그걸 연구하는데, 작중에서는 리예트 카인즈가 나오죠. 이 사람은 아라키스 행성의 생태와 모래벌레의 영향을 관측하는 동시에 사막 행성을 녹음 행성으로 바꾸려고 계획합니다. 동시에 원주민들의 지도자이며 폴 아트레이드를 구조한 장본입니다. 일개 학자치고 꽤나 다채로운 역할 아닙니까.

카인즈가 저런 일을 한 이유는 생태학이 그만큼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분야이기 때문이겠죠. 현대의 생태주의 역시 환경 보존, 풀뿌리 민주주의, 다양성 존중 등을 꾀하니까요. 카인즈는 단순한 학자를 넘어 거시적인 생태주의자였죠. 폴을 구하고 생태 변화를 일으켰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은하 제국은 크게 변합니다. 사실 소설 속에서 은하 제국의 판도 변화는 카인즈에서 비롯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해리 샐던만큼 영향력이 큰 과학자입니다. 비록 폴 무앗딥의 무쌍난무에 가려서 유명세가 없을 뿐입니다. 이건 좀 아쉽더군요.


아마 SF 팬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가상의 과학자가 한두 명 있을 겁니다. 꼭 과학자가 아니라도 됩니다. 어떤 대상을 탐사하고, 연구하고, 지식을 활용하는 인물이라면, 과학자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겁니다. 우주비행사, 극지 탐험가, 로봇 공학 기술자 등도 얼마든지 과학자의 범주에 넣어도 되겠죠. 이런 과학자들은 단순한 등장인물이 아닙니다. 그 작품의 주제를 대변하거나, 이미지를 상징하거나, 일종의 아이콘으로 남기까지 합니다. 사이언스 픽션이라는 장르 명칭처럼 사이언티스트는 언제나 SF의 주연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겠죠. 검마 판타지에 간달프 같은 마법사가 존재한다면, 사이언스 픽션에는 해리 셀던 같은 과학자가 있다고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