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흐르는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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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토론을 보면서 아쉬웠던 점은 토론 과정에서 실제로 유가족들이 주장하는 특별법의 구체적인 내용이 제시되는 부분은 별로 없어보였다는 것입니다. 이 법안에 찬성하거나 반대한다면 실제로 조문을 들어서 어디가 문제되거나 그렇지 않은지를 논해야 논의가 구체성을 띄일수 있을텐제 말이죠. 유가족측의 세월호 특별법안은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수 있습니다. http://sewolho416.org/959
보시면 알겠지만, 이 법안은 대한변호사협회라는 전문가 집단에 의해 초안이 작성되었고 여기에 민변과 참사대책위의 의견이 들어간 것입니다. 내용을 보아도 비전문가들인 유가족들이 한풀이하겠다고 억지를 쓰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 법안에서 위원회 구성과 위원 자격에 관한 부분은 4조와 9조에 나와있는데, 일정 수준을 만족하는 전문가를 위원으로 하되 그 반수를 피해자 단체가 추천하여 이를 대통령이 임명하는 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유가족들이 신뢰할수 있는 위원을 선정하자는 것인데, 이것을 피해자가 직접 수사하고 기소한다는 식으로 보기는 어렵죠. 만약 그런 시각으로 본다면, 이번 사건에서 정부측은 당국의 부실한 관리감독, 부패와 유착 가능성, 신뢰를 주지 못한 구조 활동이란 면에서 피의자의 위치에 있는데, 정부측 추천위원을 받자는 여당안은 같은 논리를 적용하면 피의자가 가해자를 수사한다는 내용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법안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부분이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대책이란 것도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사례에서 검찰 수사나 특검이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둔 적이 별로 없고, 재발방지에서도 대형 참사가 반복되었다는 점에서 미흡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특별법안에서는 위원회에 강력한 수사권한을 주어서 조사하자는 것이고 이는 지금까지의 방식이 만족스럽지 못했으니 새로운 방식을 도입해보자는 명분이 있습니다. 특히 이번 사건은 누군가가 의도해서 일어난것도 아니고 여러 개인의 행위가 중첩되어서 발생하였는데 여기에는 명백한 범법행위도 있겠지만 그외에도 법적으론 문제가 없는 소소한 행위들도 원인을 제공했을 수 있을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즉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조사한다면 범법행위만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검경보다는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위원회가 맡는 것이 더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위원회의 활동내역에는 법령, 제도개선에 대한 연구와 권고가 포함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성과가 있으면 무슨 사고가 있을 때마다 매번 특별법을 만들 필요도 없겠죠. 그런데 구체적인 근거도 없이 반대만 한다면 이는 지금까지 해온대로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이대로 가자는 얘기밖에 안되죠.
정치적 성과를 얻어내려면 대화와 타협이 중요하다는 것은 저도 매우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현재 여당이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느냐면, 현재 협상 과정을 봤을때 고개를 갸웃거릴수밖에 없네요. 유가족안은 별 근거도없이 무조건 위헌이라 주장하면서 보수 언론을 통한 언플만 열심히 하고 있죠. 자기들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며 매우 뻣뻣한 자세를 무너뜨리고 있지 않습니다. 만약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였다면 유가족안의 어떤 부분이 문제되는가를 구체적으로 근거를 들어 설명하고 적절히 수정하던가 조항을 추가한다던가 하는 방안을 제시하겠죠. (예를 들면, 자기구제 금지의 원칙에 어긋날수 있으니 혈연관계는 위원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을 넣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죠)
뭐 모두가 이런 내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그러기에는 여유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를 정리해서 정확히 전달해줘야 할 언론의 역할이 크죠. 그러나 이른바 한국의 일등신문이라는 모 일간지는 공인도 아닌 김영오씨의 뒷조사에 한면을 할애하고 있죠. 그리고 얼마전에는 수사기소권 부여에 대한 찬반여론이 며칠 사이에 뒤바뀌는 여론조사결과가 나왔는데, 알고보니 처음엔 질문에 야당이 주장하고 여당이 반대한다는 내용이 넣어졌다가 나중 조사에선 빠진것이었는데 아마도 이것이 결과의 차이를 가져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진영논리에 사람들의 판단도 흐려지고 있는 것이라고 볼수 있겠죠. 언론환경의 개선도 사람들의 의식 개선도 단기간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관망한다고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각각의 위치에서 끈기있게 노력해나가는 수밖에 없겠죠. 진영논리에 갇혀 찬반으로 갈려 서로에 대한 무의미한 비난을 일삼는 것보다는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고민하고 논의하는 것이 생산적일 것입니다.
1.에서 말씀하시는 구성은 조사위원회가 아니라 특검추천위원 구성이군요. 야당은 처음부터 유족안보다 후퇴한 절충안을 가지고 협상에 임했는데 그나마도 관철시키지 못하고 대부분을 양보한 합의안을 내놓았습니다. 말씀하신 특검추천이 그나마 양보받은 것이지만, 애초에 요구하던 것과는 워낙 괴리가 크기에 유족측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죠. 그래서 그동안 유족을 대리한 야당을 제치고 여당측에 유족이 직접 대화에 나서고 있습니다만 본문에 쓴 것처럼 여당측이 워낙 경직된 태도로 임하고 있어서 유족측을 전혀 설득하지 못하고 있죠. 선거 치르는 능력만 좋았지 실제 문제 해결에는 무능한 모습이 시험치는 능력만 높다는 한국 학생들과 오버랩되는 느낌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애초에 여당이 직접 나서지 않은 것이 문제를 더욱 꼬이게 만들었다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회피에 대한 책임을 묻자는 것에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2.에 관해서는 사실 저도 타협의 여지가 있다는 입장입니다. 즉 야당이 처음에 제시한 절충안처럼 위원회에는 수사권만 부여하고 기소권은 양보할수 있다는 것이죠. 그렇지만 수사권을 양보하기 어려운 것은 말씀하신대로 진상규명에서 성과를 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더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도 적었지만 법적으론 문제가 없어도 사고의 원인을 제공하게된 행위들을 낳은 구조적 문제를 파헤치기 위해서란 것이죠. 사실 구조적 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비도덕적인 행위만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문제삼기 어려운 행위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개개인의 책임은 면하도록 하는 것이 구조적 문제를 드러나게 하는데 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처벌이 두려워 문제를 더욱 숨기게 하는 것보다는 협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죠. 물론 기본적으로 조사대상은 조사에 비협조적일테니 이를 강제할수 있는 권한이 있어야지만 이런 것도 가능합니다. 꼭 처벌을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수사를 통해 최대한 정보를 이끌어내어야지만 실질적인 제도와 관행을 개선할수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되는 것이죠. 현재 여야 합의안은 특검에 의한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다지만 특검은 90일 정도만 활동할 수 있어서 조사에 한계가 있다고 합니다. 반면 위원회는 1년 이상 활동하기로 되어있습니다. 뭐 저도 제가 쓴 것처럼 이상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을 높게 보는건 아닙니다만, 적어도 시도해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울 것이니 손을 놓자는 것은 이대로 가자는 이야기밖에 안되니까요. 그리고 우려하시는 앞으로의 남발 가능성은 낮다고 보는데, 이런 법안은 앞으로도 여야 합의가 이루어져야할 사항인데다 어차피 성과가 없으면 수사/기소권 부여 주장은 힘을 잃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3.에서 지적하신 강제 조항이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조사위원회는 무슨 초법적인 기관도 아니고 법을 만드는 권한은 엄연히 국회에 있으니까요. 다만 30조의 5항을 보면 기관이 위원회의 권고를 정당한 이유없이 이행하지 않는 경우에는 국회에서 처벌할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만약 권고안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 그만큼의 정치적인 책임이 국회에 지워지게 되므로 어느정도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다.
4.는 제가 관심있는 부분이 아니라서 별 의견은 없습니다만, 재단이 꼭 필요하지 않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재단이 별 효용도 없이 만들어져서 방만히 운영되는 사례가 많으니까요.
요약하신 1에는 동의, 2에는 비동의, 3은 법안 내용만으로 판단할수 있는 사항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2. 수사/기소권에 대해서 저는 전혀, 혹은 거의 필요 없다고 생각하지만, 여론 달래기 용으로 '어디 한번 줘보자'라고 하면 줄 수도 있겠죠. '줘도 별 볼일 없더라'는 결과가 나올 확률이 90%이상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반대하는 거지만, 그게 또 선례가 된다면 될 수도 있을테니까요. 하지만 여론에서도 반대 의견이 반 이상인 상태에서, 이것을 강행하느라 반대 급부로 놓치는 것이 많다면 별로 바람직한 상황은 아닐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버릴 카드'라고 하는 거구요. 저는 위원회 구성이 수사/기소권보다 더 중요하다고 보고, 이것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포기할 건 포기하는 것도 바람직한 협상 자세라고 봅니다. '요구'가 아니라 '협상'을 하려면 나도 뭔가 양보해야 한다는 건 상식이니까요.
3. 안전 관리에 대해서 정부 관계 기관은 권고 내용을 이행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지만, 강제성이 너무 적습니다. 이행하지 않으면 이유를 보고하면 끝이고, 그것조차 '보고하지 않을 경우' 징계 받는 것도 아니고 징계 절차를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경우에도 상급자가 징계하지 않으면 그만인 거죠. 2중 3중으로 안전장치가 갖춰진 겁니다.
아마도 안전 관리에 대한 권고 내용은 보통 법이나 대통령령으로 정해져 있어야 실행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권고 받은 관계 부처에서는 현행 법령상 이러이러해서 못한다 라고 보고서를 낼 가능성이 큽니다. 법 없어서 못한다는 것은 타당한 얘기이므로 국회에서 인정할 거고, 그걸로 끝이죠.
이런 권고가 강제성을 가지려면, 권고로 그칠 게 아니라 적어도 법안으로 만들어져서 국회 의결을 거치도록 해야할 겁니다. 그때 가서 국회가 거부한다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몇 겹으로 안전장치가 걸려 있는 '권고'로 끝내는 것보다는 훨씬 중요하게 다뤄지겠죠.
솔직히 이 부분을 보며 저는 이 법안 작성자는 안전관리를 할 의지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온갖 권리와 의무에 대해 명확하고 세세하게 규정하면서, 이 부분은 두리뭉실하기 그지 없게 넘어가거든요.
2. 여론은 반반정도로 보는게 맞을 겁니다. 그나마도 정부여당이 언플을 열심히 한 덕으로 보여지고요. 애초에 특별법에 기대할수 있는게 거의 없다면 놓쳐서 아쉬울 게 뭐가 있을까요. 협상 자체가 세월호와 선거를 연계시킨 야당의 삽질덕분에 원래는 매우 유리한 상태에서 진행될 것을 거의 다 양보한 타협안이 나오고 말았는데 어느 정도가 적절하다고 보시는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3. 그부분은 두리뭉실할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권고안이 말 그대로 각 기관에 대한 관행 개선안 정도로 그칠지 아니면 법체계 전반에 손을 보는 강한 개혁안이 될지 법 제정 시점에서는 알 수도 없는데 어떤식으로 강제한다는 조항을 넣기도 어렵고 설사 넣는다 해도 위헌적일 소지조차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법안 작성자들이 재발방지에 관심이 없어서 이렇게 된것이 아니고, 전문가들이 당연히 이런 부분을 고려해서 그렇게 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법의 전문가가 아닌 입장에서는 논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지적하신 처벌 대상을 보면 '관계기관의 장'이라는 충분히 상급자가 지목이 되어있고요, 해당 기관에 대한 권고가 현행 법체계에 맞지 않는다면 그런 법령의 개정안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애초에 특별법을 만드는 것도, 권고안을 받아들여 적용하도록 만드는 것도 주체는 국회입니다. 결국엔 모든 것이 국회의 개혁 의지에 달려있는 셈이죠. 만약 국회의 개혁 의지가 약하다면 권고안은 제대로 실행되지 않겠지만,당장 실행되지 않더라도 권고안에서 제시된 개혁 방안 자체는 다음 선거에서 공약으로 넣는 등 정치사회적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안전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특별법만 제정된다고 모든게 한방에 해결되는게 아니고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2. 반반이 맞는데, 오차 범위 내에서 반대 측이 많으니까 '반 이상'이라고 표현한 겁니다. 어차피 오차범위 이내니까 더 이상 세세하게 따지는 건 무의미한 것 것 같고요.
협상에서 '적절하다'가 있을 수 있을까요. 100% 내 의도를 반영하고 싶은 목표가 있겠고, 그 중에 적당히 타협하여 실제로 양보 받은 성과가 있겠죠. 목표에서 성과를 어느 정도까지 달성해내느냐는 협상자들의 능력에 달린 문제지, 어떤 정해져 있는 '적절함'이 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협상이 중요한 게임에서 상대방이 상황을 보는 시각을 180도 반대 방향으로 왜곡시켜 버림으로써 50% 정도의 타협안이 아니라 목표를 150% 이상으로 달성하는 (상대가 반반씩 타협하기는 커녕 자기가 원래 가졌던 것까지 더 퍼다주게 만들어 버리는) 사람도 본 적 있습니다.
다만 제가 볼 때 위원회를 친 유가족 중심으로 구성하는 것은 중요한 사안인 반면, 위원회의 활동 과정에서 수사/기소권은 그리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진실 규명을 위해서는 혹시 필요하더라도 수사권 정도인데, 그마저도 광범위한 부서에 대한 비리나 책임 문제 같이 행정적인 부분을 감시하려면 위원회같은 소규모 조직보다는 일시에 대규모 전문 인력을 동원할 수 있는 감사원이나 경찰이 더 낫습니다. 따라서 그쪽의 협조를 받도록 규정을 짜는 편이 유리하겠죠.
즉 실질적으로 가지더라도 별 효과는 없고 민폐만 끼치기 쉽다는 게 제 생각인데, 다만 이게 이미 정치적으로 이슈가 된 중요한 사안이 된 만큼, 이걸 포기한다고 하면 협상에서 다른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3. 관행 개선안이 되었든 법 자체를 고치는 사안이 되었든 그 사안에 대해 국회가 직접 처리하게 한다면 문제가 될 일은 없습니다. (국회에서 법령을 정했으므로, 관계기관은 따르기만 하면 되지요) 하지만 여긴 국회의 의무는 하나도 없고, 행정기관의 의무도 두리뭉실하게 되어 있어요.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수 있다는 거죠.
그런 상태인데도 '법 전문가가 당연히 고려했을 거다', '권고안에는 법령의 개정안도 충분히 포함되어 있을 거다'라는 건 지나친 낙관론이 아닌가 싶네요. 당장 이 특별법도 법이고, 우리는 법 전문가가 아닌데 법안에 대해 논의 중이지 않습니까. 법안이 적절하니 아니니에 대해 논하면서,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전문가가 알아서 잘 했을 거다 라는 건 무슨 입장인지 모르겠습니다. 만일 저것과 거의 반대되는 내용을 다른 법 전문가가 특별법 법안으로 제안했다면, 그것도 적절한 법안일 거라고 믿고 맡기실 겁니까.
게다가 현재 법안을 제안한 법 전문가는 (정확히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전문가라고 하니까) 그렇다 치고, 아직 구성도 안된 위원회가 '전문가라서' 법안을 만들든 권고를 하든 알아서 잘 할 거라는 얘기는, 위원회 구성이 유족측 위주가 되었든 여당측 위주가 되었든 문제 없다는 얘기나 매한가지입니다. 어느쪽이든 '전문가'를 촉탁할 것이고, '전문가'면 알아서 잘 운영할거라는 뜻이 되니까요.
덧붙여, 저는 기존에 안전 관리 규정이 없다거나 미흡해서 이번 일이 일어났다고 보지 않습니다.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문화, 더 정확하게는 규정을 제대로 지킬 수가 없는 문화가 만연해서 그렇다고 생각하지요. 당장 이번에 드러난 선적 서류만 해도, 실제와 작성 내용이 판이하게 달랐지 않습니까. 이런 서류와 실제와의 괴리는 실제로 그 관리가 효율적으로 운용될 수 있도록 '현실화' 되지 않는 한, 아무리 규정을 강하고 엄격하게 만들어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규정의 강도 못지 않게 관리 책임도 중요한 겁니다.
가령 '승무원이 열흘에 한번 안전 훈련을 한다'는 규정을 봅시다. 의도는 좋지요. 강력한 안전 규정입니다. 그런데 상업적으로 물류를 담당하는 업체 중에 그런 강도로 안전 훈련하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할 수나 있겠습니까? 만일 한다 치고, 수많은 여객사들이 열흘에 한번씩 안전 훈련 하는 걸 누가 관리감독합니까. 열흘에 한번이면 여객사 10개 당 관리 인원 1명이 필요합니다. 관리 인력 확보도 큰 일이거니와, 10:1이면 관리감독하면서 순식간에 안면 트고, 적당히 '좋게좋게' 넘어가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인원수 늘린다고 해결될 게 아니라는 거죠. 그렇다고 업체와 관리 부서 간의 유착이 생기지 않도록 관리 인원을 매번 다른 지역으로 전출시킨다? 그것도 엄청난 행정 수요고 비현실적인 방법입니다. 단순히 규정의 강도만 늘린다고 만사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거죠.
그런데 만일 이렇게 현실적이지 않은 규정을 실제로 실행할 수 있도록 '완화' 했다고 했을 때, 그 후에 사고가 발생하면 (사고라는 것의 특성 상 언젠가는 나게 되어 있습니다. 크냐 작냐의 차이일 뿐.), 그 책임을 누가 지겠습니까? 여기에 대한 명백한 도덕적/법적 면책이 없다면, 어떤 위원이 되었든 비현실적으로 강한 규정, 그래서 실제로는 아무도 안전 관리를 안 하게 만드는 규정에는 차마 손대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그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권고'고, '서면 보고'고, '징계 절차'가 들어가는 겁니다. 몇 겹의 안전장치를 해 둬서 '권고'가 실제로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그 책임 선상에 있는 그 누구도 - 위원부터 기관장까지 - 직접적인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게 말이죠. 지금까지 그렇게 책임 소재를 분산시켜온 게 안전 관리가 부실의 원인이었는데, 지금 또 바로 그런 부실함으로 관리 부실을 관리하겠다는 게 이 법안인 거에요.
과거 특별법-특검이 제대로 못했으니까 이번은 다르게 해보자고 수사/기소권을 주장하면서, 어째서 그보다 더 중요한 '결과'를 내는 부분에 대해서는 과거와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권고안인 건가요. 수사/기소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을 전혀 신뢰하지 않으면서, 어째서 안전관리에 있어서는 '전문가들이 알아서 다 해주실 거야'라고 믿고 맡겨버리는 건가요. 검경 못지 않게 안전 관리도 대대로 부실했다는 건 삼풍백화점 이래 지금까지 이어진 수많은 대형 사고들로 이미 많이 증명되지 않았습니까.
저는 솔직히 의문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법안의 주 목적이 분풀이할 처벌 대상을 찾는 겁니까, 아니면 앞으로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겁니까. 그리고 이 땅에서 계속 살아갈 국민으로서, 과연 어느쪽에 더 무게를 두어야 겠습니까.
참고로, 법안에서 주요 이슈로 다루고 있는 부분에 대해 단순 분량을 재어 봤습니다.
조직이라든가 활동 방식 같이 특정 분야로 볼 수 없는 공통 부분은 (임의 동행 같은 사실상 수사권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까지 포함하여) 모두 제외했고, '사후 재발 방지를 위한 홍보'같이 재단 활동으로 의심되는 사항도 명백하지 않은 이상 일단 안전 관리에 포함시켰습니다.
1. 수사/기소권에 관한 내용: 473단어 3.99kB
2. 안전 관리 및 체제 개선에 관한 내용: 197단어 1.40kB
3. 피해자 지원 및 보상에 관한 내용: 415단어 3.20kB
4. 세월호 기념 재단 설립에 관한 내용 (3.의 지원 및 보상과 별도): 184단어 1.44kb
보다시피 안전 관리에 대한 내용은 수사/기소권 (사실상 수사권이나 다름 없는 위원회 활동을 위한 '조사권'과는 별개의, 순수하게 조사 위원회가 검사/경찰과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수사/기소권에 대한 내용입니다)이나 피해자 보상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고, 기념 재단 설립과 동등한 수준입니다.
이런 평가 방식에서 양이 곧 질에 비례한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법안에서 중시하는 관심사가 어느 쪽인지는 한 눈에 알 수 있을 겁니다.
2. 제가 본 여론조사에선 찬성이 더 많았습니다만, 어쨌든 더 따질 필요는 없겠죠. 그러니까 수사/기소권은 필요없으니 이걸 포기하는 대신위원회를 친 유가족 중심으로 구성하는 것만 달성되면 된다고 보시는 건데, 사실 이 구성도 뭔가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데 도움이 되어서가 아니라 유가족을 납득시키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견해로 파악하면 될까요?
3. 권고의 강제성이 부족한 점을 들어 이 법안의 작성자들은 재발방지에는 관심이 없다고 보시고 계신데, 이것에 대해서 법적 이유로 그렇게 되었을 것이란 반론을 제기한 것이죠. 그리고 이 반론을 검증하려면 법 전문가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법에 더 강력한 강제 조항을 넣는데 법적 문제가 없다면 이 반론은 틀린게 되겠고, 이와는 반대로 맞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부분은 어디서 변호사라도 모셔오지 않는한 더 논의가 진전되기가 힘드니 이정도에서 멈추자는 것이죠. 분량에 관한 부분은 당장 결과를 내놓을 수 있는 사항과 아닌 것의 차이로 보고 있습니다.
단순히 '전문가라서' 알아서 잘할 것이란게 아니라, 그 전문가가 얼마나 중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느냐 관건입니다. 먼저 그 선임된 전문가가 중립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또 전문가 자신은 중립적이라도 그를 선임하고 지휘하는 위원이 그렇지 않다면 활동에 제약을 받겠죠. 그래서 위원 구성이 중요한 것이고요.
기존 안전 관리 규정이 없거나 미흡한 탓이 아니라 규정을 지키지 못하는 문화, 즉 관행이 이번 사고의 원인이라는 데에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책임회피 때문에 규정의 완화를 통한 현실화가 불가능하다면 비단 위원회가 아니더라도 누구도 손대는 것이 불가능할 겁니다. 그리고 비현실적인 제도만이 이러한 관행의 원인은 아닙니다. 저는 규정을 지키고 또 지키도록 하는 데에는 비용이 든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한국 사회는 안전에 대한 비용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았고, 그 댓가로 잇달은 대형 참사를 겪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안전이 중요하다고 무한정 돈을 쏟을 수는 없겠죠. 어디선가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야 하는데, 앞서 제시하신 제대로 지킬 경우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여야 하는 규정 같은 경우는 국회에서 공개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위원회의 권고는 적어도 이런 문제들을 공론의 장으로 옯겨놓는 효과는 있을 것이고, 잘하면 적절한 대안제시도 가능할지 모릅니다.
이렇게 적긴 했지만 저도 특별법이 원안대로 통과되면 모든 것이 잘 될것이라 확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대한 약간의 기대를 걸고 있을 뿐입니다. 위원회가 제대로 된 재발방지대책을 내놓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포기하면 개선 가능성은 제로로 수렴할테니까요.
권고안의 처리방법을 미흡하게 보시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바는 잘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여전히 이게 정말 의지가 없어서인지 어떠한 현실적인 한계가 있어서인지는 판단재료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어서 결론은 유보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전문가의 의견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고요. 물론 전문가가 아니라도 판단할수 있지만 아무래도 관련지식이 많은 쪽이 좀더 납득할 만한 결론을 내릴 수 있겠죠.
그리고 설사 처리방안이 미흡하다고 해도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권고안이 나오는 것 자체가 일정한 성과라고 보고 있습니다. 법안에서 필요한 내용을 정부 부처에 다 떠넘긴다고 하셨지만 30조 3항에 있는 '국가가 하여야 할 조치'에서 국가란 정부와 국회를 포괄하는 개념이라 볼수 있으므로 그렇게만 볼수는 없습니다. 법령에 대한 개혁이란 말이 들어간 이상 국회의 역할이 빠질 수가 없거든요. 저도 처벌보다는 재발방지가 중요하고 이를 위해선 시스템 개혁이 중요하다는 입장인데, 구체적으로는 규정을 지키면 지금처럼 손해가 아니라 이득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재설계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개혁에 관한 선행연구들이 있으니 이런 방안들이 주목을 받는 계기라도 되었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유족들이 강경한 입장인 이상 특별법 자체가 무산되진 않을 것 같고 어쨌든 위원회가 만들어지긴 할텐데, 기왕 이만큼 비용을 들여서 설치된 기구라면 그냥 검경에 맡겨도 될 일만 처리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해주길 원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개혁안에 대한 반발에 대처하기 위해 근거를 충실히 하려면 강제적인 조사권, 즉 수사권이 있는 편이 좋을 것이란 겁니다. 설사 위원 대다수가 처벌에만 관심이 있다 해도 일부라도 이런 방향에 관심이 있다면 수사권도 유효적절히 활용될 수 있다고 봅니다. 적어도 경직된 정부부처나 국회에만 맡겨두는 것 보다는 효과적이고, 의견 수렴을 통해 이런 방향으로 유도할 여지도 있다고 봅니다. 물론 그렇게 하려면 이런 부분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겠죠.
대충 이정도면 동의 가능한 부분과 의견차이가 정리된 것 같으니 이쯤에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성실하게 응답해주신 것에 감사드리며, 좋은 추석 되시길 바랍니다.
1. 위원회 구성에 대해서는, 야당이 이미 '실질적 반반 (야당 2명 + 야당이 동의한 여당 2명, 기타 3명을 포함한 7명)'이라는 합의를 이루어 냈음에도 원안대로 진행하지 못했다고 까이고 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어째서 여야를 포함한 정치권 대 유가족 등 피해자라는 구도로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여당 대 야당이라는 구도로 협상이 되었느냐 하는 것은 심각하게 답답한 상황이긴 합니다. 노련한 여당이 여론의 화살을 막기 위해 야당을 총알받이로 이용한 셈이거든요.
하지만 특별법도 법이고, 법은 국회에서 만드는 것이므로, 결국 피해자 유가족이 아니라 국회의원들의 합의에 의해 제정될 수 밖에 없습니다. 유가족들은 원칙적으로 '요구' 밖에 못 하는 거죠. 결국 법 제정을 실행한다는 면에서 보면 여야 합의라는 수순을 밟을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야당은 할만큼은 했다고 봅니다. 그것을 유가족들이 수용하느냐의 문제인 거죠.
여기서 진짜 문제는 야당과 유가족들과의 관계가 아니라, '여당이 왜 직접 피해자의 말을 듣고 의견을 반영하지 않느냐, 이 사안에 어떻게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있느냐'라는 점에 있다고 봅니다. 저는 사실 이점이 이번 특별법 관련하여 모든 말썽을 불러일으키는 핵심이라고 보는데, 불행히도 이점에 집중하는 언론은 많지 않더군요. 만일 상호 신뢰가 있다면 유가족도 여당의 말을 안 들을 이유가 없고, 여당도 유가족의 말을 안 들을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여당이 발뺌함으로써 이미 잃은 신뢰는 어쩔 수 없고,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해 최대한 타협안을 짜내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2. 수사, 기소권 문제
저는 여전히 반대인 게, 이번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원칙적으로 위원회의 직접적인 수사/기소권이 필요 없다고 봅니다. 검경의 지원을 받는 형식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거든요. 그런데 직접적으로 수사/기소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역시 마찬가지로 신뢰 문제 때문이겠죠. 정부 측이 수사/기소해서는 진상을 규명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걸 겁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위원회가 그걸 가지고 있다 해도 저는 실질적으로 무언가가 '대단한 것'이 나올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관련자들의 시시시콜콜한 비리, 근무 태만, 기타 등등 비슷한 것들이 나오겠죠. 그러나 과연 여객선의 안전 관리 소홀이라는 사안에 대해서 저 윗선까지 이어지는 구조적인 연줄이 명확히 밝혀질 것인가?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골프장에서, 혹은 점심 식사 하면서 부하직원들에게 '요즘 해운사들 사정이 어렵다며?'라고 한마디 한 것이 과연 어떤 처벌을 할 수 있는 빌미인가, 라는 면에서 불행히도 아니라는 거죠. 관공서에서 압력과 비리는 대부분 이렇게 은유적으로 이루어지고, 명백한 증거를 요구하는 현대 법 정신으로는 잡아넣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과거 특검이나 특별 위원회들의 활동이 제한적이었던 이유 역시 윗선에서의 명백하고 구체적인 압력이 있었다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이렇게 관료들의 숨은 행동이 뜨뜻미지근한 식이다 보니 외부의 제3자로서는 뭔가 구체적으로 걸고 넘어질 사유를 잡지 못한 게 크거든요. 결국 위원회건 뭐건, 신이 아닌 이상 명백하게 기록으로 남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정확한 진실을 규명하고 피해자 측이 원하는 정도의 처벌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수사/기소권을 가져 봐야 별다른 성과도 없이 무슨 일 터질 때마다 수사/기소권을 남발하게 되는 전례가 될 뿐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400명이 죽으면 수사/기소권을 주고, 20명이 죽으면 안 준다고 할 명분은 없는 거니까요. 20명 죽은 사건에 주면 1명 죽은 사건도 달라고 할 거고 말이죠.
저는 이게 어차피 명분일 뿐 실리가 적을 거라고 보므로 '그렇게까지 고집할 문제인가'라고 생각합니다. 끝까지 쥐고 있어 봐야 별 쓸데도 없으니, 더 유용한 목표를 쟁취하기 위해 버리는 카드가 되어야 한다는 거지요.
3. 재발 방지 문제
이건 전문 위원회의 구성이 확실히 유용한 분야입니다. 그러나 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 분야에서는 '권고'로 끝날 뿐, 구체적으로 강제하는 조항이 전혀 없습니다. 전체 초안 중에서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제일 부실합니다. 제가 이번 특별법 논란을 근본적으로 재발 방지가 아니라 유가족의 살풀이라고 보는 이유도 이겁니다. 이래서야 최소한 '재발방지'라는 측면에서는 유야무야 되었던 지난 특별법과 다를 게 없죠. 과거 그 어떤 것보다도 재발 방지가 중요한 사건인데 말입니다.
4. 위로 사업을 위한 재단 구성 문제
법안에서 수사/기소권 항목 못지 않게 많이 관심을 가지고 구체화되어 있는 부분입니다. '국상'인 만큼 특례로 한시적인 국가 지원 같은 것이 있어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원래라면 운항 회사와 유가족들 간의 민사로 해결해야 할 부분입니다), 기념 사업 등을 위한 재단 구성에는 반대합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사고 재발 방지지, 기념 사업 밥그릇 늘리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리 목적을 제한한다고 했지만, 재단이 설립되고 운영하는 것 자체가 돈입니다. 거기에 수십 수백 명의 일자리가 생기지요. 그럴 돈이 있으면 안전 관리에 예산을 넣는 것이 유용하다고 보는 겁니다.
기니까 세 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정부 및 여당은 유가족들과의 협의를 회피했다. 이에 대한 책임론을 들고 나오는 게 중요하다.
2. 수사, 기소권 확보는 득보다 실이 많은 주장이고, 필요도 없다.
3. 이 법안은 재발 방지가 아니라 처벌 및 위로 (에 덧붙인 밥그릇 놓기)에 방점이 놓여 있다. 정말로 '나라'를 위한 법이라면, 안전 관리를 최우선사항으로 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