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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문학관 - 작가 : nitrocity1
글 수 40
다음 날. 통신장비를 통해 수신되는 네트워크 방송에서는 하루종일 뉴로다이브에서 특집으로 마련한, 쿠와르 행성 분쟁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따라서 아르사브 시를 기반으로 지상작전을 전개해 단숨에 쿠와르 행성을 수복하려던 갤럭시 로테이션 사의 작전은 초반부터 차질을 빚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어떤 방법으로 쿠와르 해방전선이 2세대 오르비탈 캐논을 손에 넣었는가'와 '갤럭시 로테이션의 향후 작전 방향'이 가장 큰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한편, 쿠와르 행성 공역까지 후퇴한 진압군은 지원군을 기다리며..."
카림은 뉴스를 들으며 라제스에게 말했다.
"대단하네요, 라제스가 쓴 기사가 그대로 방송되다니."
"당연한 거 아니야?"
"그렇지 않아요, 뉴로다이브 네트워크가 닿아있는 모든 곳에 라제스의 생각이 전달되는 거잖아요. 사실상 전 우주에 사는 사람들이 저걸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구요."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듯이 라제스를 바라보던 카림은, 표정을 바꾸며 물었다.
"그런데, 아깝지 않아요? 이 기회에 직접 현지 리포트를 찍어보내면 라제스의 얼굴도 방송을 타고, 그렇게되면 인지도가 급상승할텐데요."
"하나도 아깝지 않아. 얼굴로 승부하는 건 아이돌 가수들이나 하는 짓이지. 난 어디까지나 이거!"
라제스는 자신이 들고있던 펜을 들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이거 하나로 이름을 날릴거라구."
"투철한 직업정신이네요."
"뭐, 툭하면 '일이니까'라는 대사를 말하는 누군가보다는 못하겠지."
"네에..."
한방 먹었다는 표정을 짓던 카림은, 다시 멀티비전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갤럭시 로테이션은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까요?"
"글쎄.. 쿠와르 행성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지원군이 오더라도 그렇게 많이 기대할 수는 없을거야. 게다가 이 전쟁의 당사자는 어디까지나 '미르'지 '갤럭시 로테이션'이 아니니까. 아무리 자회사가 곤경에 빠진다고 해도, 본사의 이미지 망치고 돈은 돈대로 버려가면서 그렇게 열성을 보일리가 없잖아? 아마 증원군도 한두번 정도가 끝이겠지."
"하지만 문제는 현재 다가브 시의 대공 방어망이 그러한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느냐죠."
"그건 그렇지만..."
카림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계속 뭔가를 써내려가던 라제스는 자신이 쓴 글을 다시 한번 훑어본 후 만족했는지 글씨가 빽빽하게 쓰여진 인화지를 전송기의 스캐너 속으로 밀어넣었다.
"지금 그건 뭐예요?"
"아, 우리가 봤던 오르비탈 캐논에 대해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해놓은 거야. 이정도 자료만 있어도 뉴로다이브 자료분석반 친구들이 분석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테니까. 너도 아까 들었듯이, 지금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거리는 '어떻게 쿠와르 행성같은 소규모 집단이 이런 무기를 갖게 되었는가'라구."
"네에.. 그러면 다음 기사는 언제 쓰러..."
"왜애애애애애앵!!"
"바로 지금이지."
다가브 시내에 요란한 공습경보가 울리기 시작하자, 라제스가 재빨리 카메라를 챙기며 튕기듯 일어섰다.
곧이어 모든 사람들이 방공호 안으로 대피하는 속에서, 카림이 운전하는 APC가 반대 방향으로 뛰쳐나왔다.
"하지만 이거.. 너무 빠른 것 아니예요? 갤럭시 로테이션의 가장 가까운 전진기지에서 출발했다고 쳐도, 하루만에 도착하는 건 불가능할텐데."
"아마 모종의 지시가 내려왔겠지. 더 이상 피해를 감수하기 싫으니 증원군을 보내줄 수 없다는 식의. 더 심한 경우엔 철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을지도 모르고."
그 말을 들은 카림이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다면 무엇때문에 갤럭시 로테이션의 패잔병들이 다시 덤벼드는 걸까요? 본사의 지시까지 어겨가면서."
"혹시 또 모르지."
라제스는 자신이 출발하기 전 종합해두었던 자료를 흝어보며 대답했다.
"이번 원정군 총 지휘관은 갤럭시 로테이션 19섹터 무력자원 관리부 부장이 담당하고 있으니까."
"그게 무슨 상관이죠?"
"상관이 아주 많아. 부장급 인물이 저정도 함대의 지휘관이 되었다는 건 상당히 빠른 승진이라구. 아마 출세를 위해서라면 물불 안가리는 사람일걸? 그런 인간이 첫 전투에서 순양함을 말아먹었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안간힘을 쓸수밖에 없는거지."
"과연. 본사로 끌려가 숙청당하기 전에 어떻게든 만회를 해보겠다는 거군요."
"하지만 전쟁에서 개인적인 욕심으로 섣불리 덤볐다가 좋은 꼴을 본 역사는 없는데 말이야.."
"뭐,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이제 곧 알 수 있겠죠."
카림은 하늘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헤드셋의 원거리 레이다에는 아르사브에서 살아남은 잔존병력들이 작렬하는 태양아래 다시 서서히 하강을 시작하는 모습이 잡히고 있었다. 그리고 이에 대응하려는 듯이 다가브 시내 곳곳에서도 미사일이 길게 꼬리를 끌며 날아올랐다.
"파바바밧!"
콩볶는듯한 소리를 내며 도시 상공에서 자폭한 미사일들은 검붉은 연기를 사방으로 뿌리며 사라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가브 시의 상공은 붉은 구름에 완전히 뒤덮혔다.
"에너지 산란용 연막이네요."
"응.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라제스의 대꾸가 끝나기 무섭게 그 효과를 입증시켜 주겠다는듯이 전함에서 이온빔이 번쩍였다. 기세 좋게 떨어져내리던 광선은, 그러나 연막층을 지나면서 그 위력이 급격하게 감소하기 시작했고, 결국 지상에 도착할때쯤엔 벙커 하나도 제대로 부술 수 없을 정도의 파괴력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확실히 효과가 있기는 있는것 같지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비록 공격에는 실패했지만 이온빔이 갖는 질량파는 보호 연막층의 곳곳에 커다란 구멍을 뚫으며 떨어져내렸고, 그 구멍을 메꾸기 위한 연막 미사일이 도착하기도 전에 전함의 포신에서는 두번째 공격의 물결이 시작되었다. 위성궤도상에서도 지상의 이동 차량을 정확히 저격 가능한 것이 자랑인 사격 제어 시스템에게 있어서 연막층에 뚫린 커다란 구멍 안으로 사격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덕분에 이번에는 거의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온전히 다가브 시내에 도달한 이온빔은 빌딩 사이를 날뛰며 시내 곳곳에 화상을 입혔다.
이에 맞서서 발사구를 개방한 대공 미사일 터렛에서도 연달아 대함미사일이 발사되었고, 앞서 발사되었던 연막탄과는 크기부터가 차원이 다른 요격 미사일이 하얀 궤적을 남기며 전함을 향해 돌진을 시작했다. 상당수는 지상으로 떨어져내리는 이온빔에 의해 공중분해 되어버렸고, 대기권을 벗어난 미사일 역시 구축함의 자체 요격체계에 가로막혀 대다수가 목표물에 닿지도 못한채 사라졌다. 그러나 워낙 많은 수가 발사되었기에 그 모두를 요격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비록 발사된 숫자에 비하면 극히 적은 수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은 미사일이 하나 둘씩 목표물에 꽂히며 방어력을 착실히 갉아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해적들을 막기위한 컨셉으로 배치된 다가브 시의 대공 방어망은 자신들의 원래 설정 목표인 코르벳이나 프리깃함보다 훨씬 더 강력한 장갑으로 무장한 전함을 상대해야 했고, 이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아는 갤럭시 로테이션의 함대는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는 기본 전략에 따라 1차 복합장갑이 벗겨져 나가는 것 정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대응사격을 하며 서서히 거리를 좁혀가고 있었다.
게다가 과잉보호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다중 장갑을 두르고 있는 순양함은 함대의 선두에 서서 거대한 방패 역할을 하며 가장 먼저 대기권 돌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기권을 빠져나오자 마자 이제는 요격당하더라도 그다지 큰 피해없이 상륙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섰는지, 곧바로 수많은 코르벳 수송선들을 전개시키기 시작했다.
적들이 가까워짐에 따라 상대적으로 사정거리가 짧아서 침묵을 지켜야했던 근거리 요격 시스템 - 단거리 에너지 병기와 멀티 미사일, 차량형 방공포대와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멸시받기는 하지만 아직도 쓸만한 화약병기에 심지어는 개인화기에 이르기까지 - 다가브 시내의 모든 무기가 하늘을 향해 발사되며 도시 전체가 폭음과 에너지 병기의 빛무리에 휩싸였다.
이러한 전면적인 요격에 힘입어 1차로 상륙을 시도하던 십여척의 코르벳함이 공중에서 폭발하며 그 잔해를 마치 비처럼 뿌렸고, 상대적으로 빈약한 장갑을 두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선두에 서서 만용을 부리던 구형 구축함 한대 역시 후미에서 폭발을 일으키며 서서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순양함과 지상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코르벳함이 요격받는 시간은 줄어들었고, 결국 세번째로 전개된 코르벳 수송선 부대가 지상에 성공적으로 착륙하면서 전차와 장갑차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아, 역시.. 해적들을 노리고 만든 대공 방어망으로 정규군을 막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했을지도."
"확실히.. 쿠와르 해방전선의 지상군도 여전히 건재하고, 방공 시스템도 아직까지는 대부분 남아있으니 완전히 함락되려면 상당한 피해는 감수해야겠지만, 이제 다가브 시가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야."
"그러니까, 아르사브같은 변두리 도시에 오르비탈 캐논을 배치한 것 부터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구요. 차라리 이곳에 배치했더라면 최소한 좀 더 오래 버틸 수는 있었을텐데 말이죠."
"아마 해방전선의 수뇌부는 아르사브에서 상대를 거의 전멸시킬 수 있었을 걸로 기대했나보지. 하지만, 아무리 2세대 오르비탈 캐논이라고 해도,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 거 아닐까? 뭐, 결국엔 계산착오라는 거겠지."
카림과 라제스가 이번 전쟁은 끝났다고 판단을 내렸을 때, 갑자기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이어지던 전투로 인한 진동과는 차원이 다른 떨림에 의아해하며 뒷쪽을 바라본 그들은 곧이어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뭐, 뭐야 저건!"
"오르비탈 캐논이.. 움직여?!"
웬만한 빌딩 높이의 거대 포신이, 핵융합 발전기가, 냉각기와 송전선이, 사격 통제탑과 전산장비가 각각 궤도차량에 탑재된 채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도시 외곽지역에 도착한 오르비탈 캐논은 누워있던 포신을 다시 치켜들며 신속하게 부속 건물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하하.. 하하하... 마, 말도 안돼.. 에너지 공급과 입자 가속의 안정성을 위해서는 지하 깊숙히 기초공사를 하고 포대 구조물을 박아넣어야 하는데.. 이동형 차량 위에서 발사한다니, 저런 어이없는 일이 성공할 리가..."
그러나 카림의 불신감 가득한 반응을 비웃기라도 하는듯이, 오르비탈 캐논은 어느새 건물간의 접속을 끝마치고 서서히 에너지를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길다란 포신의 초전도 코일이 푸르스름한 빛을 발하며 극한의 가속을 할 때쯤, 한창 신나게 상륙을 시작하려던 갤럭시 로테이션의 함대도 이를 알아차렸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어있었다.
"이건 정말 말도 안돼애애애!"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듯이 소리치는 카림의 목소리는, 곧이어 발사된 오르비탈 캐논의 사격음에 묻혀버렸다. 모래 언덕 위에서 상황을 관찰하던 라제스와 카림의 머리 위를 지나, 최후의 심판을 가하듯 오르비탈 캐논의 일격이 날아갔다.
워낙 가깝게 접근해있던 함대인지라, 눈 감고 쏴도 맞을만한 거리에서 발사된 오르비탈 캐논은 그대로 목표를 관통했고, 그렇지 않아도 순양함을 방패로 삼기위해 전함간의 안전거리조차 무시하며 밀집해있던 갤럭시 로테이션 함대는 얼핏 보기에도 상당수가 폭발 반경을 벗어나기는 힘든 위치에 있었다..
지금부터 죽어갈 사람들을 위해 잠시 묵념이라도 하는 듯, 모든 공격이 순간 멈춰버렸다. 그리고 곧이어 시작되는 파멸의 서곡. 너무 가까운 곳에 디멘션 홀이 열려서인지 지상에 서있던 카림과 라제스는 자신들 역시 빨려들어가는 게 아닌가, 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대지가 흔들리고, 거센 바람이 불며 하늘에 뚫린 조그만 구멍으로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따라서 아르사브 시를 기반으로 지상작전을 전개해 단숨에 쿠와르 행성을 수복하려던 갤럭시 로테이션 사의 작전은 초반부터 차질을 빚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어떤 방법으로 쿠와르 해방전선이 2세대 오르비탈 캐논을 손에 넣었는가'와 '갤럭시 로테이션의 향후 작전 방향'이 가장 큰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한편, 쿠와르 행성 공역까지 후퇴한 진압군은 지원군을 기다리며..."
카림은 뉴스를 들으며 라제스에게 말했다.
"대단하네요, 라제스가 쓴 기사가 그대로 방송되다니."
"당연한 거 아니야?"
"그렇지 않아요, 뉴로다이브 네트워크가 닿아있는 모든 곳에 라제스의 생각이 전달되는 거잖아요. 사실상 전 우주에 사는 사람들이 저걸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구요."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듯이 라제스를 바라보던 카림은, 표정을 바꾸며 물었다.
"그런데, 아깝지 않아요? 이 기회에 직접 현지 리포트를 찍어보내면 라제스의 얼굴도 방송을 타고, 그렇게되면 인지도가 급상승할텐데요."
"하나도 아깝지 않아. 얼굴로 승부하는 건 아이돌 가수들이나 하는 짓이지. 난 어디까지나 이거!"
라제스는 자신이 들고있던 펜을 들어보이며 말을 이었다.
"이거 하나로 이름을 날릴거라구."
"투철한 직업정신이네요."
"뭐, 툭하면 '일이니까'라는 대사를 말하는 누군가보다는 못하겠지."
"네에..."
한방 먹었다는 표정을 짓던 카림은, 다시 멀티비전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갤럭시 로테이션은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까요?"
"글쎄.. 쿠와르 행성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지원군이 오더라도 그렇게 많이 기대할 수는 없을거야. 게다가 이 전쟁의 당사자는 어디까지나 '미르'지 '갤럭시 로테이션'이 아니니까. 아무리 자회사가 곤경에 빠진다고 해도, 본사의 이미지 망치고 돈은 돈대로 버려가면서 그렇게 열성을 보일리가 없잖아? 아마 증원군도 한두번 정도가 끝이겠지."
"하지만 문제는 현재 다가브 시의 대공 방어망이 그러한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느냐죠."
"그건 그렇지만..."
카림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계속 뭔가를 써내려가던 라제스는 자신이 쓴 글을 다시 한번 훑어본 후 만족했는지 글씨가 빽빽하게 쓰여진 인화지를 전송기의 스캐너 속으로 밀어넣었다.
"지금 그건 뭐예요?"
"아, 우리가 봤던 오르비탈 캐논에 대해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해놓은 거야. 이정도 자료만 있어도 뉴로다이브 자료분석반 친구들이 분석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테니까. 너도 아까 들었듯이, 지금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거리는 '어떻게 쿠와르 행성같은 소규모 집단이 이런 무기를 갖게 되었는가'라구."
"네에.. 그러면 다음 기사는 언제 쓰러..."
"왜애애애애애앵!!"
"바로 지금이지."
다가브 시내에 요란한 공습경보가 울리기 시작하자, 라제스가 재빨리 카메라를 챙기며 튕기듯 일어섰다.
곧이어 모든 사람들이 방공호 안으로 대피하는 속에서, 카림이 운전하는 APC가 반대 방향으로 뛰쳐나왔다.
"하지만 이거.. 너무 빠른 것 아니예요? 갤럭시 로테이션의 가장 가까운 전진기지에서 출발했다고 쳐도, 하루만에 도착하는 건 불가능할텐데."
"아마 모종의 지시가 내려왔겠지. 더 이상 피해를 감수하기 싫으니 증원군을 보내줄 수 없다는 식의. 더 심한 경우엔 철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을지도 모르고."
그 말을 들은 카림이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다면 무엇때문에 갤럭시 로테이션의 패잔병들이 다시 덤벼드는 걸까요? 본사의 지시까지 어겨가면서."
"혹시 또 모르지."
라제스는 자신이 출발하기 전 종합해두었던 자료를 흝어보며 대답했다.
"이번 원정군 총 지휘관은 갤럭시 로테이션 19섹터 무력자원 관리부 부장이 담당하고 있으니까."
"그게 무슨 상관이죠?"
"상관이 아주 많아. 부장급 인물이 저정도 함대의 지휘관이 되었다는 건 상당히 빠른 승진이라구. 아마 출세를 위해서라면 물불 안가리는 사람일걸? 그런 인간이 첫 전투에서 순양함을 말아먹었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안간힘을 쓸수밖에 없는거지."
"과연. 본사로 끌려가 숙청당하기 전에 어떻게든 만회를 해보겠다는 거군요."
"하지만 전쟁에서 개인적인 욕심으로 섣불리 덤볐다가 좋은 꼴을 본 역사는 없는데 말이야.."
"뭐,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이제 곧 알 수 있겠죠."
카림은 하늘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헤드셋의 원거리 레이다에는 아르사브에서 살아남은 잔존병력들이 작렬하는 태양아래 다시 서서히 하강을 시작하는 모습이 잡히고 있었다. 그리고 이에 대응하려는 듯이 다가브 시내 곳곳에서도 미사일이 길게 꼬리를 끌며 날아올랐다.
"파바바밧!"
콩볶는듯한 소리를 내며 도시 상공에서 자폭한 미사일들은 검붉은 연기를 사방으로 뿌리며 사라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가브 시의 상공은 붉은 구름에 완전히 뒤덮혔다.
"에너지 산란용 연막이네요."
"응.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라제스의 대꾸가 끝나기 무섭게 그 효과를 입증시켜 주겠다는듯이 전함에서 이온빔이 번쩍였다. 기세 좋게 떨어져내리던 광선은, 그러나 연막층을 지나면서 그 위력이 급격하게 감소하기 시작했고, 결국 지상에 도착할때쯤엔 벙커 하나도 제대로 부술 수 없을 정도의 파괴력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확실히 효과가 있기는 있는것 같지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비록 공격에는 실패했지만 이온빔이 갖는 질량파는 보호 연막층의 곳곳에 커다란 구멍을 뚫으며 떨어져내렸고, 그 구멍을 메꾸기 위한 연막 미사일이 도착하기도 전에 전함의 포신에서는 두번째 공격의 물결이 시작되었다. 위성궤도상에서도 지상의 이동 차량을 정확히 저격 가능한 것이 자랑인 사격 제어 시스템에게 있어서 연막층에 뚫린 커다란 구멍 안으로 사격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덕분에 이번에는 거의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온전히 다가브 시내에 도달한 이온빔은 빌딩 사이를 날뛰며 시내 곳곳에 화상을 입혔다.
이에 맞서서 발사구를 개방한 대공 미사일 터렛에서도 연달아 대함미사일이 발사되었고, 앞서 발사되었던 연막탄과는 크기부터가 차원이 다른 요격 미사일이 하얀 궤적을 남기며 전함을 향해 돌진을 시작했다. 상당수는 지상으로 떨어져내리는 이온빔에 의해 공중분해 되어버렸고, 대기권을 벗어난 미사일 역시 구축함의 자체 요격체계에 가로막혀 대다수가 목표물에 닿지도 못한채 사라졌다. 그러나 워낙 많은 수가 발사되었기에 그 모두를 요격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비록 발사된 숫자에 비하면 극히 적은 수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은 미사일이 하나 둘씩 목표물에 꽂히며 방어력을 착실히 갉아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해적들을 막기위한 컨셉으로 배치된 다가브 시의 대공 방어망은 자신들의 원래 설정 목표인 코르벳이나 프리깃함보다 훨씬 더 강력한 장갑으로 무장한 전함을 상대해야 했고, 이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아는 갤럭시 로테이션의 함대는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는 기본 전략에 따라 1차 복합장갑이 벗겨져 나가는 것 정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대응사격을 하며 서서히 거리를 좁혀가고 있었다.
게다가 과잉보호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다중 장갑을 두르고 있는 순양함은 함대의 선두에 서서 거대한 방패 역할을 하며 가장 먼저 대기권 돌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기권을 빠져나오자 마자 이제는 요격당하더라도 그다지 큰 피해없이 상륙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섰는지, 곧바로 수많은 코르벳 수송선들을 전개시키기 시작했다.
적들이 가까워짐에 따라 상대적으로 사정거리가 짧아서 침묵을 지켜야했던 근거리 요격 시스템 - 단거리 에너지 병기와 멀티 미사일, 차량형 방공포대와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멸시받기는 하지만 아직도 쓸만한 화약병기에 심지어는 개인화기에 이르기까지 - 다가브 시내의 모든 무기가 하늘을 향해 발사되며 도시 전체가 폭음과 에너지 병기의 빛무리에 휩싸였다.
이러한 전면적인 요격에 힘입어 1차로 상륙을 시도하던 십여척의 코르벳함이 공중에서 폭발하며 그 잔해를 마치 비처럼 뿌렸고, 상대적으로 빈약한 장갑을 두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선두에 서서 만용을 부리던 구형 구축함 한대 역시 후미에서 폭발을 일으키며 서서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순양함과 지상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코르벳함이 요격받는 시간은 줄어들었고, 결국 세번째로 전개된 코르벳 수송선 부대가 지상에 성공적으로 착륙하면서 전차와 장갑차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아, 역시.. 해적들을 노리고 만든 대공 방어망으로 정규군을 막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했을지도."
"확실히.. 쿠와르 해방전선의 지상군도 여전히 건재하고, 방공 시스템도 아직까지는 대부분 남아있으니 완전히 함락되려면 상당한 피해는 감수해야겠지만, 이제 다가브 시가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야."
"그러니까, 아르사브같은 변두리 도시에 오르비탈 캐논을 배치한 것 부터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구요. 차라리 이곳에 배치했더라면 최소한 좀 더 오래 버틸 수는 있었을텐데 말이죠."
"아마 해방전선의 수뇌부는 아르사브에서 상대를 거의 전멸시킬 수 있었을 걸로 기대했나보지. 하지만, 아무리 2세대 오르비탈 캐논이라고 해도,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 거 아닐까? 뭐, 결국엔 계산착오라는 거겠지."
카림과 라제스가 이번 전쟁은 끝났다고 판단을 내렸을 때, 갑자기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이어지던 전투로 인한 진동과는 차원이 다른 떨림에 의아해하며 뒷쪽을 바라본 그들은 곧이어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뭐, 뭐야 저건!"
"오르비탈 캐논이.. 움직여?!"
웬만한 빌딩 높이의 거대 포신이, 핵융합 발전기가, 냉각기와 송전선이, 사격 통제탑과 전산장비가 각각 궤도차량에 탑재된 채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도시 외곽지역에 도착한 오르비탈 캐논은 누워있던 포신을 다시 치켜들며 신속하게 부속 건물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하하.. 하하하... 마, 말도 안돼.. 에너지 공급과 입자 가속의 안정성을 위해서는 지하 깊숙히 기초공사를 하고 포대 구조물을 박아넣어야 하는데.. 이동형 차량 위에서 발사한다니, 저런 어이없는 일이 성공할 리가..."
그러나 카림의 불신감 가득한 반응을 비웃기라도 하는듯이, 오르비탈 캐논은 어느새 건물간의 접속을 끝마치고 서서히 에너지를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길다란 포신의 초전도 코일이 푸르스름한 빛을 발하며 극한의 가속을 할 때쯤, 한창 신나게 상륙을 시작하려던 갤럭시 로테이션의 함대도 이를 알아차렸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어있었다.
"이건 정말 말도 안돼애애애!"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듯이 소리치는 카림의 목소리는, 곧이어 발사된 오르비탈 캐논의 사격음에 묻혀버렸다. 모래 언덕 위에서 상황을 관찰하던 라제스와 카림의 머리 위를 지나, 최후의 심판을 가하듯 오르비탈 캐논의 일격이 날아갔다.
워낙 가깝게 접근해있던 함대인지라, 눈 감고 쏴도 맞을만한 거리에서 발사된 오르비탈 캐논은 그대로 목표를 관통했고, 그렇지 않아도 순양함을 방패로 삼기위해 전함간의 안전거리조차 무시하며 밀집해있던 갤럭시 로테이션 함대는 얼핏 보기에도 상당수가 폭발 반경을 벗어나기는 힘든 위치에 있었다..
지금부터 죽어갈 사람들을 위해 잠시 묵념이라도 하는 듯, 모든 공격이 순간 멈춰버렸다. 그리고 곧이어 시작되는 파멸의 서곡. 너무 가까운 곳에 디멘션 홀이 열려서인지 지상에 서있던 카림과 라제스는 자신들 역시 빨려들어가는 게 아닌가, 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대지가 흔들리고, 거센 바람이 불며 하늘에 뚫린 조그만 구멍으로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