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과 S 양사 지상파 영화프로가 다 없어진 마당에 K사가 명백을 유지해오고 있었는데 결국 폐지로 가는군요.

어린시절 추억과 로망의 한 페이지가 잘려나가는 느낌이네요.

이런 지상파 영화 방송들이 과거에 영화나 비디오를 접하기 어려웠던 시절에 유일한  가교역할을 해주던 프로였는데..

어린시절  토요명화나 주말의명화 시그널 음악을 들으며 두근두근 설레이는  마음으로 부모님이나 형누나 동생들과 함께

TV앞에 앉아서 영화를 보면서 때로는 신나하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감동도 느끼고 그랬었던 여러가지 추억들이 그립네요.

 

특히 더빙이라는 요소가 가장 매력적인 포인트였죠. 비디오나  DVD 원어로 볼때 놓치거나 느끼지 못한 새로운 분위기도 잡아주고..

부모님과 함께 볼때도 서로간에 몰입도의 강약의 간극이랄까? 그런 부분을 보완해주는 순기능도 있었고....

근데 돌이켜 보면 참 여러가지 심리적인 정서랄까? 그런게 작용한게 많았던것 같습니다.  단순히 재미랄까? 몰입도의 차원이 아니라...

 

<로마의 휴일>이나 <바람과함께사라지다> 같은 영화들을 보면서 우리식의 독특한 억양과 정서로 표현되는 남녀의 알콩달콩 로맨스 연기에 두근거리기도 하고, <플래툰> 이나 <라이언일병구하기> 같은 전쟁영화들 보면서 좀처럼 공중파에서 듣기 어려운 우리말 욕설 연기에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했고, <터미네이터> 같은 SF컬트 영화들을 보면서 우리 한국 성우들의 입을 통해서 (문학적인 표현으로 정서상으로는 낮선 던져짐이랄까?) 핵전쟁이 어쩌니 아이들이 종이장처럼 불타버리고 숯덩이처럼 찢겨나가니 산산조각난다느니 하는 섬뜩한 표현들을 들으면서 유년기의 망상적 전율을 원어로 볼때보다 몇배나 갑절로 느끼기도 하고, <이티> 나 <에이아이> 같은 영화들 보면서 남자인줄만 알았었던 (훗날 알고보니) 여성 성우들의 소년소녀 아역목소리 연기에 설레이면서도 우리 한글에서만 느낄수 있는 오묘한 어휘표현과 현지화된 유머나 신파적 표현에 깔깔 웃음을 터뜨리기도 펑펑 눈물 흘리기도 했고,  때로는 <죽은시인의 사회>나 <굿윌헌팅>, 혹은 <콘택트> 같은 영화들을 보면서 시의 3요소가 어쩌니 자본론 마르크스가 저쩌니 방정식 미적분이 어쩌고 펄사나 퀘이샤 오컴의 면도날이 어쩌니 저쩌니하는.. 학교현장에서 경험하는 여러가지 아카데믹한 대사 표현들이 우리말로 줄줄 쏟아져 나오며 표현되는 장면에서 묘한 지적 쾌감을 느끼기도 하고 정말 한 두가지 감흥이나 느낌으로 설명할수 없는 묘한 매력의 추억의 산물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요컨데...우리식으로 현지화되는 과정에서 표현되는 문화적 동질감 혹은 반대로 차이점이나 간극에 의한 스릴? 청각적 쾌감이랄까?

 

또 더빙의 장점중 하나가.. 원어로 볼때 자막으로 표현하기에 좀 애매모호하거나 전달하기 어려운 뉘앙스의 우리식의 문자표현들을 음성으로 대체할때 아주 유연할수 있다는 거죠. 가령 로맨틱 코미디 장르나 가족 영화류에서 자주 등장하는 복잡한 친인척 호칭류...들 가령..장인 장모 하는 표현들은 그렇다 쳐도 혹은 그보다 어려운 어휘들은 문자로서 자막으로 표현되기에는 좀 무리수 혹은 아예 "삼촌"  따위의 통합적으로 대체되어 표현되는 경우가 많이 보이곤 하죠. 그런데 이런 자막들이 더빙이 되어 음성으로 표현되면 그때껏 문자상으로는 다소 난해해서 잘 쓰이지 않았던 어휘들이 발화상으로는 이미 친근하게 느껴져있는 상태기에 시청자입장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컨데...'제수씨' 나 '춘부장' 같은 표현들.... 혹은 '허나', '~느냐', '자고로', '~키로'(~하기로:의 축약형) 등등...)

 

SF영화로 예를 들어보면  <인디펜던스데이> 에서 마지막에 두 주인공이 외계인 모선안에서 빠져나갈길이 없자 시가를 피우며 자폭을 결심하려 할때  그 빼도박도 못하게 된 상황을 주인공(제프골드블럼)의 주 캐릭터성의 주요 테마중에 한 부분이기도 한 아주 특수한 용어랄수 있는 체스(장기)용어인 "외통수" 라고 표현하는 경우랄지...<제 5원소> 에서 WAR(전쟁[ㅈ])라는 단어를 검색하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한 사전작업 장면처리로서 여주인공이 V[ㅅ]까지 보고 W[ㅈ]를 배울 차례라고 하니 남주인공이 V[ㅅ]는 좋은 어휘가 많이 있는 문자라면서  V[ㅅ]가 들어간 어휘를 "사랑" "사무침" "상처받기쉬운" 으로 가르쳐주는 장면으로 표현하는 연출이랄지...이런 요소들 말입니다. (요런 경우는 무엇보다 번역적 측면에서부터 굉장히 하이레벨이라고 볼수 있겠지요.) 여기가 스타워즈 관련 커뮤니티이기도 한만큼 스타워즈도 예로 안들면 아쉬우니 들어보면 <에피소드1(MBC)> 에서 한글 자막상 "파워가  다시 들어왔어요"-"용가리 사촌이야" 로 번역된 대사가 "동력이 돌아왔어요" - "괴물도 돌아왔어요" 로 음성학적 특징을 적용시켜 1:1 대응으로 번역되어 더빙된 것을 들수가 있겠네요. 이런게 그냥 자막으로 나오게 되면 그 뉘앙스나 정서가 간과되거나 생각만큼 쉽게 표현되지 못하는 부분들이 아닐까 합니다. 하나 더 들면 요런 경우들이 있겠죠. 영화 종반부에 요다가 오비완을 앉혀놓고 아나킨 문제를 결정하는 장면에서 "그놈의 고집은 스승이나 제자나 '꼭' 같구나"(형용사 똑같다의 똑의 오타가 아닙니다. "꼭 한번 만나고 싶다" 같은 말에 쓰이는 부사 "꼭" 입니다) 라는 대사로 녹음되어 표현됩니다. 요런 경우들.....

 

더빙영화를 더  찾아보면 이런 음성학적인 측면에서 재밌는 사례가 많이 있을것 같은데 한도 끝도 없을테니 이정도로 하지요. 

 

좋아하는 프로가 폐지된다는 소식에 아쉬움으로 막상 써놓고 보니 그냥 추억이나 끄적여보려고 썼는데 너무 지나치게

무슨 국어학 교지의 아마추어 가십글마냥 어설프고 딱딱한 글이 되버렸네요.

 

아무튼 이렇게 아련한 추억거리 하나가 또 사라집니다.

약자와 싸워서 얻는 값싼 승리보다
강자와 싸워서 얻는 비싼 패배가 낫다.  
                                   - Guus Hiddin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